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진데, 니들 지금 어디쯤 오고 있냐?"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흥분된 아버지의 목소리에
"아마 10분 후면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지금 막 오산 톨게이트 빠져나가고 있는데요, "
"알았다, 상 다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운전 조심해서 와라"당신 할말만 하시고 전화 뚝...
아버지 생신이 음력 6월 14일이라 매년 불볕 더위 속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이맘때면 땀 흘린다.
온도가 높아 음식이 빨리 상하니 많이 만들 수도 없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없으니 애 먹는다.
새벽부터는 다행히 비도 그치고, 해가 반짝 나서 바람도 불고 서늘해서 날씨도 한 부주를 했다
김치와 밑반찬 여러 가지를 어머님이 미리 준비해 놓으셔서 전날 동생들은 갈비와 전 몇 가지만 했다.
나는 새벽 6시에 닭갈비집에 들러 미리 주문한 닭갈비와 야채를 스치로폼에 가득 담아왔다.
전기 프라이팬에 지글지글 익는 닭냄새가 진동을 하고 떡 사리와 우동 사리를 넣으니 아주 푸짐했다.
갖가지 맛있는 나물과 전, 갈비는 먹지들은 않고 모두 닭갈비 먹으려고 프라이팬 앞으로 모여들었다.
역시 춘천 오리지널 닭갈비를 공수해와 맛이 틀리다며 나보고 다음부터는 아예 닭갈비 가져오란다.
"니가 닭갈비 가져오니 여러 가지 반찬이 필요가 없구나!"하시며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셨다.
거하게 차린 아침상을 물리고 쉬려는데 어머님이 곧바로 복분자 술병을 들고 식탁으로 오셨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니 엄마가 아마 산을 누비며 한 가마니는 땄을 것이다"라고 은근히 자랑하신다.
큰 유리병 15개에 복분자술,복분자쨈,복분자에 꿀을 넣어서 만든 복분자 쥬스등..
도고 갈 때 잠깐 들렀을 땐 무릎이 진물이 나고 여간 고생을 하는 게 아니였는데 이제 조금 나으니
산을 누벼 딸기 딸때 가시도 많이 찔리고 아플텐데,게다가 밭농사일 을 혼자 하시니 속이 상했다..
"엄마는 아프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야, 뭐하려고 그런 것을 힘들게 따러 다니세요"라고 했더니
"다 해서 자식들 주려고 하지, 아버지하고 내가 먹어야 얼마를 더 먹겠냐? 약이라 생각하고들 먹어"
자식들이 와서 처음 개봉한다며 유리병을 하나를 또 하나 열어 엄마를 생각해서 맛있게 먹으란다.
붉으스레 우러나와 복분자주 색깔이 너무 곱고 예뻐 천에다 염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이 어제 저녁에 큰 컵으로 두컵을 마셨는데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좋다며 먹어 보라고 권한다.
동생은 내가 술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복분 자술은 괜찮다며 한잔 가득 따른다.
몸에 좋다니 먹어야겠어서 한잔을 입에 살짝 갖다대니 딸기에 달콤한 향과 맛이 너무 좋다.
입에 달고 맛이 좋아 세잔을 연거푸 마시니 취기가 조금 오르고 몸에 힘이 풀려서 웃음만 나온다.
7남매라도 각자 결혼해서 사니 명절이나 생신 때가 아니면 한자리에 모이기가 아주 힘들다.
다들 수도권에서 가까이 살아 전화 연락들은 자주 하지만 일을 갖고 있기도 하고 바빠서.....
나이를 먹으니 호랑이 같이 무서워 벌벌 떨던 아버지와도 한자리에서 술을 먹고 세상이 많이 좋아졌나?
아버지와 어머님은 부모님들이 혼사를 결정하는 바람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혼을 했다.
재산 없어도 양반 집이라 외할아버지께서 좋아하셨다는 데, 얼굴도 모르고 온 시집살이가 매서웠단다.
첫딸인 나를 낳았을 때 할머니는 뭔 기지배가 울기만 한다며 노골적으로 딸 낳은걸 싫어하셨단다.
집안이 일어 나려면 큰아들에 큰자식은 꼭 아들이어야 된다며 큰며느리인 어머니를 구박하셨단다.
고모들이 광에 있는 쌀 항아리를 깼을 때도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모아 우리 며느리가 독을 깼다
광고하시고, 직업 군인이라 강원도 진부령에 나가있는 아버지가 집에 들러도 함께 자지 못하게 하셨다.
큰아들이라고 양념 단지까지 따로 두고 키웠더니 지 계집 밖에 모른다며 질투를 하셨단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작은 아버지께서도 엄마 보고 나가라며 양동이로 물을 길어 방바닥에 쏟았다.
다행히 할아버지께서는 아가야 분가 할때까지만 꾹 참고 견디라며 어머님을 위로하셨다.
큰며느리인 어머님을 귀하게 여겨 아껴주시고 무관심한 아버지 대신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간경화로 세상을 하직하시기 전까지 어머님의 극진한 간호속에서 눈을 감으셨다.
자라면서 어머님이 할아버지께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들은 어머님을 존경하게 됐다.
인정이 많아 돌아 다니는 정신병 여자를 씻기고 새옷을 입혀 보내기도 하고 아랫집에 없이 살던
인자네 집에 고추장, 된장도 퍼주고 참외도 따가지고 오면 아버지 몰래 불러서 삼태기에 담아줬다.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속상하면 이불 속에서 나를 붙들고 우셨단다.
내가 결혼하고 사위밖에 모른다며 아버지에게 대들다가 50이 다 되어서도 매를 맞던 작은 아버지.
큰집은 잘사니 아무것도 안사가도 된다며 명절날 아침마다 빈손으로 오셔서 바리 싸간 작은 아버지
술을 좋아하셨서 그런지 중풍으로 쓰러져10여년 고생을 하셨다.
재산 문제로 의가 안 좋았던 터라 우리도 관계가 소원했는데 위독하시다 해서 갔더니
자주 찾지 않아서 서운해서 그러셨는지 한동안 화를 내시고 토라지셨다.
동생들과 몇이서 미리 모은 돈을 두둑히 드렸더니 얼른 돈은 받으시고 얼굴이 환해지셨다.
죽기 전에 당신이 쓰지도 못할 돈이 뭐 그리 좋은지!
20년전 산이 건설회사에 팔려 꽤 많은 돈이 나왔을 때도 작은 아버지와 막내 고모는 변호사를 만났다.
얼마간에 돈이라도 받아낼 심산이였지만 이미 자기들도 부모로부터 분배받아 권한이 없다고 했단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도 아버지는 덤덤해 하시고 어머님이 불쌍하다고 대성 통곡하셨다.
영구차가 살던 우리 집 한바퀴 돌아가는데도 어머님은 가장 좋은 과일과 고기로 준비하라고 시켰다.
니네 삼촌은 남자답고 능력이 있는데 작은 엄마가 기를 못 세워줘 출세를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 하셨다.
이번에 어머님이 막내 고모가 작년 아버지 생신에 왔는데 먹을 것도 하나 없고 차린 게 없다고 말을 했단다.
나하고는 나이가 별로 지지 않아 결혼 전까지 같이 살았고 제일 친하게 지낸다.
어머님이 가르치고 결혼도 시키고 당신 자식들 크기까지 쌀과 먹거리를 거의 대 주셨다.
애도 집에 와서 낳아 상관도 다 해주고 정성껏 자식까지 보살펴 줬것만 여유롭게 살아서 배가 아픈지!
"아니 엄마는 일흔이 넘었는데도 그 나이에 시누들 눈치보고 살아요? 우리집일은 신경 끊으라고해"
순간 화가 나서 내뱉은 말에 역성 드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런지 어머님은 무촉 좋아라 하셨다.
성격이 강하고 바른말을 잘하는 내가 크면서 어머님에게는 큰 바람막이로 큰 역할을 하는것 같다.
어머님은 니네 고모들이 점심때 올지 모른다며 이것저것 또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엄마, 지금까지 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해요,고모는 집에서 뭐 별거 먹어? 사람 먹는 거 다 같지"
"그래도 먹을 것 있느니 없느니 뭐라고 떠들어대면 어떻하니?" 내참,어떻하긴 뭐 어떻게 하라고 하지"
언제나 어머님은 큰 고모님이 오시면 당황하시고 두 손을 모으고 허리 굽혀서 공손히 절을 한다.
어머님과 별로 나이도 차이 나지 않고 같이 늙어 가것만 왜 시누가 그렇게 어려워 절절 매는지?
볼때마다 속상하고 마음이 좋지않아 어머님께 이야기 하면 "그래도 니네 큰고모인데"웃으신다.
다들 갈길이 바빠 흩어져 차에 오르기전 어머님은 손수 기른 토종닭을 두 마리씩 넣어 주셨다.
복분자술에 복분자 음료.찹쌀과 콩,야채,남은 반찬등 뒤 트렁크 가득가득 실어 주셨다.
"이렇게 주는것 이것도 엄마 살아 생전이다! 아버지, 엄마 살아 있을 때 너희가 부지런히들 와"
차가 안보일때까지 손 흔드시는 어머님을 뒤로 하고 오는데 한쪽 가슴이 아린 까닭은 무엇인지?
애들하고 살기 바쁘고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어머님께 소홀한 내 마음이 들켜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