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서 더 아름다운 마을
유기섭
로마제국의 아피아가도의 종착지인 브린디시 항구에 도착하여 배에서 내렸다. 이탈리아 동남쪽 해안도시. 아드리아 해에 면해있는 항구도시로 이탈리아반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작지만 아름다운 독특한 원뿔모양의 돌집 ‘트룰리’로 유명한 알베로벨로 마을에 들어섰다. 마치 동화속의 요정의 거리에 온 것 같은 착각과 감동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지금은 트룰리에 특산품이나 기념품을 진열하고 관광객을 맞으며 이방인을 맞이하는 이곳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은 어느 번화한 도시의 모습과는 다른 편안함을 더해준다. 화려하지 않은 작은 집들이지만 고유의 역사와 전통으로 단단해진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삶에 대한 진지함과 꾸밈없는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얼굴에 생긴 주름은 지나간 세월의 시간을 말해주지만 천진한 소녀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할머니의 수줍은 웃음은 오래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인종과 국가, 지역의 구분을 떠나 지구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본심은 순수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준다. 인간의 저변에 깔려있는 내면세계는 어디에서나 같다는 것을. 나의 이러한 감정은 전에 지구의 서쪽 끝 포르투갈의 어느 조용한 골목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다르지 않다. 띄엄띄엄 서있는 가계를 지키는 금발의 여인들. 어느 시장거리와는 달리 손님들에게 억지로 물건을 강권하지 않지만 그 앞을 그대로 지나치기가 미안해지는 그러한 미소를 보낸다. 외부에서 온 사람이 그리운 관광지이기 때문일까. 그리 환하지 않지만 밉지도 않은 미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건을 파는 것보다도 인간의 정을 드높이 사며 살아가는 그 모습들이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각에도 지구촌 어느 곳에는 동족끼리 끝없는 투쟁으로 주민의 기본생활이 무너져 정든 고향을 떠나고 국경을 넘어서 기약 없는 방랑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정처 없는 난민들이 지중해 바다를 건너다 귀중한 생명을 바다에 빼앗기는 사건들. 양보와 배려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로 인해서 생긴 일들을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알베로벨로 마을 사람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삶의 참모습과 여유를 배워가고 싶다. 그것은 오랫동안 닦아온 심성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작지만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마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진열장에 놓여있는 자신들의 수공예품을 가리키며 정성스레 설명을 한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며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그들의 마음씨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내딛는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그들이 보여준 포근한 심성을 그대로 가슴에 간직하고 이곳을 찾으리라.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변화의 바람으로 고유의 모습들이 사라지고 현대식 건축기술로 도시는 변하고 있다. 참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그 속도를 줄여보려고 애쓰지만 변화의 물결을 막기는 벅차한다. 작지만 아름답고 포근한 마을과 그 사람들을 가슴에 새기며 이곳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세상이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도 그들의 오랜 습속과 모습을 이어가고자하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배어있는 한 어쩌지 못할 것이다. 요란하지 않은 가운데 그들의 모습을 이어나가는 알베로벨로 마을사람들. 작아서 더 아름다운 마을을 지키는 그들의 오랜 숨결이 길이 이어져가기를.
유기섭 약력
2004년 수필문학 추천완료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 제27대 문학생활화위원회 위원,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이사, 서울서초문인협회 부회장, 경북문인협회 회원, 경북영덕문인협회 출향회원, 여울수필 동인, 수필집 <눈 속의 푸른 꽃>, 황희 문학상, 서초문학상, 작가와 문학상 수상
주소: (26467) 강원도 원주시 혁신로 92, 410동 1503호(반곡동, 푸른숨 LH4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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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서초 2020년 가을 앤솔로지 8호 게재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