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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
혹시 당신들의 어린 시절, 밤하늘을 바라보며 은하계에서 보내오는 알 수 없는 신호들을 기다리느라고 밤잠을 설쳐대지는 않았는가? 고백하자면, 초등학교 3,4학년 때 나는 비행접시를 발견하기 위해 틈만 나면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길을 걷다 어느 순간 블랙홀처럼 내 몸이 빨려 들어가 외계로 이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피라미드의 이집트 문명이나 마추피추의 잉카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은 분명히 외계인이라고 믿고 있었다.
지구 이외의 천체에도 인간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16세기 철학자 G.부르노였다. 그는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 은하계에는 5억에서 10억 개 정도의 행성이 있으며 그 많은 별 어딘가에는, 다윈이 진화론에서 주장한생물학적 진화과정을 비슷하게 거쳤다면 거쳤다면,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생물체가, 어쩌면 훨씬 더 고등지능을 가진 생물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공상과학소설의 대가 웰스의 [우주전쟁](1898년)은 광대한 우주를 상상력의 바탕으로 해서 만든 최초의 SF 소설이다. 지름이 1.2미터나 되는 거대한 머리를 가진 문어형의 화성인 등장하는 이 소설은, 그후 창작된 많은 문화예술 작품 속의 외계인의 원형이 되었다. 지구 중력의 1/3밖에 되지 않는 화성에서는 고도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진화할 때 어느 특정부위가 비대해 질 수 있다는,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가진 설정이었다.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에서 일어난 비행물체 추락사건은, 그것이 UFO이며 그속에는 외계인이 타고 있었다는 주장에 탄력을 불어 넣으며 지난 50여년동안 많은 세계인들을 흥분시켰다. 로스웰 사건 30년뒤인 1977년 조지 루카스 감독은 그의 필생의 역작 [스타워즈] 시리즈를 시작한다.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부각된 [스타워즈]의 대중적 성공은 그만큼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필버그도 [ET]에서 외계와의 만남을 그렸고,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사인]에도 초록빛 외계인이 등장한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혹성 솔라리스](1972년)는 조지 클루니 주연의 [솔라리스]로 최근 리메이크 되어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SF 영화의 기원을 찾자면 조르쥬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190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SF 영화의 걸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의 시간적 배경인 2001년이 지났지만 아직 영화 속의 모습이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독수리 5형제만 지구를 지키는 줄 알고 있었다면, 크게 실수한 거다. 유년시절의 나처럼,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를 지키기 위해 곳곳에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은하계의 다른 외계인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하, 그렇다. [맨 인 블랙]의 검은 정장 입고 검은 선글라스 끼고 눈빛이 마주치면 이상한 광선총을 쏘던 그 요원들을 기억한다면, 이제 내 말이 조금 이해가 될 것이다. 사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돈나, 혹은 마이클 잭슨 등등이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혹시 아는가? 주위를 잘 둘러 보라. 우리 주변에도 지구인으로 변장한 외계인들이 갖가지 정보를 빼내기 위해 당신 옆에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병구가 있다.
장준환 감독의 재기 넘치는 상상력이 우리들의 우울한 마음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지구를 지켜라]는 그렇다고 SF 영화는 아니다. 코미디를 기본 구조로 하고 있지만 때로는 엽기, 때로는 스릴러, 때로는 SF 등의 온갖 장르가 비빔밥 짬뽕 퓨전 음식처럼 뒤섞여 있다. 얼핏 보면 황당함으로 채색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사회의 병들고 아픈 모습, 삶의 근원적 고독과 숙명적 사랑까지 씨줄 날줄로 잘 얽어져 있다. 독특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감독의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빨려들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의 런닝타임이 훌쩍 지나간다. 안심해도 될까? 주위에는 진정으로 지구를 지키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이야기의 발단은 납치극으로 시작된다. 강원도 태백, 첩첩산중 두메산골에서 양봉업을 하고 수작업으로 마네킹을 만들며 살고 있는 청년 병구(신하균 분)는 불행하다. 유년시절 탄광촌에서 일하던 아버지의 사고사,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는 어머니, 사랑하는 애인까지 눈 앞에서 사고로 죽어갔다. 그는 자신의 이 모든 불행이 외계인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개기월식이 일어나는 날까지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구에는 엄청난 재앙이 몰려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는 지구인으로 위장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백윤식 분)을 납치해서 안드로메다 왕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고문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조금씩 전개되면서 우리는 어쩌면 외계인 이야기는 하나의 트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경찰청장 사위인 강사장 실종사건을 수사하는 경찰들에 의해 어쩌면 이 사건이 다른 실종사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경찰서 요리사로 쫒겨난 왕년의 명형사였던 추형사는, 태백의 탄광촌에 지어진 병구의 집까지 찾아온다. 그는 각종 자료를 근거로 그 실종자들과 모두 관련이 있는 사람은 병구이며, 그는 자신의 개인적 복수를 위해 강사장을 납치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유년시절 병구의 아버지가 탄광에서 사고로 숨을 거두었으며, 어머니는 강사장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 외의 각종 실종 인물들도 모두 병구를 이런저런 이유로 괴롭힌 사람들이다.
자, 이렇게 [복수는 나의 것]처럼 유괴로 시작해서 복수로 마무리되는 것 같던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결말 부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대반전이 숨겨져 있다. 주의하시라, 이 영화의 결말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천기누설이다. 어쩌면 그 순간, 외계인들이 당신을 납치하기 위해 찾아올지도 모른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우리가 얻는 가장 큰 소득은, 한국영화 지형도에 새로운 영역에 추가되었다는 것이고 또 한 사람의 뛰어난 독창적 감독을 얻었다는 것이다. 장준환 감독은 그 이전에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오직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표현한다. 태백 탄광촌에 셋트로 지어진 병구의 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대담하고 독창적이다. 인물의 시점샷으로 움직이는 집안 내부의 병구/강사장의 팽팽한 대결은 특히 초록과 적색의 강렬한 색채 대비로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병구 역의 신하균은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영화에서 절대적이기도 하지만, [공동경비구역JSA]와 [복수는 나의 것]을 거치며 다듬어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외계의 나쁜 전파를 차단하는 독특한 헬멧을 착용하고 외계인의 신경시스템을 약화시키는 물파스로 간단하게 강사장을 제압하는 신하균의 연기는 연민과 분노, 예지력이 있는 천재와 과대망상의 정신병자, 현실과 허구 사이를 넘너드는 복잡한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표현하는데 성공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중심축인 강사장 역의 백윤식의 연기가 영화의 전체적 톤과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화려한 실크 팬티만 입고, 외계와 접속되는 중요한 연락수단이라고 병구가 믿고 있는 머리카락을 삭발당한채 의자에 손발이 묶여 있기 때문에 강사장은 고도의 내면연기가 필요한 캐릭터다. [불후의 명작]에서 잠깐 등장했지만 잊을 수 없는 과장연기를 보여준 백윤식의 톤은,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한 단계 높게 수위조절되었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더 사실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내러티브 전개에 있어서 리듬감의 부족도 지적할 수 있다. 소재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그것을 주어진 시간 안에서 리드미컬하게 요리하면서 관객들의 호흡을 끌고 가는 능력이 이 신인감독에게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독창적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끝까지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지구]라는 개를 적절히 등장시켜 관객을 혼란시킨다거나, 스릴러로 대단원을 마감하는 것같은 트릭은 높이 사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정말 지구를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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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거 지난 학기에 '대중예술의 이해' 들으면서 수업시간에 봤는데, 정말 뭔가 참 여운이 많이 남았던 영화였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