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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제 10 법사품(法師品-4)
안녕하십니까! 오늘 5월30일 월요일 염화실 인터넷 방송법문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공부전에 한 말씀 드릴것은 여기 대화창을 이렇게 열어 놓으면은
많은 분들이 오셔어 인사를 하시고 하는데 물론 저에게 보내는 인사가
아주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컴퓨터를 켜놓기는 했는데
일일이 그렇게 인사하신 것에 대해 답 해드리지 못한 것 죄송합니다
왜냐하면은 다른준비를 이렇게 한다구요 뭐 잘돌아 가는가 살펴봐야 되고
또 다른 준비운동도 해야되고 목탁도 쳐야되고 그럽니다 한참 목탁 치고있는데
"스님 안녕하십니까"하고 이렇게 글을 올리는데 합장이라도 해 드려야되는데
그렇게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해하시기 바라구요
그리고 또 법회 끝나고 저하고 대화 하고 싶어서 궁금 한것도 물론 있으시고
그러시겠죠 그런데 그때는 또 제가 법회 한것을 녹음 업-로드를 이렇게 시킵니다
업-로드되는 시간이 한참 걸려요 그러면 그것을 미륵골님이 또 다시 편집을 해서
이제 재방송으로 이렇게 올거든요 미륵골님 꼭 법회가 끝나고 내가 업-로드를
시켜 놓으면 그 다음에 이제 작업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들이 법회가 끝난 뒤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이렇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법회가 끝나서 바로 대화신청을 해도 제대로 대화에 응해주지 못 합니다
그리고 또 내가 컴퓨터가 서툴기 때문에 그 뭐 다른일을 하다가 중간에 중복되게
일을 해도 염화실 사람들은 잘 하든데 저는 그게 어떻게 잘못 될까봐 겁이나서 또
이중으로 못 하기도 하고 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이해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법화경 276쪽 13번 부터 할 차례 입니다
역시 여기에 내용은 경전을 찬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부처님을 찬탄 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 할 줄 알아야되고
또 찬탄 할려면은 그 만큼 알아야되요 공부를 많이 해야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좋다는 걸 알아야되고
또 그 가르침 때문에 뭔가 감동이 있어야 되고
소득이 또 있어야 되고 그 뭔가 공감대가 있어야 되고
아 정말 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세속의 언떤 종교나 철학 보다도
그 어떤 한 차원 다른 그야 말로 불교식 용어를 빌리자면은 "사변을 떠난 언어도단 하고
신행체매" 언어로써 표현할수 없는 경지 또 생각이 끊어진 그 경지 그 경지를 투과 한
뚫어서 지나간 뒤에 비로써 나오는 그런 말씀 그래서 이것은 사변으로 사량분별해서
나오는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제 참 대단한 그런 경지에서 나오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도 이해하기 어렵지만은 그런 높은 가르침을 이해 한다는게
쉬운게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찬탄하게 되어 있어요 아주 정말 위대한 가르침이니까요 그래서 부처님 찬탄하는
이상으로 찬탄하는 것 부처님이란 사실 가르침이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요는 중요한것은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서 경전을 찬탄하다 하는 내용이
이렇게 장왕하게 그리고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그런 표현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6.경전을 설(說)하는 규칙(規則)
13 약왕이여, 많은 사람들이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보살의 도를 수행하면서
여기 이제 이런 표현들이 법화경에 자주 나오죠 재가 하거나 출가하여...
그렇습니다 재가 신도도 있고 출가한 스님들도 있고 우리 여기 염화실 법우님들도
보면은 내가 통칭 법우님 또는 도반 이런 표현을 쓰는데 법우니 도반이니 하는 것은
다 통하거든요 아무관계가 없습니다 승속을 가릴것 이 없습니다
사실 스님들도 이 가운데 아주 많아요 스스로 스님이라고 밝히신 분도 계시고
알려져서 알게 되는 분도 계시고 또 미처 몰라서 모르는 분도 계시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 같은 이들은 "선지식아" 이렇게 표현을 해요 스님들이 되었든지
출가한 신자가 되었든지 간에 통칭 선지식 이라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참 그것도 아주 의미심장 하죠 육조혜능 같은 천하의 대도인께서 어떤 사람에게
든지 "선지식아" 라고 이렇게 부르는데는 그것도 선지식 이라고 이해 하기로 하면
이해 할 길이 있죠 또 임제스님 같은 이들은 부르기를 뭐 라고 부르냐면 "도류여"
이렇게 합니다 승속을 막론하고 "도 닦는 여러 벗들이여" 이런 뜻이죠
그것도 아주 좋은 말이죠 저는 우리가 요즘에 현대어로 쓰는 "법우" 또는 "도반"
참 친근감이 가고 아주 좋은 말이죠 그래서 누가 되었든지 상대가 누가 되었든지
도반이라 부르고 또 법우 라고 부르고 비슷한 뜻이죠 그렇게 부릅니다
여기서 집에 있거나 재가 한 이거나 출가한 이거나
뭐 공히 부처님이 똑같이 생각하고 가르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같이 나옵니다
집에 있거나 출가하여 보살의 도를 수행하면서 만약 이 묘법연화경을 보고
듣고 읽고 외 우고 쓰고 지니고 공양하지 못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 은 보살의 도를 잘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법화경 모르는 사람은 보살도 아니고 출가하거나 재가 하거나 간에 불자가 아니다
아주 뭐 냉정하게 이야기 하면 법화경 모르는 불자가 아니다 승속을 막론하고
불자가 아니다 이렇게 까지 좀 드러 내 놓고 표현 할 내용입니다
...보살의 도를 잘 행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만약 이 경전을 듣는 이라야 능히 보살의 도를 잘 행하는것이니라
법화경을 아는 사람이라야 불자다 승속 가리 것 없이 법화경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불자냐 뭐 아주 좀 드러 내 놓고 표현 하자면 그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참 우리는 이런 거 현대의 그 어떤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법화경
공부를 하지만은 법화경 인연을 맺고 이렇게 공부하는 우리들은 큰 인연이고
정말 불자로서의 할 일을 다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까지 생각을 해도 좋겠습니다
14 어떤 중생이 불도(佛道)를 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묘법연화경을
보거나 들으며 듣고 나서는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 졌느니라.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 졌다 최상의 깨달음 부처님이 경험 하신 것 이고
그 이후의 수많은 그 깨달은 분들이 다 이 천 칠백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그 깨달은 분들이 다 이 속에 해당 되죠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 졌느니라
그 들이 다 최상의 깨달음에 이른 사람입니다
여기서 비유가 또 하나 나오는데 이 비유는 법화칠유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구유 라고 표현 하는 수가 있거든요 아홉기지의 비유 그 구유속에는 이 비유도 또
들어가지 싶습니다
약왕이여,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 물을 구하려고 저 높은
언덕에서 우물을 팔 적에 마른 흙이 나오 는 것을 보고는 물이 아직 먼 줄을 아느니라.
마른 흙이 나오 겠죠 마른 흙이 자꾸자꾸 파도 아직 물이 나올려면 멀었다는 이거죠
그렇다고 포기 할 수도 없죠 땅을 파기를 쉬지 아니하여 젖은 흙을 보게 되고
점점 더 파서 진흙이 나오게 되면 마음속으로 물이 결정코 가까이 있는 줄을 아느니라.
그렇죠 우물을 팔때 자꾸 파들어가면 나중에는 진흙이 보이겠죠 그럼 진흙이 나오면
차츰차츰 물기가 많은 것을 보게되면은 곧 멀지않아 물이 있을 것을 믿게 된다 이것입니다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만약 이 묘법연화경을 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닦아 익히지도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라.이 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기가
아직 멀었느니라.묘법연화경을 듣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최상의 깨달음은
고사 하고 불자도 아니라는 거죠 사실 그 내용을 알고보면 이 말씀이 정말 지당하고 맞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어떤 이유에서 인연을 맺어든지 간에
불교와 인연을 맺고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을때는 가장 소득이 뭐냐? 가장 큰 소득이
참 짧은시간에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가장 소득이 뭐냐?
우리들 자신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그 것이 가장 큰 소득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된것 부처님이면 됐지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대통령 100번 된 것보다 더 낫지요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은
국회의원 천번 만번 하는 것 보다 낫지요 전 세계의 대통령 온 우주의 대통령이 되는 것
보다 부처님되는 게 훨씬 낫지요 그런 횡재를 하는 것이 바로 불교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아무 경전에나 있는 게 아니예요 바로 법화경에 있습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가 되어 가지고 우리가 모든 경전과 모든 조사스님의 어록을
다 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 상에 들오면 뭐든지 다 접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되어 있죠 그래서 이래 저래 스치고 지나는 정도로 들어서 알고 있고
보아서 알고 있는 정도이기는 하지요
그것은 그러나 그것이 더욱더 절감 아주 가슴에 와닿게 절절히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되어야 그래 비로써 법화경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가 있고
그 것은 곧 우리들이 이대로가 정말 위대한 존제인 부처님이시다 라고 하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불교를 인연해서 가장 큰 소득이다 불교를 믿어서 불교를 공부해서
가장 큰 소득이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조항을 우리가 한번 정리를 해서
교리문답 형식으로 외우도록 그렇게 했으면 참 좋겠다 싶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불교와 인연을 맺고 가장 큰 소득이 무엇인가?
우리들 자신이 그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두 번째 소득은 무엇이뇨 이런 식으로 그런 문답식의 책을 외우게 하는 것도 좋은 길이
아닐까 문득 드내요 그래서 이 법화경의 가르침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 라고 사실을
모르고서는 불교를 믿는다고 할 수 도 없고 불교를 안다고도 할 수가 없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이 불교를 믿고 제일 큰 소득이다 이렇게 정리 할수가 있습니다
만약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닦아 익힌다면 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줄을 알지니라.무슨 까닭인가. 모든 보살들의 최상의 깨달음은 다 이 경에 속해
있기때문이니라.모든 보살들의 최상의 깨달음은 다 이 경에 속에 있다
금강경 공부하신분은 얼른 생각이 나죠?
제8분 依法出生分 (법에 의해 출생함)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모두 만고(萬古)에 빛나는 이 『금강경』으로 부터 나왔습니다.
눈에 잡히는 이경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것은 한생각도 일어나기 이전의 공적(空寂)한 마음자리, 근원자리입니다.
우리들은 부모님의 은혜(恩惠)에 의해서 세상에 태어나 육신이 자라고,
나름대로 윤리를 실천하고 도덕을 지켜가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올바른 진리와 법에 의하여 매일 매일 계속하여 새롭게 탄생해야 합니다.
육체적인 탄생은 우리의 의지(意志)대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더없이 높고 큰 『금강경』의 가르침에 의해 부단히 노력하여
우리들을 한없이 향상시켜야 합니다.
소나무에 의지한 칡덩쿨은 하늘을 찌를듯이 뻗어가고
잔디 속에서 자라는 칡은 계속 땅으로 가는 법입니다.
부처님과 같이 위대한 가르침과 함께하고 있는 우리들을
이 생뿐만 아니라 다음 생 너머까지 계속 진리의 몸을 새롭게
탄생시켜야 할 것입니다.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若人이 滿三千大千世界七寶로 利用布施하면
수보리 어의운하 약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是人의 所得福德이 寧爲多不
시인 소득복덕 영위다부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는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을 복덕이 얼마나 많겠는가."
불교의 우주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수미산이 우주의 중앙에 자리잡아 있고,그것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사천하로 나누어 동쪽을 동승신주(東勝神洲), 서쪽을 서우화주(西牛貨洲),
남쪽을 남섬부주(南贍部洲),북쪽을 북구로주(北瞿盧洲)라고 하며 이것을 사대주라 합니다.
절에서 축원문을 읽을 때'일 사천하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 집의 주소'순으로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데는 남섬부주입니다.
일 사천하를 한 세계라 하는데 이 한 세계가 천 개 모이면
일 중천세계가 되며 일 중천세계가 천 개 모이면 일 대천세계가 됩니다.
삼천 대천세계라는 것은 대천세계가 삼천 개라는 뜻이 아니고
천을 세 번 거듭했다는 뜻입니다.
어떻든 상상하기도 어려운 어마어마한 큰 세계를 말합니다.
칠보는 대개 금, 은, 유리, 산호, 마노, 적진주, 파려를 일컫는데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을 통털어 말합니다.
등록금을 대신 내어 주거나 병든 사람의 수술비를 마련해 주는등
이웃 돕기에 동참을 하면 신문이나 텔레비젼에 소개되고
우리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작은 보시도 돌아오는 칭찬의 복덕이 큰데, 만약에 온 우주에
가득찰 정도의 칠보를 가지고서 남을 위해 베풀엇다면 그 사람이 받을 복덕은
얼마나 될지 상상을 할 수도 없습니다.아마도 곳곳에서 칭찬의 소리가 드높고
일 년 내내 온 세계의 매스컴이 보도하고 칭찬할 것입니다.심지어 그 사름을 칭송할
신문사나 텔레비젼 방송국을 차려도 될 정도로 복덕이 클 것입니다.
須菩提가 言하사대 甚多니이다 世尊하 何以故오 是福德이
수보리 언 심다 세존 하이고 시복덕
卽非福德性일새 是故로 如來가 說福德多니이다
즉비복덕성 시고 여래 설복덕다
수보리가 말씀드리되,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성이 아니므로 이 까닭에 여래께서 복덕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 복덕이란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한 칠보로써 보시한 복덕을 말합니다.
그토록 귀한 보물로 그렇게도 많이 보시하였으므로 당연히 돌아오는
복덕이 많을 것입니다마는 복덕성(福德性),즉 우리들의 본성자리에는
하등의 이익이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진실 생명에다 비교해 보면 무한한 허공 중의 먼지 하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왜 그렇느냐 하면 성품(性品)이란 본래로 옳다 그르다,
있다 없다, 얻었다 잃었다 하는 양변(兩邊)에서 모두 떠나 공적한 자리이고 또한
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일반적인 상식 내지 철학이나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무념(無念)의
세계와 우리의 사변(思辯)을 초월하는 무한(無限)의 세계에 대한 언급입니다.
무한의 세계를 흔히 허공에 비교하는데,허공은 많다,적다의 한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많은 허공, 적은 허공 하는 말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이런 허공과 같이 무량(無量) 무변(無邊)한 것이
바로 우리들 마음의 복덕이고 진실한 성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새지 않아 참답고 청정한 복덕(福德)인 것입니다.
얕은 소견에서 볼 때에는 '복덕이 많다'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불교적으로 생각해 보면 '많다'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시간만 있으면 다 계산을 해낼 수가 있고,
언젠가는 다 써서 흘러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물질로써 보시하여 돌아오는 복덕이 많다고 하여도
언젠가는 다 할 때가 있고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덕성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진실 생명과 비교해 보면 그것은 결국 샘이 있는
유루복(有漏福)에 지나지 않음을 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若復有人이 於此經中에 受持乃至四句偈等하야 爲他人說하면
약부유인 어차경중 수지내지사구게등 위타인설
其福이 勝彼 하리니
기복 승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만이라도 받아지녀서
다른 사람을 설한다면 그 복이 저 앞의 복보다 스승하리니.
『금강경』 전체나 아니면 사구게만이라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남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삼천 대천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 공덕보다 훨신 스승합니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겠지만
지혜의 눈을 뜬 사람이 보면 정말로 그러합니다.
『금강경』의 도리나 사구게의 가치는 진실로 다함이 없고
결코 새지 않는 큰 복인 것입니다.
사구게의 복만 해도 이러할진대 『금강경』전체를 공부하고
아침 저녁으로 독송(讀誦)힌다면 그 복은 과연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온 우주를 다 덮고도 남을 것입니다.
상을 떠나보낸 그 자리에서 활짝 드러나는 우리들 본성의 위력을
남을 위해 설해주어 그 사람의 본성도 일깨워 주는 그 공덕은
정말 어떠한 물질적인 보시보다도 수승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보시할 게 뭐 있느냐.
『금강경』만 잘 지니고 읽으면 되지."해서도 곤란합니다.
아무리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라도 그릇에 담겨 있어야
우리들이 먹을 수 있습니다.
법당이 있어야 귀중한 법회가 열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질적인 딧받침을 한다는 것은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루복(有漏福)이 모체(母體)가 되어야 무루복(無漏福)을 닦을 수가 있습니다.
또 경을 수지(受持)한다는 것은 그 경의 이치와 도리가
나의 마음 속에 무르녹아서 온전히 나의 본성을 꽃피운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경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만 해도 웬지 마음이 든든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나들이 때나 먼 여행길에 꼭 경을 챙겨 가지고 틈틈이 읽는 태도는 바람직합니다.
혹 바빠서 한구절도 못 일게 되더라도 경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마음가짐이야 말로
무엇보다도 칭찬받을 만합니다.
何以故오 須菩提야 一切諸佛과 及諸佛阿縟多羅三藐三菩提法이
하이고 수보리 일체제불 급제불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
皆從此經出
개종차경출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일체 모든 부처와 모든 부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니라."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은 이 경『금강경』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경이라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문자(文字)로 표시되어
우리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바로 이 『금강경』이겠지만 단순하게
종이와 먹으로 된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옛 시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나에게 한 권의 경이 있으니(我有一券經)
종이나 먹으로 된 것이 아니라서(不因紙黑成)
펼쳐 보아야 한 글자도 없지만(展開無一字)
그러면서도 항상 대광명을 놓고 있네(常放大光明)"
그렇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경, 우리 모두 똑같이 갖고 있는 경에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왔습니다.
우리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참 면목 자리에서
모든 부처님과 모든 깨달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곳은 한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요, 우리들의 사량 분별(思量 分別)이
이르지 못하는 자리요 입정한 그 소식이요, 텅 빈 자리인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 저 한 권의 경이 있으므로 겁낼 것도 초조행할 것도 없습니다.
설사 남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서운하게 돌아선다고 하여도
조금도 상처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오너라, 나에게는 저 빛나는 한 권의 경이 있다.
천개의 태양과도 맞먹는 광명(光明)을 놓고 있는 나의 경이 있다.'하는
신념으로 이겨내고 용서하는 것이
반야 보살(般若 菩薩)의 걸림없는 본분이라 하겠습니다.
須菩提야 所謂佛法者는 卽非佛法이니라
수보리 소위불법자 즉비불법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는 것도 곧 불법이 아니니라."
부처님께서는 방금 모든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 만고에 빛나는이
『금강경』으로부터 나왔다고 해 놓고선는 저 자부심을 싹 쓸어버리십니다.
참으로 귀중하게 불법과 인연을 맺고 불법과 더불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의아심을 줄지 모르지만 불법이라 하는 것도 불법이 아니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어떠한 연기에도 걸리지 않으느로
경이 불법은 낼 수 있지만 연기나 본성을 어쩌지는 못합니다.
철판에 뭔가를 가득 써 놓았다면 더 이상 철판의 구실을 할 수 엇습니다.
철판을 개끗이 닦아야 다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불법을 불법이 아니라고 할 때 진정한 불법을 만날 수 있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한껏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 번 부처님의 크나큰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깨달음을 성취하였으면서도 우리들에게
그것을 부정해 보이는 것은 어떠한 종교의 창시자도 그 어떤 성자(聖者)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 좋은 표현이예요 우리는 부모에 의해서 이렇게 세상에 출생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만나서 다시 불법의 의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난다는 거죠
그게依法出生입니다 그 다음에 그 내용속에
여래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개종차경출 이니라그렇게 되어 있죠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의 도리가 전부 이 경전으로 부터 나왔다
이런 표현이 금강경에도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보살들의 최상의 깨달음 다
이 경 속에 있기 때문이니라이 경속에서 나왔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경을 찬탄하다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오죠
이 경전은 방편의 문을 열어서 진실의 모양을 보이는 것이니...
개방편문 하여 시 진실상 보이는 것이다개방편문 시진실상요렇게 해서
이것이 법화경의 종지이다 라고 이렇게 표현 할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법화경 서두에서 이제 법화경의 종지는 회삼귀일 이다
삼승을 모아서 일승 불성 부처님의 삶으로 귀결되는 것을 법화경의 근본 취지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이 것도 법화경의 종지에 해당되요
방편의 문을 열어서 진실의 모양을 보이는 것그러니까 개방편문 하여
시 진실상 이렇게 하면은 그것이 법화경의 그런 근본 종지가 된다
이렇게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이 경전은 방편의 문을 열어서 진실한 모양을 보이는 것 이니 이 법화경의 법의
창고는 깊고 견고하며 그윽하고 멀어서 능히 이르러 갈 사람이 없지마는 이제
부처님이 보살들을 교화하고 성취시기 위하여 열어 보이는 것이니라.
부처님이 보살들 최상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위해서 최고 수준에 다달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성취시기 위하여 열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약왕이여,만일 보살이 이 법하경을 듣고 놀라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새로 발심(發心)한 보살이니라.만일 성문이 이 경을 듣고 놀라서 의심하고
두려워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잘난 체하는 사람이니라.
저 앞에서 퇴석한 자리에서 물러나 그런 사건이 있었죠 그기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보살로써는 놀라서 의심하면 초보자 보살이고 만약에 성문으로써 이것을 놀라고
의심한다고 할 것 같으면 아주 교만이 가득한 그런 못난 사람이다 이런 말입니다
그 다음에 여기에 법사의 종류를 여기 법사품에서 오종법사 있어죠
지니고 다니는 것도 법사요 읽는 것도 법사요 외우면 그 것도 법사요
남을 위해서 해설을 해주면 그 것도 법사요 사경을 하면 그 것도 이제 법사 입니다
사경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제가 그 원력 수생한 그런 이야기 우리니라에 수 천억
재산을 가진 사람 심지어 1조가 넘는 그런 재산을 가진 사람도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이 시대에 남길만한 그런 그 무엇을 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의식주 좀 잘 하자고 하는 것
조금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자고 하는 것 수 천억 재산 가져봐야
그 것 밖에 생각 못 했죠 뭐 배운게 있어야 딴 걸 생각하죠
정말 이 시대에 우리가 후손들에게 천년 만년 물려 줄 만한 그런 좋은 문화유산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부를 가지고 있으면 그러면서도 하나 누가 남긴게 있나요?
수 백억 수 천억을 가진 사람도 그런데 이분은 자기 재산이 십억 정도인데 그 것을
다 털어 받치고 지금 빚을 져가면서 까지 그런 사경을 해 가지고 그 신문에도 가끔 나고
요즘 찾아 가는는 사람도 많고 이래 합니다
그분이 사경을 하는 원력을 그렇게 세워서 자기의 사재를 그렇게 털어 가면서 까지
영원히 남을 그런 불교의 보물을 남겼다는 사실, 참 대단한 일이죠 언젠가 우리는
이땅에서 사라질 것이고 자기가 가진 것도 다 있어도 버리고 가게 될 것이고 그런데
그것을 의미있게 쓰고 정말 자손만대에 모범이 될만한 문화유산을 남겼다는 것 정말
천번 만번 찬탄을 해도 부족함이 없는 지나침이 없는 그런 찬탄을 할 수 있는
그런 일인데 그게 사경도 오종법사 속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경전을 설하는 규칙을 이야기하고있습니다.아주 중요한 대목이예요
6.경전을 설(設)하는 규칙(規則)
15 약왕이여,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가 열반한 뒤에
사부대중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설하려면 어떻게 설해야 하겠는가.
이 선남자. 선여인은 첫째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둘째 여래의 옷을 입고
세째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사부대중을 위하여 이 경을 널리 설할 수 있느니라.
이랬어요 그러면 여래의 방이란 것은 저 앞에도 나온 것 이죠
여래의 방이라는 것은 온갖 중생가운데 대자비(大慈悲)한 마음이요
자실 자비의 방이다 대자비한 마음이 여래의 방이다.부처님 뭐 그렇게 좋은데
않 앉아 계셔어요 부처님의 방이래야 그냥 나무밑이고 기껏해야 이제 기원정사
같은데 집이 제대로 지어 졌다해도 일반 대중들의 방과 하나도 다를바 없습니다
그런방에 그냥 계셔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여래의 방이라는 것은
육신이 앉았든 여래의 방이 아니고 대자비한 마음이다 우리 이것 좀 깨달읍시다
그 무슨 부처님 앉았든 자리 라고 그 뭐 진짜 부처님 앉았든 자린지 어떤지 몰라요
그러니가 안내하는 사람이 기원정사에 가서 여기가 부처님 앉았든 자리다 이렇게
하니까 그냥 그기다 대고 엎어져 절을 수없이 합니다 뭐 순수한 신심으로써는 좋죠
그러나 법화경에서 말하는 여래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바로 대자비심이다 그리고
여래의 옷이라는 것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다
뭐 어느 절 부처님이 입던 가사가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실
실지로 부처님이 입었던 옷이라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구요 그 진정한
여래의 옷라고 하는 것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다
이게 부처님의 옷이라는 것입니다 참 법화경 대단하죠 이런 우리들의 상식을
깨뜨려 주지 아니하면 이 경전을 통해서 깨터려 주지 아니하면 매번 그 판이죠
항상 발전 없는 자기 아전인수격인 그런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꾸
우리의 사고는 깨어져야 되요 내가 생각하고 있든 것은 계속 보다 더 다른 차원에
의해서 계속 부서지고 부서지고 그리고 실망하고 또 한 단계 올라가고 실망하고
또 한 단계 올라가고 내가 가졌던 것이 그게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그기 뭐
안내하는 사람이"여기 부처님 앉았던 자리다"자리가 부처님이 앉았는지 어쩐지
좌우지간 터만 남아 있고 터도 사실은 흔적이 유야무야 했는데 그렇게 벽돌로써
그 정도의 흔적을 만든 것도 불과 얼마 안되요 불과 얼마 안되는 역사입니다
그야말로 유야무야한 황무지였는데 그것을 개발하여 허물어진 벽돌을 쌓아올려서
그래도 벽돌을 우리 허리만큼의 높이로 쌓아서 방모양을 만들었죠 좀 큰 방도 만들고
작은 방도 만들고 그렇게 해가지고 중심이 되는 자리 쯤에다 여기는 여래가 부처님이
앉았던 자리다 라고 이렇게 합니다 그기다 대고 막 엎어져서 천 배 만 배 절을 올리고
그렇게 하는데 뭐 좋은일 이예요 좋은일이긴 하지만은 좀 더 다른 차원,법화경에서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런 차원을 이해하고 그리고 그기서 절을 하면 그 절은 의미가 있겠죠
이런 대승경전을 통해서 우리의 안목은 자꾸 높아져야 되고 우리의 관점은 시각은
자꾸 이제 기존의 시각을 자꾸 깨터려 버리고 기존의 내 좁은 소견을 자꾸 깨터려
버리고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이렇게 자꾸 올라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여래의 옷이라는 것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다
여래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이게 제일 참 무서운 자리인데 여래가 앉았든 자리는
여래의 자리라는 것은 모든 법(法)이 공(空)한 것이니라.그랬습니다
여래가 앉았든 자리 그것은 모든 존재가 공한 것 제법공상
제법공상 으로 볼줄 알아야 그게 여래가 앉았든 자리다
여래는 최소한도 그기에 앉아서 모든 것이 공하다는 그 자리에 앉아서
그 다음에 근기에 따라서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이야기 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이야기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우리는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법회를 해야된다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예불을 해야된다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어떤 불교 의식이든지 의식을 해야한다는 뜻 에서
뭐죠? 공 사상을 잘 표현한 반야심경을 외우고 나서 합니다 반야심경을
외우고 나서 하는 이유가 바로 여래의 자리에 앉아서 해야 된다는 거죠
반야심경은 나는 이제 넉자로 번역을 하죠[나는없다]내가 반야심경 기도를 한참
한때가 있었는데 한참 반야심경을 외우다 보니까 이렇게 한문으로 된것 오래
길게 할게 없다 싶은 생각이 나드라구요 그럼 뭐냐? 알고보니 나는없다 는 소리야
나는없다 나는없다 그러니까 가슴에 확 와 닿는거죠 그런 체험을 했었는데
바로 여래의 자리 라고 하는 것이 제법이 공 한 것 내가 공 한것 내가 없는 것
그랬을 때 비로써 참 시원한 자리가 되고 그 자리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리가
되고 어떤 상황도 걸림이 없는 자리 되고 모든 것이 공 한데 무엇이 걸리겠습니까
있으니까 걸리는 거죠 유유의 입장이니까 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참
무서운 자리고 당연히 우리가 앉아야 할 그 자리 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가운데 편안히 머물러 있으면서 게으르지 않는 마음으로
여러 보살과 사부대중들을 위하여 이 법화경을 널리 설할 것이니라.
16 약왕이여, 내가 다른 국토에 변하하여 된 사람(化人)을 보내어 그를 위하여
법문을 들을 사람들을 모으게 하고 또 변화하여 만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을
보내어 그의 법문을 듣게 하리라.
이렇게 인터넷 통해서 법화경을 공부하는 데도 많이 모이셔 잔아요
지금도 오 십여분이 이렇게 모이셔는데 이걸 부처님께서 보내신 오신
그런 분들로 우리가 이해 할 수 도 있습니다.
만약에 숫자가 영 적다면은 참 신심 않나죠 한 마디로 말해서 할 힘이 잘 않 날 겁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오시니까 자꾸 재미도 있고 저도 신심나고 또 몰랐든것 여러분들
덕으로 또 하나 하나 깨우치게 되구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부처님도 변화한
사람들을 보내 가지고 그기도 사부대중이 다 그렇게 보내 가지고 법문을 듣게한다
이 모든 변화하여 된 사람들은 법문을 듣고 믿고 받아 순종하고 거스르지 않으리라.
만약 법을 설하는 이가 한적하고 쓸쓸한 곳에 있으면 내가 천신 용왕 귀신 건달바
아수라들을 보내어 그의 법문을 듣게 하리라.
법을 설 하는데 아주 한적 하고 쓸쓸한 곳 이라면 그 참 혼자 있고 해도
신심이 나겠지만 그래도 들어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더 신심이
더 안나겠습니까 좋은 법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한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그래서 여기서 보면은 여러류의 사람들을 보내어 법문을 듣게한다
내가 비록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법을 설하는 이로 하여 금 때때로
나의 몸을 보게 할 것이니라. 만일 이 경의 구절과 토를 잊어버렷으면
내가 다시 말하여 주어 분명하고 정확하게 설하게 하리라.그랬습니다
간혹 저도 기억이 않나면은 또 잠깐 있으면 기억이 나거든요 기억나게 해준다 하는
그런 표현이 되겠습니다 경전을 설하는 규칙에 아주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건 참 꼭 우리가 기억해 둬야 될 것
첫째 여래의 방에 들어 가야겠죠 그러면 여래의 옷을 입어야 겠죠 그리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야 되겠죠 바로 그것이 경을 설하는 가장 중요한 규칙인데
여래의 방이라고 하는 것은 뭐죠? 대자비한 마음이다
여래의 옷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다
뭐 수 백년 된 그런 금강가사 가 아니라는 거죠 금강가사 가지고 아주 포악하고
인욕 할 줄 모르고 그냥 그러면 부처님의 가사를 가졌다고 할 그런거 무슨의미가
있습니까 전혀없죠
여래의 옷이라고 하는 것은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욕(忍辱)하는 마음이다
또 여래의 자리라는 것은 모든 법(法)이 공(空)한 것이니라.
첫째 내 자신이 공 한줄 알고 그리고 객관 주관이 공 하면 객관이 공하고
객관이 공 하면 주관도 공 하고 주와 객이 공 한줄을 아는 사실 그게 된 사람이면
교리적으로 보면은 중간정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중간정도에 해당 되는 것이지만 그것만 제대로 되면 정말 마음 놓고 살게 되는 거죠
또 어디에도 걸릴게 없습니다 내가 공하고 상대가 공하고 그러면 온갖 뭡니까 희노애락
애 오욕 이 모든것이 다 공 한 것이고 명예니 부니 하는 것이 다 공 한 것 인데
그렇게 공 한줄 알고 열심히 사는 거죠 공 한줄 알고 열심히 사는 것
공 한줄 알고 무슨 뭐 어떤 허무감에 떨어져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공 한 줄 알았을 때 제대로 자기 자신을 다 던져서 다 던져서
자기인생을 백 퍼센트 연소 시키고 갈수있다 겁니다 그게 중요한 거예요
자기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고 또 이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면은 목숨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목숨을 던져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면서 목숨을 던져야죠
얼마나 멋집니까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되고 그렇게 죽어야 된다고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게 참으로 가치 있게 사는 것이고 자기가 공 한 자리에 앉아서
그리고 모든 것도 공 한것을 제대로 알아서 정말 활발하고 발 빠르게 보살 행을
실행 할 수 있는 길이 그렇게 열린다는 것입니다
공 하다고 하는 것은 결코 허무감에 사로 잡혀서 그렇게 아무런 그런 일도 못하고
아무런 의미도 보람도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적극적으로 온 몸을 다 던져서
백 퍼센트 자기 자신을 연소 시키면서 회향 할수 있는 것 이것이 정말 반야심경의
의미 이고 우리 불교를 공부하는 자세이고 또 이 것이 여래의 방이라고 하는 것
여래의 자리 라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경전을 찬탄하다 그리고 경전을 설 하는 규칙 그리고 또 오종법사
오종법사에 대해서 스스로 법사라고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법화 행자로써
불교공부를 하고 불교를 믿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을 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법화경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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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성 | 찬탄하려면 공부해서 알아야하고 소득이있어야하며 공감대가 있어야한다.언어도단,심행처멸을 투과한뒤 나온 말씀이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알면 찬탄하게 되있다.경전을 설하는 규칙1)여래의 방에 들어가(대자비심)2)여래의옷을 입고(인욕하는 마음)3)여래의자리에 앉아야(제법공상을 알아야)사부대중에게 설할수있다. |
첫댓글 찬탄하려면 공부해서 알아야하고 소득이있어야하며 공감대가 있어야한다.언어도단,심행처멸을 투과한뒤 나온 말씀이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알면 찬탄하게 되있다.경전을 설하는 규칙1)여래의 방에 들어가(대자비심)2)여래의옷을 입고(인욕하는 마음)3)여래의자리에 앉아야(제법공상을 알아야)사부대중에게 설할수있다.
스님의 크나큰 사랑으로 자비를 베푸셔서 부드럽고 온화한 지혜광명을 말씀을 주시니...들으면 들을수록 감로법이옵니다. 지혜와 참인간으로 이끄시는 가르침 감사드립니다._()()()_
.()()().
삼보에 귀의하옵고... 재방송 감사하게 청취하였습니다. 큰스님! 미륵골님! 도반님들!!! 고맙습니다. _()()()_
불교와 인연을 맺고 가장 큰 소득은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를 안다는 것..._()_
큰스님 감사드립니다..._()()()_
감사합니다 _()()()_
큰스님 법문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_()()()_
제법공상(실상)!!!_()()()_
내가 갖고 있는 經! 우리모두 똑같이 갖고 있는 이 經에서 모든부처님과 모든부처님의 깨달음이 나왔으며 우리들 속에 내재되어있는 참면목자리에서 모든부처님과 모든 깨달음이 나오는 것이라. 그곳은 한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요, 우리들의 분별사량이 이르지 못하는 자리요,텅빈자리인 것이다.'항상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법문 감사드립니다^*^
_()()()_
감사드립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뵤법연화경 나무뵤법연화경._()()()_
오종법사에 대해서 스스로 법사라고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법화 행자로써 불교공부를 하고....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감사합니다._()()()_
依法出生分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눈에 잡히는 이경은 한생각도 일어나기 이전의 공적(空寂)한 마음자리, 근원자리입니다...나무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중생이 불도(佛道)를 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묘법연화경을 보거나 들으며 듣고 나서는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최상의 깨달음에 가까워 졌느니라....나무묘법연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