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팔달문에서 창룡문까지(23~31)
23. 팔달문에서 영동시장을 지나니 앞에 지동시장이 나타난다~~
지동시장은 팔달문시장과 수원천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전통 재래시장이다.
‘수원화성’의 남쪽문인 팔달문을 중심으로 1900년경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지동시장’이 형성되었는데, 100여년 전 보부상들의 주 활동무대이기도 했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상설 시장으로 200여개의 점포가 밀집된 수원의 유명한 명물 전통시장이다. 시장의 번영을 바라며 손수 어주를 따라드시는 정조대왕 동상과 함께 막걸리 한잔 포즈를 취하며~~
24. 불취무귀 (不醉無歸) ! 정조는 화성 축성 당시 기술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불취무귀 (不醉無歸)’라고 하였다. 즉,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실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미이라고 하는데~~
좀전 ‘남치’에서 취하고
또 지동시장에서 흠뻑 취해 돌아갈것이다~~
만행팀 모두 앞다투며 정조대왕과 한잔 하려한다~~
25. 팔달문과 지동시장 사이에 영동시장이 있다~~
팔달문과 수원화성사이에 조성된 시장들은 정조대왕이 양주 수은묘에
모셔졌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용릉으로 옮기고 조성한 수원화성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시전이 펼쳐져 많은 사람들이 왕성한 교류를 하였는데
그 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팔달문과 수원화성 사이를 흐르는 수원천을 중심으로 지동시장, 못골시장, 영동시장 등에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시장앞 수원천 다리에 점심때 뭘 먹을까~~어느집이 좋을까 의견을 나누고있다~~
한정규가 모션 큰걸보니 아무래도 심상치않다~~^^**
26. 다시 만행팀들은 남수문을 지나 동남각루 성곽 바깥길을 돌아간다~~
해설사말에 성을 제대로
보려면 성을 들락 날락하며 봐야 한다고 하는데~~
의미있는 말같아 모두 미소를 짓는다~~동남각루(東南角樓)에서 동이포루(東二鋪樓)로
이어지는 화성 풍경 화성은 성곽 주위로 성 밖의 동태를 살피기에
가장
좋은 곳 네 군데에 각루를 세웠다.
27.
여지껏 성안으로 왔다면 동남각루에서 창룡문까지는 성밖으로 간다~~
주작가는 틈만있으면 사진기를 들이대는데~~이번엔 또 뭘 찍을까? 궁굼하다~~
동남각루(東南角樓)는 그 중하나로
동쪽 수원천의 위쪽 구릉으로
성벽이 꺽인 모퉁이에 있어서 역시 성 밖의 동태를 살피기에 알맞다.
즉
성이 산세 때문에 이 곳에 이르러 가파르게 뚝 끊어지고,
누각이 성 위로 불쑥 나와서 멀리까지 평야를
조망할 수 있다.
28. 마치 학술조사단같다~~성벽의 어귀까지 만들어 진 것은 내진설계였다니
참으로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다~~ 동이포루(東二鋪樓)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음 목조건물이며 초소나 군사대기소와 같은 곳이다.
동이포루(東二鋪樓)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탄하고 넓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봉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다.
서북쪽의 포루와 다르게 성벽에서 많이 돌출되었으며 판문이 설치되어있지 않다.
1.
목멱산(남산) 봉수대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관련 자료를 종합하고 고증하여
현 위치에
1개소를 복원한 것이라한다. 목멱산(남산)봉수대는 자취가 남아있지 않지만
수원 화성 봉수대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봉수대 중에서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봉수대라 한다.
봉수대는 봉화라고도 하며 굴뚝이
다섯 개이다. 굴뚝이 다섯 개인 이유는 상황에 따라
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리는 갯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올렸는데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입하면 4개,
접전시는
5개의 봉화를 올려 비상 사태를 전달했다고 한다.
문화해설사로부터 이런 저런 설명을 열심히
경청하고있는 만행팀들~~
30. 동포루(東砲樓) 는 3층으로서 지대 위에 혈석(穴石: 대포발사를
위해 구멍을 뚫은 돌)을
전면 2개, 좌우 3개씩 놓았다.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으로 구분하였으며,
총혈 15개를 만들었다. 지대 위에 뚫은 혈석은 포루(砲樓)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상부에 문루 3칸을 만들어 총안과 전안을
뚫어 놓았고, 문루 바깥 면에는 짐승그림을 그렸다.
처마는
납도리 홀처마에 우진 각지붕이다.
동포루(東砲樓)에서 창룡문(蒼龍門)으로 이어지는 화성 성곽밖의 풍경
~~
눈 덮힌 외과길을 걸으며 만행팀의 행열이 길게 늘어져 있다~~
동포루와
동일포루를 지나 창룡문에서 다시 성곽안으로 들어선다~~
31. 창룡문(蒼龍門)의 이름은 음양오행설에서 푸를 '창'자가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으로 1795년(정조 19) 건립하였다.
건축양식은 돌로 쌓은 홍예문 위에 단층문루를 세우고
밖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쪽이 열려 있는 옹성을 쌓은 구조이다. 이후 6·25전쟁으로 문루와 홍예가 크게 소실되었으나
1975년 다시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여행가 박재균이 문화해설사
못지않게 창룡문을 보면서 열심히 설명한다~~^^**
첫댓글 ㅎㅎㅎ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구석구석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니 푸근합니다.
31번 마지막 박재균 back packer는 창룡문을 설명했던것이 (? ) 아닙니다.ㅎㅎㅎㅎ
태국갔던 무용담중에...
사진찍다보니 박재균 이야기를 못들었군요~~동영상을 찍어 놓으면 음성도 듣고 복기할수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