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물을 닦는 맨손의 기적
-태안, 기름유출피해 방제작업 참여기
달빛 김 일 호(바르게살기운동연기군협의회 부회장)
지난 수개월 동안 언론보도 혹은, 복구 작업에 참여 하고 돌아온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입을 통하여 검은 눈물로 얼룩진 충남 태안의 참상을 들을 때 마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한 걸음으로 달려가지 못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피해주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었다. 마침, 충청남도 소재 몇 몇 굵직한 민간단체들이 앞장서 점점 시들어져 가는 자원봉사의 불꽃을 재 점화 한다는 결의와 일정에 전적으로 동감하여 2008년 3월 10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바르게살기운동연기군협의회 소속 회원 40여명과 함께 연기군청에서 제공한 관용버스 편으로 2시간 반 가량 가는 현장으로 가는 동안 무수한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웠다. 사진으로 보고 말로만 듣던 태안의 그 바닷가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바다가 생활터전이었던 주민들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고는 있을까? 이제는 그 곳에 가보아야 할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되레 현지 주민들의 일거리(?)를 빼앗는 꼴로 피해만 더 해준다는 어느 몰상식했던 말들은 사실일까? 그렇게 밀려오는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볼 여유나, 차창을 스치는 봄 녘의 풍경을 눈요기조차 놓칠 때 즈음, 버스는 벌써 해송들이 줄지어 손을 흔들어 반기는 비포장 길을 돌아 백리포라는 지명의 손바닥처럼 오목한 그리 넓지 않은 해변(해수욕장) 에 도착했다.
바다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하얀 포말의 정겹던 파도 소리는 굴착용 포크레인의 굉음과 방제용 지급품을 받으려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봉사요령을 안내하는 현지인의 핸드마이크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두 팔을 펼쳐들고 가슴깊이 심호흡 하며 목청 높여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바다였다. 쉼 없이 오고 간 파도에 의해 주름진 백사장을 한 걸음에 내달려 그 바닷물에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고 싶었던 바다였다. 바람을 막아주던 해송들이며, 그 오랜 풍상을 이겨낸 바위들이며, 수많은 기억들을 수 없이 새기고 또 지우면서 가루가 되어버린 백사장이며, 끝없이 출렁이는 푸른 바다는 겉모습 그대로라면 그 어떤 상처와 아픔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태안의 검은 눈물은 아직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토록 아름답고 청정했던 우리의 터전이 우리들의 무지와 무책임에 의해 우리가 살아생전 치유될 수 없는 엄청난 상처를 안겨주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지고 숨이 막힐 감정의 소용돌이를 주체할 수 없어 그저 한동안 저 멀리 아득한 수평선만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오전 10시 반쯤이 좀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충남도 소재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회원 1천 여 명은 방제복 등 필요물품을 지급을 받은 후에 현지주민 및 공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현장으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새하얀 방제복을 입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흡사, 깨끗한 환경과 풍족한 먹이를 찾아온 철새들의 군무와 행렬처럼 보였다. 미로처럼 얽힌 해안선을 돌고 돌아가는 길은 험준한 등산로나 다를 바 없었다. 기름재해 이전에는 맨살로 부딪쳐도 아무런 문제가 있을 수 없었던 바위들이었지만, 이제는 온몸을 감싼 방제복에 마스크를 쓰고, 고무장화에 고무장갑의 중무장으로 걸터앉아 기름 찌꺼기를 닦아야만 했다. 무게를 이동할 수 없는 큰 바위 틈 속에서부터 작은 돌멩이 까지 맨손으로 닦고 또 닦아내도 검은 자욱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 남짓 1차 방제작업을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닦아낸 기름걸레를 챙겨 둘러메고 밖으로 나왔다. 내내 같은 목적으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이 마련해준 얼큰 김칫국에 밥 한술 말아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요기를 하였다. 점심식사 후 쉴 틈 없이 들어오는 물때를 피하기 위해, 다시 현장에 들어갔다. 이전과 같은 방법을 반복해 가며 무슨 보물찾기라도 하듯 바위틈을 샅샅이 뒤져 검은 눈물을 닦아냈다. 어느새 방제복은 새카만 기름때로 얼룩졌고 몸 안에서는 열기와 땀으로 가득 고여 들었으며,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역한 기름 냄새는 코끝을 자극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폰을 꺼내드니 시간은 오후 2시를 넘기고 있었다. 드넓은 백사장에 바닷물이 채워지고 있음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안내자의 구령에 의하여 자원봉사들은 하나 둘...다시 밖으로 나왔다. 참가자 누구나 같은 마음이었겠지만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상처 입은 천혜의 자연과 현지주민들의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었지만, 방제전문가가 아니면 더 이상 진척할 수 없는 상황이니 그 길로 귀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수 국민들의 관심과 격려, 그리고 참여하는 자원봉사의 손길에 힘입어 태안의 기적은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좀더,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과 가해 측의 현실적인 배상뿐만 아니라, 충남 서해안 농수산물에 대한 범국민 판매촉진운동은 물론 지속적인 방제자원봉사의 손길이 이어지리라는 믿음으로, 태안의 기적에 대한 희망을 안고 돌아올 수 있어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태안의 검은 눈물을 닦아 준 국민여러분께 감사하다” 태안 주민들의 진심 속에 빠른 치유와 회생의 확신으로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