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걸리버 여행기’를 보고 나서
지난 2007년에 오아시스 세탁소습격사건이라는 연극을 본 후로 소극장에서 오랜만에 연극을 보았다. 화요일 저녁 8시에 시작하는 이 연극 공연에는 배우 네 명, 관객 8명, 그리고 스탭들이 함께 한 정말 조촐한 시간이었다. 그런 적은 인원을 앞에 모시고 열정을 다해 공연을 해 준 배우들에게 그리고 스탭진에 감사의 박수를 드리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항해를 하는 동안에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나와는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를 바라볼 때 자신들의 시선과 관점으로 바라보고 말을 걸어온다. 걸리버가 만난 거인국과 소인국의 사람들처럼 우리의 인생에는 이처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 소통이 안 되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대화는 겉돌고 우리의 말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는 곧 자신의 관점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갑질의 횡포를 당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만 가는 외딴 섬처럼 되어가고 가까이 다가가면 상처를 입히고 입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멀어만 간다.
이 연극에는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꿈을 향해 지치지 않는 열정과 신념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모델 같은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모든 인물들은 타인의 시선과 태도 등으로 힘들어 하고, 자신의 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의 길을 용감하게 떠나는 이도 없다. 도리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공시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안해 엄마!’라는 유서를 남기고 죽은 사람처럼 미안해 하는 사람이 98%인 사회는 정말 정상이 아니다.
이 연극은 도덕적 교훈이나 시대적 사명 같은 주제를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 장면마다 공감을 하는 관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현실이니까. 그런데 우리가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각자가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로 주어진다.
나는 이 연극을 보고 나서 소통의 첫걸음은 어쩌면 공동체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가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을 굳이 국가적 재난의 상황에서만 할 필요가 있을까? 러시아에서 박해하는 공산당의 총구 앞에서 기독교는 교파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2002년 월드컵과 같이 국가적인 명예를 다룬 문제 앞에서만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가? 그 때 우리는 얼마나 훈훈했던가! 평상 시에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우리들인가?
작은 운명공동체에서부터 서로 하나라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소통을 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같은 지역에 살 뿐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의 공동체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교리적인 차이나 관점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 하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즉 우리가 같은 운명공동체라는 신념이 있다면 우리는 소통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은 셈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는 지구촌으로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신념을 담은 노래다. 그런 생각은 인종적 종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주 작은 그룹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유대감과 연합을 강화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마침내 온 인류가 하나의 소생이요 같은 가문임을 확신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조화와 소통을 이루며 마침내 피조세계의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합과 공동체의식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하며, 그 일은 우리의 작은 몸짓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끝>.
이 연극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l 걸리버여행기
l 공연 기간 2017.10.24~2017.11.12|
l 공연 장소 알과핵 소극장
l 요약 85분 / 만12세이상/ 출연: 백소현, 안용철, 한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