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실이 뭉툭한 손가락에 닿아 짜이고 엮이며 수려한 꽃들이 피어난다. 벌과 나비, 잠자리도 나불거린다. 명주실에 스며든 색이 곱다.
중요무형문화재 22호 매듭 기능 보유자 김희진(율리아나, 74, 한국매듭연구회 회장)씨가 씨실과 날실로 엮인 그의 45년 매듭인생을 한 권의 책 「아름다운 우리 매듭」(그래픽넷, 213쪽)으로 펴냈다. 매듭을 주제로 펴낸 네 번째 저서다.
"많은 이들이 가까이 두고 읽으며 우리 전통매듭의 미에 흠뻑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 저서"라며 아쉬운 미소를 보이는 김씨는 30년간 한국매듭연구회를 이끌며 수십 차례 일반인과 수도자를 위한 매듭강좌를 열어왔다. 지난해는 전국 국립박물관을 돌며 작품을 통해 전통매듭의 미를 선보였다. 한국 전통매듭이 올바르게 계승돼야 한다는 사명감과 매듭이 섬유예술로 거듭나야 한다는 포부에서다.
그의 매듭인생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각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우리나라 초대 매듭 기능 보유자인 정연수(1904~1974)씨를 만나 매듭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정씨에게 매듭의 기본을 배운 김씨는 장인 4명을 찾아다니며 실을 염색하고 끈 짜는 법, 술 만드는 법까지 전수받았다.
그는 "마치 불 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비인 양 겁없이 매듭의 세계로 뛰어들었다"(208쪽)고 당시를 회고한다.
그는 염색장, (끈을 짜는)다회장, 매듭장이 하는 모든 일을 전수받아 매듭의 맥을 이었다. 몇 년 후, 김씨는 매듭을 가르쳐준 장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인들에게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 그의 손은 조선시대와 현대의 매듭을 이어온 다리다.
「아름다운 우리 매듭」에는 다회와 매듭을 향한 열정,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갈피갈피 묻어난다.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역사 속 매듭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풀어놨다. 또 명주실을 염색하는 방법과 끈 만드는 작업, 36가지 매듭의 종류와 매듭 맺기법도 자세히 실었다. 매듭에 대한 기초가 없는 이들도 쉽게 배우도록 매듭 만드는 손 사진을 단계별로 찍었다.
그뿐만 아니다. 그가 1984년 한국 103위 성인 시성식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 봉정한 곤룡포 제의도 엿볼 수 있다. 당시 그는 홍색ㆍ백색ㆍ황금색 제의에 매듭 십자가를 달아 봉정했다. 그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한 노리개와 '국새(國璽)의 인수' 등 전통작품과 창작작품도 수록돼 있다.
책 전반에는 오늘의 그가 있기까지 손 끝에서 손 끝으로 매듭을 전수해준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녹아있다. 매듭에 대한 논평과 이해인(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 수녀가 쓴 축시 '아름다운 손이여'도 친필로 담았다.
그는 "매듭을 만드는 긴 과정 동안 매번 호흡을 멎을 듯한 순간의 고비가 찾아온다"며 "기도가 함께 녹아 들어가야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그가 마지막에 쓴 글귀가 눈에 띈다. "매듭은 나의 엄한 스승, 나는 축복받은 장인. 이제 그만 은발(銀髮)을 쓰다듬으며 안도의 숨을 쉬어도 되리라"(211쪽).
이지혜 기자bonais@pbcc.co.kr
▨ 사진으로 감상하는 전통 매듭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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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대'(겉옷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띠), 197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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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주', 199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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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장 주머니', 19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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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귀주머니', 1966ㆍ7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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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연화등 삼작 노리개',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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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벌감개 매듭 목걸이와 귀걸이ㆍ브로치', 1994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