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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서구 대 이슬람 문명 충돌 예견…세계 정치의 새 패러다임 제시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문명사적 관점에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견한 <문명의 충돌>을 펴낸 미국의 비교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략촌’ 정책을 수립하고, 지미 카터 정부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기획조정관을 지내는 등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전후 70년의 세계적 차원의 사회변동을 이끌어온 힘은 무엇일까. 자본일까, 권력일까, 아니면 이념일까. 자유세계와 공산세계의 이념 대립을 기반으로 한 냉전은 전후 세계정치의 기본 구도를 형성했다. 이 냉전이 1980년대 후반 종언을 고하기 시작한 후 1993년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1927~2008)은 ‘문명의 충돌’이란 논문을 발표해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문의 핵심은 간단하면서도 분명하다. 1980년대까지 이념 대립으로 억눌려온 문명 갈등이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냉전의 종식이 문명의 부상과 이로 인한 문명의 충돌을 가져온다는 헌팅턴의 논리는 신선하면서도 논쟁적이었다. 헌팅턴의 테제는 한편으로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논리를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론 제도에 맞서 문화를 중시하는 논리를 적극 내세웠다.
1996년 헌팅턴은 논문 ‘문명의 충돌’을 바탕으로 한 저작 <문명의 충돌(원제: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을 발표했다. 논문에 이어 이 저작에 대한 찬반 역시 뜨거웠다. 특히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은 헌팅턴의 논리에 담긴 이원론, 문화중심주의,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했다. 하지만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문명의 충돌>은 이 사건을 예견한 탁월한 저작으로 재조명받았고, 다시 한 번 뜨거운 논쟁을 점화시켰다.
■문명의 충돌이란 무엇인가
“새롭게 태동하는 세계 정치 구도에서 핵심적이고 가장 위험한 변수는 상이한 문명을 가진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될 것이다.” 이 구절은 논문 ‘문명의 충돌’을 관통하는 핵심 아이디어다. 헌팅턴은 냉전 이후의 세계 정치 변화를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기 위해 저작 <문명의 충돌>을 썼다고 밝힌다.
헌팅턴에게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정치·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사람들은 문명이라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에 따르면, 문명은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다. 이 문명은 언어·역사·종교·관습·제도 같은 객관적 요소와 사람들의 주관적 귀속감 모두에 의해 정의된다. 그는 이러한 문명이 ‘우리’와 ‘그들’을 구별하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헌팅턴은 종교에 주목해 세계 주요 문명을 여덟 개로 구분한다.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정교, 서구,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문명이 그것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논문의 ‘유교 문명’을 저작에선 ‘중화(Sinic) 문명’으로 수정하고, 일본 문명을 독자적 문명으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헌팅턴이 문명을 주목한 까닭은 탈냉전 시대의 세계 정치가 ‘문명의 정치학’으로 특징지어진다는 데 있다. 세계 정치의 중심축이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가장 위험한 분쟁이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에서 발생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저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미래의 문명 충돌이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널리 알려진 유명한 언명이다.
헌팅턴은 서구와 이슬람권 간의 분쟁에서 비롯된 문명의 전쟁 가능성을 예견한다. 더불어 21세기에 들어서 중국의 도전이 거셀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래의 문명 전쟁을 방지하려면 핵심국들이 다른 문명 내부의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하고, 핵심국들 간의 타협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충고다.
■<문명의 충돌>을 둘러싼 논쟁
<문명의 충돌>이 지속적으로 화제를 모은 까닭은 이 저작이 발표된 이후 세계사회의 흐름에 있었다. 2001년 9·11 테러는 문명의 충돌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헌팅턴의 예견이 옳았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이슬람국가(IS)와 난민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명의 충돌은 21세기 벽두를 뒤흔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같은 포퓰리즘 부상도 문명의 충돌로부터 그 원인의 하나를 찾을 수 있다.문명 충돌론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독일 정치학자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은 대표적인 비판서였다. 이 저작은 1996년 독일 내 미국문화원에서 뮐러가 헌팅턴과 진행한 토론을 바탕으로 해 출간한 것이었다. 뮐러의 논리는 두 가지였다. 문명 충돌론이 ‘자유세계 대 공산세계’를 ‘서구문명 대 비서구문명’으로 대체한 이분법에 불과하다는 게 하나라면, 문명 간 교류와 문명 내 주류·비주류의 분화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게 다른 하나였다. 문명은 충돌한다기보다 공존한다는 게 뮐러의 주장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비판 또한 경청할 만했다. 성일권이 편집한 <도전받는 오리엔탈리즘>에 실린 사이드의 글들을 보면, 문명 충돌론의 중대한 약점은 서구와 이슬람에 대한 과도한 단순화에 있다. 문명 충돌론은 문명에 내재된 다양성과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이면에 비서구사회에 대한 서구사회의 우월의식을 감추고 있다는 게 사이드의 주장이었다. 문명 또는 문화는 인문·사회과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온 주제다. 경제결정론이 제도를 중시하는 시각을 대변한다면, 문화결정론은 의식을 중시하는 시각을 대변한다. 문명 충돌론은 1990년대 문화주의적 접근의 부활을 알린 대표적인 이론틀이다. 국제정치의 측면에서 헌팅턴의 이론에는 미국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사회변동의 측면에서 21세기 미래에 문명의 충돌이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 이들에게 문명 충돌론은 한번쯤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민해봐야 할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한국어판 저작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전문번역가인 이희재에 의해 우리말로 옮겨졌다. 뮐러의 <문명의 공존>과 함께 읽어보는 게 좋다. <문명의 공존>은 독문학자인 이영희에 의해 번역됐다.
■한국사회, 저성장·불평등 해결과 지역주의 정치·이기주의 문화 혁신 ‘이중과제’
2000년 새뮤얼 헌팅턴은 로렌스 해리슨과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라는 책을 펴내 <문명의 충돌>에 이어 다시 한 번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이 책은 하버드대 국제지역연구학회가 1999년 연 심포지엄 ‘문화적 가치와 인류 발전 프로젝트’에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 출간한 것이다.
사회발전에서 제도가 중요한가, 문화가 중요한가는 오랜 논쟁의 주제였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라는 제도를 중시했다면, 막스 베버는 종교를 포함한 문화를 주목했다. 둘 다 중요하다는 절충론이 설득력은 높아 보이지만, 그 강조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는 이론적으로 흥미로우면서도 정책적으로 함의가 큰 이슈다.
헌팅턴은 <문화가 중요하다> 서문에서 문화를 한 사회 내에서 우세하게 발현하는 가치·태도·신념·지향·전제조건으로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사회과학에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연구, 로버트 퍼트넘의 사회적 자본 연구, 그리고 헌팅턴 자신의 문명의 충돌 연구는 대표적인 업적들이었다.
<문화가 중요하다>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두 가지였다. 문화가 어느 정도까지 경제·정치 발전에 기여하는지가 하나였다면, 경제·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문화적 요인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가 다른 하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저작은 ‘문화와 경제발전’(데이비드 랜디스, 마이클 E 포터, 제프리 삭스 등), ‘문화와 정치 발전’(로널드 잉글하트, 프랜시스 후쿠야마, 시모어 마틴 립셋·개브리얼 샐먼 렌즈)을 위시해 ‘인류학적 논쟁’, ‘문화와 젠더’, ‘문화 그리고 미국의 소수 집단들’, ‘아시아의 위기’, ‘변화의 추진’이라는 일곱 개의 주제를 다뤘다.
헌팅턴도 서문에서 지적했듯, 한국 경제발전에서 교육 등 문화가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는 점은 서구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널리 공유된 견해였다. 그리고 정치발전에서 집단주의와 권위주의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성장을 가로막아 왔다는 점 또한 꾸준히 제시돼온 주장이었다.
분명한 것은 현재 한국사회에 부여된 혁신의 과제가 이중적이라는 점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 혁신은 물론 지역주의 정치와 이기주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 혁신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 이중과제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지에 한국사회 미래가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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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lash of civilizations
새뮤얼 헌팅턴의 대표작. 냉전 종식 직후인 1993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고, 3년 후 동명의 저서로 확대 출간되어 세계 전역에서 치열한 논쟁을 일으켰다.
2. 역사적 흐름
헌팅턴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에는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져 왔다.[1]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문명의 정체성을 대체하여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이 주도권을 차지하며 5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지속된다. 그러나 80년대 말까지 세계 질서를 결정하던 미국과 소련의 양극(bi-polar) 냉전체제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리면서, 다극(multi-polar) 체제로 다시 세계질서가 재편된다고 주장했다.[2] 그리고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을 위해 대신 싸워온 대리 전쟁 국가[3]들 내부에서 쌓여온 갈등,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 정체성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문명의 충돌》에서의 문화권 분류
Western - 헌팅턴은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권을 서방(Western) 문명권으로 보았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일부 지역, 파푸아뉴기니 등 이 있다.
Orthodox - 헌팅턴은 동구권을 정교회(Orthodox) 문명권으로 보았다. 발칸반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정교회 문화권과, 카자흐스탄 같이 구소련에 속해있던 지역 중 일부가 포함된다.
Islamic -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African - 아프리카, 즉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대명사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권이다.
Latin American - 라틴 아메리카, 토착 문화(아즈텍, 마야 문명, 잉카 등)와 가톨릭 문화권(에스파냐, 포르투갈)이 혼합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Sinic - 중국, 즉 유교 문화권으로 한자 문화권으로도 대표되는 동북아시아이다. 중화권, 한반도, 베트남 등이 포함된다.
Hindu - 인도 아대륙을 중심으로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힌두교 문화권이다.
Buddist - 불교 문화권이다. 티베트 불교 문화권(티베트, 몽골, 부탄 등)과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 문화권이 여기에 속한다.
Japanese - 일본, 일본이란 단 하나의 국가로만 성립하고 Sinic에 포함하지 않는 별개의 독자적인 문화권 으로써 특히 신토가 강세를 보인다.
4. 냉전 이후 세계 질서 예측
서구(Western)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며, 동아시아와 이슬람 문명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과 인근 국가들간의 세력 균형이 위협을 받을 것이며, 비서구 문명들은 자신의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강화해 갈 것이다.
서구의 압도적인 패권은 점차 약화될 것이며 그 패권은 점차 비서구 세계, 특히 동아시아 문명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권의 이동은 비서구 사회의 자긍심과 서구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의 쇠퇴로 인하여 종교의 이념적 가치가 부활하여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비서구 국가들은 서구 문명의 타락성에 반감을 가지며 서구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과 동아시아는 도전의 기반이 서로 다르다. 동아시아는 빠른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자기주장을 펼칠 것이며 이슬람은 인구 증가를 기반으로 자기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 두 차이점은 두 문명의 각기 다른 도전이 세계 질서의 위협에 끼치는 정도의 차이를 야기한다.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세계 질서 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슬람은 비 자본주의적인 방식, 즉 테러리즘과 같은 무력 행사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즉, 동아시아보다는 이슬람이 더욱 세계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자신들의 가치가 세계 보편적인 가치임을 주장하는 서구 문명에 맞서 동아시아(특히 중국), 이슬람의 도전이 앞으로의 세계 질서의 위협 요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정교회), 일본(신토), 인도(힌두교)는 이 문명의 경계선에 걸쳐서 있어, 협력과 갈등의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서구의 편에, 또는 비서구의 편에 설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려는 것을 미국이 저지하려고 할 경우, 대규모 전쟁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5. 현실 세계 대입[편집]
이 책은 냉전이 종식된 직후인 1993년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후 세계 질서 변화에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주요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슬람 문명과의 갈등 - 새뮤얼 헌팅턴이 예언한 이슬람 문명의 부상과 갈등은 2001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IS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일련의 테러 역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종교의 순수성 강화 -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슬람주의 세력이 성장하여 서구를 타락한 존재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요하고 있다.[4]
중국의 경제적 부상 - 중국의 부상은 헌팅턴이 예상한 방식으로, 경제적인 성장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패권 장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위안화가 준 기축 통화화 되면서, 미국의 달러화 본위제 기반 경제 패권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 -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에서는 지속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5], 경계선 상의 몇몇 국가들은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서 시소처럼 자국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패권 이동에 따른 대규모 전쟁 -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의하면 세계의 패권이 한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이동할 때 대규모의 전쟁이 발생한다고 한다.[6] (다행히도)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지만,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십수년 안에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6. 비판
"길 잃은 문명충돌론"(<매일경제> 2022년 7월 6일 기고문. 저자 장지향(아산정책연구원))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7]이 팽배했던 학계에 경종을 울렸으며[8], 새로운 분쟁의 원인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좋게 말하면 '명쾌하고 냉철한 선견지명'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분법적 숙명론과 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대립 선동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이 점은 황화론(Yellow Peril)과도 통한다.
6.1. 문명 간의 충돌은 숙명인가?
문명충돌론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의 대화, 공존 가능성과 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은 평가절하한 채, 대립과 충돌의 숙명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문명도 엄연히 인간이 만든 것인데, 인간이 문명에 일방적으로 지배받기만 한다는 주객전도식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1998년 독일 학자 하랄트 뮐러도 《문명의 공존》(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이란 저서를 통해 헌팅턴의 견해에 반박했다. 그는 문화는 섬처럼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충돌이 아니라 양립하거나 새로운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에드워드 사이드[9]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무지의 충돌(The Clash of Ignorance)이라는 글로 문명충돌론을 비판했다.
문명충돌론의 지지자들은 코소보 전쟁,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등의 사례가 헌팅턴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가 세력, 규모 측면에서 이슬람 전체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국가들 내부의 정치, 사회적인 불안정 및 취약성으로 이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제대로 예방 및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것이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또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르완다 학살 등 문명 내부의 충돌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도 '문명 충돌'이라는 요소만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국제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중요성의 비중 강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높다. 만약 동아시아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국제 질서의 주변부일 뿐이라면, 굳이 미국 같은 패권국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헌팅턴의 문명충돌론대로라면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대만, 한국 등은 진작에 중국과 협력 관계에 있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문명적으로 이질적인 미국과 동맹 내지는 제휴 관계에 있으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6.2. 서구중심주의(미국과 서유럽 중심)
냉전의 종식으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의 구도가 무너지고, 명백한 적이 사라지자, 헌팅턴이 문화권이라는 새로운 진영 논리를 끌어들여 서구 세계(사실상 미국)가 상대해야 할 새로운 이념적 적대 세력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있다. 기존의 냉전 세계관이 끝나니 이제는 러시아를 '정교회', 서아시아를 '이슬람', 중국을 '유교'라는 식으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6.3. '문명'의 탈을 쓴 자의적 구분
비판과 논란이 매우 많은 분류이다. 헌팅턴은 1차적으로 종교, 문화에 따라 구분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국제적인 세력 논리를 이름만 바꿔 나누어 놓은 세력 정치 반영에 불과하다.[10]
일단 보면 알겠지만 유라시아는 종교를 핵심적 문화 요소로 보고 묶은 경향이 있다.
그런데 같은 기독교권은 가톨릭-개신교의 서구권을 서방으로써 정교회권과 나누었는데 같이 서구에서 기원하였던 앵글로 아메리카는 서방에 편입시킨 반면, 라틴 아메리카를 또 구분하였다.
정작 같은 이슬람교라고 해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서로 갈등이 심한데다[11], 불교도 대승 불교와 상좌부 불교가 다른데 그냥 하나로 묶었다. 정작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종교의 정치 개입을 부정하는 세속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지배의 영향으로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러시아와 동유럽을 '정교회'권으로 구분한 것도 똑같이 치우쳐진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도 문제가 많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유교 문명권이었지만 지리적으로는 동남아이며, 북부 지방을 제외하면 유교 문화권뿐만 아니라 동남아 문명의 영향도 크다. 그리고 한자 문화권이라고 한국과 베트남을 중화와 묶어 놓은것도 굉장히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만든 잘못된 분류이다. 왜 일본만 굳이 분리해서 독자적 문명으로 간주했는지도 의문이다. 가나 문자를 만들거나 신토의 영향이 강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한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신토 못지 않게 강세인 불교는 중국에서 변형된 대승불교를 백제를 통해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여러 제도나 체계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상당히 많다. 실제로 서구학계의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였던 아놀드 토인비는 일본을 중국의 '위성문명'으로 분류하였을 정도였다. 오히려 독자적인 종교나 문자로 구분한다면 텡그리 신앙과 밀교를 믿고, 여진 문자와 몽골 문자, 만주 문자를 썼던 몽골족과 여진족이 별도의 문화권으로 나뉘지 않을 이유가 없다.[12]
게다가 필리핀과 파푸아 뉴기니를 서구(Western) 문명의 일부로 간주했으니 종교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부분은 헌팅턴 개인의 선호에 따른 자의적 분류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미국 내 영향력이 적거나 세력 정치와 반대되는 경우는 정말 비전문적이고 무성의한 분류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로 스리랑카와 인도차이나 반도 일부 지역을 몽골과 함께 불교 문화권으로 묶은 것과 서아시아 및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도서부를 같은 이슬람 문화권으로 묶은 것을 들 수 있다. 애초에 몽골은 지리적, 인문학적으로 북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에 가까운 지역으로써 저 동남아, 남아시아 지역들과는 기후와 생활 환경 자체가 다르고 스리랑카의 싱할라인과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믿는 상좌부 불교와 몽골의 티베트 불교는 서유럽의 개신교와 가톨릭, 동유럽의 정교회만큼이나 교리가 판이하게 다르다. 이슬람 문화권으로 묶인 지역의 경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는 언어 및 문화적으로 유사하여 일반적으로 동일한 문화권으로 간주되지만,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도서부는 기후와 환경, 인종이 상이하여 생활 양식이 크게 차이가 난다.
6.4. 미국 이민자 문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애초에 미국은 이민자인 영국 청교도들이 세웠으며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통해 키운 국가이기에 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가령 히스패닉계가 미국 내에 지나치게 많아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만을 고집하여 미국 안에 독립 자치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등이 있다. 이는 실제로 미국 백인/흑인들의 불안감에 부합하며[13],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탰다.
진영논리나 인종차별 논란을 떠나서 헌팅턴은 미국 역사를 아주 피상적으로 그것도 부정확하게 일반화한다는 주장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청교도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 "미국의 청교도"라는 종교집단은 하나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초창기 미국으로 이주해온 종교적 소수자 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교파가 청교도[14]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미국 백인 중 가장 인구 비중이 높은 집단은 주로 루터교회를 믿던 독일계 미국인이며, 미국 초창기 역사에서 정치 분야에서 활약한 교파 사람들은 상당수가 유니테리언 교회 신도였다. 16~18세기 미국에서는 유럽 각지에서 이주해온 칼뱅파 외에도 독일 루터교회 신도들도 많았는데, 루터교회는 청교도와 엄연히 갈래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독일계 루터파들은 초창기 미국 사회에서 이질감 없이 빠르게 적응했다. 미국 청교도가 단일화된 민족 종교집단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이 영국에서 이주해온 청교도 문화와 제도를 이어받았다는 주장은 미국 보수층들을 결집시킬 이데올로기로는 나름 적합한 설명이겠지만 역사적 정확성을 놓고 보면 사이비 역사학 수준의 설명이다. 미국 문화는 인종(영국계/독일계), 종교(개신교) 같은 요인 외에도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지리적/경제적 요인이 더 컸다. 종교에서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토지는 부족한데 인구만 많다던지 하면 해당 사회에 평등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미국 영토가 21세기에도 계속 확장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사회와 경제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마당에 불법 이민자만 안 오면 미국 문화가 부패하지 않고 보전된다는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