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퀵서비스, 그 위험한 질주

[빠쫀나]

<국가 인권위원회의 "인권"이라는 1월호에 실린 퀵서비스에 관한 특집기사입니다.>

그동안 저희 퀵서비스 인권운동본부에서는 국가 인권위원회에 꾸준히 퀵서비스에 대한 실태조사를 요구하였던바,현재 한국 노동사회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하여 실태조사가 진행되고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행되고 있는 실태조사의 결과물이 나오면 그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 인권위원회 차원에서 정부에 퀵서비스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할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와 병행하여 국가 인권위원회와 정부 관계당국에 퀵서비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일환으로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인권"이라는 월간지에 저희 퀵서비스 관련 기사를 특집으로 다뤄줄것을 수차례에 걸쳐 요청,공문을 띄우고  또 많은 자료를 보냈었는데 이제야 결실을 보게 된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 특집 기사를 계기로 저희 퀵서비스에 대한 정부 관계 당국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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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복공판(覆工板) 위를 달릴 때가 가장 무섭고 두려워.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 그곳을 달릴 때면 지뢰밭을 통과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시내버스 내리는 문 위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내릴 때 오토바이 조심!’
그리고 대부분의 자가용 운전자들은 끼어들기를 밥 먹듯이 하는 택시와 버스 기사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고, 반면 버스기사들은 퀵서비스 기사를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하지만 같은 운송업인데도 오토바이 한 대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퀵서비스 기사(이하 라이더)들은 차도에 온몸을 노출한 채 촌각을 다퉈야 한다.

퀵서비스 시장은 홍보전쟁 중
일반적으로 라이더는 회사에 일정액의 알선료(수수료, 회비)를 선불로 납부한 후 회사로부터 배송업무를 소개받는, 배송료를 수입으로 하는 일종의 지입 관계에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다. 그들을 만나러 찾아간 곳은 서울 삼성동 ‘퀵서비스 인권운동본부’. 퀵서비스 인권운동본부 대표이자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마흔 중반의 유정인 씨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얼마 전(10.25) 정부의 특수고용직(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덤프?레미콘?화물 차량 기사 등) 보호대책 발표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정부로부터 가장 시급히 보호받아야 할 업종인 퀵서비스는 제외됐습니다.”
순간, 뇌리를 스치고 간 건 지입약정서(근로계약서)였다. 그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지입약정서에 회사 측은 알선료(월 40만~50만원)만 받을 뿐 운송수단 보유, 비용부담, 배송사고 등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자체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퀵서비스 업체가 외환위기 이후 난립했고, 회사와 기사의 수도 많이 늘었습니다. 물론 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먼저 정부가 나서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퀵서비스업을 제도화하고, 라이더 및 관련 종사자들을 법적?제도적으로 보호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예로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꾸어 일정규모 회사에 대해서만 허가해주고 신규 진입은 억제해야 합니다. 기존업체들의 과잉공급도 문제지만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신규업체들의 가격 덤핑과 과도한 사은품 공세로 시장질서가 붕괴되어 오너나 라이더 모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장질서를 담보로 한 구조조정? 유정인 씨의 주장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일정부분 타당성은 있어 보였다. 현재 서울시에서 영업 중인 퀵서비스 산업의 추정 매출액은 연간 7000억원. 수도권에서 일하는 라이더만도 최소 2만에서 최대 3만 명. 그러나 퀵서비스 업종이 생겨난 지 15년이 지나도록 정부의 법적 규제나 제도적 뒷받침은 없었다. 소위 목숨을 내놓고 하는 직업임에도 이들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이 전무한 상태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영세업체들이 난립하면서 경쟁을 벌이다보니 배송료 단가마저 뚝 떨어지고 말았다.
“5년 전만 하더라도 강북에서 시청까지 1만2000원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배송료가 지금 5000원으로 곤두박질하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업체의 난립과 무리한 경쟁으로 인한 모든 피해를 라이더들이 떠안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5일제로 인해 퀵서비스 시장은 난장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알선료만 가지고 계산하면 오너들이 꽤 많은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일거리를 늘리기 위한 홍보를 해왔으나 회사들이 우후죽순 난립하면서부터는 지키기 위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홍보전쟁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퀵서비스업이 우리나라에 형성된 건 1990년대 초반. 그 후 퀵서비스는 물류업종 중 가장 빠르고 신속한 몸놀림으로 변신,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업종으로 자리를 잡았다. 소화물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운송해야 하므로 지금처럼 교통이 혼잡한 도심에서는 제격이었던 것. 그러나 기업체는 물론 관공서, 개인까지 이용하는 퀵서비스업은 배송료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대해 유정인 씨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죽했으면 라이더도 아닌 오너가 퀵서비스 인권운동에 나섰겠습니까. 10여 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 아마 지금처럼 암담한 때도 없을 겁니다. 오너와 라이더가 살아남고, 이 시장이 살아남으려면 우선 문턱을 최대한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간섭하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특수고용직 보호대책이 퀵서비스업에 적용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가장 먼저 이곳은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곳이 아니라 평생직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도 그것입니다.”



복공판 위를 달릴 때가 가장 두려워!
유정인 씨의 사무실을 나왔을 때였다.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근무 중인 라이더들을 취재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오후 4시, 그들은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차량을 이용한 취재를 생각했다가 마음을 접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슨 수로 라이더들의 주행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단 말인가. 신호대기 중인 사거리로 나가보았으나 가장 선두에 서서 부르릉부르릉 기회를 엿보는 오토바이들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었다.
어렵게 약속장소와 시간을 정한 뒤 찾아간 곳은 신설동 고려학원 앞. 일과가 끝나는 저녁 8시경 라이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과 함께 부근 식당으로 옮겨갔을 때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아스팔트 위에서는 교통순경도 따라잡을 수 없는 스피드를 자랑하는 그들이었지만 부츠와 무릎보호대를 벗는 데 시간이 꽤 걸렸던 것.
“라이더의 삶이 이렇습니다.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무장을 합니다.”
자리에 앉으려다 말고 먼저 입을 뗀 사람은 류승호 씨였다. 그에게 술잔을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이 박현우, 김경석 씨가 복장 때문에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백화점 건물로 배송을 가면 십중팔구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매장영업에 지장을 준다며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것이지요. 은행에 픽업(배송할 물건을 가지러 가는 일)을 갈 때도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들어오라며 입구에서부터 저지당합니다. 고객으로 갔더라도 그랬을까요?”
“3년째 이 일을 해오고 있는데 단 한 번도 경찰의 검문검색을 무사히 통과해본 적이 없습니다. 경찰들은 라이더들을 날치기 주범 제1호로 지목하고 있거든요.”
삼겹살을 안주 삼아 술잔이 두어 순배 돌았을까.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는 탄식과 함께 알선료와 배송료가 도마에 올랐다. 관리직에서 근무하다 현장 라이더로 직종을 바꾼 김경석 씨가 그 포문을 열었다.
“관리직 근무를 해봐서 잘 아는데 어떤 회사가 50~60명의 라이더를 두고 있다면 사주는 월 500만원 수입은 됩니다. 만근(24일)에 하루 10시간 이상 배송업무를 할 경우 라이더는 150만~200만원 수준이고요. 오늘은 4만9000원을 벌었는데 집에 가지고 가는 돈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알선료, 쿠폰(사은권), 기름, 식대를 빼면 2만5000원 정도 남습니다. 기막힐 노릇이지요. 총수입의 50%이상을 경비로 지출하는데 무슨 수로 생활하겠습니까?”

이번에는 발그레 술기운이 오른 박현우 씨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일명 삥바리퀵(혼자 시장을 개척해 배송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저기 가면 배송료를 더 줄까, 일거리가 많지 않을까 하고 철새처럼 옮겨다녀봤는데 도대체가 이 바닥은 고무줄 잣대야. 기준이 없어! 그러니 여기저기 옮겨다닐 수밖에. 처자식 굶기지 않으려면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거든. 이직률이 가장 높은 것도 그 때문이야. 하지만 내가 보는 퀵서비스 시장은 무한해. 문제는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거고 언제 개죽음당할 지 모른다는 거야.”
쉰 중반의 그가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분위기가 사뭇 엄숙해지는 순간이었다.
“공사 중인 복공판(覆工板) 위를 달릴 때가 가장 무섭고 두려워. 눈이나 비가 내리는 날 그곳을 달릴 때면 지뢰밭을 통과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들은 날씨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퀵서비스 배송은 ABC로 분류되는데(A는 출발지에서 물건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 B는 픽업해 오는 것, C는 의뢰인이 의뢰하는 고객을 찾아가 물건을 받은 뒤 그 물건을 다른 고객에게 전달해주는 것) 이중 가장 짜증나는 배송은 착불이 많은 C고객. 지난 10월 ‘퀵서비스 노동자 협의회’를 결성한 류승호 씨가 비 내리는 날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배송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뭐라는 줄 아십니까. 왜 이리 늦었느냐, 내가 보내달라고 한 물건은 이게 아니다며 트집을 잡습니다. 그런 날은 반액의 배송료라도 받으면 다행인데 문제는 내 맘 같은 고객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물건을 받아온 곳으로 전화를 걸면 불통이기 일쑤고, 배송을 알선한 퀵서비스 사무실(상황실)로 전화를 걸면 거두절미하고 알아서 해결하라는 한마디가 전부라는 것입니다.”
급한 서류를 시작으로 다양한 샘플, 원단, 의류, 기계류, 대포통장, 마약, 음란물, 집에 두고 나온 휴대전화, 열쇠 수송에 이르기까지 속도로 밥을 벌어 먹는 퀵서비스. 여름방학 때면 용돈을 벌기 위해 모여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는 박현우 씨의 이야기를 끝으로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나는 신호를 위반한 게 아니야, 잠시 틈을 이용했을 뿐이야!
다음날 아침 8시, 청계천8가 대기실로 향했다. 내일 아침 서울의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내려간다는 간밤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앞당겨 배송 순번을 받기 위해 라이더들이 모여들었 다. 2005년 겨울, 취재했던 인력시장 대기실과 달리 퀵서비스 대기실은 묘한 긴장감이 묻어났다. 전화기 앞에 바짝 다가 앉아 있는 걸로 보아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에 귀를 기울이고 순번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김경석 씨가 모습을 드러낸 건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그를 보는 순간 어젯밤 그가 던진 한마디가 떠올랐다.
“나는 신호를 위반한 게 아니야. 잠시 틈을 이용했을 뿐이야.”

대기실에 들어갔다 나온 그가 엑시브125cc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헬멧과 두꺼운 장갑을 착용한 뒤 짐받이 칸에 올라탄 나는 손잡이를 꽉 쥐었다. 배송 순번을 받아 대기실을 출발한 지 3분쯤 지났을까. 청계천변 도로가 막히면서 간간이 비집고 들어갔던 그 틈마저 꼼짝없이 막혀버렸다. 어떤 경우라도 길에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는 그의 오토바이는 재빠르게 차도를 빠져나와 인도를 오르고 있었다. 묶지 않은 짐짝처럼 불안한 나는 짐받이 앞에 달린 손잡이를 한 번 더 힘주어 잡은 뒤 주위를 살폈다. 신호대기 중인 차량들이 꼬리를 물자 여남은 라이더들은 차도에서 인도로 잠시 몸을 피해 다시 차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멈춘 곳은 종로5가 한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4층 사무실로 들어간 김경석 씨는 배송할 물건을 건네받은 뒤 거래장부에 날짜와 이름, 가격을 적어 넣었다. 배송료를 월말에 계산하는 월정고객이었다. 오토바이를 세워둔 곳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였다. 어디론가 전화를 건 그가 출발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걸 10분 대기조라고 합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인근 고객으로부터 배송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거든요. 그것까지 받아 가려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도록 배송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사무실과 최종교신을 마친 그는 서초동으로 전화를 걸어 약도를 알아낸 뒤 벗어두었던 헬멧과 장갑을 착용했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한 건 소방도로에서 8차선 차도로 나왔을 때였다. 신호등이 있는 곳이면 부다닥부다닥, 라이더들이 탄 오토바이가 선두에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결전지로 떠나는 비장한 용사들 같았고, 퀵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한눈에 보여주었다.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독수리처럼 그들은 차도보다 차량과 차량 사이의 틈을 먼저 쟀으며, 틈이 보이면 지체 없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또 다른 틈을 찾느라 바빴다. 무릎이 시려온 건 남산2호 터널을 지나 잠수교를 지날 때였다. 뼛속을 쑤셔대는 12월의 한강 바람은 겨울 한파 때면 일 나가기 싫다던 박현우 씨의 자조를 생각나게 했다. 서초동 목적지에 도착한 건 10시45분. 대기실을 출발해 배송물건을 받았던 곳에서 대기한 10분을 뺀다(취재를 돕느라 안전운행을 준수한 10분은 빼지 않았음)면 35분이 걸린 셈이었다.

“하루 12탕은 뛰어야 10만원을 버는데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부터는 이마저 어렵게 됐습니다. 24일 만근이 20일로 줄어든 것입니다.”
이제 겨우 첫 탕을 뛴 터라 대기실로 돌아오는 길에도 김경석 씨는 끼어들기와 틈 비집고 전진하기, 인도로 뛰어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순번을 받으려면 배송할 때와 마찬가지로 속도전쟁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경석 씨와 헤어져 찾아간 곳은 서울대입구역 모 정형외과. 한 달 전 신호를 받아 직진하던 중 비보호 좌회전 승용차 범퍼에 받혀 왼쪽다리를 다친 임종찬 씨는 10주 진단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었다. 당구장을 운영하다 외환위기 무렵 라이더로 뛰어들었다는 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였다.
“그나마 나는 피해자로 입원해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가 된 동료들을 보면 집은 물론이고 식솔까지 결딴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토바이 한 대로 벌어먹는 사람들의 종말이 이렇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 안달인데도 보험회사는 피해버립니다.”
그러면서 그는 친목회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달 7명이 모여 술자리를 갖는데 1명만 빼고 휠체어 신세를 다 졌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착불일 경우 마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다 배송시간이 늦을 때도 있는데, 차가 밀리지 왜 오토바이가 밀리느냐며 되레 화를 냅니다.”
“교통위반 딱지도 꽤 떼였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그랬습니다. 지금은 1년에 두어 차례 정도 떼이는데 교통순경들한테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대부분 잘못은 라이더에게 있거든요.”
바퀴가 굴러가면 돈인데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임종찬 씨의 우스갯소리처럼 그는 라이더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궂은날 일 나가고 싶어 하는 라이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객들의 급한 서류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랬던 그가, 화장품 외판원으로 일하는 아내와 자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했던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나를 향해 전혀 예상치 못한 심경을 내비쳤다.
“라이더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많아 언제쯤 다시 일을 시작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정당하게 세금내고,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는 겁니다. 입원해서 지내보니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내가 정말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인가 싶고 이 나라 백성이 맞나 싶은 겁니다. 등록제든 허가제든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 정부가 내라는 세금은 다 낼 것입니다. 그런 만큼 퀵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보는 게 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 박영희 님은 대구에 살고 있는 시인으로 공동르포집 「길에서 만난 세상」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