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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주일 예배
본문<눅>5;1
제목; 도전
오늘은 갈렐산에서 행한 엘리사의 도전으로 시작합니다
자그마치 850;1입니다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과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야의
영적 전투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엘리야가 승리하고 약속대로 바알의 선지지와 아세라 산지자를
포함한 850명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엘리야는 승리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 후에 갈등 충만이라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악녀로 불리는
이세벨이 나서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런데 방금전까지도 기도함으로
성령의 불을 받고
영적 전투에서 당당하게 승리한 엘리야는
스스로 광야에 들어가
열왕기상4절에서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여러분..무슨 말입니까? 이세벨의 협박에 기가 죽어
차라리 죽겠다고
엄살을 피우며 로뎀나무 그늘 아래에서 은둔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세등등하게 우상의 종들과 싸워
승리한 그가
왜 이토록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 앉았을까요
여러분..잠깐 동안이지만 그가 3절에 기록한 대로
형편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당대의 실권자인 아합 왕의 부인이요
왕보다도 더 큰 실권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협박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 했는데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열매도 있었는데
그만 그가 하나님을 잠시 잊고 현실을 보았고
현상만을 보았기에
세상의 조롱과 권력자의 협박에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병이어 기적을 맛본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강풍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때 자신들을 도우러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인가 하며
두려워하고
현상에 속은 것처럼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엘리야를 보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여호와깨서 먼저 묻습니다
네가 무슨 일로 지금 코가 석자나 빠진 채로 이러고 있느냐...
이에 엘리야가 답을 합니다...제가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제 특심으로
저들과 싸워 승리했으나
사람들과 권력이 힘이 있는 세상이 나를 협박하고
이스라엘 족속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를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들이 지금
나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나를 찾나이다..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 힘 빠져 지친 나를 데리고 가소서..이 뜻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열왕기상19장18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남은 자를 남겨 놓으시고
주님은 이 남은 자들과
주의 뜻으로 주님의 일을 하십니다
오늘은 도전이라는 말로 제목을
정해 놓고
제가 먼저 여러분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은 자들입니다
엘리야와와 같은 영적 거장이 활동하던 시기는
역적 극한의 시대요
우상은 충만한 시기요 영적 황무함의 시대였다는 것이고
오늘날의 이 시기도 영적 황무함에 영적 흉년에 불임이 겹쳐
다시금 소생키 어려운
이제는 부흥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시대라는 것입니다
기도원도 사람이 모이지 않고 교회들은 빈자리가 많으며
성도들의 영성은 바닥을 치고
로뎀나무 아래 숨어 은둔하는 자들이 많은 이 때에
그리고 오늘 우리가 새삼 힘을 얻어 도전해야 할 관건은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어느 시대에나 남은 자가 있는데
오늘 제 앞에서 주의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바로
남은 자들이요
그 숫자가 칠천은 아니어도
여러분이 남은 자로 있다면 남은 숫자와 관계없이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아멘
여러분..열심과 열정을 회복하며 다시금 도전합시다
그리고 오늘은
무리의 도전부터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절입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아멘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도전할 때 먼저 할 일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잠언16;1절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다시 말해 기도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아멘
그러나 기도는 말씀을 듣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며
성령이 이를 도우시니
저와 여러분...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며 도전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아멘
저와 여러분의 걸음을
또한 무리들의 걸음을 예수 앞으로 인도하셨다 믿으면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도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으라는 것은
주가 주시는 지혜를 얻고 그 길을 인도 받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이들 무리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소문을 듣고
먼 거리
가까운 거리 마다않고 또 오가는 시간이나 경비가
얼마나 들까
그 비용을 따지거나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를
주판알 튕기며
계산하지도 않고 그저 좋아서 따라 다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은 대부분 걸어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도
걸어 다니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몸과 마음과 시간과 삶과 인생을
헌신으로 희생하며
땀도 희생하며 주를 따르라는 말씀으로 반응하여 적용합니다
여러분 간절하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게 되고
갈급해하면 오늘 본문처럼
시간과 몸과 마음을 헌신하여 주를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이 1절 본문을 머리에 그림으로 그려보며 듣게 되길 부탁합니다
상상하고
추리해 가며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무리가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도전은 말씀을 듣기 위해
고침 받기 위해
기적을 보기 위해 찾아 나선 도전의 적용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말씀을 듣기 위해 어떤 적용들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들과는 달리
너무나 게으르고 못 올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길이 멀어서 못 오고 시간이 없어서..하는 일이 밀려서
의리 때문에도 못 오고
그놈의 정 때문에도 적용 못하고
집에 일이 있고 누군가가 시집가고 장가가고 멀리 사는 자녀가
오늘따라 찾아오고
특별한 일이 있어서도 못 오고 손님이 와서 등등
변명과 사정들은
너무나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
때를 놓치면
만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듣는 자리는 양보가 없어야 하고
듣기 위해서는
나의 작고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듣게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왜냐하면 구원에는 다음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절본문은
무리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리가 몰려왔다는 것은 그 수가 참으로
많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 이렇게 몰려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말라기 시대이후 선지자도, 말씀도 말라버린 시대를 살다보니
말씀에 대한 갈증과 메시야에 대한 간절함과
현실의 삶을
이겨보고자 하는 영적 치열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말씀도 치열하게 듣고 복음도 치열하게 전하며
하는 일도
치열하게 도전하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들은 지금 말씀을 듣기 위해 여러 가지 치유 사건과
이적을 보기 위해 몰려 왔다는데
저는 이들의 모습에서 목마름과 갈급함과 간절함을 발견하는데
반대로 오늘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서는 이런 모습들이
발견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풍성하고 배부르고 등이 따셔서
복지도 잘 되어 있고 가지가지 보험에다가
어지간한 병은
발달된 의술로 다 고치고 또 늙었다고 돈 주고
삶이 어렵다고
장사가 안 되도, 실직했다고, 취직 못해 논다고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주고 혜택을 줍니다..그러나 그 덕분에
도대체 부족한 것이 없고
열정도 부족하고 치열함도 간절함이나 갈급함이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은 자주 하는 말입니다만
반복해서 하는 이 말을
여러분도 한 번 쯤은 들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듣기는 들어도 반응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시절 살다보니
구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영생의 뜻에도 관심 없고
천국의 소망도
편해진 삶만큼이나 무디어져
관심조차 갖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전하라고
도전의 적용을 잘 하자고 아무리 외치고 소리쳐도
장터에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았었고
무반응이요
쇠귀에 경 읽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배부르고 등이 따시고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여
지혜롭게 할 만한 것이
지천인 이 시대를 아모스도 8;11...의 말씀으로 진단하면서
현대인들 모두에게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했던 것처럼
말씀이 없기 때문에 목이 마르고
말씀이 없기 때문에
능력이 나타나지 아니하며 말씀이 없어 길을 몰라 헤매이고
말씀이 없어 도전도 적용도 귀찮기만 하니
열정도 삶의 의지도 없이
그냥 세속의 노예로 미래의 도전 없이 대충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고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떤 악한 일을 당할 지도 모르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월은 빠르고
시대는 매우 악하며
악한 시대의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고 내 자녀와 내 가족의 문제요
내 부모요
내 골육지친의 문제요 사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들 걱정 없이 잘 사는 것같고
별문제와
별 탈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많은 성도들이 힘들고 어려운 개인사와
가정과 자녀
일터의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리고 이 모든 사건과 문제를 가지고 예수 앞으로 오면
해결되고
치유되는데
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그냥 아닌 척
견디며 살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도전의 적용이란 제목과 본문말씀에서
현 시대와 삶의 문제
생존의 문제를 진단하고 좋은 처방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따라해 볼까요
*말씀이 열리면 일과 물질의 길이 열리고
*말씀이 닫히면 일과 물질의 길이 꼬인다...
여러분..이 말씀은 내가 만든 신조어이지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며
주신 말씀으로 도전하면
말씀이 내 발의 등이 되고 내 가는 길의 빛으로
네비도 되어주고 이정표도 되어주니
말씀의 인도를 잘 따르면
내 하는 일도 열리고 뚫리며 해결되는 형통을 맛보게 됨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갈릴리 호수에 모여든
이 무리들이
지향하는 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었고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에 대한 경외와 기대감이라 할 것입니다.
새 시대에
구원의 새 바람을 일으킬 정치적 메시야에 대한기대와
말씀에 대한 향수가 유난히 높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말씀에 대한 기대감과 갈증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여러분의 갈증은 무엇입니까?
돈벌이입니까?
그러나 돈벌이에만 집착하면
말씀도 닫히고 일과 물질은 오히려 꼬이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람이 돈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까?
말씀이 열리면 일과 물질의 길이 열리고 사건이 해결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이 시대의 대안이며 말씀을 만나면
내적 치유가 일어나고
말씀을 만나면 흑암이 광명이 되고
허공은 충만으로
혼돈은 질서를 찾게 됨으로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말씀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주신 언약으로 도전하면
저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도전에 앞서서 우리가 할 일은 기도이고
들어야 할 일은
말씀이니 먼저 주의 말씀에 경청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십시다
여러분..게으른 자의 특성은 이름 난 사람에게 의지하고
소문난 사람에게 도전하는데
부지런한 자는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항시 주님만 의지합니다.
요셉이 그렇게 함으로 총리의 자리까지 올랐고
다윗의 삶 또한 그랬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 하나님께 도전한 신앙의 선배들이며
내가 좋아하는 갈렙 또한
땅을 소유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도전한 것이
주여...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형통을 위해 도전하는 기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이 게으른 품성을 가진 자들을 향해 전도서 기자는
전10;18에서
[게으른 즉 서까래가 내려 앉고 손을 놓은 즉 집이 새느니라 ]
여러분..게으름 중 가장 무서운 것이 영적 게으름입니다.
어떻게 되겠지...하는
무사 안일함과 태평한 그 마음과 그 태도가 바로 영적 거품입니다.
계시록3;16절도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아멘만 하고 그 뒤끝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아멘만 하고
실천 순종하지 않으면 바른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살면서 열심히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하며
말씀을 들었으면
말씀에 도전으로 적용해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십니다.
그냥 가만히 있고 잠만 자면 서까래는 내려 않고 지붕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것으로 끝나서는 머리만 커집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살펴보니까
예수는 지금 게네세렛 호숫가에 서 계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서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항상
우리를 향해
서서 보시고 기다리는 모습으로도 해석됩니다.
서서 기다리시는 일은 하나님의 열심이고 우리를 향하신
뜨거운 사랑이십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기다리게 하지 말고
속히 그 앞에 나아와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주님은 게네사렛 호숫가 무리 앞에
서서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서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게네사렛 호숫가가 시온성이여야 하고
이곳에 예수님께서
서서 기다리고 계심으로 적용하게 되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도전해야 할 곳은 또 어디입니까?
누구와 함께 서 있습니까?
여러분은 누구와 무엇을 하며 서 있습니까?
이제 남은 자들인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을 적용하며
도전해야 합니다
그 일의 도전을 위해
오늘 이 시간은
잠시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통성으로 부르짖어 기도해도 좋고 작은 소리고 해도 좋습니다
들은 말씀을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속에 품은 도전의 생각들을 기도로 선포하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