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달포 전쯤 친구들 몇이서 부부 동반 나들이를 하자고 모처럼 슬기로운(?) 모의를 했었다.
다들 대놓고 말들은 안 해도 그 날이 그날 같은 세월이 훌쩍 지나갔듯이 남아있는 많지 않은 날 들이
그렇게 의미없이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공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끼리만 어울려 다닌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온 가상한 배려였을까?
말이 나온 김에 날자 까지 잡고 콘도 예약도 마쳤다. 오월 마지막 주 놀 토를 끼어서 일요일까지 하룻밤
이틀 예정으로 지난겨울에 다녀왔던 강원도엘 다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여지껏 미혼인 한 친구가
슬그머니 자기는 빼고 가라고 했다. 혼자서 남의 부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부적절하니 너희들이나
즐기고 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친구가 같이 가야 더 재미있겠다 싶어서 합동으로
강온 양동작전을 폈다.
을러도 보고 읍소도 하면서 마지막으로는 공갈 협박까지 했다. “좋아. 그런데 자네 말이야 사십년
친구지간에 <남>이라는 표현은 그렇다 치고. 모처럼 친구 부부와 나들이 한번 같이 가자는데 한다는
말이 <부적절>하다니. 장가를 보내든지 제명을 하든지 무슨 수를 내야지. 하는 수 없다. 평양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고만이라는 데. 우리 싱글 님은 빼고 따블들끼리만 가자.” 그렇게 맹공을
퍼부었는데도 넉살 좋은 총각 왈 “잘들 즐기고 오라”며 빙긋이 웃고 마는 것이었다
하여, 우리 사총사는 졸지에 삼총사가 되었다. 막상 날은 잡았는데 고민이 생겼다. 사람은 여섯인데
승용차는 다섯 명 밖에 탈 수 없다. 차 두 대로 가자니 이산가족이 되겠고 한 대로 가자니 우리들 중
아무도 여섯 명이 탈 차를 가진 사람이 없다. 궁리 끝에 렌터카를 쓰기로 하고 막상 차를 빌리려고
하니 주말 예약이 다 끝 난 상태여서 여기저기 알아보느라 애를 먹었다.
다행히 한 군데 차가 있어서 9인승 승합차를 빌리기로 했다. 전날 저녁에 집까지 차를 갖다 줘서 미리
시운전을 해봤다. 처음에는 승합차 운전이 처음인지라 어렵지 않을까 우려도 됐지만 막상 운전을 해
보니 차체만 크다 뿐이지 모든 구조가 승용차와 다르지 않아서 운전에는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 안심이 되었다. 다만 렌터카에는 차량 자손 보험이 가입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조심운전은
기본이지만 요금을 더 받더라도 안심하고 차를 쓸 수 있도록 보험제도가 보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일기예보는 주말 내내 비. 일요일 오후부터 갬이었다.
아내가 걱정을 한다. 친구들에게 물으니 “날씨가 좋으면 좋겠지만 흐리면 흐린 대로 또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묘미가 있으니 비 좀 온다고 계획을 작파할 것까지는 없다. 우리는 한 번 한다면 한다.”는
것이다. 이런 초지일관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겐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암 자랑스럽고 말고.
아침 일찍 강남 버스 터미널 근처 장로 친구 집 앞에서 만나 출발을 했다.
렌터카는 빌린 사람이 운전해야 한다는 조건 바람에 꼼작 없이 내가 기사노릇을 해야 했다.
이 번 여행은 완전히 전업 기사로 나선 셈이다.
아! 좋구나! 좋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기분이 좋은 건 나 뿐만은 아니었다.
놀 토 날 주말이 되어서 인지 판교 신갈 용인까지 지체와 서행의 반복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우리는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마냥 즐겁다.
우리가 어디를 간들 그게 무슨 대수랴.
모처럼 같이 동반해서 길을 떠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즐거운 것이다.
옛날에 들었던 유행 지난 유머에, 총각 친구 흉도 봐 가면서 신판 춘향전 학교 때 이야기로 웃고
떠들면서 사실 사소하기 그지없는 세상사는 이야기들. 그리고 어느 집이나 현안 과제이기 마련인
아이들 짝 지어 주는 이야기들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휴게소에 들러 아침을 먹기로 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휴게소는 미처 차댈 곳이 없을 만큼 대만원이다.
왜 그런 가 했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아침을 먹지 않고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었다. 옛날에는 먼 길을
떠날 때면 으래 새벽밥을 지어먹고 참까지 지니고 길을 가다가 그 참으로 요기를 했었는데 세상은
이렇듯 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할 때부터 한 두 방울 씩 내리던 가는 비가 제법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구름이 안개처럼 산정에 머물러 앞을 가린다. 구름이 머무는 산자락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간혹 구름이 걷힌 사이사이로 소나무가 누렇게 죽어가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소나무 재선충 피해가 이렇게 심각하니 걱정이 든다.
차 속은 산림청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며 울분 섞인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제 일처럼 걱정을 많이 하는 친구 <중산(中山)>을 당장 산림청장에 임명했다.
소나무 에이즈라는 재선충을 산림청장인들 어찌 할 수 있으랴 만은 모든 국민이 산림청장 된 기분으로
숲을 가꾼다면 우리 산하가 이렇듯 병들어 가는 일이 없지 않을까?
소나무가 사라진 우리 강산을 상상해 보라.
여기도 저기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고속도로 주변으로 소나무는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정녕 대책이
없는 것인가? 어릴 적 학교에서 송충이 잡으러 다닌 기억을 떠 올렸다. 소나무 하나라도 살리자고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이 되었었는데 지금 이렇게 대책 없이 방치된다면 어찌 한단 말인가?
3
차는 저만치 강릉을 비껴서 동해로 향하고 있다.
비는 여전히 산천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오월의 산하가 짙은 녹음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오늘 무릉계곡에 갈 것이다. 동해 나들목을 빠져 나온다. 나들목에서 우회전해서 삼척 가는
7번 국도를 가다 보면 금방 무릉계곡 안내판이 나온다.
비가 내리는 무릉계곡 가는 길은 얼마나 한적한지.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옆으로 끼고 조금 지나자 무릉계곡 진입로가 나타난다.
길을 따라 왼편으로 무릉계곡 계류가 이어져 내려온다.
바로 주차비 받는 차단기가 길을 막는다. 주차요금을 내고 들어서면 곧 주차장이다.
무릉계곡. 얼마나 환상적인 이름인가?
무릉계곡을 처음 찾았던 때에 <무릉도원>이 천하에 없는 비경의 상징이라 해도 하필 남의 나라 것에서
이름을 빌려 올 건 뭐람? 하는 뭐랄까 거부감 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상
세계를 이름으로 빌려썼다 해서 그게 남의 나라다 아니다 구분 짓는 생각 자체가 나의 속 좁음에서 비롯
된 것으로 자책을 했었다.
그 때 삼척 목수학교에 다닐 무렵에 들렀던 무릉계곡의 절경을 보고 언젠가 좋은 사람들과 다시
와 봐야지 했었다. 그 작은 소망이 이제 사 이루어지다니. 이곳이 내 원림이라도 되는 듯 자랑스레
안내를 한다. 모두들 정말 오기를 잘 왔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아내들의 탄성이 이어진다.
누가 이런 곳에 오자고 했느냐고 고마운 책망(?)을 한다. 이 자연에 쉽게 동화되어 하나가 될 줄 아는
친구며 우리 아내들의 순수함을 본다.
무릉반석, 학소대, 관음 폭포, 용추폭포, 쌍폭포, 장군바위 등 수많은 기암괴석과 절경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마치 선경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동해의 추암이나 정동진과 연계할 곳을 찾는다면 단연 첫 순위에 오르는 곳이 무릉계곡이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무릉 반석이 범상치 않은 계곡임을 미리 일깨워준다.
수백 명의 장졸이 앉고도 여유가 있다는 너럭바위 위로 맑은 청류가 소리죽여 흐르는 모습이 계곡의
규모를 말해준다. 비구름에 젖은 청옥과 두타의 웅장한 자태가 그윽하다.
부슬비가 내리는 산길을 우산을 받쳐 들고 산보 하듯이 쉬엄쉬엄 걸어가면서 계곡미를 만끽한다.
나뭇잎에서우산 위로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이 툭툭소리를 내며 정취를 더해준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는 절이 있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천년고찰 삼화사를 지나고 넓고 높은
암반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청아한 계곡의 진수를 맛보게 된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은 이름 그대로 옥류다.
시간의 여유가 있고, 산행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옥류동천에서 신선봉을 먼저 가보는 게 좋지만 아내의
발이 아직 성치 않기도 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기에 오늘은 계곡여행의 진수랄 수 있는 선녀탕과
용추폭포 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선녀탕 위의 암벽에 걸쳐진 짧은 철다리를 건너면 바로 쌍폭이다.
두 개의 물줄기가 양쪽 암벽에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속이 다 시원하다. 쌍폭위에는 또 하나의 작은
폭포가 있고 그 위가 용추 폭포로 이어진다. 쌍폭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그만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사진을 찍지 못하고 말았다.
두 개의 폭포는 마치 매끈하게 패어진 소를 돌아 다시 떨어지는데 그 물길이 그림 같다.
또 하단의 폭포가 떨어지는 소가 넓고 파랗게 고인 물이 깊이를 알 수 없어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물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같은 착각이 든다. 뒤처진 아내들이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르를
포기한 듯해서 쌍폭에서 위로 100여 미터의 거리에 있는 용추폭포를 못가 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여행은 늘 아쉬움의 연속이다.
아쉽기는 해도 이런 비경 속에 호젓한 산책을 했으니 더 바랄 게 무언가?
아내들이 저만치 길가 바위에 앉아서 한가롭게 담소중이다. 우리가 “선녀탕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려고 했는데 어찌 여기 앉아 있었느냐”고 했더니 아내들 이구동성으로 한다는 말이 “목욕하고 하늘로
올라가버리면 어찌하려고 그러느냐”고 핀잔이 날아왔다.
우리는 선녀들 옷만 지키고 있으면 그만인 줄 아는 똑똑한 나무꾼들이 아닌가?
아내들 속으로는 이사 갈 때 버리고 가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데 자기들이 무슨 꽃 미남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라고 웃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 주제도 모르고 요즘 선녀들 헌옷 버리고 새 옷 감춰
둔 줄 모르는 이 나무꾼들은 얼마나 무지몽매한가?
그러나 분명하기는,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동반자들 임에 틀림없다.
정말 무릉도원에 들었던 것처럼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듯 시간이 세시를 넘었다.
강릉 가서 점심 먹을 생각은 이미 글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우린 선계(仙界) 무릉도원에서
꿈을 꾸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하촌 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한다.
산림청장이 내려오면서 두리번거리더니 첫 집은 말고 두 번째 집이 좋겠단다. 산에 왔으니 산림청장
뜻에 따라야지 별 수 있는가? 등산객으로 보이는 십여 명의 단체 손님들 상 위에 빈 소주병들이 독일
병정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분위기가 화기 애애 좋아 보인다. 산채정식을 4인분 감자떡 하나 파전 하나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기본 반찬으로 도토리묵이며 이름도 모르는 형형색색의 나물들이 밥상에 오른다. 구수한 참기름 냄새며
방금 지져 낸 감자떡 파전이 군침을 돌게 한다. 두 남자 술잔에 소주를 따라준다. 술이 몹시 고팠지만
오늘은 안 된다. “술 안하는 총각 친구, 카츄사 운전병 출신입네 하고 자랑이나 말 것이지 그 운전병
녀석 데려 왔어야 내가 안심하고 술을 마실 수 있을 텐데....”라고 푸념을 했더니 다 들 배꼽을 잡는다.
먹음직스러운 도토리묵을 한입 가득 집어넣는다.
아내가 조금씩 먹으라고 눈치를 준다. 아 이 맛! 내 세상에 나와서 이렇게 맛있는 도토리묵은 먹어본
기억이 없다. 더덕 곰취에 토종 된장찌개는 둘이 먹다가 한 사람 초상 치러도 모를 지경이다. 아직도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헷갈릴 때가 많지만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할 때면 <사람은
먹기 위해 산다.>는 것이 맞는 말인 듯도 싶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반찬이 없어도 맛있었을 늦은 점심은 풍성했다.
혹시 각자 배꼽 빠졌는지 확인해 보고 가자고 주의를 준다. 나무꾼들이야 그렇다 치고 세 선녀님들의
표정들이 매우 밝으시다. 아마도 오늘의 모처럼의 나들이 첫 일정에 대한 만족의 표시일 것이다.
우리는 행복한 나무꾼과 선녀들이 아니던가?
첫댓글 '무릉계곡-나무꾼과 선녀"가 인터넷신문 조선.com에 오늘의 블로그로 추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