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 <수프와 이데올로기>
1. 13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을 받은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한국 현대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살아야 했던 한 여인의 삶을 딸의 시각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1930년생인 ‘강정희’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생활하던 중, 1945년 일본 대폭격을 피해 부모들의 고향인 ‘제주도’로 이주한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끔찍한 공포의 시간이 도래한다. 1948년 남한 단독선거를 반대한 세력에 의해 야기된 일명 ‘4.3사태’는 경찰과 반공단체가 진압이라는 명목으로 봉기를 주도한 사람들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잔혹하게 살해하면서 제주도 전체를 초토화시킨 사건이다.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탄압과 살육을 통해 지금 정리된 사망자만도 1만 5천명에 가깝다.
2. 강정희 또한 자신의 약혼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가족들과 주민들의 죽음을 목겼했으며, 결국 살아남기 위해 2명의 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한다. 다시 일본에서 생활하게 된 강정희는 제주도 출신 남편과 만나 결혼하고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둔다. 제주도에서 겪었던 남한 정부의 강압적인 살육은 그녀의 삶을 결정짓는다. 강정희와 그의 남편은 북한을 추종하는 조총련에 가입하고 아들들과 동생들은 북한으로 북송된다. 부부는 매월 일정 금액을 찬조금이라는 명목으로 북에 보내면서 북한 지도자 김일성으로부터도 표창을 받는 열정 지지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북으로 간 아들들과 달리 막내로 태어난 딸은 현재의 상황과 부모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 한 채 살아간다. 결국 딸은 어머니의 삶을 다큐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3. 아버지는 전쟁과 역사의 현장 속에서 겪었던 원한 때문에 딸이 미국인이나 일본인과의 결혼하는 것을 반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죽고 난 후, 딸은 50이 넘은 후 12살 연하의 일본인을 배우자로 데리고 온다. 일본인 사위와 어머니와의 만남이 이 다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같이 닭백숙을 만들면서 보내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몇 번 어머니가 만들어주었지만, 나중에는 사위가 직접 재료를 구입해서 어머니에게 대접한다. 결코 받아들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일본인과 ‘먹을 것’을 통해 화해하면서 ‘식구’된 것이다.
4. 2018년 문재인 정부에 의해 조선 국적인 사람들도 ‘4.3사건’ 기념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용이 되자 딸과 사위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로 온다. 70년 전 공포 속에 떠나야 했던 ‘제주도’로 돌아온 것이다. 기념식에 참석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인상스러운 장면은 알지 못하는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었다. 평소에 북한 김일성 찬양가를 즐겨 불렀던 그녀에게 ‘노래’는 사상의 맹세가 아니었다. 현재를 살아가며 갖는 일종의 교감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것도 그녀에게는 결코 모순된 행동이 아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황이자 인간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아닌 것이다.
5. 다큐 속에서 강정희는 제주도 행사에 참석한 이후 급격하게 치매증상이 악화된다. 점점 과거를 잃어가는 모습 속에서 그녀를 괴롭혔던 ‘이념’의 기억은 이제 어떤 의미도 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재 그녀를 돌보고 같이 밥먹고 이야기하는 일본인 사위와 딸 그리고 친지들이었다. 집안이 어려우면서도 계속 북으로 송금하던 어머니에게 불만이었던 딸도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이해 속에는 참담한 시간 속에서 일본인도, 조선인도, 한국인도 제대로 될 수 없었던 재일 한국인의 경계적인 운명에 대한 진정한 슬픔이 담겨있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그녀의 집에는 이제 김일성의 사진이 사라지고, 가족들의 사진만이 남는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변화에도 무뎌진 그녀의 인식 속에 최후로 남은 것은 진정으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두 개의 대조된 단어를 통해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하면서도 솔직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6. 최근 <4.3사건>에 대한 국가의 보상정책이 정해졌다고 한다. 과거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부와는 다르게 <4.3사건>이나 <여순사건>에 대한 현 정부 특히 한동훈 법무장관의 긍정적인 자세는 조금은 낯선 장면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역사인식인지, 정책 차별을 통한 정치 전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법을 무기로 퇴행적인 대립을 지속하는 현 정부 실세들의 태도가 과거 사건에서는 별도의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4.3사건> 관련 보도가 경찰에 의한 학살만 부각되는 현 상황이 맘에 안들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얼마 전 상영관을 못 찾다, 결국 <할리우드> 극장에서 좌익세력에 의해 학살당한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영했다. 우리의 현대사는 이렇게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모순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그것이 끊임없는 ‘역사전쟁’을 벌이는 요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을 설명할 때 모두를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세력에서든 발견하게 되는 과잉적이고 폭력적인 요소 또는 인간들의 위험을 감지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첫댓글 - 상황에 따른 인간의 삶은 다양하게 펼쳐진다. 생존을 위해서, 사상을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모든 것이 삶의 실존이다. 옳은 것도 틀린 것도 없다. 나타난 삶에 적응하며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