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법을 아는 자는 법을 두려워 해-1 答 孫知縣
如佛不思議法品中에 所謂一切佛이 有無邊際身이어 色相이 清淨하고 普入諸趣하되 而無染着이라 하여늘 清涼이 但云하시되 佛不思議法品의 上卷 第三葉 第十行에 一切諸佛이어늘 舊脫諸字라하듯 其餘經本脫落에도 皆註之于經尾하시니라. 清涼도 亦聖師也라. 非不能添入及減削이언만은 止敢書之于經尾者는 識法者 懼也니라. 又經中에 有大瑠璃寶어늘 清涼이 曰하되 恐是吠瑠璃를 舊本에 錯寫라하며 亦不敢改하고 亦只如此 注之經尾耳이니라.
불부사의법품(佛不思議法品) 가운데서 말한 “일체불(一切佛) 유무변제신(有無邊際身) 색상청정(色相清淨) 보입제취(普入諸趣) 이무염착(而無染着)”에서, 청량 국사는, 다만 “불부사의법품 상권 제삼엽 제십행이 ‘일체제불’인데 옛 본에서 ‘諸’자가 빠졌다”고 하면서, 그 나머지 경분의 글자가 빠진 것도 모두 경 끝에 그 내용만 말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청량 국사도 거룩한 스승입니다. 잘못된 글자를 더 보태거나 뺄 수 없는 것이 아닌데도, 다만 경 끝에 그 내용만 써 놓았던 것은 법을 아는 자는 법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또 경 가운데 “대유리보(大瑠璃寶)”라는 구절이 있는데, 청량국사는 아마 “폐유리(吠瑠璃)를 옛 본에서 잘못 옮겨 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감히 고치지도 못하고 또한 경 끝에 이처럼 풀이를 달았을 뿐입니다.
六朝翻譯諸師도 非皆淺識之士라. 翻譯場에는 有譯語者하며 有譯義者하며 有潤文者하며 有證梵語者하며 有正義者하며 有唐梵相校어늘 而左右는 尚以為錯譯聖意라. 左右는 既不得梵本이어 便妄加刊削하여 却要後人 諦信이 不亦難乎아. 如論長水하여 依句而違義라하듯 無梵本證커늘 如何便決定하여 以其為非리오. 此公은 雖是講人이라도 與他講人과 不同이라.
여섯 왕조시대에 번역했던 모든 스승들도 모두 지식이 적었던 사람들은 아닙니다. 경을 번역하는 장소에는 말을 번역하는 사람 · 뜻을 번역하는 사람 · 글을 다듬는 사람 · 범어의 뜻을 증명하는 사람 · 뜻을 바로 세우는 사람 · 당역과 범본을 서로 교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그대는 오히려 이들이 부처님의 뜻을 잘못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대는 범본을 얻지 못하여 근거도 없이 바로 망령되게 글자를 더 보태거나 빼서, 그것을 후세 사람들이 확실하게 믿도록 요구한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장수스님이 글귀에만 기대어 참뜻을 어겼다’고 논한 것과 같이, 범본의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바로 결정하십니까. 이 분은 경을 강의했던 분이라고 다른 강사와는 다릅니다.
甞參瑯琊廣照禪師하여 因請益瑯琊에 首楞嚴中에 富樓那 問佛하되 清淨本然인데 云何忽生 山河大地之義한대 瑯琊가 遂抗聲云하되 清淨本然커늘 云何忽生 山河大地오하니 長水 於言下에 大悟하고 後方披襟하여 自稱座主라하니라. 蓋座主는 多是尋行數墨일새 左右가 所謂 依句而不依義라하나 長水는 非無見識이며 亦非尋行數墨者이니라.
그는 일찍이 낭야 광조선사를 찾아가서 낭야 선사에게 『수능엄경』 가운데서 부루나 존자가 부처님께 “청정본연(清淨本然)인데 어떻게 갑자기 산하대지가 생겨나는 것입니까”라고 물은 뜻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낭야 선사가 “청정본연인데 어떻게 갑자기 산하대지가 생기는고”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장수스님은 그 말 끝에 깨달아 그 뒤에서야 마음을 열고 스스로 좌주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대개 좌주는 대부분 글줄이나 보게 되기에, 그대가 “글귀에만 기대고 참뜻을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장수는 견식이 없었던 게 아니며, 또한 글줄이나 찾아보았던 사람도 아닙니다.
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菩提아 하신 經文大段이 分明하여 此文이 至淺至近인데도 自是左右가 求奇太過하여 要立異解하여 求人從己耳니라. 左右가 引無着論에 云하되 以法身으로 應見如來이니 非以相具足故로라 若爾라면 如來는 雖不應以相具足으로 見이나 應相具足으로 為因하여야 得阿耨菩提라할새 為離此著故로 經에 言하되 須菩提아 於意云何오. 如來를 可以相成就로 得阿耨菩提아. 。
“여래가 相을 갖추지 않았기에 아뇩보리를 얻었다”고 표현한 진역(秦譯)『금강경』 문장의 뜻이 대단히 분명합니다. 이 글의 뜻이 지극히 쉬운데도 처음부터 그대가 기이한 뜻을 구함이 너무 지나쳐서 특이한 견해를 세워 다른 사람이 그대의 뜻을 따르도록 바라고 있습니다.
그대가 인용한 위역(魏譯) 『금강경』의 경문을 풀이한 『무착론』에서는 “법신으로 여래를 보아야 하니 여래는 상이 갖추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여래는 상이 갖추어진 것으로 보지 못할지라도 상이 다 갖추어진 것으로 因을 삼아야 아뇩보리를 얻을 것이다’고 집착하기에, 이런 집착을 여의도록 하기 위하여 『금강경』에서는 ‘수보리야, 너의 뜻에 어떠하냐. 여래가 상을 이룬 것으로 아뇩보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라고 물은 것이다”는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須菩提아 莫作是念等者 此義는 明相具足 體非菩提며 又 不以相具足으로 為因也니라. 以相은 是色의 自性故라. 此論大段이 分明커늘 自是左右가 錯見錯解爾라. 色은 是相의 緣起요 相은 是法界緣起니라. 梁昭明太子가 謂 莫作是念하라 如來不以具足相故로 得阿耨菩提를 三十二分中에 以此分으로 為無斷無滅分은 恐須菩提가 不以具足相則 緣起滅矣니 蓋須菩提가 初在母胎에 卽知空寂하여 多不住緣起相일새니라.
위역 『금강경』에서 말한 “수보리야, 이런 생각들을 하지 말라는 등”의 이 뜻은 상이 갖추어진 그 몸이 보리가 아니며, 또 상이 갖추어진 것으로 因을 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상이 색의 자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문의 뜻이 대단히 분명하거늘 처음부터 그대가 잘못 보고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색은 상의 연기이며, 상은 법계 연기입니다.
양나라 소명태자가 경에서 “여래가 상을 갖추지 않았기에 아뇩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 내용을 가지고 진역(秦譯) 『금강경』 삼십이분 가운데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으로 제목을 삼은 것은, 부처님께서 수보리가 상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연기가 멸한다고 생각할까 걱정했던 내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원래 수보리가 처음 모태에 있을 때 곧 공적을 알아서 거의 연기의 모습에 머물지 않았던 탓입니다.
출처: 禪 스승의 편지, 대혜 종고 『서장』, 원순 옮김
첫댓글 금강경의 구절에서 빠진 부분을 말씀드렸더니 여러 선사들도 잘못된 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정하지는 않고 말미에 의견을 넣었다고 하십니다.
경전을 수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요즘 한글 경전 번역을 위해 정말로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어렵고도 어렵네요. 그 시대를 반영하여 한글 번역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또 다른 시대가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한문으로 독송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편안하니 한글 번역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섯 왕조시대에 번역했던 모든 스승들도 모두 지식이 적었던 사람들은 아닙니다. 경을 번역하는 장소에는 말을 번역하는 사람 · 뜻을 번역하는 사람 · 글을 다듬는 사람 · 범어의 뜻을 증명하는 사람 · 뜻을 바로 세우는 사람 · 당역과 범본을 서로 교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도, 그대는 오히려 이들이 부처님의 뜻을 잘못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번역을 했다고 하니 오늘날도 조계종에서 좀 더 연구하여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 경전 표본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
한글 번역의 필요성을 우리 광덕스님은 일찌기 아셨지요. 그래서 유찬수좌와 의기투합하여 초딩학교 등사기를 빌려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한 걸 밤새 프린트하여 법회 때 나눠주곤 하셨다고. 하셨죠
번역은 어렵습니다. 정말 어려워요. 언어도 잘해야 하고 법안이. 열려야 정확한 번역이 됩니다
근현대엔 우리 스님만큼 번역 잘하시는 수행자가 없는 것 같아요. 조계종 주관으로 반야심경 같은 거 번역한거 보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불광요전의 한글 반야심경은 소천선사가 번역. 하신거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제 마음에 들어요
보니까 지난 번에 이어지는 글이네요.
선사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완전히(?) 같은 것 같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