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장흥임씨(長興任氏)
【시조】임호(任灝)
【인구】24,523명 (2000년 현재)
【주요파】▲봉황동파 ▲광주파 ▲원주파 ▲아산파 ▲제천파 ▲보령파 ▲여주파 ▲운곡파
▲청계파 ▲지석파 ▲두륜봉파 ▲초평파 ▲학산파 ▲백담파 ▲송담파 ▲국담파 ▲연담파
▲난실공파 ▲대치파 ▲평촌파 ▲성자동파▲진도파
시조 임호는 중국 소흥부 사람이다.
송나라에서 벼슬을 지낸 뒤 우리나라에 귀화, 장흥 천관산 아래에 정착한다.
그의 아들 임원후가 고려 인종 때 문하시중에 올라 장흥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장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장흥은 옛이름이 정안이라 ▲정안임씨라고도 한다. 또 다른 이름인 관산을 본관으로 쓰는 후손도 있다.
2000년 현재 ▲관산임씨는 1,461명이다.
장흥임씨는 고려조의 명문이다. 고려 중기의 명신 정경공 임의가 재상이 되어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그의 세 아들 이 모두 문과에 급제, 평장사에 올라 가문의 기틀을 다졌다.
또 손녀가 인종왕비가 되어 왕실과 인척을 맺으면서 일약 귀족 가문이 된 것이다.
임의는 문종으로부터 예종에 이르기까지 무려 여섯 임금에 걸쳐 40여년간 관직생활을 했다.
동북면병마사로 있을 때 동북 변방을 끊임없이 침략해 온 여진을 회유하여 다시는 침략하지 못하도록 설득시켰다.
인종 때 문하시중이 된 임원후, 문하시랑평장사가 된 임원숙, 중서문하평장사가 된 임원순 등은 모두 임의의
아들로 4부자 재상이 탄생한 셈이다.
특히 임원후는 서경에서 묘청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과 함께 이를 토벌했다.
임원후의 다섯 아들도 모두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나아가 크게 등용된다.
큰 아들 임극충과 넷째 아들 임유도 재상에 올랐다.
또한 임원후의 세 딸 중 큰 딸은 인종왕비로 18대 의종, 19대 명종, 20대 신종 등을 낳아 왕실을 번영케 했다.
셋째 딸은 “정과정곡”으로 유명한 정서에게 출가하여 5남3녀가 모두 귀하게 돼,
임원후는 일국의 수상으로서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문 영화의 주인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