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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16(일)163차 광주민학회답사
花開洞天의 비밀,西山과 檀君은 어떤 관계일까?
* 답사일정 09;00광주출발 - 88고속도로 - 09;30남원휴게소 - 10;00남원IC - 19번도로10;40화개장터 - 11;00신흥(三神洞刻字, 신흥사터, 푸조나무, 洗耳岩, 濯纓臺) - 11;40박달나드리 - 11;50단천골암호문자바위 - 12;30의신에서 점심(선유산방055-882-4488, 봄나물비빔밥) 14;00까지 자유시간(지리산역사관, 의신솟대 자유관람 후14;00출발) - 15;00칠불암 - 16;00쌍계사 - 17;00화개출발, 19번 도로 전도, 하동IC 17;30 - 남해고속도로, 17;50섬진강휴게소 15분 정차 - 19;20광주도착(예정)
* 출발장소 및 시간 - 출발; 계림동 민학회 사무실 앞(광주고정문에서 직선으로 100m지점, 광주고동창회 건물, 또는 한국화장품건물 뒤 50m지점) - 시간; 2008,3,16(일) 09;00 정시출발
* 안내 1, 답사비를 모든 분이 계좌 입금하셨습니다. (44명) 2, 계곡, 냇물, 바위를 걷는 경우가 많으므로 마땅한 신발과 옷차림을 하십시오. (면장갑, 스팈, 쌍안경 등을 마련하면 요긴하게 쓰일 것입니다.) 3, 오가는 도중 간단한 간식과 마실 물을 드립니다. (3월 간식은 박인혜 회원께서 마련하셨습니다.) 4, 이번 답사는 분명한 구조물이 없으므로 뜬구름 잡는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이미 안내해 드린 자료와 참고 도서를 살피고 오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요약된 간단한 자료를 드립니다. 5. 점심 드실 때 고로쇠물을 드립니다. (점심은 장소때문에 조별로-4조- 나누어 먹게 될 것입니다) 6. 아침에(10;40) 화개장 구경을 잠깐합니다. (곶감, 깎은밤, 말린밤, 마, 매실원액, 매실장아찌, 봄나물 蓮子 등이 비교적 낫습니다.) 7, 답사때 어떤 경우라도 흡연을 금합니다. 어색한 장면이 없도록 협조하십시오. 8, 차 안에 간단한 비상약이 마련돼 있습니다. 9, 불편하신 점이나 고칠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하십시오, 10, 3월 말께 사무실을 고칩니다. 회원 사랑방 역할을 하렵니다.
2008, 3, 10
광 주 민 학 회 (062-234-5677) |
○ 지리산 개관
1. 명칭으로서의 지리산
- 地理山, 地利山, 智異山, 頭流山, 頭留山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최석기 돌베게 : 지리산 유람록 50여편을 조사,
40편 이상이 ‘두류산’명칭을 사용
- 5大 神山 : 方丈(방장), 蓬萊(봉래), 瀛州(영주), 妙香(묘향), 九月(구월)
- 지리산 南嶽祠(남악사)
- 李仁老(1152~1220) 靑鶴洞記 이후 청학동, 특히 ‘화개’를 청학동이라 일컬음.
破閑集
- 十勝地 : 임걸년, 장영기 등 도적이 숨은 곳, 동학군, 빨치산.
- 둘레 800리, 3道 5郡
- 外智異(바깥지리) : 불교가 융성
- 內智異(속지리, 안지리) : 민간, 무속신앙
2. 지리산의 문화
- 지리산의 天王과 女子山神인 聖母이야기
- 함양 백무동의 法雨화상과 성모천왕이 만나 딸 여덟을 낳아 巫女가 되게 한 巫祖이야기
- 南嶽祠의 中祀
- 實相寺의 地脈保護說話, 鐵佛과 梵鐘
- 바깥지리의 문화
˚ 칠불사는 남방불교가 직접 전해진 곳으로 거문고의 중흥지(雲上院)
˚ 쌍계사는 六祖 慧能의 禪이 최초로 행해진 곳
˚ 쌍계사는 진감국사에 의해 불교음악 梵唄와 大廉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茶가 전해진 곳
˚ 조선시대 은둔을 꿈꾸거나 靑鶴洞을 찾아서 花開로 오는 선비들이 많음. 이들은 시와 遊山記등을 많이 남겨 遊山文化를 형성.
˚ 화개장의 번성으로 보부상이나 남사당 등 유랑 연예인들의 왕래로 民衆의 애환 이 깃든 곳(김동리 ‘驛馬’)
- 山嶽崇拜
˚ 三山五嶽에 大祀, 中祀, 小祀를 지냄.
․ 大祀 三山 : 나력산(습비부) - 경주 -, 골화산(절야화군) - 영천 -,
혈례산(대성군) - 청도 -
․ 中祀 五嶽 : 五嶽, 四鎭, 四海에 제사
東 : 토함산(대성군), 南 : 지리산(청주), 西 : 계룡산(웅천주)
北 : 태백산(나이군), 中央 : 부악(공산)
˚ 八關會와 五嶽
부여 :영고, 고구려 : 동맹, 예: 무천, 신라 : 산천, 용신제
- 高麗太祖 王建의 10訓要 6條
‘팔관은 천령 및 오악명산 대천의 산신과 용신을 섬기는 행사이다.
(八關. 所以事天靈及五嶽名山大川龍神)’ 팔관회가 天靈, 山神, 龍神의 삼신신앙과 관련된 행사
- 李仁老의 ‘지리산 四仙’
四仙은 신라적 나그네
한 낮에 신선되어 하늘로 올랐네
천 년 전 자취를 생각하니
삼신산 불사약의 효험이던가
* 四仙 : 述郞, 南郞, 永郞, 安祥
- 崔致遠(孤雲) ‘화개동시’
東國花開洞 우리나라 화개동은
동국화개동
壺中別有天 병속의 별천지
호중별유천
仙人推玉枕 신선이 옥침을 순식간에 멀치니?
선인추옥침
身世欻千年 순식간에 천년
신세훌천년
* 欻 문득 훌 / 갑자기 훌
* 壺中別有天 : 神仙이 산다는 곳
- 孤雲 ‘入山詩’
僧乎莫道靑山好 스님!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오
승호막도청산호
山好何事更出山 산이 좋다면 왜 다시 나옵니까?
산호하사갱출산
試看他日吾踪蹟 두고 보시오, 다른 날 나의 종적을
시간타일오종적
一入靑山更不還 한 번 청산에 들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일입청산갱불환
○ 썩은 세상을 뒤 엎고자 한 450년 전의 혁명 시나리오
(서산, 조선을 뒤엎으려 하다를 통해 살펴 본)
○ 화개면 대성리 단천마을에 그 단서가 있다.
-단천마을 : 화개장에서 13Km, 쌍계사에서 8Km, 신흥에서 4Km,
위로 의신까지 4Km, 삼신봉(박달봉) 서쪽아래 첫마을
○ 이상한 글자가 새겨진 바위
- 단천마을에서 1.5Km 아래 시내(계곡) 한 가운데에 있는 바위무더기에 새겨진
암호화된 문자도형
〈의문〉
암호문자를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 것인가?
암호문자의 의미는 지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암호문자 바위의 장소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암호문자 바위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새긴 것인가?
〈암호문자 해독의 결과〉
- 암호문자인 새김글자(刻字) 네 자는 한자 이름 崔興命에서 나왔으며
- ‘崔興命’은 서산대사를 가리키는 비밀 이름이었으며
- ‘崔致遠 - 淸虛堂 - 崔興命’이 상호 연관되어 있고, 암호문자 속에 三敎會通적인 의식이 숨겨져 있으며
- 암호문자 바위의 위치 및 지리산의 관련성은 단군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며
- 암호문자는 주역의 卦(괘)의 원리에 따라 암호화되었으며, 山風蠱卦(산풍고괘)로서 그 풀이는 암호문자의 주인공이 역성혁명을 도모한 것임을 나타내고
- 역성혁명을 위한 준비로서 당시 黨聚- 땡추 -땡초 조직으로 볼 수 있고 승병을 조직 관리하였고, 이는 임진왜란 때 그가 승병장으로 활약하게 된 기반이 되었으며
- 정여립의 난, 허균, 양사언 등과의 관련성 및 역성혁명의 비젼을 알게 되었으며
- 서산대사는 단순한 선승이 아니라 자기시대의 단군으로 자처한 당취 계열의 神佛僧 이었다는 점
등이 드러났으며, 이러한 내용들이 서로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 암호문자가 왜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없었던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계곡 한가운데 위치한 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또 금강산과 함께 조선시대 당취(댕초)의 양대 본거지였던 지리산 속 암호문자가 갖는 당취와의 역사적 관련성은 무엇이며 신불승 계열 승려들의 반체제, 혁명의 계보와 빨치산이라는 현대사로 이어지는 그 혁명의 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 책(기록)은 그러한 암호문자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며, 그 주인공인 서산에 대한 새로운 읽기이다.
또한 백성이 고통 받는 시대에 세상과 백성을 위한 뜻(志)과 창(愴)을 세우고 변혁의 꿈을 들불처럼 지폈던,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과 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시도이다.
三 |
‘三’이라는 새김문자
희미하지만 분명히 ‘三’이라는 글자다. 보기에 따라서는 ‘二十一’로 해독될 수도 있다. 8卦중 乾卦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三’이라는 글자다.
‘三’으로 읽을 수 있다면 三神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암호문자 네 글자의 풀이에 3이라는 숫자가 중요함을 암시한다.
(암호글자의 뜻을 푸는 열쇠에 해당하는 숫자)
2. 三神. 삼신봉을 의미한다.특히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이 일체임을 나타낸다.
3. 崔興命이 崔致遠과 淸虛堂임을 나타낸다. 이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기준으로
緣起되어 있음을 含意한다. 즉, 과거 현재, 미래는 三卽一 내지 一卽三의 관계에 있다.
4. 최치원의 유교 혹은 도교와 청허당의 선불교, 그리고 崔興命의 仙敎 또는 神佛敎 의 3敎가 삼즉일 내지 일즉삼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일종의 三敎會通이다.
5. 3이라는 숫자에 의거할 때, 최흥명의 이면에 최치원과 청허당이 있으며 그 가운데 서도 청허당이 중심인물임을 알게 된다. 즉 최흥명이 곧 청허당인 것이다. 따라서 암호문자바위의 주인공은 서산일 수 밖에 없다. 仙을 대변하는 암호문자 바위에서 儒인 쌍계사와 佛인 칠불사까지의 직선거리가 똑같다는 사실에서도 仙을 중심으로 儒佛을 會通하려는 의식이 드러나는데, 이것은 서산의 三敎를 會通하는 ‘三家龜鑑을 썼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6. 암호문자 네 자는 본래 세 자, 崔興命에서 출발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국에 ‘人王仙王興天命’의 7자로 풀이되므로 여기에 대변화수, 환골탈태수, 변화의 완성수인 21수 관념, 즉 3.7관념이 내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7. 산풍고괘의 괘사에 나오는 ‘갑일 전의 3일과 갑일 후의 3일’의 3과 연관성이 있다.
그 내용은
‘고(蠱 : 벌레먹어 침체하는 상황)이다. 일을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갑일 전의 삼일과 갑일 후의 삼일(先甲三 日後甲三日)을 신중해야 한다. 단(彖)에서 말하길 ... 벌레 먹어 침체하는 상황에서 일을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켜야 천하가 다스려진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운 것은 가서 일삼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갑일 전의 삼일과 갑일 후의 삼일을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마치면 시작함이 있는 것이 하늘의 운행이기 때문이다.
이 ‘3’이라는 새김문자야말로 다른 쪽에 새겨진 네 개의 암호문자가 山風蠱卦를 구성함을 알려주는 강한 메시지다.
○ 암호문자 4자의 탁본 및 集字, 사진
암호문자 바위의 새김문자(刻字)는 漢字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한자가 아니다. 자전에서 찾을 수 없는 글자들이다. 이런 까닭으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겨왔고, 또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최치원의 得仙處로 많이 알려졌다. 네 글자 중 맨 위의 글자는 언뜻 보면 나머지 세 자와 별개의 것처럼 보이나 서로 연관된 글자로 보아야 한다.
첫 글자로부터 두 번째 글짜까지의 세로 길이는 약110cm이고, 아래 세 글자의 길이는 약120cm이다. 전체글자의 간격은 230cm이다.
이 암호문자는 仙家語로 보아야 한다. 北崖老人의 揆園史話의 檀君記에 나오는 李茗의 震域遺記에는 仙家語가 많다고 하였다. 羅喆의 ‘신리대전’의 ‘삼일신고’에도 仙家語가 많다. 네 자로 된 암호문자는 ‘全. 崔興天命’으로 읽을 수 있다. 전주 최씨 興命이란 사람(全. 崔興命)이 자기 이름을 빌어서 그것에 의탁하여 자기의 생각과 사상을 피력하기 위해 비슷한 모양의 글자로 변형하여 암호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름자 興과 命사이에 ‘天’자를 삽입함으로써 자기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였다고 본다. 이것을 글자의 모양에 근거하여 破字하여 읽는다면 ‘人王․仙王興天命’이 될 것이다.
① 人王(全)이면서 仙王(崔)인 檀君이 天命을 興盛하게 하였다. (과거시제)
② 人王이면서 仙王인 檀君이 天命을 中興시킬 것이다. (미래시제)
여기서 人王, 仙王은 檀君을 가리킨다. 인왕의 환웅천왕의 天王에 대비하여 나온 말이라면, 仙王은 仙人王儉의 줄임말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東川王21년(247년)條에 동천왕이 丸都城에서 平壤城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과 관련하여 ‘평양은 본디 仙人王儉이 거처하던 곳이다’ (平壤者, 本仙人王儉之宅也)는 기록이 있다. 이때 선인왕검은 곧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왕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왕검조선)에 ‘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왕검이 唐堯卽位五十年庚寅에 평양성에 도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외에도 단군이 평양에 도읍하였다는 기록은 ‘고려사’58, 지리지3과 新增東國與地勝覽51, 평안도 평양부 建治沿革, 그리고 東國通監 外記 檀君朝鮮에도 보인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조에 따르면 우리 민족 최초로 ‘인간으로서 왕이 된 이’ (人王)는 선인왕검 즉, 선왕인 단군이다. 人王은 선인왕검 외에도 ‘人間王儉’을 가리킨다. 환웅을 神雄이라 부르는 것과 대비된다. 단군을 ‘인왕’이라 할 때와 ‘선왕’이라 할 때는 그 含意가 다르다.
인왕이 정치적인 우두머리(首長)을 뜻한다면, 선왕은 종교적인 수장과 정치적인 수장을 겸하는 말이면서도 종교적인 首長의 뜻에 도 가깝다.
이러한 기록들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한다면 그 뜻이 이의 ①과 같이 과거시제로 표현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전주최씨, 興命이라는 분이 단군과자기를 연결시켜 자기의 결심을 표출한 것이라면 위의 ②와 같이 미래시제로 표현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전주 최씨 가문에서 天命을 中興시키는 단군과 같은 이가 나올 것이다.’라는 圖讖의 성격을 가진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이것은 암호문자가 변혁을 도모하는 秘記流적인 의미를 갖게 됨을 말한다.
그렇다면 단군이 ‘天命’과 연관되는 근거는 무엇인가?
‘국역조선왕조실록’ 1, 태조 1년 8월초에 ‘조선의 단군은 동방에서 처음으로 천명을 받은 임금이다.’(朝鮮檀君, 東方始受命之主)라 하였다. 여기서 ‘천명을 받았다.’(受命) 와 ‘천명을 중흥시켰다’(興命, 興天命)는 그 뉘앙스가 사뭇 다르지만, 일단 단군이 천명과 연관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아울러 이러한 ‘단군 - 천명의식’이 어느 시기부터 있어 왔는지를 밝힐 수 있다면 암호문자의 연대를 확인하는데 단서가 될 것이다.
‘天命’의 의미는 무엇일까? 천명에서 ‘天’이란 桓因, 한울님(帝釋天)도 되고, 桓雄천왕도 된다. 이 둘을 동시에 가리킨다고 할 때, 환인 한울님의 명령은 弘益人間이고 환웅천왕의 명령은 在世理化, 또는 理化世界이다.
在世理化란 ‘인간 세상에 머무르면서 이상적으로 바꾸었다’는 뜻이고, 理化世界란 ‘인간 세상을 이상적으로 바꾸었다’는 뜻이다. ‘이상적으로 바꾸었다’함은 地上世界를 天上化 시켰다는 말이다. 따라서 天命은 ‘인간 세상에 머무르면서 지상세계를 천상화 시킴으로써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造化․治化․敎化의 실현이자 大開闢의 실현인 것이다. 결국, 이 네 암호문자 속에는 환인․환웅․단군 三神의 의미기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풀어가는(암호문자 해독) 열쇠(단서)가 앞에서 말하는 ‘三’이라는 숫자다.
‘崔興命’에서 각각 2획씩을 減하여 암호문자와 같은 세 글자(별표에 설명)를 만들고 이 감해진 6획을 이용하여 ‘全’자를 만들어 본래 崔興命을 네 글자로 만들었는데 네 글자의 획수는 34획으로 세 글자의 획수와 같다. 여기에서 왜 암호문자가 네 글자인지 분명해진다.
이 네 글자를 파자해 보면 ‘人王․仙王․興天命’의 7자가 된다. 그렇다면 왜 감해진 획수로 만든 글자가 하필이면 6획으로 된 ‘全’자일까?
① 본향 全州의 표시
② 檀君을 뜻하는 글자, 破字하면 ‘人王(全)이 된다.
③ 卦를 구성함에 陰爻가 필요하기 때문, 음효로 표시되어야만 암호문자의
주인공이 원하는 卦가 된다. 6획이 음효이다.
그렇다면 ‘崔興命’에 ‘天’자가 들어간 까닭은 무엇인가?
① ‘興天命’이 돼야 암호문자 바위 주인공의 메시지가 전달된다.
② ‘興’자가 임호문자 모양으로 바뀌면 9획 밖에 안 되어서 2획씩을 감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 따라서 ‘天’자가 들어가 4획이 보태어져야만 원칙에 맞는다.
③ ‘天’자가 또 다른 쓰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암호문자 네 글자의 획수는 순서대로 각각 6, 9, 9+천, 6이다. 6이 둘이고 9가 둘이며 천(天)자가 하나 있다. 이것은 周易의 陰爻(6)와 陽爻(9)를 가리키며 占書의 象數易이 아니라 術數的 방법의 효이다. 이렇게 구성된 괘는 山風蠱卦가 된다.
‘人王․仙王․興天命’이라는 7자의 비밀은 무엇일까?
암호문자 네 자의 획수는 34획이지만 30+천(4)으로 봐야한다.
‘30획+천’과 ‘7’자를 해독하면 우리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3․7관념이 들어 있다.
3․7수는 換骨奪胎數이자 변화의 완성수다.
3․7관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3*7, 혹은 30*7에 의해 21 또는 210이라는 숫자가
나와야 하는데 30+천, 7은 이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3․7관념은 과정이 3․7 이 아니더라도 결과가 21이 되면 성립된다. 東學의 3․7자 呪文이 그렇다.
至氣今至願爲大降(8)+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13)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
결국 8+13=21인데 三七字呪文이라 한다.
여기에서 ‘人王․仙王․興天命’ 7자와 비밀의 열쇠 글자 ‘三’의 관계를 살펴보자. ‘三’은 ‘二十一’로도 읽힌다. ‘7차와 三’도 21이라는 숫자가 된다. 이것 역시 일종의 ‘삼칠관념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30+天은 무엇인가? 이것은 변화의 목표를 가리킨다. 즉 변화의 대상은 암호문자의 주인공이 살고 있던 당시의 시대상황이고 그 목표는 天上世界이다.
결국,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당시의 시대상황을 바꾸어 天上化시키는 변화의 완성’이다. 삼국유사 고조선 조에 나오듯이 환웅이 하강하여 홍익인간, 재세이화 한 것을 표본으로 삼아서 단군이 천명을 흥성하게 한 것과 (興天命) 다른 것이 아니다.
山風蠱卦의 卦辭를 살펴보자.
‘蠱(고)의 글자 구성이 그릇 위에 벌레 세 마리가 올라 앉았으니, 음식물이 부패하여 벌레가 쏟아져 나오는 형상이다. 곧 질서가 무너졌음을 뜻한다. 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면 다시 바로 잡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래서 크게 형통한다는 괘사가 나왔다. 그리고 어지러운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모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는 판단이 나왔다.
이 괘사를 현실인식과 결부시켜 보면, 이 암호문자의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를 매우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배층이 부패하고 사회의 질서와 기강이 무너져서 백성이 도탄에 빠져 신음하는 그런 시대라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함은 가면 일이 있을 것이다’는 의미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구체적인 결단과 행동으로 판을 바꾸어 새 판을 짬으로써 이 시대, 이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나 전주 최씨․흥명(全․崔興命)은 과거의 단군이 그러했듯이 앞으로 이 시대의 단군(人王․仙王)으로 자임하며, 이 난국을 수습하여 제대로 질서 잡힌 새 나라를 세우기로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마치 큰 내를 건너는 심정으로 결행하여 새 판을 짬으로써 천명을 중흥 시키고야 말겠다.(興天命) 그리하여 변화가 완성된, 천상세계와 같은 세상을 이 땅에 실현시킬 것이다. (30획+天, 7자)결행한다면 그 가능성은 충분하다. 따라서 이러한 염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 말 것이다.’ (蠱卦 卦辭)
○ 뗄레야 뗄 수 없는 세가지 공통점
1. 최흥명이 청허당인 근거
암호 문자명 |
글자 획수 |
한글 자음소 |
부수와 획수 |
암호 문자명 |
글자 획수 |
한글 자음소 |
부수와 획수 | ||
부수 |
획수 |
부수 |
획수 | ||||||
崔 |
11획 |
ㅊ (최의 첫 자음) |
山 |
3획 |
淸 |
11획 |
ㅊ (청의 첫 자음) |
氵 (水) |
3획 |
興 |
15획 |
ㅎ (흥의 첫 자음) |
臼 |
6획 |
虛 |
12획 |
ㅎ (허의 첫 자음) |
虍 |
6획 |
命 |
8획 |
ㅇ(명의 마지막 자음) |
口 |
3획 |
堂 |
11획 |
ㅇ(당의 마지막 자음) |
土 |
3획 |
|
34획 |
ㅊ, ㅎ, ㅇ |
|
|
|
34획 |
ㅊ, ㅎ, ㅇ |
|
|
2.최치원 → 청허당 → 최흥명이 되는 주장의 근거
崔(11획) |
0 |
淸(11획) |
0 |
崔(11획) |
33획 |
致(9획) |
+3= |
虛(12획) |
+3= |
興(15획) |
36획 |
=3- |
+3= | ||||
遠(14획) |
-3= |
堂(11획) |
-3= |
命(8획) |
33획 |
=3+ |
-3= | ||||
34획 |
34획 |
34획 |
102획 | ||
과거 |
현재 |
미래 |
| ||
유교, 도교 |
선불교 |
선교(신불교) |
|
○ 순수불교와 신불교의 비교
○ 순수불교[정통파 불교]
: 선불교-선승(자력), 정토신앙(타력)/개인구제/출세간적/무분별/보편성 중시
○ 신불교-신불승[비정통파 불교]
: 호국불교-호국승(자력), 미륵하생경신앙
: 당취불교-당취(자력)(타력)/집단구제/현실참여적/분별/특수성 인정
↳조선조에 와서 생겨난 반체제적인 승려들의 비밀결사조직
○ 破字를 통해 알아본 글자의 의미
→ 全(6획) → 人王
崔 (11획) - 2획 = (9획) → 仙王
興 (15획) - 2획 = (13획〈9획 + 天〉) → 興天
命 (8획) - 2획 = (6획) → 命
彌勒佛 - 활(弓)과 무기로써 너(爾)를 바꿀(革) 힘(力)을 기르겠다
- 혁명불교인 彌勒信仰
武 =止(그칠지) + 戈(창과) - ① 창의 사용을 멈출 때를 안다.
② 창을 들고 전장에 나간다.
○ 환웅의 하강에 의해서 이루어진 ‘신시화(神市化)된 지상세계의 내용
⌈風伯 - 조화(造化) : 종교/거울 - 주곡(主穀)․주명(主命)⅂
환웅 ⎟雨師 - 치화(治化) : 정치/칼(劍) - 주병(主病)․주형(主刑) - 天符印 세 개-개벽실현(天上化)
⎟ ⌊雲師 - 교화(敎化) : 교육/방울 - 주선악(主善惡) ⅃ ⎟ ⎟
〈龍神〉〈三神〉〈在世理化〉〈神物三器〉〈五事〉 〈如意珠〉 〈弘益人間〉
⎟
一 卽 三 (三卽一) - 천부인 세 개를 형상화하면 곧 하나의 三太極이 된다.
○ ‘서산, 조선을 뒤엎으려 하다’에 수록된 漢詩를 통한 서산의 비밀 풀기
1. 淸海白沙行 (청해백사행 1) 서산
鵾海風常擊 동해 바다를 거친 바람이 항상 때리니
곤해풍상격
乾坤不蹔閑 천지는 잠시도 고요할 틈이 없구나
건곤불잠한
人心亦如此 인심 또한 이와 같아서
인심역여차
翻覆萬重山 만 겹의 산을 뒤집어엎는도다
번복만중산
風生大海中 바람이 큰 바다 한 가운데서 일어나더니
풍생대해중
展錦三千里 삼천리가 금수강산으로 바뀌는구나
전금삼천리
何人是上賓 누가 윗자리의 손님인가?
하인시상빈
楓岳淸虛子 가을 금강산의 청허자(서산)로세
풍악청허자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가을날 淸海白沙邊에서 서산은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당시의 성난 인심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처럼 돌아선 인심이 조만간 낡은 세상을 뒤집어 엎게 될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세상이 뒤집힌 후, 다시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어와서 삼천리강토를 그야말로 금수강산으로 만들 것이라고 보았다. 즉 새로운 바람, 새로운 풍조에 의거하여 아주 이상적인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여기서 바람의 이미지가 낡은 세상을 무너뜨리는 것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의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산이 꿈꾼 이상세계를 이루는데 있어서 바람 - 풍백(봉) - 청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 새 세상에서 청허자는 윗자리의 손님(上賓)으로서 새 주인 즉, 백성들로부터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단순한 시가 아니다. 바로 서산이 새 세상을 여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백성을 새로운 주인으로 섬기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청해백사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절망하고, 나아가 세상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의를 표명하고 다짐하는 곳이라는 측면에서 서산에게 매우 중요하다.
청해백사,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의 한 중심에 양사언(봉래)이 있다.
2. 崇義禪子訪淸虛(숭의선자방청허) 서산
慾識淸虛主 청허의 주인을 알고자 하는가
욕식청허주
相逢定不逢 그대 나를 보지만 나의 진실은 보지 못하누나
상봉정불봉
須知白雲外 모름지기 알아야 하느니, 흰 구름 밖에
수지백운외
別有一奇峰 기이한 봉우리 따로 있음을
별유일기봉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숭의선자가 청허를 방문하다’
西山은 순수 불교의 禪僧만이 아니라 仙敎(古神道)를 중시하는 神佛僧 또는 神僧으로 봐야 한다. 신불승은 삼신신앙에 근거하여 불교를 수용한 삼신불교의 스님이다.
마치 흰구름 밖에 따로 기이한 봉우리가 숨어 있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禪僧의 이면에 감춰져 있는 신불승으로서의 서산을 발견해야 한다. 서산은 49살에 묘향산(서산)에 들어가 단군굴에서 단군신위를 모시고 지낸 기록이 있다.
3. 登檀君臺(등단군대) - 부제: 史與堯並立云(사여요병립운) 서산
披雲登老石 구름 헤치고 오래된 바위 돌 위에 올라
피운등노석
遙想古皇王 멀리 옛날의 황왕을 생각하네
요상고황왕
山形一翠色 산이야 한결같이 푸르른데
산형일취색
人事幾興亡 인간사 흥망이 그 몇 번이던가
인사기흥망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청허집에 있음. - 역사에서는 요임금과 같은 시대에 임금으로 있었다 - 는 부제를 붙임.
‘단군대’는 묘향산에 있는 바위, 근처에 ‘단군굴’이 있다고 함. ‘단군굴’이 단군이 신으로 내려온 곳(檀君降神之地 단군강신지지)이라면 ‘단군대’는 단군이 무예를 강습한 곳(檀君講武之垈 단군강무지대)임.
이 시에서 단군을 皇王으로 부르고 있다. 皇帝王儉, 또는 皇帝仙王의 줄임으로 추정된다. 단군을 황제에 빗대어 단군이 통치하던 고조선이 서산 당시의 조선처럼 중국의 제후국이 아니라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당당한 제국, 황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4. 題崔孤雲石(제최고운석) 서산
雲散洞天山嶽靜 동천에 구름 흩어지니 산악은 고요한데
운산동천산악정
落花流水去悠悠 지는 꽃, 흐르는 물은 유유히 가누나
낙화유수거유유
誰知八尺三韓客 그 뉘라서 알리오? 팔척의 장부, 삼한의 나그네
수지팔척삼한객
聲動中華四百州 그의 명성이 중화의 사백주를 흔든 것을
성동중화사백주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崔致遠이 암호문자 바위의 주인공일 수 있는가?
崔致遠과 崔興命은 모두 34획이다. 최치원을 염두에 두고 최흥명을 창안하였다고 본다. 서산은 최흥명(최치원)으로 철저히 은신하고 있다. 서산은 최치원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본다. ‘集孤雲字 집고운자’, ‘崔孤雲圖 최고운도’, ‘題崔孤雲石’등의 시가 문집에 전한다.
서산이 18년간 머물렀던 화개동천 곳곳에 최치원의 흔적이 있어서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최치원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진감선사대공탑비, 쌍계석문, 삼신동, 세이암, 정유석, 암호문자바위’등이다.
5. 頭流內隱寂 (두류내은적) 서산
有僧五六輩 중 대여섯 사람이
유승오육배
築室吾庵前 내 암자 앞에 집을 지었네
축실오암전
晨鐘卽同起 새벽 종 치면 함께 일어나고
신종즉동기
暮鼓卽同眠 저녁 북 울리면 같이 자네
모고죽동면
共汲一澗月 한 시냇물 속의 달을 함께 길러
공급일간월
煮茶分靑烟 차 달여 그 푸른 연기 나누네
자다분청연
日日論何事 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
일일논하사
念佛及參禪 염불과 참선이라네
염불급참선
6. 念佛僧(염불승) 서산
合掌向西坐 합장을 하고 서쪽을 향해 앉아
합장향서좌
凝心念彌陀 마음을 모아 아미타불을 부르네
응심념미타
平生夢想事 한평생 그리는 일은
평생몽상사
常在白蓮花 항상 백련화에 있다네
상재백련화
7. 金剛山彌勒峰偶吟 (금강산미륵봉우음) 서산
天地豈能籠大用 천지가 어찌 큰 쓰임을 다 거두리요
천지기능롱대용
鬼神無處覓玄機 귀신도 심오한 도리를 찾을 길 없네
귀신무처멱현기
誰知一衲千瘡裏 누가 아는가 천 갈래 헤어진 한 벌 누더기 속에
수지일납천장리
三尺金烏半夜飛 세 발 가진 금까마귀 한밤중에 나는 줄을
삼족금오반야비
8. 雷黙師翁 夢中贈一封書 丁寧勿泄 (뇌묵사옹 몽중증일봉서 정녕물설) 서산
雷黙當師意未窮 뇌묵 스님의 뜻은 다하지 않았는지
뇌묵당사의미궁
夢中羅縷一封書 꿈에 (스님으로부터) 비단주머니에 든 한통의 편지를 받고서
몽중나루일봉서
朝來盥水薔薇露 아침에 내린 장미에 맺힌 이슬로 손을 씻고
조래관수장미로
準擬開緘空復空 짐짓 비단주머니를 열어보니 텅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더라
준의개함공복공
9. 己丑橫羅逆嶽(기축횡나역악) 유정
峨嵋山頂鹿 아미산 꼭대기의 사슴 한 마리가
아미산정록
擒下就轅門 사로잡혀 원문까지 내려왔네
금하취원문
解網放還去 그물을 풀어서 돌려보내주니
해망방환거
千山萬樹雲 천 산 만 나무에 구름 뿐 일세
천산만수운
10. 贈休靜(증휴정) 봉래 양사언
休如木人立 쉬는 것은 서 있는 나무같이
휴여목인입
靜詩爭靑山 고요함은 청산과 다투듯
정시쟁청산
安禪制龍虎 좌선하여 용호를 제압하니
안선제용호
獨坐雨花間 홀로 꽃 비 속에 앉아 있도다
독좌우화간
11. 晩秋(만추) 서산
沙白驚新雁 모래 희니 어린 기러기 놀라 날고
사백경신안
葉黃悲老槐 잎 누르니 늙은 홰나무 서러워라
엽황비노괴
履霜君子意 서리를 밟는 군자의 뜻은
리상군자의
應向北堂懷 응당 북당을 향한 회포일세
응향북당회
12. 寄蓬萊子(기봉래자) 서산
山蒼蒼 산은 푸르디푸르고
산창창
海茫茫 바다는 아득하기만 한데
해망망
雲浩浩 구름은 넓디넓고
운호호
雨浪浪 비는 주룩주룩 내리누나
우랑랑
何處美人在 어느 곳에 미인이 있겠는가
하처미인재
望之天一方 우두커니 한쪽 하늘을 바라보네
망지천일방
健頹三岳 붓이 억세어 삼악을 무너뜨리고
건퇴삼악
詩淸直萬金 시 맑으니 만금의 값이라
시청직만금
山僧無外物 산승에게 다른 물건 있을까
산승무외물
惟有百年心 오직 백 년의 마음 있을 뿐이네
유유백년심
13. 次遺響遠別寄淸虛道眼(차유향원별기청허도안) 봉래 양사언
落落淸虛老 크고 뛰어난 청허 노사여
낙낙청허노
東歸苦不早 동으로 오심이 느리니 마음이 아프오
동귀고불탁조
禪誰爾共參 선승 중 누가 그대와 함께 참여하는가
선수미공참
山不我同好 (금강)산은 내가 아니라도 (다른 이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곳
산불아동호
金剛無毁滅 금강(산)은 훼손하거나 없앨 수 없고
금강무훼멸
滄海無枯稿 푸른 바다는 시들어 마를 수 없다네
창해무고고
佳期摸浚巡 아름다운 기약을 우유부단하게 우물거리며 미루지 마소
가기모준순
先路來吾道 먼저 번 길이 나에게 오는 길이라오
선로래오도
岩屝桂花發 바위 사립문에 계수나무 꽃이 피었으니
암비계화발
風月永相保 바람과 달이 (오시는 길을)길이 도우고 보호하리라
풍월영상보
14. 淸海白沙行 (청해백사행 2) 서산
海色傷心壁 바다의 빛깔은 마음 아프도록 푸르기만 한데
해색상심벽
天涯一病身 아득한 천지에 홀로 남은 병든 이 몸이여
천애일병신
秋來江上葉 가을이 되니 강물 위에 낙엽이 떠가고
추래강상엽
雁趂日邊人 기러기는 낚시꾼 주위를 맴도는 구나
안진일변인
15. 서산
山川日月是唐虞 (이 땅에 떠오르는) 해와 달, 그리고 산과 냇물은
산천일월시당우 (우리 것이 아니라) 중국 당우의 것인데
濟世無才稱丈夫 이런 세상을 구제할 능력도 없으면서 장부라고 칭하는구나
제세무재칭장부
一筆寫成還抹却 붓 들어 한 번 썼다가는 다시 지우며
일필사성환말각
低頭抱膝暗長吁 머리 숙여 무릎 안고 남 몰래 길게 탄식하네
저두포슬암장우
16. 送天雨之蓬萊(송천우지봉래) 서산
靑海白沙新活計 청해백사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도모하기로 했지만
청해백사신활계
千岩萬壑舊因緣 천 개의 바위, 만 개의 골짜기는 예부터 있어온 그대로일세
천암만학구인연
送爾南天雲斷處 그대를 보낸 남쪽 하늘, 구름 끊겨서 맑게 개인 곳 향하여
송이남천운단처
老夫回首一潛然 이 늙은이 머리 돌려 묵묵히 생각에 잠기네
노부회수일잠연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빗속에 봉래를 보내면서’
서산과 양사언이 청해백사에서 무엇 때문에 회합하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청해백사에서 양사언과 흥천명을 다짐하고 그것을 실천하기위한 계획을 세우고 난 뒤, 서산만 남기고 양사언은 떠난다. 그러나 새 세상이 오더라도 국토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새판이 짜여질 새 세상은 딴 세상이 아니라, 지금껏 인연을 맺고 살아온 이 땅에서 구인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양사언이 떠나간 남쪽은 구름 개여서 맑고 밝은 세상이지만, 그곳은 이 곳 비내리고 궂은 세상과 별개의 세상이 아닌 것과 같다. 이 시에서는 낡은 세상에서 새로운 세상, 비 갠 맑고 밝은 세상을 그려보는 서산의 심회가 잘 나타나 있다.
17. 哭蓬萊禪子(곡봉래선자) 서산
我愛蓬萊客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봉래여
아애봉래객
笑中心自閑 웃음 머금으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구나
소중심자한
重重水歸水 겹겹의 물은 물로 회귀하고
중중수귀수
疊疊山連山 첩첩한 산은 산과 잇닿아 있도다
첩첩산연산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1584년 양사언이 유배지에서 죽었다. 영변부사때 태조 이성계의 증조부 智陵에 화재가 난 사건으로 귀양 갔다가 죽은 것이다. 서산의 상실감은 컸다. 이 시에서 물은 양사언의 이미지이고, 산은 서산의 이미지다.
두 사람이 天命中興을 위해 굳게 약속하고 또 나름대로 준비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사언은 왜, 죽을 때 까지(68세) 아무런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18. 花開洞(화개동) 서산
花開洞裏花猶落 꽃 피는 화개동에 꽃이 지는데
화개동리화유락
靑鶴巢邊鶴不還 청학의 둥지에 학은 아니 돌아오네
청학소변학불환
珍重紅流橋下水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진중홍류교하수
汝歸滄海我歸山 너는 바다로 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가련다
여귀창해아귀산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서산의 出家詩라고 알려진 또 다른 ‘화개동’시이다. 서산은 의신동의 한 암자에서 출가했다. 서산은 청학동을 ‘청학의 둥지로서 청학이 알을 품는 곳’(靑鶴巢)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경우 청학동은 많은 청학을 배출하기로 예정된 땅인 것이다. 그렇다면 청학을 배출할 도량으로서의 ‘청학동’은 어디일까? 암호문자 바위에 의지하여 살펴보면 花開洞天이라 할 수 있다.
꽃이 피어야 할 화개동에 도리어 꽃이 지듯이 청학이 있어야 할 청학의 둥지에는 청학이 날아가고 없다. 이것은 서산이 이곳 화개동천과 인연이 다했으므로 이곳을 떠나야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서산 자신이 청학선이 되었던 곳이자 또 많은 청학을 배출한 이곳 화개동을 떠나 본격적으로 천명중흥의 길에 나서면서 그 감회를 시로 읊은 것이다. 또한 앞으로 천명을 중흥하는 굳은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그가 배출한 청학들, 곧 그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한 黨聚들과 암호문자 바위에 모여서 암호문자를 새겼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묘향산을 향하여 이곳 화개동천을 떠났다.
19. 鶴逢野人箭去故云(학봉야인전거고운) 서산
一鶴飛山去 한 마리 학이 날아서 산을 떠나가니
일학비산거
穿雲裂石聲 구름이 찢어지고 돌이 깨지는 소리가 나는구나
천운렬석성
空巢餘月影 빈 둥지에는 달그림자만 쓸쓸히 남겠지만
공소여월명
天外夢應驚 멀리 하늘 밖으로 비상하려는 꿈을 응당 두려워해야 하리
천외몽응경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이 시에서 서산이 화개동천을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진다. 이 시는 제목이 ‘靑鶴洞’이다. 서산이 정든 청학동을 떠나면서 그 심회를 읊은 것이다. 여기서 서산이 한 마리 학이 되어 청학동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로 드는 것이, 그 副題인 ‘학이 야인이 쏜 화살을 만나서 떠나버렸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다.
청학이 서산으로 하여금 학의 둥지에 있지 못하게 하고 떠나도록 강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야인이 쏜 화살이다.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좁게 본다면, 당시 조정의 가혹한 불교 탄압과 이로 인하여 발생한 보우의 장살사건, 서산의 저술‘三家龜鑑’ 목판본의 훼판사건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더 크게 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한 당시의 잘못된 이념과 체제야말로 서산이 파악한 ‘야만적이고 비문명적인 화살’이 아닐 수 없었다.
서산은 이 天命中興이라는 원대한 꿈의 시도가 자기를 향하여 날아온 화살에서 촉발되었음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이 수난을 승화시켜서 반드시 자기의 꿈을 이루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서산은 1560년 內隱寂庵을 중창하고 淸虛院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禪家龜鑑’을 집필하였다.
1564년 道家龜鑑, 儒家龜鑑, 禪家龜鑑을 三家龜鑑으로 판각하기위해 단속사로 갔다. 昌寧의 젊은 儒生 成汝信(1546-1632)이 삼가귀감을 불태워버리는 사건이 났다. 진양지에서 ‘일찌기 단속사에서 글을 읽더니 僧 휴정(청허)이 펴낸 삼가귀감에 유교를 맨 끝에 둔 것을 보고 공(성여신)이 僧徒를 불러 그 판각을 불태우게 하였으니....’라는 기록이 있다.
명종이 12살에 왕이 되자 생모인 문정왕후(중종의 계비 윤씨)가 수렴청청을 했다. 불교신자인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승과와 선교양종이 복원되고 도첩제가 다시 시행되었다. 보우(1509 - 1565)는 선교판사와 봉은사 주지가 되어 불교의 중흥을 위해 노력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보우를 죽이라는 상소가 1,100여건이나 올려졌다. 제주도에 유배되었으나 제주특사 변협이 몽둥이로 때려 죽여 버렸다.
1568년 성여신은 단속사에서 공부하면서 삼가귀감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른다. 서산은 20여년을 살았던 화개동천을 떠나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可笑世間愛 우습다, 세상의 사랑스러움
가소세간애
永銷瓦解詩 얼음같이 녹고 기와같이 무너질 때
영소와해시
恩多翻作恨 은혜 많으면 도리어 한이 되고
은다번작한
歡極却成悲 즐거움 지나치면 도리어 슬픔되나니
환극각성비 (화개면지 p620)
청허당 서산이 화개를 떠나면서 쓴 시다.
20. 探密峯(탐밀봉) 서산
千山木落後 산마다 나뭇잎 떨어져 버리고
천산목락후
四海月明時 온 세상에 달이 밝은때
사해월명시
蒼蒼天一色 푸르고 푸르러 하늘은 한 빛이니
창창천일색
安得辨華夷 어찌 중화니 오랑캐니 구분할 수 있으리
안득변화이
21. 西山大師의 臨終偈(임종게)
八十年前 渠是我 팔십년 전에는 그것이 나였는데
팔십년전 거시아
八十年後 我是渠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것이로다
팔십년후 아시거
* 詩에 대한 배경과 의미
묘향산 원적암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고 자신의 영정에 쓴 시, 유정과 처영에게 남기는 글을 쓰고 앉은 채 입적, 1604(선조37년) 1월 23일 세수 85, 화개동 의신사에서 스님 된지 67년 만임.
* 渠 : 도랑, 어찌 거
여기서는 반어로서의 ‘어찌’ 또는 ‘웃는 모양’이란 뜻도 있으므로 자신의 80평생 모습을 되돌아 보고 심정을 토로한듯.
〈참고문헌〉
1) 손병욱, 서산 조선을 뒤엎으려하다, 정보와 사람, 2006.
2) 화개면지, 화개면지편찬위원회, 2002.
3) 최화수, 지리산365일, 다나, 1991.
4) 김경렬, 다큐멘타리 지리산, 일중사, 1988.
5) 국민대사학과, 지리산문화권,
단군기원 4341年 2月 17日. 하늘의 뜻에 따라 살고 싶은 光州民學會 民庶들이 精誠을 다하여 400餘年前 7年間의 피비린내 나는 朝日戰爭때 빛나는 戰果를 올린 李舜臣의 바다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이곳, 統營의 鑿梁廟庭에서 天地神明께 삼가 誥하나이다.
우리 愚民들은 삶이 넉넉하지 못해 그런지는 몰라도 恒常 또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그 곳을 理想鄕이라고도 하고 또 달리 별스런 말들로 表現합니다만, 그 깊은 뜻은 사람답게 살고 싶고, 사람으로서 대접받고 싶은 素朴한 꿈! 그 자체 外에 다른 욕심은 없습니다. 올해는 人間事 累代에 걸쳐 찾아보려 애쓰던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목마른 사람들이 샘물을 파는 心情으로 巡禮의 길을 떠나려 합니다.
倭놈들이 도망가다 물목이 막혀 더 이상 못가고 떼죽움을 당했다는 이곳 판데목에서부터 出發하여 花開洞天! 그 깊은 골짜기에 서린 西山大師의 꿈은 어떤 것이었던지 同參해보고 싶습니다. 雙磎寺 이름에 감춰져 있는 뜻이 무엇이며 七佛庵과 박달내를 잇는 삼각형 꼭지점에 새겨진 崔興命은 또 누구인지 만나보고 싶습니다. 진짜 三神이 무엇인지도 깨닫고 싶습니다.
燕岩과 그 同志들이 그토록 바라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요? 또 左安東의 名聲은 어떻게 얻은 것일까요? 降倭의 흔적들도 찾아야겠지만 明國 兵部尙書의 後孫들이 地利山(智異山)에 숨어사는 까닭도 궁금합니다.
크게 吉하다는 甫吉島에서 孤山이 노래한 自然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李祘, 正祖는 어찌하여 武人이 되었으며 華城에 새로운 宮城을 築造하면서까지 지키려던 것이 眞正으로 王權强化만이었을까요? 王朝時代에 王權과 百姓은 어떤 관계였을까요?
우리들은 울두목 戰鬪에서 李舜臣이 倭船 300隻을 무찔렀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戰勢가 貧弱하다는 것을 敵에게 알려 敵을 誘引하려 일부러 벌였던 碧波津 戰鬪는 잘 모릅니다. 우리 歷史에서 三伐草軍은 果然 무엇일까요? 珍島를 왜 藝鄕이라고 하는 지도 알고 싶고 농사꾼의 땀내나는 노래가락도 함께 불러보고 싶습니다.
新羅千年의 榮華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보여주는 慶州를 걸어보고, 이겼으면서도 잊혀진 蔚山城 戰鬪의 現場도 보고자 합니다. 慶州의 뎅바우(대왕암)와 蔚山의 뎅바우를 보면서 護國의 意志도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
忘憂堂은 어찌하여 붉은 옷을 입고 싸웠으며 南冥의 弟子들이 왜 義兵에 들었으며 그들이 世子 光海와 더불어 이루려했던 새로운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리 歷史에서 江華島처럼 시달림을 많이 받은 곳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丙寅, 辛未洋擾를 거쳐 우리의 國權을 사실상 잃어버린 1876年 江華島條約이 있기까지 수 많은 아픔을 겪은 땅에서 다시는 이런 悲劇이 없기를 다짐하려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시 李舜臣의 바다, 南海로 갈 것입니다. 觀音浦 앞 바다에서 李舜臣의 넋을 건져내고 싶습니다. 錦山 보리암 쌍홍문 아래 檀君 遺跡을 찾음으로 우리의 踏査長征을 끝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理想鄕은 그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지금보다 많이 成熟해져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간단한 答을 얻으려 巡禮의 길을 떠납니다.
天地神靈이시여 歆饗하시고 우리 民學패들의 건강과 國運의 上昇을 도와주소서.
檀紀 4341年 2月 17日
光州民學會員一同 謹祝
2008년도 광주민학회 답사 계획표
답사주제 : 한국인의 이상향, 그 신비의 세계를 거닐다.
날 짜 |
내 용 |
참 고 |
2.17(일) |
이순신의 바다, 통영 - 한산도 및 이순신관련 유적, 삼덕리마을 제당 |
시답제 |
3.16(일) |
화개동천의 비밀, 서산과 단군은 어떤 관계 - 쌍계사. 칠불암, 박달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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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일) |
연암이 꿈꾸던 조선의 근대화 - 함양, 거창, 연암유적. 정여창 고택, 상림, 추성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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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토) ~ 18(일) |
고산이 그린 이상향, 보길도 - |
민박예정 (1박 2일) |
6.15(일) |
정조의 계획도시, 화성 - 지지대고개, 융릉, 용주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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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일) |
당골의 탯자리, 진도 - 벽파진, 용장성, 소포리, 우수영 전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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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금) ~ 17(일) |
신라 천 년의 영화, 경주 - 경주, 울산대왕암, 반구대암각화. 울산성 |
(2박 3일) |
9.21(일) |
다시 살아나는 가야의 옛 땅 - 함안, 의령, 김해. 망우당관련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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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금) |
개천제 - 무등산 천제단 |
행사 |
10.10(금) |
경주 새벌향연 참석 |
행사 |
10.18(토) ~ 19(일) |
찬란한 여명을 맞이한 섬, 강화, 상처또한 컸으니 - 마리산, 정족산성, 돈대, 고려궁터, 연무당터, 외포리 항파강 |
(1박 2일) |
11.6(일) |
서불이 찾아낸 보물섬, 남해 - 낭하리석각, 관음포전투, 무민사, 죽방렴, 정지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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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금) |
총회및 동지행사 |
행사 |
2008년 답사 계획
주 제 : 한국인의 이상향, 그 신비의 세계를 거닐다
2.17(일) -이순신의 바다, 통영 - 한산도 및 이순신관련유적, 삼덕리 마을 제당 * 시답제
통제사영이 설치되었던 통영, 그래서 12공방이 있었고 그 맥은 지금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윤이상, 유치진,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전혁림, 김상옥을 키워 낸 통영의 저력은 무엇일까요? 이순신은 군인이기 전에 예술가였습니다. 그 치밀한 작전계획은 예술적 안목이 없고서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통영으로 가겠습니다.
* 지금 통영에 가면 - 도다리쑥국, 굴로 만든 모든 음식, 서호시장의 시락국, 중앙시장, 서호시장 어디서나 졸복국을 먹을 수 있습니다.
3.16(일) - 화개동천의 비밀, 서산과 단군은 어떤 관계- 쌍계사, 칠불암, 박달내
쌍계사의 이름에 감춰진 비밀을 아십니까? 서산대사는 18년 동안 화개동천에 머물면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요? 도대체 ‘최흥명’은 누구일까요? 쌍계사와 칠불암, 그리고 박달내를 잇는 이등변 삼각형의 꼭지점은 무엇을 품고 있을까요. 화개동천에는 '三神'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 많습니다. 구석구석에 서려 있는 정기를 받아 보시지요!
4.20(일) - 연암이 꿈꾸던 조선의 근대화 - 함양, 거창, 연암유적, 정여창고택, 상림, 추성리
우리는 ‘연암’을 선각자라 부릅니다. 그러나 선각자가 그냥 되는게 아닙니다. 연암의 동지들이 바라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요? 어찌하여 '좌안동, 우함양'이라 하는가요?
임진왜란때 명나라 병부상서 석성의 후손들이 어떤 까닭으로 지리산 속 추성리까지 쫓겨 와 숨어 살게 되었는가요? 그 까닭을 안다면 해주석씨 일문들을 위로해야 할 일입니다.
5.17(토) ~ 5.18(일) 1박2일 - 고산이 그린 이상향, 보길도 - 민박예정
6.15(일) - 정조의 계획도시, 화성 - 지지대고개. 융릉, 용주사
정조는 왜 무인이 되었으며, 화성에 새로운 궁성을 조성했을까요. 조선의 르네상스를 펼치던 그가 독살된 까닭은 무엇인지요. 조선왕조를 통틀어 왕권과 신권의 다툼은 무엇인가요. 정조의 꿈을 펼치려던 화성을 가 봅니다.
7. 20(일) - 당골의 탯자리, 진도 - 벽파진, 용장성, 소포리, 우수영전적지.
명량해전은 알아도 벽파진해전은 잘 모르지요? 배 열 두 척 밖에 없는 것을 왜군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적을 유인하여 벌인 전투라면 믿어지나요? 우리 역사에서 삼별초는 무엇인가요? 삼별초는 나라의 군대였나요? 우리나라 노래방의 원조가 어디인지 아시나요? 소포리가 거깁니다. 어째서 진도는 굿판이 많은가요?
8. 15(금) ~ 8.17(일) 2박 3일 - 신라 천 년의 영화, 경주 - 경주, 울산대왕암, 반구대암각화, 울산성
2007년에 못했던 경주 답사입니다. 경주를 보고 울산의 대왕암을 찾아 갑니다.
봉길리 보다 훨씬 크고, 큰 만큼 의심도 강합니다. 울산성 전투를 아십니까? 가토 기요마사란 놈 얼마나 혼쭐이 났으면 자기 동네 구마모토로 돌아 가서 城을 쌓을 때 우물을 120개나 팠으며 다다미를 고구마 줄기로 만들었겠습니까? 사명대사는 무슨 까닭으로 적진인 울산성에 들어가서 가등청정과 담판했으며 이 과정에서 발견한 명나라의 속셈과 배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조선이 원하는 보물은 가등청정 너의 목이라고 당당히 외쳤던 그 기개를 다시금 느껴보시지요.
9.21(일) - 다시 살아나는 가야의 옛 땅 - 함안, 의령, 김해. 망우당관련유적
곽재우는 어찌하여 적의 눈에 잘 띄는 붉은 옷(홍의)을 입고 싸웠을까요? 남명의 제자들은 왜 의병이 되었을까요? 곽재우와 김덕령은 어떤 관계인가요? 김덕령, 곽재우, 정여립, 허균, 광해군, 조식 등이 바라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10.18(토) ~ 10.19(일) 1박 2일 - 찬란한 여명을 맞이한 섬, 강화, 상처 또한 컸으니 - 마리산, 정족산성, 돈대, 고려궁터, 연무당터, 외포리 항파강
우리역사에서 강화처럼 많은 시달림을 받은 곳도 없을 것입니다. 육군사관생도들은 해마다 호국순례지로 찾지요. 마리산의 참성단은 많은 시비가 있지만 그래도 민족의 성지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병인, 신미양요 때의 조정의 대응을 보면 언짢아 지지만 민중은 잘 싸웠습니다. 연무당에서 강화도 조약이 맺어집니다. 사실 이때부터 우리의 외교권과 국권은 외세의 농단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주도의 항몽유적지가 항파두리성이지요? 강화도 외포리에 항파강이 있답니다.
11.16(일) -서불이 찾아 낸 보물섬, 남해 - 낭하리석각, 관음포전투, 무민사, 죽방렴, 정지석탑.
보리암 쌍홍문 부근에 단군유적이 있는 걸 아십니까? 해석이 안되는 바위글씨 누가, 왜 새겼을까요? 정지는 누구이며 이순신은 정말로 노량전투에서 전사했나요? 관음포와 가칭이는 무엇이고 유성룡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왜 남해안 지역의 사당엔 당주가 최영인가요? 무민사에서 최영장군을 만나보시겠습니까?
민학회 가입을 원하시는 분께
민학회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가입을 바라는 분들이 계셔서 간략하게 안내 드립니다.
1. 어떤 모임인지?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눈과 마음으로 보고 느끼는 우리네 삶의 모습들을 살피고 가꾸어 우리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1986년에 창립하였습니다. 말하자면 ‘民’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 -역사, 지리, 풍속, 통과의례, 무속, 민간의료, 시가, 판소리, 전설, 방언, 건축, 민화, 서예, 그림, 조각, 조경, 복식, 누정, 서원, 향교, 인물, 사림 등 우리의 삶과 연관되는 모든 것들을 찾아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켜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필연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졌고 우리네 삶의 모습도 빠르게 서구화 되었습니다. 이른바 ‘우리 것’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것을 찾아 정체성을 갖추고 자긍심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답사와 교양강좌, 자료수집, 조사연구도 함께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 공연, 강좌, 자료발간 등으로 발표해 왔습니다.
2. 무엇을 하였는가?
* 전시 및 학술대회
- 운주사의 모든 것<모둠잔치>, 1986.12
- 샤머니즘 국제 학술대회<각국 무당들의 굿 시연>, 1990.10
- 전국 ‘욕’대회[욕을 살립시다]<민학회 창립 10주년 기념>, 1996.10
- 산신과 호랑이 전<삼신학회 조자용 회장 초청>, 1998.3
* 출판
- 월출산<바위문화 조사>, 1988
- 답사기, ‘민학의 즐거움’ 1992
- 답사기, ‘즐거운 민학’ 1994
- 답사기, ‘걸어 다니는 민학’ 1997
* 공연 및 강의
- 공연 ; 안채봉, 한애순 초청, ‘전통 춤과 판소리 한마당’ 1987.1외 5회
- 강의 ; 신영훈 ‘한국 문화의 이해’ 1987. 7외 36회
* 역점사업
- 개천제 봉행<무등산 천제단>
연진회(의재 허백련)에서 봉행하던 것을 민학회가 이어서 봉행
이 행사에 ‘경주’에서 매년 참석하고 있음
- 청소년 및 어린이 민학당 운영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우리 것 찾기 교육을 16년째 해 옴
- 광주 자세히 보기(시티투어)
2004년 이후 광주시의 ‘빛고을 사랑운동’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해 옴
- 답사
1986년 이후 2007년 까지 170여회의 답사를 진행함
1996년부터는 ‘주제’를 정하여 답사의 질을 심화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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