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북한특수부대 제 124군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남한에 잠입했다. 북의 박정희 암살지령으로 청와대로 향하던 31명 가운데 생포된 김신조는 생방송 TV에서 침투목적을 묻는 질문에 '박정희 목따러왔다'고 말해 대한민국 전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국 공안 당국은 어떻게 이 엄청난 사건에 대응할 것인가? 의외로 심플한 답이 준비된다. 우리도 똑같이 31명의 특수공작원을 훈련시켜 북한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들 서른 한 명 부대원들의 목표는 단 하나, 북한 주석궁으로 침투해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었다.
영화 '실미도'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공격에서부터 시작해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보여준다. 살인범이나 사형수들로 이루어진 부대원들이 3년간의 지옥 훈련을 받는 과정, 71년 훈련 조교와 기간병들을 사살한 후 탈출하여, 군경합동진압군과 총격전까지 벌이다, 자폭하는 결말까지... 한국현대사의 숨겨진 그늘을 그대로 쫓아간다.
어느 정도 알려진 실화로서 부대원 전원이 죽는다는 실제의 결말을 알고 보아도 영화의 몰입에는 별로 방해받지 않는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실화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영화가 실제 사건을 쫓아가기만 할 뿐 무언가 더해주지 않는 다는 점이다. '실미도'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제작비 80억이 들어간 상업 영화일지라면, 단순한 과거 비극의 복원으로만 끝나기보다, 무언가 결말 위에 생각할 꺼리가 더해졌어야 하지 않을까?
파워맨이 만든 파워풀한 영화!
강우석 감독은 자타가 인정하는 인정하는 충무로 최고의 파워맨이다. '투캅스' 시리즈와 '공공의 적'을 만든 흥행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대단하지만, 시네마 서비스를 이끌며 영화 배급 시장의 선두를 차지한 상업적 안목 역시 대단하다.
영화를 보면 이런 감독의 역량이 곧곧에서 비쳐진다. 강우석 감독이 아니라면, 누가 안성기 설경구 정재영 허준호와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몇개월씩 스케쥴을 빼가며 영화를 찍을수 있으랴. 부대원 31명 하나 하나 공들인 캐스팅이나, 충실히 70년대의 시대상황을 살려낸 세트, 수중 촬영을 위해 해외 로케까지 감행하는 저력! 충무로가 현재 가진 최고의 인적 자원과 자본을 총동원하여 만들어진 '실미도'는 현재 박스오피스에서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맞서 선전중이다. 충무로의 파워맨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의 흥행대박으로 한국 영화의 파워를 확실하게 과시한 것이다.
마초는 멋지다! 과연?
'실미도'를 보면 터프가이 마초들의 넘쳐나는 카리스마, 폭발하는 남성성에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 멋진 마초들은 실상 소싯적에 동네에서 '맞짱'깨나 뜨던 친구들, 즉 왈패일 뿐이다. 정재영이 설경구더러 '니가 내 새끼 한방 깠으니까 나도 너 한방 까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 분출하는 카리스마는 언뜻 보기에 멋있을지 모르나, 실제로 이들은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단순 무식한 멤버들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단순 무식한 마초들의 이야기는 영화 주인공들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실미도 부대의 창설 그 자체가 그 얼마나 단순 무식한 논리인가? 너네가 우리 대장 목따러 애들 풀었으니, 우리도 똑같이 애들 풀어서 주석궁을 치겠다... 이거야말로 순전히 조폭 세계에만 통하는 전형적인 마초 논리아닌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으로 무식한 세월, 야만적인 세상을 살았던 것이다.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의 비극을 지켜보다 다시 2004년의 세상으로 걸어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단순한 그 시절의 단순 무식한 논리에는 웃음만 피식 피식 나온다. 그때, 내 앞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화면... 후세인이 드디어 미국에 잡혔단다. 후세인... 자기 동네에선 나름대로 '맞짱'깨나 뜬다고 이름을 날리던 그가 참으로 초라한 모습으로 끌려나오고 있고, 부시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다.
세월은 흘렀으나, 여전히 우리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야만의 세상을 살고 있다. '왜 아무도 말로 하지 않을까?'
Tip: 한국 영화계를 강타한 '웰메이드' 열풍.
작년 한 해, 한국 영화 시장 동향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벼운 '조폭 코미디'의 쇠락과 무거운 '웰 메이드' 영화의 약진이다. '살인의 추억' '장화, 홍련' '올드 보이'같이 '잘 만든 (Well-made)' 영화가 평단의 평도 좋았고 흥행도 대박을 쳤던 것이다. 이제 '웰 메이드' 영화는 한때 한국 영화계 재앙의 대명사였던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을 대체하는 한국 영화 시장의 새로운 흥행 코드가 된 것 같다. 잘 만든 영화가 잘 팔린다. 관객의 높아진 안목과 시장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현상이니 이 아니 반가운 일인가. 아, 이젠 우리네 방송쟁이들도 '웰 메이드'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익성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터인데... 쩝... 이거 쉽지 않겠군요...
첫댓글개인적으로 처음에 쓰셨던 것이 훨씬 좋았었는데... (얘들아, 말로 하자... ㅎㅎㅎ) 드라마 부분에선 이미 웰메이드가 나오고 있지 않나요? 네멋에서 시작해서 대장금까지 이어지는... 저는 피디님이 느낌표 정도의 기획력을 가지고(실은 더 능가하는) 교양을 강화한 오락프로그램으로 대박을 한번 치실것을 믿고 있습니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처음에 쓰셨던 것이 훨씬 좋았었는데... (얘들아, 말로 하자... ㅎㅎㅎ) 드라마 부분에선 이미 웰메이드가 나오고 있지 않나요? 네멋에서 시작해서 대장금까지 이어지는... 저는 피디님이 느낌표 정도의 기획력을 가지고(실은 더 능가하는) 교양을 강화한 오락프로그램으로 대박을 한번 치실것을 믿고 있습니다.
물론 대박이 목표가 아니라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척 깊고도 넓다고 느껴왔기 때문에... 큰 울림으로 남을 멋진 프로그램 기대하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영화의 길라잡이가 되주시는것도 감사해요. 이래서 시사를 못끊는다는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