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천사와 귀신의 존재와 활동을 ‘인간실존의 구조들’과 연결시켜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런 해석이 천사와 귀신의 인격적 실재를 부인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날의 연구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구조적 문제를 배제하고 천사와 귀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인격적 존재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는 데 그 의도가 있다.
스탠리 그렌즈는 ‘실존의 구조들’(structures of existence)을 “인간의 삶을 위한 필수적인 맥락을 형성하면서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인 인간의 실존을 규정하는 현실의 좀 더 거대하고 초인간적인 측면들 또는 차원들”이라고 정의했다.제임스 코블(James F. Cobble, Jr.)은 이 구조를 “어느 누구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서, “현재의 인간 실존을 조건지어주는 힘들이 그물처럼 뒤얽혀 이루어진 복합권력”(a power complex)이라고 규정했고,존 요더(John H. Yoder)는 이 구조들을 “인간 실존을 위한 조직적 원리들,” “종교적 구조들,” “지적 구조들,” “도덕적 구조들,” “정치적 구조들”을 구분해서 설명했다.그는 이 구조들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지만 반역하고 타락했다고 말함으로써 구조들의 인격적 측면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그렌즈는 이 구조들이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구성물”이지만,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 있다고 말하고, 그것은 “유사 독립적(quasi-independent)이며 동시에 유사 인격적(quasi-personal)”이라고 규정했다.
구조들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구조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다. 헨드릭 벌코프(H. Berkhof)는 구조적 힘들이 “여전히 인간의 삶과 사회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삶과 사회를 혼돈으로부터 보호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실존적 구조들은 양면성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 실존적 구조들은 현대의 인간들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의 남아선호사상이나 고부관계, 관습과 제도, 미신과 점성술 등과 같은 것이 그러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선한 구조들은 천사의 현대적 활동으로, 악한 구조들은 사탄의 현대적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이 실존의 구조들이 영적인 존재들과 단순하게 동일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조들이 영적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적 존재들은 구조들을 통해 나타난다. 비록 하나님은 구조들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창조하셨지만, 타락한 인간에 의해 구조들은 악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스탠리 그렌즈는 구조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다음과 같은 논법으로 정리했다: (1) 구조들은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릴 때 공동체를 방해한다. (2) 악한 존재들은 구조들의 사탄적인 악용을 통해 인간을 구조의 노예로 만든다. (3) 구조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촉진시키지 못할 때 악의 통로가 된다. (4) 악한 영의 목적은 하나님의 계획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5) 구조들은 천사들의 도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귀신의 도구도 될 수 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8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