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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문명 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유토피아
제9장. 삶의 아픔과 싸움의 시작
분거(分居)한 모든 족속들이 넘어지고 엉키면서
각 주(洲)로 향해가니 어느덧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옛날에 성을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
각지에 섞여 살면서 그 세력이 자못 왕성하였다.
그러나 거의 근본을 잊어버리고 성질이 사납게 뒤틀려
새로 온 분거족들을 보면 무리지어 쫓아가 해하였다.
모든 분거족들이 이미 자리를 잡으니
바다는 험하고 산은 가로막혀 내왕이 거의 끊어졌다.
이에 마고가 궁희 소희와 더불어 대성(大城)을 수리하고
천수를 끌어들여 성 안을 청소한 후 허달(虛達)의 위로 옮겨버렸다.
이때에 청소한 물이 동과 서로 많이 흘러넘치므로
운해(雲海)의 땅이 크게 파괴되고, 월식(月息)의 사람들이 많이 죽였다.
이로부터 지구의 중심이 변하여 역수(曆數)가 어긋나므로
삭(朔)과 판(?)의 현상이 생겨났다.
[원문]
分居諸族 繞倒各洲 於焉千年 昔世出城諸人之裔 雜居各地 其勢甚盛 然 殆忘根本 性
분거제족 요도각주 어언천년 석세출성제인지예 잡거각지 기세심성 연 태망근본 성
化猛? 見新來分居之族則 作群追跡而害之 諸族已定住 海阻山隔 來往殆絶 於是 麻姑
화맹령 견신래분거지족즉 작군추적이해지 제족이정주 해조산격 내왕태절 어시 마고
與二姬 修補大城 注入天水 淸掃城內 移大城於虛達之上 是時 淸掃之水 大漲於東西
여이희 수보대성 주입천수 청소성내 이대성어허달지상 시시 청소지수 대창어동서
大破雲海之地 多滅月息之人 自此 地界之重 變化 曆數生差 始有朔?之象
대파운해지지 다멸월식지인 자차 지계지중 변화 역수생차 시유삭판지상
[해설]
1. 분거제족(分居諸族)
마고성에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분거한 황궁씨족, 청궁씨족, 백소씨족, 흑소씨족을 말한다.
2. 석세출성제인지예(昔世出城諸人之裔)
‘오미의 화’를 일으키고 1차로 마고성을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먼저 마고성을 나간 사람들의 후예들이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거의 근본을 잊어버리고 성질이 사납게 뒤틀려 새로 온 분거족들을 보면 무리지어 쫓아가 해하였다. 1차로 마고성을 나간 원주민들과 2차로 마고성을 나간 이주민들 간에 많은 전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 이대성어허달지상(移大城於虛達之上)
마고대성은 선천에는 허달성과 나란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후천이 열려서 지구가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자, 지상으로 내려와 파미르고원에서 지상천국을 열었다. 그러나 인류가 오미(五味)의 화’로 타락하자, 마고는 마고대성을 아득히 먼 허달(虛達)의 위로 옮겨버렸다.(부도지 제2장 참조)
4. 대파운해지지(大破雲海之地)
마고성을 청소한 물이 동쪽으로 흘러넘쳐 운해(雲海)의 땅인 중국 중원지역의 땅을 많이 파괴하였다고 하였다. 고대에는 잦은 홍수가 일어났으며, 중국대륙이나 한반도 등에도 수많은 홍수신화가 전해오고 있다.
5. 다멸월식지인(多滅月息之人)
마고성을 청소한 물이 서쪽으로 흘러넘쳐 월식(月息)의 땅인 중근동과 서유럽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이 지역에도‘노아의 홍수’등 수많은 홍수신화가 전해오고 있다.
6. 삭(朔)과 판(?)
삭과 판은 역(曆)의 용어다. 삭은 천구상에서 해와 달이 만나므로 달을 볼 수 없는 현상을 말한다. 판은 1년이 365일로 딱 떨어지지 않고 4년에 1번씩 1일을 더하여 366일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도지 제23장에 “3과 1/2사(祀)에 대삭(大朔)의 판(?)이 있으며 판(?)은 1/2사(祀)이니, 이는 2와 5와 8의 법수(法數)이다. 판(?)의 처음은 1일과 같으므로 4번째 사(祀)는 366일이 된다.“고 하였다. <끝>
제10장. 천부삼인(天符三印)의 전수
황궁씨가 천산주에 이르러 의혹을 풀고 복본을 서약하며
무리들에게 수증(修證)하는 일을 권하고 힘쓰도록 하였다.
또 맏아들 유인씨에게 명하여 인간세상의 일을 밝히도록 하고
둘째와 셋째아들로 하여금 모든 주(洲)를 순행하게 하였다.
황궁씨가 마침내 천산으로 들어가 돌이 되어
길게 울며 음(音)을 조율하였다.
이로써 인간세상의 의혹을 남김없이 풀어서
기필코 대성 회복의 서약을 이루려 하였다.
이리하여 유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계승하니
이는 천지본음의 모습으로 근본은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유인씨가 사람들이 어둠과 추위에 시달리는 것을 불쌍히 여겨
나뭇가지로 마찰하고 부싯돌을 쳐서 불씨를 만들었다.
어둠을 밝히고 몸을 덥히며 음식 익혀먹는 것을 가르치니
모든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유인씨가 천년을 지난 후 천부를 아들 환인에게 전하고
산으로 들어가 오직 계불(??)을 닦으며 나오지 않았다.
환인씨가 천부삼인(天符三印)을 이어받아
인간세상의 이치 깨우치는 일을 크게 밝혔다.
그리하여 햇빛이 고루 비치며 기후가 늘 순조롭고
혈기를 지닌 무리들이 거의 편안함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의 괴상한 얼굴도 차츰 본래대로 돌아오니
이는 삼세(三世) 삼천년 동안의 수증(修證)으로
그 공력이 거의 하늘성품에 다다른 까닭이었다.
[원문]
黃穹氏 到天山洲 誓解惑復本之約 告衆勸勉修證之業 乃命長子有因氏 使明人世之事
황궁씨 도천산주 서해혹복본지약 고중권면수증지업 내명장자유인씨 사명인세지사
使次子三子 巡行諸洲 黃穹氏 乃入天山而化石 長鳴調音 以圖 人世惑量之除盡無餘
사차자삼자 순행제주 황궁씨 내입천산이화석 장명조음 이도 인세혹량지제진무여
期必大城恢復之誓約成就 於是 有因氏 繼承天符三印 此卽天地本音之象而 使知其眞
기필대성회복지서약성취 어시 유인씨 계승천부삼인 차즉천지본음지상이 사지기진
一根本者也 有因氏 哀憫諸人之寒冷夜暗 鑽燧發火 照明溫軀 又敎火食 諸人大悅 有
일근본자야 유인씨 애민제인지한냉야암 찬수발화 조명온구 우교화식 제인대열 유
因氏千年 傳天符於子桓因氏 乃入山 專修??不出 桓因氏 繼受天符三印 大明人世
인씨천년 전천부어자환인씨 내입산 전수계불불출 환인씨 계수천부삼인 대명인세
證理之事 於是 日光均照 氣候順常 血氣之類 庶得安堵 人相之怪 稍復本態 此 三世
증리지사 어시 일광균조 기후순상 혈기지류 서득안도 인상지괴 초복본태 차 삼세
修證三千年 其功力 庶幾資於不咸者也
수증삼천년 기공력 서기자어불함자야
[해설]
1. 해혹복본(解惑復本)
‘의혹을 풀고 근본(마고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해혹복본은 부도지 전편을 통하여 흐르는 인류의 대 이상이다. 마고성의 낙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의심을 남김없이 풀어버려야 한다.
모든 의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리는 곧 천부의 이치를 말한다. 천부의 이치는 바로 만물이 하나(一)에서 비롯하여 그 하나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하나이며, 나와 만물이 하나임을 깨달을 때 모든 의혹은 봄날에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고 푸른 하늘이 바로 나임을 알 것이다.
2. 수증(修證)
수증은 수증향상(修證響象)의 줄임말로 볼 수 있다. 즉 향상을 밝히고 닦는 것을 의미한다. 마고가 4명의 천인과 4명의 천녀에게 결혼하여 사람을 낳도록 한 것은 바로 향상을 밝히고 닦는 역할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바로 만물이 만물의 본음을 깨닫고, 그 본음에 감응하여 울리도록 함으로써 조화로운 삶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만물이 자신의 본음을 깨닫고 감응하여 공명할 때 건강과 장수를 누릴 수 있으며, 자신의 본음을 의심하고 감응하지 못하면 온갖 질병과 수명이 단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증향상(修證響象)은 바로 자신과 만물의 삶을 돕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이며, 마고가 사람을 낳은 참 뜻이다.(부도지 제4장 참조)
3. 유인씨(有因氏)
유인씨는 황궁씨의 뒤를 이었으며, 사람들에게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 중화족은 삼황(三皇)의 한사람인 수인씨(燧人氏)가 불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부도지가 말하는 유인씨와 중화족이 말하는 수인씨는 닮은 점이 많다.
4. 순행제주(巡行諸洲)
황궁씨의 후손들은 대대로 천산주, 운해주, 월식주, 성생주 등 모든 주를 순행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오미의 잘못을 뉘우치고 지상낙원인 마고성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썼다.
그것은 황궁씨가 마고에게 스스로 오미의 책임을 지고 복본을 맹세한 일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부도지 제8장 참조)
이러한 순행은 환웅씨 임검씨의 시대로 이어지고, 신라시대에 이르러는 마랑(馬郞)이라는 제도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부도지 제30장 참조)
5. 돌
황궁씨가 마침내 천산으로 들어가서 돌이 되어, 길게 울며 음(音)을 조율하였다.
돌은 고대 문화의 상징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영국의 스톤헨지, 프랑스 카르나크의 열석, 태평양 이스터 섬의 거인상, 한반도의 고인돌 등등 세계적으로 수많은 거석문화를 남겼다.‘황궁씨가 돌이 되었다’는 내용은 세계적인 거석문화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증언이다.
고대에는 모든 음을 팔음(八音)으로 표현하였는데, 팔음(八音)은 쇠[金] ? 돌[石] ? 실[絲] ? 대나무[竹] ? 박[匏] ? 흙[土] ? 가죽[革] ? 나무[木] 등 8가지를 소재로 하여 만든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부도지 제2장 해설 참조)
그리고 팔음(八音) 중에서 특히 돌[石]로 만든 석경(石磬)은 음악의 조화로움을 총괄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이다. <서경>에 “팔음에 오직 석(石)만을 말한 것은 대개 석경의 소리는 각(角)에 속하여 가장 조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 <예기>의 악기편에 가로대 경(磬)으로 분별을 세운다 하니 무릇 음악은 화합함을 으뜸으로 삼거늘 석경만을 홀로 분별로 세우는 것은 그 조화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 석경의 소리가 이미 조화되면 금(金), 사(絲), 죽(竹), 포(匏), 토(土), 혁(革), 목(木)의 소리가 조화되지 않음이 없음이라. <시경> 상송(商頌) 제1편에 이르기를 ‘이미 조화하고 이미 고르게 우리 석경 소리를 도우니라’고 하니 석(石)을 말한 것은 음악의 조화로움을 총괄적으로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우서 제4편 익직10장 해설|작성자 법고창신)
부도지에서 우주의 창조자는 율려, 즉 파동이며 음악이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이 음악으로부터 나타나며, 그 음악은 팔음(八音)으로 표현되었다. 팔음가운데 가장조화하기 어려운 것이 돌(石)로 만든 석경(石磬)이다. 석경만 조화되면 모든 음이 조화되어 우주가 조화로운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며, 지상낙원인 마고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궁씨가 돌로 변하여 길게 울며 음(音)을 조율함으로써, 인간세상의 의혹을 남김없이 풀어서 기필코 대성(大城) 회복의 서약을 이루려 한 것이다.
최근에 천산산맥의 남서쪽지역 (파미르고원을 향하는 방향)의 암석들을 연구하는 중에 오래도록 정교한 소리를 내는 '포노라이트 테프라(phonolite tephra)'가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것은 약 1600만 년 전에 화산암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천산산맥에서 파미르고원과 매우 가까운 코히스탄-라다크 지역에 다량의 '포노라이트 테프라' (정교한 경석)가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연구한 암석학 학술지에는 이러한 특이한 돌의 지대가 약 30km 폭과 100km 길이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혹시 천산산맥의 포노라이트가 황궁씨가 오랜 세월 동안 공명이 되는 소리를 내는 돌로 변했다는 <부도지>의 기록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국학뉴스/김정양 칼럼3 ‘실낙원이 된 마고성’참조)
6. 천부삼인(天符三印)
천부삼인은 하늘의 권능을 상징하는 신물(神物)이다. 천부삼인은 마고성에서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 황웅씨 임검씨 부루씨 읍루씨를 거쳐 신라로 전해졌으며, 세상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근본이 되었다. 천부삼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하여 여러 가지 견해가 있으나, 부도지는 천부삼인이 하도(河圖)와 관련이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부도지 제1장 ‘천부’해설 참조)
1) 천지본음지상(天地本音之象)
천부삼인을 천지본음의 모습이라고 하였다. 천지본음은 율려이며, 율려는 1에서 9까지의 자연수로 표현하였다. 부도지 제21장에서 “아홉 수가 돌면서 율려(律呂)가 서로 어울린 후 만물이 생겨난다”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홀수는 율(律)을 나타내고 짝수는 여(呂)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천부삼인은 천지본음인 율려, 즉 1에서 9까지 자연수가 운행하는 것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하도(河圖)가 이를 잘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기진일근본자(其眞一根本者)
그것, 즉 천부삼인은 진실로 근본은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천부를 해설한 천부경을 보면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一)에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탄생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은 또 다시 그 하나(一)로 되돌아간다’고 노래하고 있다. 너와 내가 하나이고, 나와 만물이 하나임을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천부삼인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부삼인의 이치를 깨달은즉 어찌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7. 찬수발화(鑽燧發火)
찬(鑽)은 끌, 뚫다, 자르다, 구멍을 낸다는 뜻이며, 수(燧)는 부싯돌, 봉화, 횃불이라는 뜻이다. 즉 찬수발화는 나뭇가지로 마찰하고 부싯돌을 쳐서 불씨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8. 환인씨(桓因氏)
환인씨는 유인씨의 뒤를 이어 세상을 다스렸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환인씨가 7세를 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옛날에 환국(桓國)이 있었는데 백성들의 생활이 부유하고 풍족하였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있으면서 도를 얻어 오래 살고 몸을 다스려 병이 없었다.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교화하여 사람들이 전쟁의 화를 입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모두 부지런히 일하여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자가 없었다.
혁서 환인, 고시리 환인, 주우양 환인, 석제임 환인, 구을리 환인, 지위리 환인에 이러렀다. 지위리 환인을 단인(檀因)이라고도 한다. 7세를 이어 역년이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고 한다.” 하였다.(환단고기 고동영 저 130쪽)
9. 계불(??)
계는 ‘계제(?祭)’‘부정을 씻기 위한 목욕재계의 행사’ 등을 의미하며, 불(?)은 ‘푸닥거리하다’‘부정(不淨)을 없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계불은 목욕재계하고 부정을 없애는 수련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10. 증리지사(證理之事)
이치, 즉 천부의 이치를 깨우치는 일을 말한다. 증리(證理)는 복본하여 마고성 낙원으로 가기 위한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도지 제20장에서 “사람의 일은 이치를 깨닫는 것이요, 인간세상의 일은 그 이치를 깨달은 사람의 일을 밝히는 것이다. 이외에 다시 무엇이 있으리오. 그러므로 부도의 법은 천수의 이치를 밝게 깨달아 사람으로 하여금 그 본래의 임무를 다하여 그 본래의 복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11. 불함(不咸)
불함(不咸)은 몽골어 부르한의 한자표기며, 부르한은 몽골어로 하느님이라는 뜻이다.<위클리경향 특별기획 ‘불함-홍류 하느님과 유화 성모신앙’참조> -끝-
제11장. 환웅씨의 시대
환인씨의 아들 환웅씨는 태어나면서 큰 뜻을 품었다.
천부삼인을 계승하여 계?를 닦고 불?을 없애며
천웅의 도를 세워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미암은 바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간세상이 먹고 입는 일에 편중하므로
환웅씨가 무여율법無餘律法 4조를 지어
환부鰥夫로 하여금 조절하게 하였다.
“첫째, 사람의 행적은 항상 분명하고 가지런하게 하라.
남몰래 꾸며서 귀鬼가 되고 번거롭게 막혀 마魔가 되지 않도록 하며
인간세상으로 하여금 밝게 통하여 하나의 장애도 남지 않게 하라.“
“둘째, 사람이 모은 것은 죽어서 공을 쌓는데 쓰도록 하라.
더럽게 늘어놓아 귀鬼가 되고, 낭비하여 마魔가 되지 않도록 하며
인간세상으로 하여금 두루 윤택하게 하여 하나의 유감도 남지 않게 하라.“
“셋째, 완고하고 사악한 사람은 광야로 귀양 보내라.
그리하여 항상 그 행실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하며
사악한 기운이 세상에 남지 않게 하라.“
“넷째, 큰 죄를 지은 사람은 섬도暹島로 유배를 보내라.
그리고 죽은 후에 그 시체를 태워
죄업이 지상에 남지 않게 하라.“
또 궁궐과 집과 배와 수레를 만들어
사람들이 거주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환웅씨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 사해를 순방하며
천부天符를 밝게 깨달아 몸을 닦고
모든 족속들의 소식을 서로 통하며 근본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하고
궁궐과 집과 배와 수레를 만들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다.
환웅씨가 돌아와 팔음八音과 이문二文을 정리하고
역수와 의학을 정하고 천문과 지리를 저술하여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였다.
이는 세상은 멀고 법은 느슨해져 사람들의 암중모색하는 바가
점점 거짓으로 치달으니 늘 사용하는 사물 사이에서
근본의 도를 지켜 이치를 밝히고자 함이었다.
이로부터 배우고 익히는 풍속이 일어나기 시작하니
사람의 성품은 어리석고 어두워
배우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원문]
桓因氏之子桓雄氏 生而有大志 繼承天符三印 修?除? 立天雄之道 使人知其所由 於
환인씨지자환웅씨 생이유대지 계승천부삼인 수계제불 입천웅지도 사인지기소유 어
焉人世 偏重於衣食之業 桓雄氏 制無餘律法四條 使鰥夫調節 一曰人之行蹟 時時淸濟
언인세 편중어의식지업 환웅씨 제무여율법사조 사환부조절 일왈인지행적 시시청제
勿使暗結生鬼 煩滯化魔 使人世 通明無餘一章 二曰人之聚積 死後堤功 勿使陳垢生鬼
물사암결생귀 번체화마 사인세 통명무여일장 이왈인지취적 사후제공 물사진구생귀
濫費化魔 使人世 普洽無餘一憾 三曰頑着邪惑者 謫居於曠野 時時被其行 使邪氣 無
낭비화마 사인세 보흡무여일감 삼왈완착사혹자 적거어광야 시시피기행 사사기 무
餘於世上 四曰大犯罪過者 流居於暹島 死後焚其尸 使罪業 無餘於地上 又作宮室舟車
여어세상 사왈대범죄과자 유거어섬도 사후분기시 사죄업 무여어지상 우작궁실주차
敎人居旅 於是 桓雄氏 始乘舟浮海 巡訪四海 照證天符修身 疏通諸族之消息 訴言根
교인거여 어시 환웅씨 시승주부해 순방사해 조증천부수신 소통제족지소식 소언근
本之不忘 敎宮室舟車火食之法 桓雄氏 歸而修八音二文 定曆數醫藥 述天文地理 弘益
본지불망 교궁실주차화식지법 환웅씨 귀이수팔음이문 정역수의약 술천문지리 홍익
人世 此 世遠法弛 諸人之暗?摸索 漸增詐端故 欲保根本之道於 日用事物之間而 使
인세 차 세원법이 제인지암단모색 점증사단고 욕보근본지도어 일용사물지간이 사
昭然也 自是 始興修學之風 人性昏? 不學則不知故也
소연야 자시 시흥수학지풍 인성혼매 불학즉부지고야
[해설]
1. 환웅씨
환웅씨는 환인씨의 뒤를 이어 세상을 다스렸다. <환단고기>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배달은 환웅이 하늘을 열면서 있은 호칭이다. 도읍한 곳은 신시이며 뒤에 청구로 옮겨 18세를 이어 전하였다. 역년은 1,565이다.”고 하였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30쪽)
환웅천왕이 처음 도읍한 곳에 관하여 <환단고기> 삼성기는 “환웅이 하느님의 명을 받아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고 하였다. 또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서는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내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므로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고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삼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에 신시를 여니 이가 환웅천왕이다.” 하였다.
여기서 백산은 태백산과 같은 뜻이다. 또 흑수는 중국 청해성의 삼위산三危山을 지나는 강이다.(書經 우공89장) 그러므로 ‘백산과 흑수 사이’는 ‘삼위산과 태백산 사이(三危太白)’와 같은 곳이며, 환웅천왕의 도읍지가 중국 섬서성 장안의 태백산 일대임을 알 수 있다. 후대에 14세 치우천왕때 도읍을 청구靑邱로 옮겼는데, 청구는 산동반도의 태산을 중심으로 한 중국 동해안 지역이다.
2. 천웅지도
환웅천왕의 도다. 제27장에서 은나라가 망한 후 기자가 부도로 망명하여 은나라의 법을 시행하자, 부도의 민중들이‘천웅의 도와 절대로 서로 용납될 수 없다’고 하여 동해의 바닷가로 피하는 내용이 나온다. 부도지에서‘천웅의 도’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으나‘천웅의 도’는 우리 한민족이 수천 년의 세월을 지켜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책인 산해경山海經은 부도의 조선을 가리켜 천독天毒이라 하였다. 이 글에 대하여 중국 진나라 시대의 학자인 곽박(郭璞, 276~324)은 “천독天毒이라는 말은 천축국天竺國이다” 고 하였으며, “부도浮屠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부도浮屠란 원래 부다(붓다=부처), 불교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환웅천왕이 단군임검의 부도에서 부처로 받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부도지 제13장 해설) 또 오늘날 불교에서 부처를 모신 곳을 대웅전大雄殿이라 부르는 것을 보더라도 ‘천웅의 도’는 불교의 모태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박제상이 지은 징심록은 상교5지(부도지, 음신지, 역시지, 천웅지, 성신지), 중교5지(사해지, 계불지, 물명지, 가악지, 의약지), 하교5지(농상지, 도인지, 이름 미상인 3지)로 총15지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징심록 15지 중 지금 전하는 것은‘부도지’뿐이다. 징심록의 상교5지에‘천웅지’가 있으므로 여기에는‘천웅의 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징심록 전체가 하루빨리 모습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3. 무여율법
무여율법無餘律法은 부도지에 보이는 인류 최초의 강제적이고 징벌적인 종교적 율법이다. 환웅씨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세상이 복본에 힘쓰지 않고 먹고 입는 일에 편중하게 되었다. 먹고 입는 일은 투쟁이 수반되므로 무여율법을 제정한 것이다.
4. 환부
무여율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환鰥은 홀아비라는 뜻이다. 요즈음의 신부나 승려처럼 결혼하지 않고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부양할 가족이 없으므로 법을 좀 더 공정하게 집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5. 섬도
‘섬暹’은 해 돋을 섬. 나라 이름 섬으로 새긴다. 섬라暹羅는 1949년 이전의 태국 국호로, 우리의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김수로 왕의 부인 허황옥이 여기서 온 것으로 되어 있으며, <한단고기> 고구려국 본기에는 백제인이 그들과 교역하였다고 쓰여 있다. 타이 메콩강 중류에 있는 반치엔에서는 서기 전 3,500년 경의 청동유적이 발견된 바 있다.(김은수역 부도지)
6. 시승주부해
인류 최초로 바다에 배를 띄운 기록이다. 환웅씨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6,000년이 넘는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다. 과연 그 시대에도 배가 있었을까? 최근의 한 고고학적 발굴은 부도지의 기록이 정확함을 확인시켜 준다. 경남 창녕의 비봉리 유적에서 2004년에 8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조기早期 배 2척이 발굴되었으며, 2010년에는 7천 년 전쯤에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신석기시대 노 1점이 발굴됐다.(2010/08/17일자 연합뉴스)
6. 팔음과 이문
고대에는 모든 음을 팔음으로 표현하였는데, 팔음은 쇠[金] ? 돌[石] ? 실[絲] ? 대나무[竹] ? 박[匏] ? 흙[土] ? 가죽[革] ? 나무[木] 등 8가지를 소재로 하여 만든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서경 요전 13장)
팔음을 정리하였다는 것은 여러 민족들의 음악들을 모두 정리하여 집대성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시를 열고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천웅의 음악을 연주하며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부도지 제13장) 이문二文은 두 가지 글자로 원시한글과 원시한자를 의미하는 것 같다. <끝>
제13장. 부도(符都)의 건설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符都) 건설할 땅을 고르니
곧 동북 자방(磁方)의 땅이었다.
이는 2와 6이 교감하는 핵을 품은 지역이며
4와 8이 상생하여 열매 맺는 땅이었다.
밝은 산 맑은 물이 만 리에 연이어 펼쳐있고
바다와 육지는 두루 잇닿아 물갈래가 열 방향으로 흘러드니
바로 9와 1이 끝나고 시작되는 하느님의 터전이었다.
삼근영초(三根靈草)와 오엽서실(五葉瑞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이
금강(金剛)의 심장부에 뿌리 내려 전 지역에 가득하였다.
이는 1과 3과 5와 7의 자삭(磁朔)의 정기가 모여들어
물질을 이루며 길(吉)함을 쫒는 까닭이었다.
이에 태백산 머리의 밝은 땅에 천부단(天符壇)을 쌓고
사방에는 보단(堡壇)을 세웠다.
보단(堡壇)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랑을 통하니
그 사이가 천리이며 도랑의 좌우에는 각각 수관(守關)을 설치하였다.
이는 모두 마고본성(麻姑本城)을 본 뜬 것이었다.
또 그 아래에 도읍과 마을을 만들고
삼해(三海)의 주변에는 빙 둘러 못이 들어섰다.
네 나루와 네 포구는 천리간격으로 잇달아
동(東)과 서(西)로 빙 둘러 늘어섰다.
또 나루와 포구 사이에는 6부(六部)를 설치하여
모든 족속들의 우두머리들이 거처하게 하였다.
부도(符都)가 완성되니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밝게 빛났다.
족히 사해를 아우르고 모든 족속들을 살리는 혈맥이 되었다.
[원문]
壬儉氏 歸而擇符都建設之地 卽東北之磁方也 此二六交感懷核之域 四八相生結果之地 明
임검씨 귀이택부도건설지지 즉동북지자방야 차이륙교감회핵지역 사팔상생결과지지 명
山麗水 連亘萬里 海陸通涉 派達十方 卽九一終始 不咸之基也 三根靈草 五葉瑞實 七色寶
산려수 연환만리 해륙통섭 파달십방 즉구일종시 불함지기야 삼근영초 오엽서실 칠색보
玉 托根於金剛之臟 遍滿於全域 此一三五七磁朔之精 會方成物而順吉者也 乃築天符壇於
옥 탁근어금강지장 편만어전역 차일삼오칠자삭지정 회방성물이순길자야 내축천부단어
太白明地之頭 設堡壇於四方 堡壇之間 各通三條道溝 其間千里也 道溝左右 各設守關 此
태백명지지두 설보단어사방 보단지간 각통삼조도구 기간천리야 도구좌우 각설수관 차
取法於麻姑之本城 劃都坊於下部之? ?涵澤於三海之周 四津四浦 連隔千里 環列於東西
취법어마고지본성 획도방어하부지체 환함택어삼해지주 사진사포 연격천리 환열어동서
津浦之間 又設六部 此爲諸族之率居也 符都旣成 雄麗光明 足爲四海之總和 諸族之生?
진포지간 우설육부 차위제족지솔거야 부도이성 웅려광명 족위사해지총화 제족지생맥
[해설]
1. 부도(符都)
부도란‘천부(天符)’즉‘하늘의 진리’를 모신 도읍지라는 뜻으로 단군임검이 도읍지로 정한 아사달을 말한다. 제12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군임검은 100여년 동안 사해를 순행하면서 각 족속들에게 천부(天符)의 이치를 전하고, 마고성의 회복을 위하여 이상향인 부도(符都) 건설을 약속하였다.
순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부도건설에 착수하였는데 그 부도의 위치가 어디일까?
지금까지 단군임검이 수도로 삼은 아사달(符都)에 대하여 백두산 또는 평양이나 만주벌판 어디쯤으로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부도의 위치는 우리의 상고사를 이해하는데 너무나 중요한데 부도지는 참으로 명쾌하면서도 아름답게 부도의 위치와 규모 등을 기록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에 따라 부도의 위치를 찾아본다.
1) 동북(東北) 자방(磁方)의 땅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符都) 건설할 땅을 고르니 곧 동북 자방(磁方)의 땅이었다.
이 구절은 부도의 방위를 나타내고 있다. 즉 부도는 동북(東北)의 자석이 가리키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방향은 어디를 기준으로 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중국 대륙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 동북방향은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 등 만주벌판과 한반도 등을 포함한다. 참고로 자방(磁方)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을 의미하며, 북극에서 약1,440Km 떨어진 캐나다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방(磁方)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진북은 지구 자전축의 북쪽을 의미하며 북극성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2) 명산려수(明山麗水) 연환만리(連亘萬里)
“밝은 산 맑은 물이 만 리에 연이어 펼쳐있다”는 뜻이다.
동북 방향에서 “밝은 산 맑은 물이 만 리에 연이어 펼쳐져 있는 곳”은 흑룡강성 북쪽에서 드넓은 만주벌판을 감싸 안고 힘차게 뻗어내리는 대흥안령(大興安嶺)산맥과 소흥안령(小興安嶺)산맥을 들 수 있다. 대흥안령산맥은 흑룡강성 북쪽에서 만주벌판을 왼쪽에서 감싸 안으면서 북경까지 뻗어내려 잠시 멈춰 선 후 다시 태행산맥으로 이어져 중국의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며 황하강까지 이어지는 산맥으로 그 아름다움은 가히 밝은 산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다고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소흥안령산맥은 흑룡강성 북쪽에서 대흥안령산맥과 이별한 후 드넓은 만주벌판을 오른쪽에서 감싸 안으면서 흑룡강을 뛰어넘어 백두산맥과 연결되고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백산맥으로 이어진다. 가히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대흥안령산맥과 상벽을 이룬다.
두 산맥에서 각각 태백산을 찾을 수 있는데 첫째, 대흥안령산맥과 태행산맥이 만나는 중국 북경 근처의 태백산과 둘째, 소흥안령을 거쳐 백두산맥에 우둑 솟은 민족의 영산 태백산(백두산의 옛이름)과 태백산맥의 주봉인 강원도 태백에 있는 태백산이다.
3) 해륙통섭(海陸通涉) 파달십방(派達十方)
이어서 부도의 위치가 “바다와 육지는 두루 잇닿아 물갈래가 열 방향으로 흘러드는 곳”이라고 하였다. 동북방향에서 이러한 곳은 발해만 밖에 없다. 지도를 펼치고 발해만을 보면 바다와 육지가 두루 잇닿아 있고, 양자강 ? 회수 ? 황하 ? 영정하 ? 난하 ? 요하 ? 압록강 ? 대동강 ? 한강 ? 금강 ? 영산강 등 수많은 강물들이 사방팔방에서 흘러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산려수 연환만리(明山麗水 連亘萬里) 해륙통섭 파달십방(海陸通涉 派達十方)”참으로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부도의 위치를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동북방향에서“밝은 산 맑은 물이 만 리에 연이어 펼쳐있고, 바다와 육지가 두루 잇닿아 물갈래가 열 방향으로 흘러드는 곳”의 조건에 가장 부합되는 태백산은 바로 발해만에 인접한 북경 근처의 태백산이 가장 유력하다.
4) 보단지간(堡壇之間) 각통삼조도구(各通三條道溝) 기간천리야(其間千里也)
태백산 정상에 천부단(天符壇)을 쌓고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보단과 보단 사이에 세 겹의 도랑을 파서 서로 통하게 하였는데, 보단과 보단 사이의 거리가 천리라고 하였다. 부도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보단과 보단 사이에 해자를 파서 4,000여리의 물 길이 서로 통하게 하려면 그러한 특수한 지형이 되어야 가능하며, 그 물 길은 수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슷하게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군조선의 수도 아사달(부도)의 위치(붉은 선 사각형 내부)
위에서 살펴본 세 곳의 태백산 중 북경 근처의 태백산이 유일하게 위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위의 지도를 살펴보면 남양하(南洋河)와 영정하(永定河) 호타하(?陀河) 자아하(子牙河) 등이 천리의 길이로 다이아몬드 형을 이루며 태백산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윗 쪽에서 왼편 아래로 흐르는 강이 남양하이며, 오른쪽 아래로 흐르는 강이 영정하이다. 아래쪽 왼편에 흐르는 강이 호타하이며, 오른쪽 위로 흐르는 강이 자아하이다. 한반도의 백두산이나 태백산은 도저히 이런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부도지에서 전하는 부도는 위의 지도에서 붉은 선으로 표시한 다이아몬드 내부가 확실하다고 본다. 즉 동쪽은 천진(天津), 서쪽은 무령(武寧), 남쪽은 석가장(石家庄), 북쪽은 장가구(張家口)를 잇는 지역이다. 붉은 원으로 표시된 산이 태백산이며, 직선이 교차하는 중심이 대웅산(大雄山)이다. 옛 지도의 대웅산(大雄山)이 최근 지도에서 마이산(馬耳山)으로 나타나는데 마리산(머리산)의 한자표기로 생각된다.
5) 옛 문헌에 의한 부도의 위치 고증
위의 부도 위치를 다른 문헌을 통하여 고증해 본다.
가. 산해경에 나오는 조선천독(朝鮮天毒)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으로 산해경(山海經)이 있다. 그 산해경의 해내경(海內經) 첫머리에 고조선에 관한 글이 나온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 朝鮮天毒 其人水居 ?人愛之’
(동해지내 북해지우 유국명왈 조선천독 기인수거 외인애지)
‘동해의 안쪽과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조선(朝鮮)은 천독(天毒)이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랑한다.‘
위 글을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중국의 동해 안쪽과 북해(발해만 북쪽)의 주변에 있다고 하였다. 위에서 부도의 중심으로 언급한 지역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위 글에 대하여 중국 진나라 시대의 학자인 곽박(郭璞, 276~324)은 “천독(天毒)이라는 말은 천축국(天竺國)이다” 고 하였으며, “부도(浮屠)가 이 나라(조선)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부도(浮屠)란 원래 부다(붓다=부처), 불교를 뜻하는 말이다.
부도지는 인간의 타락이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는 것’으로 비롯하였으므로, 본래의 하늘 성품으로 돌아가기 위하여는 ‘다른 생명을 강제로 먹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또 부도의 핵심사상이라 할 수 있는 천부경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가 이 우주를 창조하며 또 우주는 그 하나로 되돌아 간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불교의 핵심정신인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과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는 사상과 아주 흡사하다.
또 부도의 남쪽 보단(保壇)이 위치한 곳에 석가장(石家庄)이란 큰 도시가 있다. 이는 석가족이 천부단의 남쪽 보단을 다스리던 부족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조선이 원래 천축국이었으나 기원전 1122년경 기자가 부도를 침범한 후 고조선이 쇠퇴하자 석가족은 인도쪽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천축국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나. 사기 조선열전(朝鮮列傳)의 습수(濕水)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朝鮮列傳) 제55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張晏曰 朝鮮有濕水洌水汕水 三水合爲洌水 疑樂浪朝鮮取名於此也”
장안왈 조선유습수열수산수 삼수합위열수 의낙랑조선취명어차야
“장안(長晏)이 말하기를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가 있는데 세 물이 합쳐서 열수가 되었다. 낙랑과 조선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따온 이름인 듯하다"
우적도(禹迹圖 1136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우적도(禹迹圖 1136년작) 탁본을 보자.
위에서 부도의 위치로 추정한 곳이 우적도의 습수(濕水)와 호지(?池)에서 발원한 호타하(?陀河)가 감싸는 지역과 일치한다. 습수(濕水)는 현재의 남양하(南洋河)와 영정하(永定河)이며, 호지(?池)에서 발원한 강이 현재의 호타하(?陀河) 자아하(子牙河)다. 장안이 조선에 습수(濕水)가 흐른다는 말과 부도의 위치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또 지도를 보면 웅(雄)을 중심으로 강물이 세 겹으로 감싸고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도지에서 세 겹의 도랑을 둘렀다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다. 단군세기(檀君世紀)의 단(檀)과 웅(雄)
단군세기 첫머리에 “옛 기록에 이르기를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며 어머니는 웅씨(雄氏) 왕녀이다. 신묘년 5월 2일 인시에 단수(檀樹)밑에서 태어났다. 사람이 신령스럽고 덕이 있어 멀고 가까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복종하였다. 나이 14살 되던 갑진년에 웅씨왕이 그가 신성하다는 말을 듣고 비왕(裨王)으로 삼고 큰 읍의 국사를 대신 맡아보게 하였다. 무진년 당요(唐堯)때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檀木)있는 곳에 이르러 온 나라 사람들이 하느님의 아들로 모셨다. 이에 구환(九桓)이 하나가 되고 그의 신령스러운 교화가 멀리에 이르렀다. 이에 단군왕검이라 한다. 비왕 자리에 있은지 24년, 임금이 된지 93년, 나이는 130살이다”<고동영 저 환단고기 39쪽>는 구절이 있다. 위 우적도에서 단(檀) 과 웅(雄)의 지명이 단군세기의 내용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라. 삼국유사(三國遺事) 진한조(辰韓條)
부도지 27장에서 보면 부도에서 피난한 사람들이 진한(辰韓) 즉 신라(新羅)를 건설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진한조(辰韓條)에서도 신라 말기의 대학자인 최치원(857~?)의 말을 빌어 신라인들이 탁수(?水) 쪽에서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위 우적도에서 역수 바로 위의 지명이 탁록(?鹿)인데 치우천왕과 황제와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탁록대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탁록에서 흐르는 물이 탁수(?水)다. [삼국유사] 진한조에 보면 “진한[辰韓, 혹은 秦韓이라고도 한다] 후한서에 이르기를 진한(辰韓)의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의 망한 사람들이 한국에 오므로 마한이 동쪽 땅을 나누어주었다. 서로 부르기를‘도(徒)’라고 하는데 진(秦)나라 말과 비슷했다. 그러므로 혹은 진한(秦韓)으로 이름하기도 했다. 12개의 소국이 있으며, 각각 만호(萬戶)로 나라를 칭했다. 또 최치원이 말하기를 진한(辰韓)은 본래 연나라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므로 탁수(?水)의 이름을 취하여 사는 읍리(邑里)를 사탁(沙?), 점탁(漸?)으로 불렀다.[신라방언으로‘?’음을 ‘道’로 읽는다. 고로 지금은 혹‘沙梁’이라 쓰고 ‘道’로 읽는다.....후략](辰韓[亦作秦韓] 後漢書云 辰韓耆老自言 秦之亡人 來適韓國 而馬韓割東界地以與之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十二小國 各萬戶 稱國 又崔致遠云 辰韓本燕人避之者 故取?水之名 稱所居之邑里 云沙? 漸?等[羅人方言 讀?音爲道 故 今或作沙梁 亦讀道].....후략”)
부도지에서도 부도의 사람들이 동해로 피하여 신라(新羅)를 세우는데(부도지 27장) 위 우적도에 신(新)이라는 나라가 부도 근처에 이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경주(신라의 수도) 옆에 울산(蔚山)이 있듯이 부도에서도 신(新)과 가까운 곳에 울(蔚)이라는 지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대청광여도(大淸廣輿圖 1785년,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에 부도의 중심인 웅(雄)이 경도(慶都)로 표시되고 있는 점도 우리나라의 경주(慶州)와 많은 연관성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 역수(易水)의 의미
부도의 중심부를 감싸고 흐르는 강이 역수(易水)이다. 역(易)은 역(曆)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에서 역(曆)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도지 22장에서 “대저 역(曆)이라는 것은 인생의 깨달음의 바탕이니, 그 수(數)가 자신에게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역이 바르면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일이 부합하여 복이 되는 것이요. 역이 바르지 못하면 천수(天數)에 어그러져 화가 되는 것이니 이는 복은 이치가 있는데 있고, 이치는 바른 깨달음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역의 바르고 바르지 못함이 인간세상의 화와 복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하는 구절이 있다.
또 중국의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書經)을 보면 중국의 요임금이 첫 번째로 한 일이 “내명희화흠약호천(乃命羲和欽若昊天) 역상일월성신(曆象日月星辰) 경수인시(敬授人時)”다. “이에 희와 화에게 명하사 광대한 하늘을 공경히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상을 관찰하여 책력으로 만들어 공경히 사람들에게 때를 주라 하시다.”는 뜻이다.<虞書(우서) 제1편 堯典(요전) 3장 해설|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즉 고대에는 천문을 살피고 역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때를 알게 하고 그 때를 따라 농사짓고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 황제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황제가 아니면 함부로 역(曆)을 만들 수도 없었다.
부도지는 19장에서 22장에 걸쳐 중국의 요임금이 단군임검의 부도의 역(曆)을 따르지 않고 새롭게 역을 만들므로써 한민족과 화하족의 처절한 전쟁과 분열이 일어났음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역(易)이라는 의미는 중요하며 부도의 중심을 역수(易水)가 흐른다는 것은 부도가 바로 역(曆)을 만들어 내는 세상의 중심지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부도를 감싸고 흐르는 강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 천진(天津)으로‘하늘 나루터’로 불린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역수(易水)에는 비장한 시 한수가 오늘까지 전해지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바로 연(燕)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형가(荊軻)가 진시황(秦始皇)을 암살하기 위하여 역수를 건너면서 읊은 시다. 그러나 형가의 진시황 암살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고 결국 진시황에 의해 동이족의 주류가 중국대륙의 부도(符都)에서 한반도로 밀려나게 되는 비운의 역사를 암시하듯 하여 가슴을 저민다.
風蕭蕭兮易水寒 (풍소소혜역수한)
壯士一去兮不復還 (장사일거혜불부환)
探虎穴兮入蛟宮 (탐호혈혜입교궁)
仰天噓氣成白虹 (앙천허기성백홍)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易水)는 차가운데
장사(壯士)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리
호랑이 굴을 찾아 이무기 궁으로 듦이여
하늘 우러러 외치니 흰 무지개를 이루네
2. 구일종시불함지기(九一終始不咸之基)
불함(不咸)은 몽골어 부르한의 한자표기며, 부르한은 몽골어로 하느님이라는 뜻이다.<위클리경향 특별기획 ‘불함-홍류 하느님과 유화 성모신앙’참조>
또 동북방은 주역에서 간(艮)으로 '종만물시만물(終萬物始萬物)’하는 곳 즉 만물이 끝나고 만물이 시작되는 곳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발해만 유역은‘구일종시(九一終始) 불함지기(不咸之基)’로 9가 끝나고 1이 시작되는 하느님의 터전이라는 뜻이다. 발해만을 보면 수많은 강줄기들이 사방팔방에서 흘러들어 끝나니 9(수가 많음을 의미함)가 끝나는 것이요. 그 9가 끝나면서 발해라는 큰 바다인 1이 시작되는 것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바닷물이 수증기로 구름이 되어 자유자재로 세상을 떠다니다가 단비로 내리고, 빗물들이 모여 모여 수많은 강물을 이루어 수천리 수만리 대지를 굽이굽이 적시며 또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발해만은 바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단군임검이 발해만 일대를 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홍익인간(弘益人間) 제세이화(濟世理化)의 터전으로 정한 뜻을 짐작할 수 있다.
3. 삼근영초(三根靈草) 오엽서실(五葉瑞實) 칠색보옥(七色寶玉)
삼근영초는 인삼, 오엽서실은 잣, 칠색보옥은 옥돌을 말한다
4. 천부단(天符壇)
부도지 제1장에서 ‘마고성은 천부(天符)를 받들어 모시고 선천하늘을 계승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천부(天符)는 하늘의 권능을 계승하는 신물(神物)로 천부삼인(天符三印)또는 천부경(天符經)으로 여겨진다. 천부단(天符壇)은 천부(天符)를 받들어 모시고, 천문을 관측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다.
5. 보단(堡壇)
천부(天符)를 모신 천부단을 중심으로 사방에 보단(堡壇)을 설치하여 천부단을 방어하는 역할과 천문을 관측하고 동 서 남 북 사방의 교화를 담당한 것으로 파악된다.
1) 천문의 관측
본문에서 말하듯이 부도(符都)는 마고본성(麻姑本城)을 본 뜬 것이다. 부도지는 율려(律呂)가 이 우주를 창조하는데(부도지 제2장) 부도지 1장에서 보면 마고성의 사방에서 4명의 천인(天人)들이 악기를 쌓아놓고 음률을 다스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천부단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 천리되는 곳에 보단(堡壇)을 설치하고 천문을 관측하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극성, 북두칠성, 28성수(星宿)와 해와 달 그리고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의 운행 그 자체가 바로 율려인 것이다. 이러한 천문의 관측은 고대인들의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부도의 중심인 천부단에서 천문을 관측할 뿐만 아니라 천리 정도 떨어진 동서남북 사방에서도 천문을 관측하여 정확한 역(曆)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서경(書經)에서도 나오는데 요임금 순임금 등이 동서남북 사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천문을 관측하는 글이 나온다. 이는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고 부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주 중요하므로 인용한다. 서경(書經)의 요전(堯典)과 순전(舜典)은 중국의 전설상의 성군으로 불리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일을 기록한 것으로 모두 단군왕검과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요전4장>
分命羲仲 宅?夷 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 日中星鳥 以殷仲春 厥民析 鳥獸?尾
분명희중 택우이 왈양곡 인빈출일 평질동작 일중성조 이은중춘 궐민석 조수자미
나누어 희중에게 명하사 우이에 거주하게 하시니 가로대 양곡이니 나오는 해를 공경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차례 하니, 해가 가운데 하고 조성(鳥星)이라. 이로써 중춘을 잘 맞추면 그 백성들은 일하러 나가고 조수는 새끼를 치고 교미하느니라.
<요전5장>
申命羲叔 宅南交 (曰明都) 平秩南訛 敬致 日永星火 以正仲夏 厥民因 鳥獸希革
신명희숙 택남교 (왈명도) 평질남와 경치 이영성화 이정중하 궐민인 조수희혁
거듭 희숙에게 명하시어 남교에 거주하게 하시며 가로대 명도라 하니 남와를 고르게 차례 하여 공경히 이르게 하니 해가 길어지고 성화라. 이로써 정중하가 되면 그 백성들은 이로 말미암고, 조수는 털이 성기게 바뀌느니라.
<요전6장>
分命和仲 宅西 曰昧谷 寅餞納日 平秩西成 宵中星虛 以殷仲秋 厥民夷 鳥獸毛?
분명화중 택서 왈매곡 인전납일 평질서성 소중서허 이은중추 궐민이 조수모선
나누어 화중에게 명하사 서쪽에 거주하게 하시니 가로대 매곡이니 들어가는 해를 공경히 전별하여 서성(가을의 결실)을 고르게 차례 하니 밤은 중간이고 허성이라. 이로써 중추를 잘 맞추면 그 백성들은 편안하고, 조수는 털갈이를 하느니라.
<요전7장>
申命和叔 宅朔方 曰幽都 平在朔易 日短星昴 以正仲冬 厥民? 鳥獸?毛
신명화숙 택삭방 왈유도 평재삭역 일단성묘 이정중동 궐민오 조수용모
거듭 화숙에게 명하사 삭방에 거주하게 하시니 가로대 유도니 삭역을 고르게 살피니, 해는 짧고, 묘성이라. 정중동이 되면 그 백성들은 아랫목에 있고, 조수는 솜털이 나니라.<虞書(우서) 제1편 堯典(요전) 4장~7장 해설|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위 요전(堯典)에서 우이(?夷)는 동쪽, 남교(南交)는 남쪽, 서(西)는 서쪽, 삭방(朔方)은 북쪽을 가리킨다. 즉 동서남북 사방에 관리를 파견하여 천문을 관측하며, 때에 따라 하늘에 제사지내도록 한 것이다.
2) 보단은 동서남북 각 지방의 교화를 담당
부도지 제17장에서 요(堯)가 “일찍이 제시(祭市)의 모임에 왕래하였으며 서보(西堡)의 우두머리(干)에게서 도를 들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즉 서쪽 보의 우두머리가 서쪽지방에 살던 요(堯)에게 도(道)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으로 보단에서 교화를 담당한 것을 알 수 있다.
3) 보단은 천부단을 방어하는 역할
부도지 28장에서 육부촌장들이 박혁거세를 열세 살에 거서간(居西干)으로 추대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거(居)는 거(据)며, 간(干)은 방(防)이며 장(長)이니 즉 서방에 할거하여 방어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보단의 간(干)이 방어를 맡은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6. 삼조도구(三條道溝)
부도의 중심을 감싸고 흐르는 세 겹의 강물(해자 또는 도랑)을 말한다. 위에서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朝鮮列傳) 제55에서 장안(長安)이 말한 “조선에는 습수(濕水), 열수(洌水), 산수(汕水)가 있다”는 구절과 위의 지도 우적도를 참조하면, 부도를 제일 바깥쪽에서 감싸고 흐르는 강물을 습수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부도의 중간을 감싸고 흐르는 강물이 항수(恒水), 당하(唐河), 사하(沙河)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산수(汕水)는 사수(沙水)의 오기로 보인다. 그리고 위의 삼국유사(三國遺事) 진한조(辰韓條)에서 “탁수(?水)의 이름을 취하여 사는 읍리(邑里)를 사탁(沙?)”이라고 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탁수(?水)가 사수(沙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 겹의 강물(三條道溝)은 부도의 방어, 홍수예방, 통신수단, 교통수단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1) 부도의 방어
도구(道溝)는 성을 방어하는 해자의 의미가 있으며, 본문에서 “보단(堡壇) 사이에는 각각 세 겹의 도랑을 통하니, 그 사이가 천리이며 도랑의 좌우에는 각각 수관(守關)을 설치하였다.”는 구절에 보는 바와 같이 도랑의 좌우에 각각 지키는 관문을 두어 부도를 방어한 것을 알 수 있다.
2) 홍수예방
단군임검 치세를 전후하여 당시의 기후가 자주 큰 비가 내려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리하여 홍수를 예방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였는데 부도를 세 겹으로 도랑을 파서 물 길을 열어 줌으로써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경(書經)에 보면 요임금 당시에 곤(?)은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리다 실패하여 순임금에게 처형당하며, 곤(?)의 아들 우임금은 13년 동안 홍수를 잘 다스려 순임금의 뒤를 잇게 된다. 서경(書經)에는 당시의 홍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 자세히 기록되고 있는데 간단히 두가지만 살펴본다.
<요전11장>
帝曰咨四岳 湯湯洪水 方割 蕩蕩懷山襄陵 浩浩滔天 下民其咨 有能?乂 僉曰於?哉
제왈자사악 탕탕홍수 방할 탕탕회산양릉 호호도천 하민기자 유능비예 첨왈어곤재
帝曰? ?哉 方命?族 岳曰?哉試可 帝曰往欽哉 九載績用弗成
제왈우 불재 방명비족 악왈이재시하 재왈왕흠재 구재적용불성
요임금 가라사대 물어 보거라, 사악아! 넘실거리는 홍수가 사방으로 해를 끼쳐 넘실넘실 산을 삼키고 구릉을 넘어 멀리멀리 하늘까지 닿으려 할 때에 아래 백성들이 그에 탄식하나니 능한 이가 있거든 다스리게 하리라. 모두가 가로대 오! 곤입니다. 요임금 가라사대 아, 아니라. 명을 거스르며 족속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사악이 가로대 그만두어도 되나 가한지 시험하고 이에 그만두어야 하나이다. 요임금 가라사대 가서 공경히 하라 하시니 9년 동안에 공적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느니라. <우서(虞書) 제1편 요전(堯典) 11장 해설|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익직1장>
帝曰來禹 汝亦昌言 禹拜曰 都帝予何言 予思日孜孜 ?陶曰?如何 禹曰洪水滔天 浩浩懷
제왈래우 여역창언 우배왈 도제여하언 여사왈자자 고요왈우여하 우왈홍수도천 탕탕회
山襄陵 下民昏? 予乘四載 隨山刊木 ?益奏庶鮮食 予決九川距四海 濬?澮距川 ?稷播
산양릉 하민혼점 여승사재 수산간목 기익주서선식 여결구천거사해 준견회거천 기직파
奏庶艱食鮮食 懋遷有無化居 烝民乃粒 萬邦作乂 ?陶曰兪 師汝昌言
주서간식선식 무천유무화거 증민내립 만방작예 고요왈유 사여창언
순임금 가라사대, 오거라, 우여! 그대 또한 아름다운 말을 하거라. 우가 절하고 가로대, 아 임금이시여, 제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날로 힘쓰고 힘쓸 것을 생각합니다. 고요 가로대, 아, 어찌 하였소? 우 가로대, 큰물이 하늘까지 차서 널리널리 산을 삼키고 구릉을 넘어 아래 백성들이 어지러이 물에 빠져 네 가지의 탈 것을 타고서 산을 따라가면서 나무를 자르고, 익과 함께 날고기를 올리며, 저는 아홉 내의 물길을 터서 사해에 이르도록 하였으며, 밭도랑과 봇도랑을 깊게 파서 내에 이르게 하였고, 직과 함께 파종하여 어렵게 농사지은 음식과 날고기를 모두 올리고, 힘써 있는 것을 없는 곳에 옮겨서 쌓아둔 것을 바꾸게(交易하게) 하니, 많은 백성들이 알곡을 먹어서 만방이 다스려졌나이다. 고요 가로대, 그렇도다. 그대의 아름다운 말을 법으로 삼겠노라.<우서(虞書) 제4편 익직(益稷) 1장 |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3) 통신수단으로 활용
부도지 제14장에서 “그리하여 황궁씨 후예 6만이 이주하여 지키고, 나무를 베어 8만개의 뗏목을 만들어 신부(信符)를 새긴 후 천지의 물에 흘려보내 사해의 모든 족속들을 초청하였다.”는 구절이 나온다. 8만개의 뗏목에 신부(信符)를 새긴 후 부도를 감싸고 흐르는 강물에 흘려보내어 발해만 유역 곳곳으로 전해지도록 함으로써 모든 족속들이 부도의 소식을 접하고 신시(神市)에 참여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통이 불편했던 고대에 참으로 멋들어진 통신수단이 아닐 수 없다.
4) 교통수단으로 활용
세 겹의 강물은 또한 각 보단(堡壇)간 뗏목이나 배를 이용한 교통수단으로도 활용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또 발해만에 흩어진 각 족속들이 배를 타고 발해만을 거슬러 천진(天津)을 지나 역수(易水)로 들어서면 바로 부도의 중심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7. 수관(守關)
부도를 지키는 관문을 말한다. 부도를 감싸는 강물이 지나는 양쪽에는 험준한 산들이 버티고 있어 관문을 설치하면 부도를 아주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8. 삼해(三海)
발해만 일대를 말한다.
9. 차취법어마고지본성(此取法於麻姑之本城)
부도는 마고본성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마고본성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마고본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미르고원에는 사방에 천리의 물길을 낼 수 있는 지형은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0. 획도방어하부지체(劃都坊於下部之?)
부도의 웅장하고 원대한 구상에 대하여 살펴보자. 부도의 중심인 천부단을 중심으로 사방에 보단을 세우고 그 주위를 4,000여리의 물길로 감싸고, 그 물길의 바깥에 도시와 마을을 만들었다. 지도를 살펴보면 물길의 밖으로 동북쪽에 북경시, 동남쪽에 덕주시, 서북쪽에 대동시, 서남쪽에 태원시 등 예로부터 이름난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 사진사포연격천리(四津四浦連隔千里)
발해만 주위로 네 개의 나루와 네 개의 포구를 천리간격으로 설치하여 수상교역의 중심지로 삼으니, 여덟 개의 나루와 포구가 8,000여리에 걸쳐 장관을 이루었다. 8,000여리는 대략 양자강에서 발해만을 빙 돌아서 한반도 남단에 이르는 거리이다. 본문에서 “삼해(三海)의 주변에는 빙 둘러 못이 들어섰다.”는 구절은 부도지 15장에서 알 수 있듯이 발해만 주변에 8개의 못을 만들었으며, 그 못들은 사진사포(四津四浦)와 인접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시(海市)를 연 곳이 바로 팔택(八澤)인 동시에 사진사포(四津四浦)이기 때문이다. 아래 지도에서 사진사포(四津四浦)의 위치는 천진(天津)을 기준으로 대략 천리간격의 거리와 큰 강물이 흐르며, 큰 못이 있는 곳을 배열해 본 것이다. 붉은색 네모는 부도(符都)의 위치를 나타내며 중국 섬서성 장안(長安)에 표시한 붉은 점은 부도지 제15장에 나오는 조시(朝市)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부도와 발해만 주변의 사진사포(四津四浦)와 장안의 조시(朝市)가 바로 단군조선의 핵심지역이다.
부도의 위치와 사진사포(四津四浦)와 조시(朝市)의 개략적 위치
12. 육부(六部)
나루와 포구 사이에 각각 6부(六部)를 설치하여 모든 족속들이 자치부락을 만들어 살게 하였다. 각 족속들이 그 자치부락을 통하여 부도 및 각 족속간 교류를 원활하게 함으로써 홍익인간(弘益人間) ? 이화세계(理化世界)의 큰 이상을 실현할 부도의 기틀을 다진 것이다. 육부(六部)로 나눈 것은 천부경에서 천지인(天地人)이 각각 음양으로 나뉘면 육(六)이 되고 이 육에서 만물이 만들어 지는 것을 형상화 한 것으로 보인다. -끝-
제14장. 신시(神市)의 모임
그리하여 황궁씨 후예 6만을 이주하여 지키고
나무를 베어 8만개의 뗏목을 만들어 신부(信符)를 새긴 후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보내 사해의 모든 족속들을 초청하였다.
모든 족속들이 신부(信符)가 새겨진 뗏목을 보고
차례로 모여 들어 박달나무숲에서 신시(神市)를 크게 열었다.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늘의 상(象)을 살피고
마고의 계보를 연구하여 그 족속을 밝히며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하여 그 말과 글을 정리하였다.
또 북극성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고
희생물을 구워 반석위에 놓고 제사를 지내며
천웅(天雄)의 음악을 연주하며 모여서 노래를 불렀다.
모든 족속들이 방장산 방곤(方?)의 굴에서 칠색보옥을 캐서
천부(天符)를 새겨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이르고
칠난(七難)을 다스려 없애고 돌아갔다.
이로부터 10년마다 반드시 신시(神市)를 여니
말과 글이 같아지고 천하의 법도가 하나 되고
인간세상이 크게 평화로웠다.
이에 따라 바닷가에 성을 쌓고 천부(天符)를 받들어 모시며
머무르는 모든 족속들을 묵거나 살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천년사이에 성황(城隍)이 전역으로 퍼졌다.
[원문]
於是 移黃穹氏之裔六萬 守之 乃割木作?八萬 刻信符 流放於天池之水 招四海諸族 諸族
어시 이황궁씨지예육만 수지 내할목작부팔만 각신부 유방어천지지수 초사해제족 제족
得見信? 次第來集 大開神市於朴達之林 修?淨心 察于天象 修麻姑之譜 明其族屬 準天
득견신부 차제래집 대개신시어박달지림 수계정심 찰우천상 수마고지보 명기족속 준천
符之音 整其語文 又奠 定北辰七耀之位 燔贖於盤石之上 會歌而奏天雄之樂 諸族 採七寶
부지음 정기어문 우전 정북진칠요지위 번속어반석지상 회가이주천웅지악 제족 채칠보
之玉於 方丈方?之堀 刻天符而 謂之方丈海印 ?除七難而歸 自此 每十歲必開神市 於是
지옥어 방장방곤지굴 각천부이 위지방장해인 벽제칠난이귀 자차 매십세필개신시 어시
語文同軌 一準天下 人世太和 仍而 築城於海隅 奉尊天符 使駐留諸族 館而居之 爾來千年
어문동궤 일준천하 인세태화 잉이 축성어해우 봉존천부 사주류제족 관이거지 이래천년
之間 城隍 遍滿於全域
지간 성황 편만어전역
[해설]
1. 황궁씨 후예
부도지에서 전하는 황궁씨의 후예인 한민족의 계보는 마고 궁희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 환웅씨 임검씨로 이어졌으며(부도지 1장, 10장, 11장, 12장 참조), 부도지 제20장에서 보듯이‘오미(五味)의 책임을 속죄하는 것과 대성(大城)의 일을 회복하는 일’을 주관해왔다. 즉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과 세상 사람들이 진리를 깨치고 인간 본성을 회복하여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는 성스러운 일들을 황궁씨의 후예들이 주관해 온 것이다. 부도를 완성하고 나서 황궁씨의 후예로 하여금 부도를 지키도록 하였다. 부도를 지키는 인원수가 6만명으로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아주 많은 숫자임을 알 수 있다.
황궁씨 후예들의 본류가 이동한 경로는 파미르 고원 - 천산 - 감숙성 삼위산 - 섬서성 태백산 - 산동성 태산 - 하북성 태백산 - 한반도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역사적 고증은 분량이 많은 관계로 각 해당 장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2. 신부(信符)
부도에서 신시(神市)를 열기위해 무려 8만개의 뗏목을 만들고 뗏목에 초청하는 글을 새겼다. 그리고 그 뗏목들을 강물에 띄워 발해만 구석구석으로 흘러가서 발해만 주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을 초청하였다. 모든 족속들이 신부(信符)가 새겨진 뗏목을 보고, 배를 타고 부도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단군임검 당시에는 배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도지 11장에 보면 “또 궁궐과 집과 배와 수레를 만들어, 사람들이 거주하고 여행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하여 환웅씨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 사해를 순방하며, 천부(天符)를 밝게 깨달아 몸을 닦고, 모든 족속들의 소식을 서로 통하며 근본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하고, 궁궐과 집과 배와 수레를 만들고 음식을 익혀 먹는 법을 가르쳤다.”는 구절이 나온다. 단군임검보다 훨씬 이전인 환웅천왕 시절부터 이미 배를 만들어 타고 거친 바다를 누볐다는 기록이다. 환웅천왕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6,000년이 넘는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다. 과연 그 시대에도 배가 있었을까? 최근의 한 고고학적 발굴은 부도지의 기록이 정확함을 확인시켜 준다. 경남 창녕의 비봉리 유적에서 2004년에 8천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신석기시대 조기(早期) 배 2척이 발굴되었으며, 2010년에는 7천년 전쯤에 사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신석기시대 노 1점이 발굴됐다.<2010-08-17일자 연합뉴스 참조>
여기서 단군임검이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큰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발해만 주변을 그 터전으로 삼은 이유를 찾아 볼 수 있다. 발해만은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배를 타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13장에서 보았듯이 발해만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중국 북경 근처에 부도를 건설하고, 양자강에서 발해만을 한바퀴 휘돌아 한반도 남단에 이르는 8,000여리에 큰 강을 끼고 8개의 나루를 설치하고, 그 나루터 주변에 사해의 모든 족속들의 자치부락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부도와 발해만 주변의 각 족속들의 자치부락들이 배를 타고 서로 왕래함으로써 먼저 발해만에서 부도의 진리가 통일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륙전체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족속들은 강을 타고 내려오면 발해만 부근에 있는 자신들의 자치부락에서 또한 부도의 진리를 접하게 됨으로써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큰 이상이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던 것이다.<아래 지도의 ‘부도의 위치와 사진사포와 조시(朝市)의 개략적 위치’ 참조>
단군임검이 북경 근처의 부도를 중심으로 발해만 일대를 홍익인간의 대 이상을 실현할 터전으로 정한 이래로 북경을 통치하는 민족이 대륙전체를 다스리는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발해만에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가치가 드높이 휘날릴 때 인류가 꿈에도 그리는 낙원이 성큼 다가 올 것이다.
부도의 위치와 사진사포(四津四浦)와 조시(朝市)의 개략적 위치
태백일사에서“세상에 전하기를 신시에는 녹서(鹿書)가 있었고, 자부(紫符)에는 우서(雨書)가 있었고 치우(蚩尤)에는 화서(花書)가 있었다. 투전문속(鬪佃文束)은 바로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에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 신전(神篆)이 있었다. 이런 종류의 글들은 백산(白山) 흑수(黑水) 청구(靑丘) 구려(九黎) 등지에서 널리 씌어졌다.”는 구절이 있다.<환단고기, 고동영 206쪽>
단군임검시대 이전부터 각종 글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부(信符)는 단군시대의 신전(神篆)으로 새긴 글자로 보인다.
3. 천지(天池)
나무를 베어 8만개의 뗏목을 만들어 신부(信符)를 새긴 후 천지(天池)의 물에 흘려보내 사해의 모든 족속들을 초청하였다. 일반적으로 천지(天池)라고 하면 백두산 천지를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도지 13장에서 보았듯이 부도의 위치는 백두산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의 천지는 부도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부도의 제일 바깥쪽을 흐르는 강물이 호타하(??河)와 상건하(桑乾河)인데 호타하의 상류에 호지(?池)가 있고 상건하 상류에 신지(神池)라는 지명이 있다. 부도(符都)는 천부도(天符都)의 줄임말로서‘하늘의 수도’라는 의미이다. 부도의 외곽을 감싸고 흐르는 세 겹의 강물이 만나는 곳을 지금도 천진(天津)으로 부르듯이 부도 안의 못을 천지(天池)로 불렀으리라 본다. 신지(神池)가 천지(天池)가 아니었을까?
아래의 지도는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 1875년판,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 중 중국 산서성의 부도(符都)가 위치한 곳이다. 왼쪽 붉은색 원이 상건하(桑乾河)의 발원지인 신지(神池)다. 지도상으로 보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아주 큰 못이 형성될 수 있
는 지형이다. 참고로 이 지도에는 태백산이 대백산(大白山)으로 표시되어 있다.(가운데 붉은 원) 그리고 대백산 근처에 ‘신령스런 언덕’이라는 의미의 영구(靈丘)가 있다. 이 부근에서 신시(神市)가 크게 열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세아동부여지도(亞細亞東部輿地圖 1875년판)에 나타난 신지(神池)
4. 신시(神市)
부도지는 매장 마다 우리에게 아주 새로운 사실들을 전해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천년 전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 귀중한 책이다.
이 장에서 나오는 신시(神市)와 성황(城隍)에 관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시(神市)는 <다음 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시(神市)는 환웅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고조선 이전의 신화적인 도읍지 또는 국가이다. 고조선 이전의 도읍지로 일컬어지기는 하지만 신화적인 면이 강하고 신화의 구성 요건 상으로도 한민족이라는 존재의 형성 이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보지는 않는다. 일부 재야사학자 및 네티즌들은 신시가 고조선 이전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의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시는 환웅이 하늘에서 무리 3천과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이끌고 내려와 세상을 다스린 곳이라고 한다. 그 위치는 태백산(太伯山) 신단수(神壇樹) 아래였다. 환웅은 신시에서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을 다스렸다고 한다. 신시는 훗날 단군이 평양에 도읍하여 고조선을 건국할 때까지 환웅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도지가 전하는 신시(神市)는 국가나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시는 10년마다 사해의 모든 족속들의 대표자들이 모여 천문관측, 족보정리, 말과 글의 정리, 역(曆)의 정리, 하늘에 제사 등을 행하는 인류대화합의 장이었다. 이러한 신시의 모임을 통하여 모든 족속들의 말과 글이 같아지고 천하의 법도가 하나 되게 함으로써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대이상을 추구한 것이었다.
1) 수계정심 찰우천상(修?淨心 察于天象)
수계정심(修?淨心)은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찰우천상(察于天象)은 하늘의 상을 살피는 것이다. 신시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각 민족의 지도자들이다.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의 상을 살펴, 자기 종족들에게 하늘의 순리에 쫓아 생활하도록 하는 것은 바로 그 종족의 흥망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2) 수마고지보 명기족속(修麻姑之譜 明其族屬)
마고의 계보를 연구하여 그 족속을 밝히는 것은 족속간 유대를 강화하는 지름길이다. 모든 인류는 마고의 자손들이다. 마고의 계보를 연구하여 각 족속들이 서로 한 핏줄임을 확인하는 것이 인류 평화의 첫걸음인 것이다.
3) 준천부지음 정기어문(準天符之音 整其語文)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하여 그 말과 글을 정리하였다. 천부의 음은 한글말이다. 파미르고원의 마고성으로부터 사방으로 흩어진 각 족속들은 수천년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천부의 음을 잃어버리고 각각 처한 생활환경에 따라 언어와 문자가 모두 달라졌다. 언어와 문자가 달라지므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다툼이 되풀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황궁씨 유인씨 환인씨 환웅씨 임검씨로 이어지는 한민족은 끊임없이 천부의 음을 계승해왔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꾸준히 사해의 모든 족속들을 방문하여 천부의 음을 전하고 말과 글을 통일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몇 사람이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말과 글을 전하고 통일시키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단군임검 시대에 이르러 부도를 건설하고 신시(神市)를 열어서 각 족속들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천부(天符)의 음(音)을 익혀 각 족속들에게 전함으로써 말과 글이 같아지게 된 것이다. 단군임검시대에는 한글말이 세계공용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전(奠)
전(奠)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북극성과 칠요(七耀)의 위치를 정하고, 희생물을 구워 반석위에 놓고 제사를 지내며, 천웅(天雄)의 음악을 연주하며 모여서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북극성(北極星)은 천구의 북쪽에 자리한 별을 부르는 이름이다. 현재는 작은곰자리의 꼬리에 있는 알파별 폴라리스가 북극성이다.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 아니라 세차운동의 영향으로 지축이 움직이면서 조금씩 바뀐다. 나침판이 없던 옛날에는 길을 가거나 항해할 때 북극성이 나침반과 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 칠요는 해 ? 달 ? 화성 ? 수성 ? 목성 ? 금성 ? 토성(日月火水木金土)으로 인간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소중한 별들이다. 칠요가 있으므로 지구상에 사람을 비롯한 만물이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 북극성과 칠요를 신성시하여 제사를 지내며 끊임없이 움직임을 관찰하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쳐왔던 것이다. 이 칠요가 오늘날 일주일을 나타내게 되었다.
5. 방장해인(方丈海印)
칠색보옥에 천부(天符)를 새긴 것이다. 옥은 예로부터 무병장수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석(神石) 또는 영석(靈石)으로 여겨 왕권과 왕가(王家)를 상징했다. 옥을 왕만이 지닐 수 있는 품격 높고 귀한 보석이라고 본 까닭이다. 그래서 임금과 관계된 낱말에 옥자를 썼다. 왕이 앉는 자리를 옥좌, 왕의 손을 옥수, 도장을 옥새, 걸음걸이를 옥보라고 부른 것이 좋은 예이다. 또한 도교 등에서 최고신을 옥황상제(玉皇上帝)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옥이 이런 상징을 가지게 된 것이 부도의 신시에서 칠색보옥에 천부(天符)를 새겨서 각 족속의 지도자들이 나누어 가진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6. 칠난(七難)
칠난은 칠정(七政)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칠정(七政)은 해와 달과 다섯 개의 별(水火木金土)의 운행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서(虞書) 제2편 순전(舜典) 5장 해설|작성자 법고창신 참조>
불교의 인왕반야경에는 해와 달의 운행이 도를 잃고 빛을 잃는 일월 실도난, 금성과 혜성이 변하는 성수 실도난, 큰 불이 이는 재화난, 홍수가 지는 우수 변이난, 태풍 부는 악풍난, 가뭄이 드는 항양난, 사방으로부터 적병과 도적이 일어나는 악적난을 칠난(七難)이라 한다.<다음 백과사전 참조>
7. 성황(城隍)
성황(城隍)은 바닷가에 성을 쌓고 천부(天符)를 받들어 모시며, 여러 족속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으로 부도로부터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러한 성황의 유래를 알지 못하고 성황신앙이 중국에서 유입되었다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끝-
제15장. 조선제(朝鮮祭)의 유래
또 예(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에 조시(朝市)를 열고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었다.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내니
사해의 족속들이 모두 지방 토산물을 가져와 바쳤다.
산악족들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족들은 생선과 조개를 바치며 빌었다.
“조제(朝祭)에 나아가 생선과 양을 희생으로 바치오니
오미(五味)의 피를 맑게 하여 창생의 허물을 그치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조선제(朝鮮祭)였다.
이때에 산악과 해양의 족속들이 생선과 고기를 많이 먹으므로
교역하는 물품들이 거의 포와 조개류와 가죽류였다.
그리하여 희생제를 지냄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하고 공에 보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손가락을 피에 꽂아 생명을 되돌아보고
땅에 피를 부어 기른 공에 보답하였다.
이는 희생물로 오미의 잘못을 갚고 허물이 그치기를 바람이니
바로 육신을 지닌 괴로운 심경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매년 제를 지낼 때 물화가 폭주하므로
나루와 포구에 해시(海市)를 크게 열었다.
부정을 없애고 몸을 깨끗이 하여 지리를 살피며
교역의 법을 시행하여 그 가치와 양을 정하고
물건의 성질을 따져서 그 쓰임새를 밝혔다.
또 부도 팔택(八澤)의 모양으로 못을 파고
굽이쳐 흐르는 물 사이에서 굿하고 점을 치며
물질의 풍요를 바라는 의식을 행하면서 모여서 잔치를 열었다.
모든 족속들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峰)에서 오엽서실인 잣을 얻어
봉래해송(蓬萊海松)이라 이르고 오행(五幸)을 은혜롭게 얻어서 돌아갔다.
이로부터 사해에 산업이 일어나 교역이 왕성해지므로 천하가 넉넉하였다.
[원문]
又設朝市於 澧陽交地之腹 設海市於八澤 每歲十月 行朝祭 四海諸族 皆以方物供進 山岳
우설조시어 예양교지지복 설해시어팔택 매세십월 행조제 사해제족 개이방물공진 산악
諸族 供之以鹿羊 海洋諸族 供之以魚? 乃頌曰 朝祭供進 魚羊犧牲 五味血鮮 休咎蒼生
제족 공지이녹양 해양제족 공지이어합 내송왈 조제공진 어양희생 오미혈선 휴구창생
此謂之朝鮮祭 是時 山海諸族 多食魚肉 交易之物 擧皆包貝皮革之類故 乃行犧牲之祭 使
차위지조선제 시시 산악제족 다식어육 교역지물 거개포패피혁지류고 내행희생지제 사
人反省報功也 揷指于血 省察生命 注血于地 環報育功 此代物而 償五味之過 願其休咎卽
인반성보공야 삽지우혈 성찰생명 주혈우지 환보육공 차대물이 상오미지과 원기휴구즉
肉身苦衷之告白也 每歲祭時 物貨輻湊 廣開海市於津浦 除?潔身 鑑于地理 行交易之法
육신고충지고백야 매세제시 물화폭주 광개해시어진포 제불결신 감우지리 행교역지법
定其値量 辨物性之本 明其利用 又象鑿符都八澤之形 報賽於曲水之間 會燕而行濟物之儀정기치량 변물성지본 명기이용 우상착부도팔택지형 보새어곡수지간 회연이행제물지의
諸族 取五瑞之實於 蓬萊圓嶠之峰 卽栢子也 謂之蓬萊海松 惠得五幸而歸 自此四海興産
제족 취오서지실어 봉래원교지봉 즉백자야 위지봉래해송 혜득오행이귀 자차사해흥산
交易殷盛 天下裕足
교역은성 천하유족
[해설]
1. 조시(朝市)
조시(朝市)는 매년 10월에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조제(朝祭)를 지내기 위해 모인 것을 말한다. 조시(朝市)가 열린 곳은 예와 양이 교차하는 중심지로 중국 장안부근이다.
예(澧)는 물이름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중의 하나로 꼽히는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禹貢所載隨山浚川之圖, 1209년)에는 예수(澧水)가 두 곳에 있다. 지도의 붉은색 원이 예수(澧水)로 하나는 중국 섬서성의 태백산쪽에서 발원하여 장안(長安)을 감싸고 돌아 황하로 흘러간다. 다른 하나는 호남성에 있는 숭산(崇山)을 끼고 돌아 양자강가의 동정호로 흘러가는 물이다. 양(陽)은 한수(漢水)의 북쪽을 가리킨다. 한수는 섬서성 태백산쪽에서 발원하여 호북성을 관통하여 흐르는 양자강의 지류이다. 지도에서 위쪽의 길게 굽이쳐 흐르는 강이 황하이며, 아래쪽에서 길게 굽이쳐 흐르는 강이 양자강이다. 그리고 섬서성 태백산 부근에서 시작하여 비스듬히 아래로 흘러 양자강 하류에서 양자강과 합류하는 물이 한수(漢水)이다. 그러므로 한수(漢水)의 북쪽을 흐르는 예수(澧水)는 장안(長安)을 감싸고 돌아 황하로 흘러가는 물이다. 대청광여도(大淸廣輿圖 1603년작, 다음카페 향고도/중국고지도)를 보면 장안을 감싸고 도는 물이 예수(澧水)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예수와 황하가 만나는 곳에 조읍(朝邑)이 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 부근이 예(澧)와 양(陽)이 교차하는 중심지로 조시(朝市)를 연 곳으로 보인다. 이곳은 중국대륙의 중심이며 육상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한 곳이다. 또한 환웅천왕이 3,000명의 무리를 이끌로 내려와서 신시를 연 태백산(중국 섬서성)과도 가까운 위치에 있다.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禹貢所載隨山浚川之圖 1209년작, 향고도/중국고지도 참조)
2. 조제(朝祭)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냈는데 사해의 모든 족속들이 지방토산물을 가져와서 바쳤다. 이것이 후일 조공(朝貢)으로 변한 듯 하다. 조제(朝祭)는 인류가 낙원인 마고성을 상실하게 된‘오미(五味)의 화(禍)’를 반성하고 마고성을 회복하기 위한 간절한 의식이었다.
1) 매세십월 행조제(每歲十月 行朝祭)
매년 10월에 조제를 지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음력 10월을 상달이라고 부르며 1년 농사를 마감하고 수확한 곡식으로 감사하는 제천의식을 거행해왔다. 이는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으로 이어졌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예(濊)를 보면 “항상 시월에 절기행사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고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는데, 이를 무천이라 한다(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고 하여 10월에 거행하는 제천행사가 아주 성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은 10월 3일을 개천절로 기념하고 있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천이란 본디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사건을 가리킨다. 조제(朝祭)를 환웅천왕의 도읍지인 섬서성 장안부근에 정한 것도 환웅천왕의 개천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부도지로부터 10월에 성대한 제천의식을 거행하는 이러한 풍속들이 단군임검의 조제(朝祭)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6월에는 기원 직후 부족국가 시대 동예(東濊)의 제천풍속으로 알던 무천(舞天) 행사가 이보다 앞서 고조선에서 열렸다는 고문서 기록이 발견되어 부도지의 기록을 뒷받침하였다. 인천시립박물관 윤용구 박사는 “1907년 영국의 A. 스타인이 중국 간쑤(甘肅)성 둔황(敦煌)현에서 반출해 간 돈황문서(敦煌文書) 내 토원책부(兎園策府)에 지금은 전하지 않는 사서인 위략(魏略)을 인용해 고조선에서 10월에 무천이 열렸고, 출정에 앞서 소를 잡아 그 발굽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출처 : 한국일보 2005-06-10 22:50]
2) 조제공진 어양희생(朝祭供進 魚羊犧牲)
조제에 나아가 생선과 양을 희생물로 바쳤다. 산악족들은 사슴과 양을 바치고, 해양족들은 생선과 조개를 바쳤다. 조선(朝鮮)의 ‘선(鮮)’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조제에 올리는 대표적인 희생물이 생선과 양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이 산악족과 해양족을 아우르는 거대한 나라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오늘날 한자에서 제후들이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던 것을 조공(朝貢),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조빙(朝聘), 조선의 들을 나타내는 조야(朝野)가 천하를 의미하는 것 등을 보더라도 단군임검 당시에 조선이 대륙전체를 아우르는 천자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오미혈선 휴구창생(五味血鮮 休咎蒼生)
조제에 나아가 생선과 양을 희생물로 바치오니 “오미(五味)의 피를 맑게 하여 창생의 허물을 그치게 하소서”하는 간절한 기도다. 처음에 인류는 지상낙원인 마고성에 살면서 품성이 순정하여 능히 조화를 알며, 지유(地乳)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고 밝았으며 그 수명이 한량이 없었다(부도지 제4장). 그러나 포도를 맛보고 강제로 다른 생명을 먹는 습관을 가짐으로서 사람들의 혈육이 거르지 않은 술처럼 탁해지고, 심기가 혹독하게 변하여 하늘 성품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수명은 짧아지고 죽을 때 천화(遷化)하지 못하여 썩게 되었다.(부도지 제5장) 이것이 ‘오미의 화’다.
오미(五味)를 먹음으로 인하여 거르지 않은 술처럼 탁해진 ‘오미의 피’를 생선과 양 등의 희생물로 대속하여 맑게 함으로써 다시 지상낙원인 마고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가 바로 조제(朝祭)였다.
3. 해시(海市)
매년 10월에 조제(朝祭)를 지낼 때 물화가 폭주하므로, 발해만 주변의 네 나루와 네 포구에 해시(海市)를 크게 열어 사해제족들이 서로 특산물을 교환하도록 하였다. 해시에서는 교역의 법을 정하여 시행하고, 굿하고 점을 치며, 잔치를 열고 물질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하면서 모든 족속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시며 즐겼다.
4. 팔택(八澤)
팔택(八澤)은 단군임검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홍익인간 제세이화의 터전으로 삼은 발해만 일대의 수상교통 요지에 만든 8개의 못을 말한다.
“팔택(八澤)에 해시(海市)를 열었다.”는 구절과 “매년 제를 지낼 때 물화가 폭주하므로 나루와 포구에 해시(海市)를 크게 열었다.”는 구절을 통하여 팔택(八澤)의 위치와 사진사포(四津四浦)의 위치가 같음을 알 수 있다. 또 제13장에서 “네 나루와 네 포구는 천리간격으로 잇달아 동과 서로 빙 둘러 늘어섰다”고 하였다. 위의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禹貢所載隨山浚川之圖)에서 중국 해안에 대륙택(大陸澤), 뇌택(雷澤), 대야택(大野澤), 진택(震澤) 등 4개의 못이 있다.(파란색 원)
이들 4개의 못은 황하의 물길이 자주 바뀌면서 위치도 시대별로 많은 변동을 보이는데, 천진에서 양자강까지 대략 천리 간격으로 배치하면 발해만 서쪽 4개의 못은 아래의 지도처럼 된다. 또 우공소재수산준천지도에서 도이(島夷), 래이(萊夷), 우이(隅夷), 회이(淮夷), 도이(島夷) 등 우리겨레인 구이(九夷)가 천진에서부터 양자강 아래지역까지 중국 동해안에 광범위하게 살았음이 표시되어 있다.(지도의 녹색 동그라미) 이는 발해만 일대가 단군임검의 터전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발해만의 동쪽인 한반도쪽에는 고대지도가 없어서 고증하지 못했다. 다만 만주벌판과 통하는 요하하류, 단군의 유적이 있는 대동강과 한강하류, 일본까지 통할 수 있는 낙동강 하류 등이 수상교통의 요지로 단군임검이 사진사포(四津四浦)와 8택을 만든 목적과 부합된다. 이를 발해만 동쪽 4개의 못이 있는 지역으로 하면 부도지에서 묘사하는 사진사포(四津四浦)와 8택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아래 지도처럼 표시할 수 있다.
부도의 위치와 사진사포(四津四浦)와 조시(朝市)의 개략적 위치
5. 봉래해송(蓬萊海松)
잣을 말한다. -끝-
제16장. 부도(符都)의 특산물
시(市)에 온 사람들은 또 영주산 대여(岱輿)의 골에서
삼근영초(三根靈草)를 얻으니 바로 인삼이었다.
이를 영주해삼(瀛州海蔘)이라 부르며
능히 삼덕(三德)을 지키고 돌아갔다.
무릇 인삼은 그 수격(數格)을 갖추며
자삭(磁朔) 지방에 난 것은 반드시 오래 산다.
40년을 1기(期)로 잠을 자고, 13기를 1삭(朔)으로 정기를 모으며
4삭(朔)을 지나 열매를 맺고 화(化)한다.
이러한 것은 부도(符都)지역이 아니면 얻을 수 없으므로
방삭초(方朔草)라 하니 세상에서 말하는 불사약이 바로 이것이다.
비록 작은 뿌리라도 부도지역에서 난 것은
모두 영험이 있으므로 시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구하였다.
대저 삼근영초(三根靈草)의 인삼과, 오엽서실(五葉瑞實)의 잦과
칠색보옥(七色寶玉)의 부인(符印)은 진실로 불함삼역의 특산물이요
사해의 모든 족속들에게 하늘이 내린 혜택이었다.
[원문]
來市者 又取三靈之根於 瀛州岱輿之谷 卽人蔘也 謂之瀛州海蔘 能保三德而歸 盖人蔘 具
래시자 우취삼령지근어 영주대여지곡 즉인삼야 위지영주해삼 능보삼덕이귀 개인삼 구
其數格 生於磁朔之方者 必長生 以四十歲謂一期休眠 以一三期爲一朔而蓄精 經四朔而結
기수격 생어자삭지방자 필장생 이사십세위일기휴면 이일삼기위일삭이축정 경사삭이결
子乃化 如是者 非符都之域卽 不得也 故 曰方朔草 世謂之不死藥 是也 其或小根 産於符
자내화 여시자 비부도지역즉 부득야 고 왈방삭초 세위지불사약 시야 기혹소근 산어부
都之域者 皆有靈效故 來市者必求之也 大抵三根靈草之人蔘 五葉瑞實之栢子 七色寶玉之
도지역자 개유영효고 래시자필구지야 대저삼근영초지인삼 오엽서실지백자 칠색보옥지
符印 眞是不咸三域之特産 四海諸族之天惠
부인 진시불함삼역지특산 사해제족지천혜
[해설]
1. 삼근영초(三根靈草)
인삼을 말하며 영주해삼(瀛州海蔘)이라고도 하였다. 예로부터 인삼은 불로·장생·경신의 명약으로 일컬어졌다.
중국의 의학서인 《신농본초경에는 인삼의 약효에 대해서 “오장을 보호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눈을 밝게 하고,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다”는 등의 표현을 하고 있어, 오늘날의 과학으로 밝혀진 인삼의 효능과 잘 부합된다.
본문에서 ‘인삼을 영주해삼(瀛州海蔘)이라 부르며 능히 삼덕(三德)을 지키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삼덕(三德)은 유교에서는 지(智)·인(仁)·용(勇)으로 표현되고,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표현되며, 불교에서는 법신덕, 반야덕, 해탈덕을 이른다. 우리 고유의 종교에서는 성(誠)?경(敬)?신(信)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도지의 핵심철학인 천부경에서는 만물의 존재원리가 천 ? 지 ? 인의 3극에 있다.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하늘의 덕과, 만물을 두텁게 기르는 땅의 덕과, 만물을 사랑하는 인덕(人德)이 조화를 이루어야 만물이 존재할 수 있다. 삼덕(三德)은 천덕 ? 지덕 ? 인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오엽서실(五葉瑞實)
잣을 말하며 봉래해송(蓬萊海松)이라고도 하였다. 잣나무는 한국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라고 있어, 외국에서는 잣나무를 영어로 'Korean pine'이라고 부른다. 원산지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일부로 알려져 있다.
잣을 한의학에서는 ‘해송자’라 하는데,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다. 심장과 간장, 신장의 경락에 작용해 진액을 생기게 하고, 풍을 가라앉히며 폐를 튼튼하게 하고 양기를 돋우며 오장을 이롭게 해준다고 하였다. 제15장에서 ‘모든 족속들이 봉래산 원교봉(圓嶠峰)에서 오엽서실인 잣을 얻어, 봉래해송(蓬萊海松)이라 이르고 오행(五幸)을 은혜롭게 얻어서 돌아갔다.’하였다. 잣이 오장을 이롭게 하므로‘오행(五幸)’이라 한 듯하다.
3. 칠색보옥(七色寶玉)
옥도장을 말하며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고도 하였다.
부도에서 10년 마다 신시를 열고 모든 족속들이 칠색보옥을 캐서 천부(天符)를 새겨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이르고, 칠난(七難)을 다스려 없애고 돌아갔다. 예로부터 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성한 돌로 취급되었다.
고대의 이집트, 페르시아, 희랍시대부터 옥은 권력과 건강을 지켜주고 병과 액운을 물리치는 주력(呪力)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때문에 권력자들은 목걸이, 팔찌, 반지, 펜던트를 비롯해 도장, 술잔, 꽃병까지 만들어 즐겼다.
동양에서도 옥은 무병장수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석(神石) 또는 영석(靈石)으로 여겨 왕권과 왕가(王家)를 상징했다. 옥을 왕만이 지닐 수 있는 품격 높고 귀한 보석이라고 본 까닭이다. 그래서 임금과 관계된 낱말에 옥자를 썼다. 왕이 앉는 자리를 옥좌, 왕의 손을 옥수, 도장을 옥새, 걸음걸이를 옥보라고 부른 것이 좋은 예이다. 또한 도교 등에서 최고신을 옥황상제(玉皇上帝)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처럼 옥을 신성시하는 풍속이 바로 부도의 신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칠색보옥(七色寶玉)에 천부를 새긴 방장해인(方丈海印)이 인간생활의 큰 재난인 칠난(七難)을 다스려 준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칠난(七難)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표적으로 불교의 인왕반야경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해와 달의 운행이 도를 잃고 빛을 잃는 일월실도난, 금성과 혜성이 변하는 성수실도난, 큰 불이 나는 재화난, 홍수가 지는 우수변이난, 태풍이 부는 악풍난, 가뭄이 드는 항양난, 사방으로부터 적병과 도적이 일어나는 악적난 등이다.
4. 봉래산·방장산·영주산
삼신산인 봉래산·방장산·영주산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대부분 신화처럼 아득하여 삼신산의 존재조차 의문이 들게 만들고 있다.
《열자》에 의하면, 발해(渤海)의 동쪽 수억만 리에 오신산(五神山)이 있는데, 그 높이는 각각 3만 리로 금과 옥으로 지은 누각이 늘어서 있고, 주옥(珠玉)으로 된 나무가 우거져 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불로불사(不老不死)한다고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은 모두 선인(仙人)들로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살아간다. 오신산은 본래 큰 거북의 등에 업혀 있었는데, 뒤에 두 산은 흘러가 버리고 삼신산만 남았다고 한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곳에 신선이 살고 있으며, 불사약(不死藥)이 있다 하여 시황제(始皇帝)와 한(漢) 무제(武帝)가 이것을 구하려고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을 보냈으나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일이 유명하게 전해 내려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규원사화를 쓴 북애자는 삼신산을 백두산이라고 하였다.
부도지는 삼신산의 유래에 대하여 새로운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불함삼역(不咸三域)의 특산물이 잣과 인삼과 옥(玉)이며 그 주요 생산지에 삼신산이 있다는 것이다.
제13장에 살펴본 바와 같이 불함삼역은 하느님의 터전으로 발해만 일대를 말한다. 그러므로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은 발해만 일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 봉래산은 산동반도의 애산(艾山)이다.
발해만 산동성에 봉래시(蓬萊市)가 있다. 봉래시에 애산(艾山)이 있다. 애(艾)는 ‘쑥’을 뜻하며, 봉래(蓬萊)도‘쑥과 명아주’를 의미하므로 애산(艾山)과 봉래산(蓬萊山)은 둘 다 쑥이 많이 자생하는 산이라는 뜻이므로 같다. 산동성은 치우천왕이 한때 도읍했던 곳이기도 하며, <삼국유사> 등에서 환웅이 무리를 수련하는데 쑥과 마늘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산동성 봉래시 일대는 중국 고대지도를 보면 우리 동이족인 래이(萊夷), 우이(隅夷)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봉래산은 산동반도의 애산(艾山)이라고 생각한다.
2) 영주산은 강화도의 마니산이다.
영주산의 영주(瀛洲)는 바다 가운데 섬을 의미한다. 발해만 지역의 섬으로 인삼이 많이 나고 단군임검과 관련이 있는 곳은 강화도이다. 강화도 마니산에는 단군임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으며, 근처의 정족산에는 단군임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이 있다. 강화도는 수많은 고인돌이 산재하고 있어 선사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또한 예로부터 강화도는 오령초(五靈草)라 하여 인삼, 마늘, 약쑥, 순무, 연(蓮)이 유명한 곳이다. 인삼, 쑥, 마늘은 모두 단군임검과 관계가 많은 식품들이다. 이러한 사실을 들을 종합해 볼 때 부도지에서 말하는 영주산은 강화도 마니산이 확실하다.
3) 방장산은 요동반도의 수암(岫岩)이다.
부도지 제14장에서“모든 족속들이 방장산 방옥(方?)의 굴에서 칠색보옥을 캐서 천부(天符)를 새겨 방장해인(方丈海印)이라 이르고, 칠난(七難)을 다스려 없애고 돌아갔다.“고 하였다. 방장산은 옥의 생산지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은 세계적인 옥생산지로 신강성의 화전옥(和田玉), 하남성의 독산옥(獨山玉), 호북성의 녹송석(綠松石), 요령성의 수암옥(岫岩玉)이 특히 유명하여 중국 4대옥으로 불린다. 이 중 발해만에 위치한 요령성의 수암옥이 옥의 기원으로 불린다.
수암(岫岩)은‘산 굴 바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칠색보옥이 생산되는 곳으로 부도지에서 말하는 방장산과 부합된다.
부도(符都), 사진사포(四津四浦), 삼신산(三神山), 조시(朝市)의 개략적 위치
위 지도는 단군임검의 핵심 통치지역인 부도(붉은색 사각형), 사진사포(붉은 점), 조시(청색 점), 삼신산(청색선으로 연결된 붉은 점)을 표시한 것이다. 앞 장에서 표시했던 사진사포의 위치는 삼신산의 위치에 맞도록 수정하였다.
4) 삼신산(三神山)은 발해의 중심되는 세 지역으로 해상교통의 중심지이며, 하늘에 제사 및 천문을 관측하는 곳이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삼신산(청색선으로 연결된 세 점)은 발해의 중심을 이루는 지역이며, 고대 발해만 뱃길의 중심지에 있었다. 통일신라 이전까지 중국에서 한반도를 왕래할 때 반드시 이용한 뱃길이 산동반도의 등주에서 발해만을 건너 압록강 하구에 이른 후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는 뱃길이었다. 바로 삼신산을 잇는 청색선과 일치하는 뱃길이다. 산동반도의 등주에서 요동반도의 끝부분인 대련항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연결되어 있어서 선박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던 고대에도 안전하게 발해만을 횡단할 수 있는 유일한 뱃길이었다. 삼신산은 부도의 특산품인 잣과 인삼과 옥을 가장 안전하게 무역하는 고대의 환상적인 삼신산 뱃길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이 삼신산 뱃길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뱃길이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삼신산 뱃길을 장악했을 때는 산동반도를 비롯한 중국의 동해안이 모두 우리의 영토가 되었으며, 중국이 삼신산 뱃길을 장악했을 때는 요동반도가 중국의 영토로 변했던 것이다. 삼신산 뱃길을 알면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를 알 수 있다.
또 삼신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천문을 관측하던 곳으로 정확하게 발해 중심의 동서북 삼방향에 위치하였다. 산동반도의 봉래산과 강화도의 영주산은 위도 37도로 각각 발해만의 동서에 위치한다. 또 봉래산과 영주산은 경도가 각각 120도와 126도이며, 요동반도의 방장산은 경도가 123도로 봉래산과 영주산의 가운데로 북쪽에 위치함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천문의 관측이 너무나 중요하였으며, 정확한 천문관측을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이등변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서 관측해야 알 수 있다. 삼신산은 바로 이등변 삼각형의 세 꼭지점에 해당하며, 또한 세 곳의 관측자료를 수시로 종합하려면 교통이 편리해야 하는데 삼신산은 삼신산 뱃길을 통하여 수시로 내왕 할 수 있는 최적의 교통이 확보되어 있었다. 부도의 동서남북에서 수시로 천문을 관측하고, 발해의 동서북에서 수시로 천문을 관측함으로서 단군임검의 부도는 최고의 천문관측과 역법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5) 부도의 특산물에 대한 고증
1982년 내몽고 적봉시 오한기 보국토향 흥륭와촌에서 수암옥으로 제작된 옥귀걸이 100여점이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6,200년경의 유물로 밝혀졌다. 그 후 한반도와 중국대륙에서 수암옥 유물이 계속 발굴되었다. 이에 따라 홍콩 중문대학교 등총 교수는 수암옥의 전파경로를 흥륭와(BC 6200년)-양자강(BC 5,000~4,000년)-광동성 광주(BC 2,500년)-월남북부(BC 2,000년)-중국 운남성, 월남북부(BC 1,000년)으로 추정하였다. 또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흥륭와-백두대간 동쪽-고성 문암리(BC 6,200년 전후)-동남해안-여수 안도리, 일본 구주와 본토(BC 4,000~3,000년 경)로 수암옥의 이동경로를 추정하였다.<세계를 놀라게 한 홍산문화와 요하문명, 우실하 저 >
부도지에서는 부도의 특산물인 수암옥이 단군임검시대에 이미 아시아대륙 전체에 퍼져나갔음을 증언하고 있다. 위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발굴들은 부도지의 내용을 완벽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부도지가 아니면 지금으로부터 4,000년을 넘는 옛날에 요동반도의 수암옥이 전 아시아대륙으로 퍼져나간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5. 불함삼역(不咸三域)
불함(不咸)은 몽골어 부르한의 한자표기며, 부르한은 몽골어로 하느님이라는 뜻이다. 불함삼역은 하느님의 터전인 발해만 유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린 것을 의미한다. 진조선, 마조선, 번조선 의 삼조선 또는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