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공부 첨 부터 다시해야 할 듯하다.
정말 머리아프다.
이전엔 고구려와 고려의 영토가 사정없이 서북으로 치달았는데...
너무 동북을 간과했던거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나는 철석같이...
고려는 천산동부로 추정되는 발해의 요동을 거란에 빼앗끼고...
현 감숙성을 경계로 황하강 섬서성과 낙양,개봉 정도를 중심으로 한수(漢水.양자강 북서부지류) 한중이나
호북성 무안을 한양(남경)으로한 왕조로 비정하고 있었는데...
목엽산(木葉山)...목엽산을 찾아보니...
이런...그 동부 혼동강 동쪽을 고려태조 왕건이 개국하여...그 서쪽이 말기의 발해영토라 한다...?
일반적인 역사 줄거리대로...
발해는 고려의 북쪽...금나라는 고려의 동북에서 발원해 고려의 서북까지 경영...
대충 이리 크게 잡았었는데...
발해와 후대 그 발해의 땅을 차지한 금나라가 있어야할 자리의 극한의 동북쪽에 고려태조 왕건이 진출했단다...???
머리아프다....
평소 고구려는 신장성을 중심으로 서로는 카자흐...동으론 감숙과 섬서 내외몽골을 지배하고 있었다 봤는데...
왜 건축물과 크게 상관없는 유목민족 외몽골 거란과 금나라의 자리에 고려(고리)를 의미하는 장성유적이 나오나 의문였는데...
목엽산(木葉山) 기록을 모면...밑의 어느역사 블로거님 지도를 인용하면...
외몽골 울란바타르 동부 혼동강(현 허르딩강,헤란강)동부의 장성유적은...결국 고려 왕건과도 연관이 있단 얘기다.
머리아프다....
밑의 역사블로거님은...
거기가 요동이요 요수란 주장을 하려 올리신 지도나...
요동은 한참 서쪽 신장성은 맞으니 착각이실듯 하고...
밑의 지도로 보면...내외몽골에 대한 표현이 아주 미숙함을 보면...남방족이 만든 지도라 보이고...
그러기에 고비사막(한해)등의 표현도 없고...
다 건너뛰고 북해(바이칼)나오고...그 서부 흡수골(아님, 더 서쪽 호브드?)이 나오는데...
어떻든지 큰 줄기는 바뀌지않으니...난감하다.
물론, 혼동강(混洞江)은...
위 지도상 현재의 외몽골 울란바타르 동부 헨티산(지도상 몽고산)에서 발원해 동쪽에선 돌론노르(7개호수)와 만났다가
동북 현 흑룡강(아무르강)과 만나는 강인데...
여러 기록들을 보건데...혼동강은 북으로 흑룡강에 들어간다 했으니...
저 지도는 헤르딩강(헤란강) 동부 울란바타르에서 서북으로 바이칼로 들어가는 톨강이 원조인 것인데...
울란바타르 동부 헨티산에서 이 상류들이 가까이 인접했기에...두 강을 혼동해 그린 것이라 해석해 본다...
과거엔 실개천으로 두 당이 연결됐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추정해본다.
어쨋거나...밑의 거란지리지도상의 혼동강은 지명이 오기(왜곡?)라 해도...
명확한 북해(바이칼)의 표시로 보건데...
내외몽골땅 다 생략돼고...주요 지명인 몽고산과 황룡부(黃龍府)...그 서쪽 목엽산만 표시한건데...
정말 머리아프다...
거란이...모든 총력을 동원해...가족까지 다 동원하고...
목엽산에 올라 청색말 백색말을 잡아 천제를지내고...황룡부 쪽 발해 잔당에게 최후의 전면전을 가해 발해가 망한다는데...
발해의 동부 혼동강 동부는 이미 고려태조 왕건이 점령했기에...
발해의 최후 영토는...혼동강(현 헤를렌강?) 서쪽이란 역사가 분명 존재하니...머리 아프다...
그럼, 밑의 역사 블로거 님이 추정하시는...
조선장성?... 금장성? ...이라 표기한 부분은...정확히 고려 왕건이 한때 차지했던 고려장성도 돼는 이치고...
그래,대륙 극동북의 외몽골 동부에 고리(고려)를 의미하는 성터들이 발견되는 것이며...
이건 고구려,금나라가 아닌... 근세 왕건고려의 영토와 관련많단 얘기다...
머리아프다...
그럼 발해는 더 서쪽의 내외몽골 서부와 신장성 동부란 얘기고...
저 황룡부 동부는 거란에 도륙말땐...개국한 고려왕건의 영토로 빼앗꼈단 것이며...
그럼, 금나라가 붕 떠 버리는데...?
금나라 아골타는 분명 흑룡강인 흑수말갈족이라는데...그럼 바이칼 일대에서 시작했단 말이 돼는건가...?
머리아프다...
거란국 지도상의 목엽산 옆 조주(祖州)...내 보기엔 아르한가이산이다...
거기가 동흉노들과 돌궐...특히,동북오랑케들이 천제를 지재던 거의 공통됀 성지같다....
불칸산(불안삼?)...투구(올란투구)산이...역시 중요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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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요나라 상경의 위치| 발해영토
history author | 조회 74 |추천 0 | 2012.02.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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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국지에 실린 거란지리도
遷於黃龍府。即慕容氏和龍城也
거란국지
황룡부로 옮겼는데 모용씨의 화룡성이다.
渡遼水,至黃龍府,即契丹主所命安置之地也。
六月,契丹國母召帝一行往懷密州,州在黃龍府西北千餘裏
구오대사
요수를 건너 황룡부에 다다랐다.
비슷한 시기에 쓰인 기록과 지도를 참고하면 우선 요수가 황룡부바로옆즉 서쪽에 있음을 알수 있다.
또다른 장성지도 분명히 산서성 중부지방에도 장성유적이 있다. 즉 우리가 아는 만리장성유적은 잘못 알고 있었다. 고대에는 만리장성은 바로 산서성 중부를 횡단하는 장성이었다.
즉 지도처럼 고대 진나라장성은 쌓여진 것이다. 진나라는 옛날 제장성과 연장성을 연결하고 싶어했지만 당시에 저 곳은 바다였기 때문에 쌓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실제로 고구려장성이라 표기한 곳에서 발견된 장성은 제장성과 달리 치성유적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고구려가 쌓앗다는 증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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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당 장종(莊宗) 동광 2년(924) 7월이다. 이 당시에 동북방의 여러 오랑캐들이 모두 거란에 투속하고 오로지 발해만이 거란에 복속되지 않았었다. 거란의 추장이 중국을 치려고 꾀하였는데, 발해가 중국과 내통하면서 거란의 뒤를 칠까 염려하였다. 이에 먼저 군사를 일으켜 발해의 요동 지방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장수 위뢰(委餒)와 노문진(盧文進)을 보내어 영주(營州)ㆍ평주(平州) 등에 웅거하여 연(燕) 지방을 어지럽히도록 하였다. 8월에 거란이 발해를 공격하였으나,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돌아갔다.
《자치통감》 ○ 《책부원귀》에는, “동광 2년 7월에 유주(幽州)에서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동쪽으로 발해를 공격한 사실을 정탐하였다고 아뢰었다.” 하였다.○ 3년 5월 을묘에, 발해국의 입조사(入朝使)인 정당성수화부소경 사자금어대(政堂省守和部少卿賜紫金魚袋) 배구(裴璆)에게 찬선대부(贊善大夫)를 더해 주었다.
《책부원귀》○ 요 천찬(天贊) 4년 12월 을해에 조서를 내리기를,
“이른바
두 가지 일 가운데서 한 가지 일은 이미 완수하였으나, 발해와의 대대로 내려온 원수는 갚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편안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군사를 일으켜 친히 발해의 대인선(大諲譔)을 정벌하였는데, 황후(皇后)와 황태자(皇太子), 대원수(大元帥) 요골(堯骨)이 모두 따라갔다. 윤달 임진에 목엽산(
木葉山)에 제사 지내고, 임인에 오산(烏山)에서 청우(靑牛)와 백마(白馬)를 희생으로 써서 천지의 신에게 제사 지내었으며, 정사에 상령(商嶺)에 주둔하였다가 그날 밤에 부여부(扶餘府)를 포위하였다.
《요사》○ 천현(天顯) 원년(926) 정월 기미에 백기(白氣)가 해를 꿰었다. 경신에 발해의 부여성(扶餘城)을
《자치통감》 주에, “바로 당나라와 고구려 때의 부여성이다. 이 당시에 고려 왕 왕건(王建)이 나라를 세워 혼동강(混同江)까지 차지해서 지키고, 혼동강 서쪽은 차지하지 못하였으므로, 부여성이 발해에 속한 것이다. 혼동강은 바로 압록수(鴨綠水)이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혼동강과 압록수는 서로 다른 강이다. 함락하고는 성을 지키고 있던 장수를 죽였다.
《책부원귀》에, “후당 동광 4년 정월에 북면초토사(北面招討使) 이소진(李紹眞)이 ‘북쪽에서 해(奚)의 수령(首領)이 와서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발해를 쳤다고 하였습니다.’고 아뢰었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동광 4년은 바로 거란 천현 원년이다. 병인에 척은(愓隱)
살펴보건대, 《국어해(國語解)》를 보면, 척은은 족속(族屬)을 맡은 관원으로, 바로 종정(宗政)의 직책이다. 안단(安端)과 전 북부재상(北府宰相) 소아고지(蕭阿古只) 등에게 명하여 1만 기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는데, 대인선의 노상(老相)이 거느린 군사를 만나서 격파하였다. 황태자, 대원수 요골, 남부재상 소(蘇), 북원(北院)의
이리근(夷离菫) 살펴보건대, 이리근은 군마(軍馬)를 관할하는 대관(大官)이다. 사녈적(斜涅赤), 남원(南院)의 이리근 질리(迭里)가 이날 밤에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하였다. 기사에 대인선이 항복을 청하였다. 경오에 홀한성의 남쪽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신미에 대인선이 소복(素服)을 입고, 새끼줄로 몸을 묶고 양을 끌면서 요속 3백여 명을 거느리고 나와 항복하니, 태조가 후하게 대우하면서 풀어 주었다. 갑술에 조서를 내려 발해의 군현에 유시하였다. 병자에 근시(近侍) 강말항(康末恒) 등 13명을 성안으로 보내어 무기를 수색하게 하였는데, 나졸(邏卒)들에게 살해당하였다. 정축에 대인선이 다시 반란하니, 성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어가(御駕)가 성안으로 들어가자, 대인선이 말 앞에서 죄주기를 청하였다. 조서를 내려 대인선과 그 족속들을 군사들로 에워싸고서 나와 천지의 신에게 제사 지낸 다음 다시 군중(軍中)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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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몽골 아르한가이...불간(불칸=불한)아이막...
거기에 있는 울란 투구산...동북오랑케들이 한결같이 쿠릴타이(대회합)을 열고...천제를 지내던...
목엽산(木葉山)...조주(祖州)의...중심 성소였던듯 싶다.
첫댓글 위 지도에 나와있는 장성의 축조중에서 "진"장성은 원전과는 차이가 많군요. 위 지도 "빨간 색 표시"를 보면, "진장성"이라고 표기를 해놓고 있는데, 진장성은 현 섬서성의 황하 서쪽에 존재하며, 양산(황하 북안)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다가 "부소와 몽념"의 죽음으로 중단되었기 때문에, 짅의 장성은 현 섬서성 북방 내몽골을 흐르는 황하 동쪽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 저도 진장성은 신장성 북단에서 카자흐를 잇는 장성이라 봅니다.
위 지도를 참고로 올린것은..올리신 분은 진장성으로 보나... 고려나 조선장성의 흔적으로 보는 겁니다.
문젠 저 몽골 동부의 장성은...고려 왕건이 점령했단 혼동강 동부니 골치아프단 겁니다.
위 지도가 조작이던 오류던...큰 구도에선 혼동강은 외몽골에 있는 격이니 왕건의 고려가 목엽산 동부 몽골 동부까지 점령했었단 얘기란게 머리아프단 겁니다.
맨 위쪽의 거란지도 역시 기존 통설과 똑같은 지도네요.
"기존 역사통설" 그대로 믹스해 놓은 것이군요.
시중에 돌아다니는 "고지도"라는 것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궁금케 하는 대목입니다.
지금 하북성지방이나 산서성등지에는 여러개 의 성들이 겹쳐 있다고 하며, 이것은 고대에 조선의 여러 나라들이 쌓은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특히 고지도라는 것은 현재의 역사통설에 딱 맞춰 놓은 것들이며, 원전과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고지도에 맞춰 역사해설을 해 보면, 조선은 죽으나 사나 반도에 있게 되어 있습니다. 궐한님이 머리가 혼돈스럽다는 이야기는 백 번 공감갑니다.
저 왜곡됐거나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지도상으로도...
고려의 영토가...북쪽으로 외몽골 동부까지라니...의미하는바 큽니다.
위에 인용한 글엔...발해 말년엔 고려가 오히려 발해의 동쪽영토까지 먹었단 얘기니여...
그런데...왜곡치곤 너무 엉성한 지도같지 않습니까...?
고비사막이 다 빠지고...흑룡강도 혼동강이라 하고...달단도 동북삼성과 몽골사이가 아닌 몽골 서북으로 하고...
기존 역사학자들 주장관 다른점도 많습니다...
제 생각엔 고의적 왜곡지도라기 보단 북방을 거의 모르는 남방사람들이 만든 지도라 봅니다.
지금 인터넷이나 조선사를 공부, 연구하는 사이트에서는 위의 종류와 같은 고지도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를 인용하여 지명이나 하천등을 확정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독시방여기요 북직례편과 판박이입니다. 이것을 원전과 조금만 비교해 봐도 왜 틀린지를 판가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검토를 전혀 시도하지 않고, 조선사의 진실을 찾는다고 거창한 이름으로 도배하곤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해국도지 아라사편을 보면, 아라사 남쪽지방에 달단이 있습니다. 이곳은 구라파와 아시아를 경계하는 곳이라는 설명이 있구요. 대륙사는 동방으로 오면서, 특히 현 북경지방을 뜻하는 직례방향으로 오면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림니다.
예를 들면 "글란"을 설명하는 <오대사>등과 위의 <고지도>를 비교하면 금세 틀린 점을 알 수 있어요. 대륙사의 왜곡은 <동이>라는 집단을 소수집단으로 만들고, 이것은 산서성 동쪽지방으로 밀어넣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글란 역시 동이라는 설명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거든요. (독사방여기요). 이곳으로부터의 모든 지명과 하천, 산 이름등은 대부분이 왜곡과 조작을 거쳐 확정된 것들입니다. 특히 현 동북삼성지명은 1900대로부터 1960년대까지에 걸쳐 확정된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대부분 조선의 변방지대로서, 중요지역은 아니었으나, 필요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 곳입니다.
오늘 9시 뉴스에 경주의 금관총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하면서 메인뉴스를 탓는데, 1921년에 발굴된 그곳의 유물을 가지고 이제서 갑자기 메인뉴스를 타는 것을 보니, 반도사학에서 <여기서 주춤거리다가는 위험하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짓이 진실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발버등을 친다고 해도, 거짓으로 진실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걸 초록불 이문영이나 야스페르츠 같은 망종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