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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4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대림절 네 번째 주일 설교
제목 : 성탄절이 주는 ‘특권’에 대하여!
본문 : 요한복음 1장 12절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새번역>
우리는 제법 자주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곤 합니다. 혹시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냥 앎의 영역에서 처음부터 한 단어였던 것처럼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신앙의 고백으로, 믿음의 영역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부르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녀’여야만 하는 전제 조건이 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죄인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조금의 권한도 없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영역의 일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그 호칭은 언제부터 허락되어진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늘 요한복음 1장 12절이 우리에게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예수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권리가 주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권리는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특권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마음껏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친자이고 싶지만 우리는 양자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장 15절, 개역개정>
그래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지만, 사실 ‘아버지’라고 바로 부를 수 있는 상황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자가 되긴 했지만 어색한 것이 사실입니다. 양자가 되긴 했지만 쉽사리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만큼의 친근감도 아직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경험이 아닌 머리로만 아는 이들에게는 좀처럼 ‘하나님 아버지’라는 단어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 특권을 받았지만 누릴 줄 아는 은혜가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랑에 대한 발견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언제부터 대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편하게 부를 수 있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쉽습니다. 바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의 의미를 깨닫고, 성탄절을 제대로 보내게 되면서부터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우리’라는 양 아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친 아들을 양 아들의 위치와 자격으로 바꾸시려고 한 결심이 이 땅에 이루어진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이 성탄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완전히 호칭을 바꾸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양자이지만, 당연히, ‘아버지’라고 하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을 경험해야 하는 날이 이 ‘성탄절’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이런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친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양아들을 살리려고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 새번역>
정말로 이렇게까지, 놀라운 방법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성육신! 독생자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화목 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실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려고 안달이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로부터 ‘아버지’라는 호칭을 듣기 위해 더 노력하고 계시고, 최선을 다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인지, 사실 말도 안 되는 기적 같은 은혜인지 직접적으로 와 닿으려면 우리는 이 시간 손양원 목사님을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쓰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리스도 사랑의 실천자’라고 읽고 싶은 분이기도 합니다.
광복은 되었으나 좌익과 우익의 사상 분쟁이 계속되면서 혼란했던 광복 후의 시기 1948년 10월 19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 때 이른바 여수순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좌익 학생들은 기독교는 친미적이라 하여 기독교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손동인과 손동신이 안재선이라는 청년에 의해서 살해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지어졌으며 자신의 목회지이기도 했던 애양원에서 이인재 목사를 강사로 부흥회를 개최하던 중 이 소식을 손양원목사님이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흥회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티도 내지 않은 채 잘 마친 후, 홀로 비통한 가운데 며칠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긴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바로 두 아들을 죽인 범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한 후 지체 없이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었던 안재선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범인을 취조하던 경찰에게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하자 피우던 담배까지 떨어뜨리며 “손양원 목사! 손양원 목사!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안재선을 자신의 양아들로 거두게 됩니다.
그 후 거행된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손양원 목사님은 ‘아홉 가지 감사’를 고백하였는데 이는 유명한 일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에게도 오늘 우리처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었고,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은 원수보다도 미웠을 것입니다. 그만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 고뇌가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손양원목사님은 자녀와 가족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사랑을 몸소 실천해 보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몸소 보여 준 실천이었습니다.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오히려 아들로 받아들이고 예수를 믿게 한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던 목사였습니다. 그 아홉 가지 감사 중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안재선에 대한 감사의 글도 있습니다. 바로, 일곱 번째 감사입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손양원 목사의 9가지 감사 中>
어떻게 손양원 목사님은 이런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었을까요?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어떻게 양아들로 삼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이 먼저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던 손양원 목사님이셨던 것입니다. 부끄럽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아직 저는 그런 사랑의 실천까지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점점 더 그런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얼마나 생각하시는지, 점점 더 그 사랑이 내려와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원수였던 나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하여 독생자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셨던 하나님 아버지! 그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특권을 생각하니 그래서 이 성탄절이 더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우리에게 중요한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로 가장 깊게 느낄 수 있는 시작지점이 바로 성탄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특권을 모든 인간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그래서 이 성탄절에 더 깊이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통해 복음을 더 널리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분명하게 다시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자녀입니다. 이제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특권을 부여 받은 자는 영원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잃어버릴 염려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 자녀가 되는 길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토록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결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먼저 떠나실 것이었다면 먼저 이런 특권을 주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먼저 이런 특권을 제안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 새번역>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상관하지 않고 ‘우리가 먼저’ 성탄절은 자신이 만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날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맞아 들여야 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예배자 여러분! 이 시간 예수를 맞아 들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접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내 마음에 오시옵소서! 믿음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 이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그 이름! 예수!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 새번역>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죽음과 작별하게 됩니다.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기왕이면 이 특권을 모두 받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알아보고, 맞아들이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탄절은 바로 이 놀라운 은혜를 내가 먼저 경험하는 날이 되어야 하고, 내가 경험한 후에 찾아오는 성탄절들은 그 은혜가 더 많은 이들에게 흘러가도록 내가 통로가 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만 가지고 있어야 할 특권이 아니라, 누구라도 만나고 소유해야 할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신이라는 것들이 하늘에든 땅에든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실 뿐입니다. 만물은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한 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5~6절, 새번역>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는 한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이름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성탄절이 우리에게는 새삼 은혜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성탄절을 기점으로 다시금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신앙으로 회복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 속에서 홀로 방황하는 외딴 섬 같은 방랑자가 아니라 분명한 아버지를 모시고,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걸음을 걸어갈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잊지 않는 우리가 되길 마음 다해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왜 성탄절인지 그 특권을 보여주고, 나눠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 새번역>
결단 찬양 -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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