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6월 22일 미국 시카고에서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가 제임스 J. 브래독에게 8라운드 KO로 승리를 거두어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루이스는 1949년 3월 1일 은퇴할 때까지 챔피언 타이틀을 보유해 당시 헤비급 역사상 최장수 챔피언이었다. 무려 25차례의 방어전을 치렀으며 그 중 21번은 KO승을 거두었다. 디트로이트에서 복싱을 시작한 루이스는 1934년 7월 4일 프로 데뷔전을 가졌다. 1939~42년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활동이 저조해 에자드 찰스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1951년 10월 26일 벌어진 마지막 경기에서는 로키 마르시아노에게 8라운드 KO패를 당했다. 말년에 루이스는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현관 안내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한일기본조약 조인/1965. 6. 22
1965년 6월 22일 대한민국과 일본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이에 부속하는 4개 협정 및 25개 문서를 총칭하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어 같은 해 12월 18일 성립·발효되었다. 제1차 한일회담은 1952년 2월 15일부터 시작되었으나, 대일민간청구권 문제와 어업문제에 관한 의견대립으로 4월 21일 중단되었다. 이후 5차회담까지 결렬과 중단을 거듭하다가 1962년 11월 12일 도쿄[東京]에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일본 외상이 비밀회담을 가지고 기존의 쟁점이었던 대일청구권 문제와 평화선, 재일동포 법적지위 문제에 대한 타협점을 찾으면서 회담은 급진전되었다. 한편 국내에서는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이 굴욕외교라는 여론과 함께 1964년 3월 24일 학생시위가 일어나고 한일회담 반대운동이 극심해지자 6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6·3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독일, 소련에 선전포고/1941
1941년 6월 22일 오전 5시30분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가 라디오를 통해 히틀러의 대소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이에앞선 오전 3시, 약 300만명의 독일군이 이미 전차 등을 동원, 대진격을 개시했다. 육전사상 최대규모였다. 히틀러는 129년 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그 날을 선택했다. 나폴레옹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내겠다는 히틀러의 야심찬 도전이었다.
초기에는 히틀러의 뜻대로 되는 듯 했다. 독일군은 곳곳에서 소련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새벽 무렵에 이미 전차부대가 소련 영내 80km 지점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이유는 소련을 포함한 동부유럽의 광대한 지역이 전쟁을 위한 자원공급지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스탈린은 히틀러의 침입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사상 최강전력의 공격에 소련군은 혼란에 빠졌다. 오후 0시15분경 비로소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이 라디오로 독일군의 침공사실을 소련 국민에게 알렸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6개월 동안 4백만명 이상이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전통적으로 동계를 이용하는 소련군 작전에 말려들었다. 독일군은 소련의 주코프 대장이 이끄는 1백개 사단 병력의 대반격에 개전이래 처음으로 큰 패배를 맛보았고, 이때부터 히틀러는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사망/1992
◀ C.V.게오르규
소설 '25시'로 유명한 작가이자 루마니아 정교회 총주교인 콘스탄트 비르질 게오르규가 1992년 6월 22일 향년 76세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게오르규는 억압적 체제, 획일주의, 물질만능사상 하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탐구해온 전후 문학의 주춧돌 같은 존재로 꼽힌다. '25시' '제2의 찬스' '키랄레사의 학살'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세계는 소외당하고 천대받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돌아보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16년 루마니아의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4세 때인 1940년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왕국 시인상을 받으며 필명을 날렸으나 루마니아가 소련에 의해 적화되자 1946년 파리로 망명했다. 1949년 파리에서 출간된 '25시'는 모든 구원이 차단된 절망과 불안의 시간을 상징함으로써 서구문명의 삭막함과 인간상실의 황폐함을 경고하고 있다. 1963년 루마니아 정교회 파리교회 사제가 된 그는 작품 못지 않게 사제로서도 조국의 독재체제에 맞서 투쟁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루마니아여 깨어나라'는 라디오방송 연설로 조국 루마니아 사람들을 깨우치기도 했다. 공산치하에 시달리던 조국의 현실을 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된 그는 특히 한국의 분단현실을 깊이 이해해준 친한국파이기도 했다. 1974년 첫 방한이래 모두 5차례나 한국을 찾았으며, 한국을 '새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을 가져 '한국찬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1898년 6월 22일 태어남 / 1970년 9월 25일 죽음
◀ 레마르크
레마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 Im Westen nichts Neues>(1929)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독일의 소설가이다. 이 작품은 1930년 미국에서 영화화되었다. 국가사회주의인 나치 정권으로부터 반전작가로 지목되어, 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건너갔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유럽 각국 피난민이 모인 파리를 무대로 한 소설 <개선문 Arch of Triumph>으로 또 다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에 이 소설 역시 영화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스위스의 마조레 호 근처 포르토 롱코에 정착해 미국 영화배우인 폴레트 고다르와 함께 여생을 보냈다.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 개통/1973
◀ 남해대교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金南面) 노량리(露梁里)와 남해군 설천면(雪川面) 노량리 사이를 잇는 다리. 1973년에 준공된 국내에서 가장 긴 3경간(徑間) 2힌지(hinge) 보강형 현수교이며, 총연장 660m, 중앙경간 404m, 측경간 128m로 수면에서 25m 높이의 연륙교(連陸橋)이다. 이 다리는 강상형(鋼箱桁)으로 보강된 2힌지 현수교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대(橋臺)는 중력식 콘크리트 블록이며, 육지에서 제작하여 설치한 뒤 콘크리트로 빈 공간을 채운 스틸오픈케이슨(steel open caisson)기초에 높이 60.7m의 장방형 단면 탑기둥을 가진 용접 라멘(Rah-men)형식으로 가설하였다. 주케이블은 전 지름이 258㎜로서 일곱개의 스트랜드로 구성되고 소선(素線)의 지름은 5㎜이다. 이 다리의 건설은 남해군과 주변지역 발전을 활성화시켰고, 부산·여수·마산·하동·남해 등 지역간 연결체제가 한층 원활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 유치에도 이점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 아시아 첫 '4강 신화' 달성.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에 5대3 승리/2002
◀ '큰형님의 환희'
이제 더 이상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23명 태극전사의 땀과 투지,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4700만 국민적 열망이 함께 어우러진 '아시아의 힘'이었다. 한국이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랭킹 8위인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120분 연장사투 끝에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아시아 첫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은 전반부터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웠던 빠른 측면돌파가 촘촘히 망을 친 스페인의 수비에 힘을 잃었다. 오히려 제공권을 빼앗기며 여러 차례 실점위기를 내줬다. 그러나 그때마다 수문장 이운재의 선방이 빛났다. 모리엔테스, 데페드로, 이에로, 호아킨 등의 날카로운 슈팅을 정확한 위치선정과 순발력으로 막아냈다. 후반 15분 유상철 대신 이천수를 투입하며 공격의 활로를 튼 한국은 박지성과 이천수의 슛 등으로 맞서며 연장까지 0―0 공방전을 펼쳤다.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이 모두 골을 넣고, 이운재가 스페인의 네 번째 키커 호아킨의 슛을 막아냈다. 마지막으로 주장 홍명보가 침착하게 찬 볼은 오른쪽 네트에 시원하게 꽂혔다. 한국의 '파워사커'가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뒤흔드는 순간이었다.
그밖에
2003년 이승엽 국내 최초로 300 ㆍ301호 연타석 홈런
2001년 성악가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 국내 첫 합동 공연
1999년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 JD 샐린저가 27년전 쓴 연애편지 1억9천만원에 경매
1998년 북한 잠수정 동해안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좌초
1998년 시인 윤동주, 육필원고 150점 공개
1994년 러시아-나토, 군사 정치적 관계 정립을 위한 '평화동반관계'에 서명
1985년 스포츠서울 창간
1984년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 부부. 20여만달러 밀반출 기도 혐의로 영장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 개원
1981년 이란 호메이니, 바니 사드르 대통령 해임
1978년 한일대륙붕협정 비준서 교환
1970년 국립묘지 현충문 폭파사건 발생
1961년 공보부 신설
1960년 국회의원선거법 국회통과
1957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 총회 시작, 말렌코프,몰로토프,카가노비치,세피로르 추방
1950년 북한, 전투명령 제1호 하달
1948년 우리나라 첫올림픽선수단 런던으로 출발
1946년 광복군 환국
1943년 미국 디트로이트서 인종폭동
1940년 독일의 기상학자 쾨펜 사망
1939년 국민당군, 신4군공격 (평강사건)
1937년 갈색 폭격기 조 루이스, 세계헤비급 챔피언 획득
1921년 코민테른 제3차 세계대회 모스크바서 개최
1920년 그리스.터키 전쟁
1904년 원산~인천 간 전화 개통
1891년 북로전신선(한성·원산간) 준공
1881년 주전을 중지하고 각종 도고 행위를 금지
1767년 독일의 언어학자·교육개혁가 훔볼트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