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이집트 여행 21(아부심벨 소신전&아스완 하이댐)
2008.01.03 07:00~09:00
대신전의 오른쪽에 있는 소신전은 하토르 신과 람세스 2세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하여 세운 아담한 신전이라고 한다. 전면에 있는 석상은 람세스 2세의 가족들이라고 하는데 가족될만하네...좁고 높은 장방형 벽감(niches)6개 안에서 높이가 거의10m나 되는 왕과 왕비가 왼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태양빛을 향하여 걸어 나오는 그런 자세로 왕 좌우에 두 왕비가 한 조로 하여 두 조를 세우고 다리 사이에 어머니, 딸, 아들의 미니석상을 두었다. 즉, 람세스 2세 입상 4개, 왕비 입상 2개가 서 있다.그리고 소신전 안으로 들어가면 기둥 6개가 있는 기둥실이 있으며 복도로 향해있는 기둥면의 주두에 하토르 신의 두상을 조각해 놓고 그 밑에 왕과 왕비에 관한 이야기를 상형문자로 새겼다고한다. 또한, 기둥의 다른 면과 방 벽에는 온통 네페르타리 왕비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네페르타리 왕비가 하토르 신으로 보이도록 신성한 암소처럼 뿔을 달고 태양원반과 두 매부리 깃을 달고 있다. 람세스 2세는 그의 왕비와 함께 죽어서도 아몬신과 하토르신이 되어 부활한다는 믿음을 표현했다고한다.
[소신전을 배경으로한 여러 사진들]
아부심벨의 뒷부분의 모습
아부심벨 신전의 발견과 이전
#신전 발견
.... 1813년스위스 역사가 부루크 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가 현지 안내인을 데리고 람세스 2세 왕비 네페르타리에게 봉헌된 사원을 찾으려고 나일강 상류에 도착하였다. 두 바위 언덕 계곡에는 모래만 가득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한동안 헤매다가 모래 경사면을 타고 올라가서 남쪽을 바라보았을 때 절벽에 거상 머리가 모래 속에서 삐죽이 나와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입상인지 좌상인지, 무슨 신전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한다. 1817년 8월 지오바니 벨죠니가 신전을 덮고 있던 모래를 걷어냈다. 그리고 이 방면에 관련된 탐험가, 화가, 고고학자들을 이 신전에 초대하였다. 아폴리토 롯세리니, 살베이토르 체루비니, 프랑스 화가 네스톨 오테, 상형문자 해독자 장 프랑스와 샹폴리옹, 트로이 유적 발굴자이자 독일 고고학 탐험가인 하인리히 슐리만 등 당시 고고학 대가들이 이 신전을 고증하기 위해 방문했다. 그들은 이 신전이야말로 이때껏 발굴한 이집트 유적 가운데 최고의 예술품이라 입을 모아 극찬했다.
#신전 이전
아스완 로 댐을 건설하고서도 나일강의 범람을 완전히 조절하지 못하며 급증하는 인구를 유지할 농산물 생산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59년, 이집트 나세르 정부는 나일강의 범람을 확실히 조절하고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해 로 댐 남쪽 7km에 대규모 다목적 댐인 아스완 하이 댐을 소련의 기술과 차관으로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1972년 소련과 독일의 합작으로 완공된 아스완 하이 댐의 길이가 3,00m, 높이가 110m, 저변 두께가 130m, 저수량 1,800 억m3, 여기에서 얻어지는 발전량은 100억 kwh 규모의 세계 최대의 댐이 되었다. 하여간 이 사람들은 세계 최대를 좋아한다. 이리하여 길이 약 500km에 ,폭 평균 30km에 달하는 거대한 나세르 호수가 형성되었고 나일강 상류의 넓은 지역이 사막에서 옥토(관계농토 68,500km2/농업경제 상승률35%)로 변하였다. 이 하이 댐으로 나일강의 홍수를 조절하고 강 유역에 항시 물을 공급할 수 있어 농산물 증대에 획기적 결과를 가져왔다. 당장 농산물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하이 댐의 공과를 ?고 아직까지도 논란이다. 초대 대통령 낫세르가 이집트 1,000년을 보고 밀어붙인 농업정책의 결과에 대해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이집트 환경단체의 보고서는 미래의 문제점을 예고하고 있다. 나일강 범람으로 농사지을 때 나타나지 않았던 해충이 급증하고 비료를 사용해야 하므로 토질이 산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속되면 농업수확은 점점 감소하고 인간이나 가축에 만연하는 질병퇴치에 들어갈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환경단체들의 의견은 나오지도 않았지만 문화단체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 댐으로 이 지역의 수위(water level)가 182m가 되고 아부심벨 신전 수위 120m 보다 62m초과되어 카라브샤 신전, 아부심벨 신전 등 누비아 지방의 수천 년 문화유적지가 모두 수몰되게 된다. 3,000년 이상 장구한 세월을 견뎌온 24개의 고분과 사원 등 석조 유적지가 물속에 잠기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집트 낫셀 대통령은 소련에 이 사원들의 구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되었고 전 세계 고고학자, 역사학자들이 이 세계적 문화유산을 보존해 주도록 그에게 탄원했으나 그 역시 나라의 천년 대계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 학자들은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누비아 유적보호에 전례 없는 대규모 국제 캠페인을 전개했다. 유적보호 자금이 모이고 별별 보호방법이 제안되었다. 그 중에서 프랑스 안은 암굴신전 주위에 제방을 만들어 강물을 여과시켜 말은 물을 만들고 유리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서 관광객이 물속으로 내려가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문화재 보호에 부적합한 것이어서 이태리 안에 따라 아부심벨 신전 당초 위치에서 64m위로 그리고 180m 안쪽으로 들어간 지점에 당초의 바위 언덕과 같은 인공 바위 언덕을 만들기로 하였다. 인공 바위 언덕은 콘크리트 셀(shell)구조로 그 안은 넓은 무주공간이었다. 여기에 신전 내부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암벽표면과 암굴내부에 만들어진 조각품들을 사방 3m 크기(중량 30톤 이하 되게)로 760개(총중량 11,600톤)를 절단하여 상부에 있는 인공 콘크리트 산에 옮기는 대공사가 1963년 11월 착공하여 1968년 4월 준공했다. 신전입구 옆문을 통해서 복원된 신전 뒤로 들어가 인공 산(山) 콘크리트 구조물의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 벽에 설치된 안내판에 '유네스코가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하기 위해 이 구조물을 건설했다'는 내용의 설명이 있었다.
「이집트 피라미드기행」 중에서
2008.01.03 11:40 아스완 하이댐
오전 9시넘어서 출발한 스타렉스는 위에 적힌 글에 나온 아스완 하이댐으로 우리를 곱게 모셔갔지만 엄청난 바람과 함께 특별히 볼것 없는 단순한 댐위에 내려놓았다. 댐의 필요성 등 많은 이유는 있지만 정확히 15분만에 다시 출발했던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에 남지는 않는 찍기코스의 투어가 되어버린 곳이다.
[아스완 하이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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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뜀도령의 그림별장 원문보기 글쓴이: 뜀도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