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마우스(Mickey Mouse)
<김광림>님이 지은 <쥐>라는 시가 있습니다. <쥐>라는 시 제목이 낯설은(?) 제목이라도 우리 삶을 생각해보게하는 시이기에 적어 봅니다.
쥐
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것도
만드셨지요
야음을 타고
살살 파괴하고
잽싸게 약탈하고
병폐를 마구 살포하고 다니다가
이제는 기막힌 번식으로
백주에 까지 설치고 다니는
웬 쥐가
이리 많습니까
사방에서
갉아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신 헐뜯고
야단치는 소란이 만발해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운 세상을
살고 싶도록 죽고 싶어
죽고 싶도록 살고 싶어
이러다간
나도 모르는
어느 사이에
교활한 이빨과
얄미운 눈 깔을 한
쥐가 되어 가겠지요
하나님
정말입니다.
위의 시는 사람들의 탐욕됨을 쥐에 빗댄 시라 보여집니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고 심지어 보기만 하면 잡아 죽여 버리는 짐승 중에 한 짐승이 쥐일 것입니다.
쥐는 가축을 제외한 짐승 중에는 가장 사람들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 쥐입니다. 이 얄미운 것이 죽자 살자 사람들 곁에 살고 싶어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 곁에 살면 편안하게 의식주가 해결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한몸 잘 만 숨기고 살면 먹을 것은 항상 주변에 있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합니다. 굳이 털 외투를 입지 않아도 사람사는 집안 어디엔가 숨어 살면 따뜻합니다. 비가와도 눈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까치처럼 제비처럼 집짓는 고생을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 구석 저 구석이 전부 그들의 방이고 운동장이고 주방이고 거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 곁에 살면 무엇보다도 천적들의 두려움으로 마음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사는 집 안에 살면 뱀이나 매나 독수리의 먹이감이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뱀은 집주인이 가만 두지 않습니다. 도망 갈 필요도 없이 집 주인이 뱀을 때려죽이는 것을 구경만 하면 됩니다. 매도 독수리도 사람사는 집에는 찾아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쥐들에게는 사람사는 집안 어디엔가 살게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파트 당첨>이 된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쥐는 사람들을 고맙게 생각하고 적어도 사람들에게 해(害)를 끼치지는 말아야 염치가 있는 짐승일 것이지만 쥐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성가신 존재입니다. 야금야금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짐승입니다.
이규보가 쓴 쥐를 쫓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주서문>(呪鼠文)에는 쥐가 얼마나 성가시고 피해를 주는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집에서는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엔지 쥐가 떼르 지어 함부로 날뛰게 되었다. 이에 글을 지어 이 못된 것들을 꾸짖어 내치고자 한다.
대개 사람의 집안이라는 것은 그 할애비와 할미로 어른을 삼고 주위에서 이를 돕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돕는 데도 맡은 바 구실이 따로 있어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계집종이 맡고, 소 치고 나무하는 일은 사내종이 맡는다. 아래로 육축(六畜 : 말, 소, 양, 돼지, 개, 닭)에 있어서도 그 직분에 각각 다름이 있으니, 말은 사람을 태우는 일을 맡고. 소는 무거운 것을 끌거나 논을 갈고 밭을 가는 일을 맡고 닭은 울어서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고, 개는 짖어서 문을 지켜 도둑을 막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 그 맡은 바 직분으로써 주인을 돕는 것이다.
이제 너희 쥐들에게 물어보마!
너희가 맡은 구실이 무엇이냐? 누가 너희를 이 집에서 살게 했으며, 대체 어디서 생겨나 이렇게 번성했느냐? 구멍을 뚫고 도둑질을 하는 것은 오직 너희만이 하는 짓이다. 무릇 도적이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인데 너희는 어찌 집 안에 살면서 오히려 주인을 해치느냐?
너희는 구멍을 많이 뚫어 이방 저방 들락거리고, 어두워지면 미친듯이 날뛰어 밤새도록 시끄럽게 군다. 사람이 자리에 들면 더욱 방자해지고, 한낮에도 버젖이 돌아다니며, 방에서 부엌으로, 마루에서 방으로 내닫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신에게 바칠 음식도 너희가 먼저 맛보니, 이는 신을 능멸하고 신은 안중에 없다는 뜻 아니냐?
단단한 것도 능히 뚫어 상자나 궤 속에 잘 들어가고, 방 구들을 뚫어 방구석에 연기가 새게하며, 사람의 것을 훔쳐 먹고 마시니 이는 곧 도적 아니냐? 너희도 배를 체워 먹고 살기 위해 그렇게 하겠지만 그러나 무슨 일로 의복을 마구 갉아 입지 못하게 만들고, 실어 물어 뜯어 비단을 짜지 못하게 하느냐?
너희의 이 잔폭(殘暴)을 막는 것에는 고양이가 있다. 나도 고양이를 기를 줄 몰라서 기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이를 기르지 않았겠는가? 천성이 자애로와 차마 너희에게 악독한 짓을 가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가 나의 이 덕성을 소흘히 생각하여 함부로 날 뛴다면, 너희를 응징하여 후회케 할 것이니 당장 내 집을 피하여 멀리 물러가라. 그렇지 않으면 사나운 고양이를 놓으리라.″
이규보가 쓴 이 글에서 우리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 살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퍼부을 능력이 없어 우리가 하나님 뜻되로 살지 않고 살아도 오늘도 무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멸망받는 것이 본심이 아니 시기에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시고 참으시는 것입니다.(벧후3:15)
이제 죄를 더 이상 체울 공간이 없어지게되는 그날에는 하나님이 사나운 심판의 고양이를 풀어놓으실 것입니다. 심판의 대접을 하나 하나 부으실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전에 지금 우리들은 귀여운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미키마우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함)가 됩시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하나님께는 기쁨을 드리는 미키 마우스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