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운송사들, 기사에 ‘번호판 장사’… 보증금 명목 수천만원 받곤 안돌려줘
국토부, 지입제 피해 253건 접수
사업용 면허 빌려주는 대가로
금전 요구… 일방적 계약 해지도
화물차 기사 A 씨는 운송사와 계약하며 ‘번호판 보증금’ 명목으로 3000만 원을 냈다. 운송사가 사업용 화물차 면허를 갖고 있어서 일감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계약기간이 끝나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운송사는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거부했다. 화물차 기사 B 씨는 운송사 팀장에게 2년 뒤 돌려받는 조건으로 ‘번호판 권리금’ 2000만 원을 줬지만 일을 그만둘 때는 일부만 겨우 받을 수 있었다.
화물차 운송 시장에서 ‘번호판 장사’ 등에 따른 화물차 기사의 피해 사례 총 253건이 접수됐다. 지입제는 화물차 기사가 운송사에 월 30만∼40만 원의 지입료를 내고 개인 소유 차량을 운송사에 등록하는 대신에 운송사 번호판을 빌려 운행하는 걸 뜻한다. 화물차 총량제로 화물차 운송면허 신규 발급이 제한된다는 점을 악용해 지입 전문회사들이 화물차 기사들에게 번호판(면허)만 빌려주고 부당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3일까지 화물차 지입제 피해 집중 신고를 받은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6일 밝혔다. 이는 정부가 지난달 6일 당정협의에서 ‘화물운송산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정부는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집단 운송거부) 이후 지입제 등 화물운송업계 불공정 관행을 해소하겠다며 이들을 시장에서 퇴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단순히 운임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사들이 지입제 등으로 입는 피해를 근절해야 화물차주들의 정당한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피해 유형은 운송사가 ‘번호판 사용료’ 등으로 추가 금전을 요구, 수취하거나 미반환(44%, 111건)한 경우로 조사됐다. 화물차량을 대차 혹은 폐차하는 과정에서 동의 비용 명목으로 ‘도장값’을 수취(6%, 16건)하는 일도 있었다.
계약갱신권을 가진 기존 화물차 기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다른 기사와 계약하기 위해 운송사가 차량 번호판을 오려낸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있었다. 화물차 기사 C 씨는 운송사가 자신과의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화물차 앞뒤 번호판을 절단했고, 운송사에 번호판 재교부를 요청하자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맞서 약 100일간 운행을 하지 못했다고 신고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송면허 허가를 운송사가 받은 만큼 번호판이 훼손되면 기사가 아닌 운송사가 번호판 재교부를 신청해야 한다”며 “기사가 계약 해지를 받아들이지 않자 운송사가 이를 무기로 번호판을 훼손해 화물차 운행을 못 하게 괴롭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토부는 지금까지 접수된 피해 신고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2일부터 지자체와 함께 운송회사 현장조사를 진행 중이다. 신고자의 증빙자료와 운송사의 장부를 대조해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확인한 후 사업 정지, 과태료 등 후속 행정 처분을 실시할 계획이다. 화물차 지입제 피해 집중 신고 기간은 이달 17일까지 운영된다.
정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