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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의산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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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자료실 스크랩 소토왕골`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그남자 추천 0 조회 162 16.08.04 20: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소토왕골'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 가을을 남기고 오른 황홀한 하늘벽

 

 ◇ 첫 피치를 오른 조경래씨가 프렌드로 확보한 후 루트 파인딩을 하고 있다.


‘알피니즘에서 등산이란 높이를 추구하며 모험에 도전하는 불확실성의 행위’라는 말은 존경하던 선배님들이 늘 내게 들려주던 등산이념에 대한 간결한 표현이었다. 그동안 난 이 등산이념을 행위로 실천하려 했지만 게으름과 자만심에 빠져 그저 모방과 다람쥐 쳇바퀴를 돌렸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편중되고 모순된 내 등산이념에 탈출로를 찾게 된 것이다. 적어도 이 사건은 내 자신에게 있어 너무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보면 사고 싶은 ‘충동구매’라고나 할까? 난 지난 여름 설악산 소토왕골 하늘벽에 개척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등반거리 150m·3피치-인공등반 난이도 A4)’를 자유등반으로 오르고 싶다는 충동을 줄곧 받아왔다.

 

 이유는 여러 피치에 이르는 등반거리와 자유등반의 가능성, 적당히 어려울 것 같은 자유등반 피치 또 등반자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밌고 안전한 등반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지난 여름 난 3일간의 여유를 갖고 자유등반을 계획했다. 쉽게 의기투합이 가능한 채미선(정승권등산학교 강사)과 세로토레을 함께 오른 조경래(골수회)가 함께 했다. 우린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미선이가 선등을 하고 경래는 확보자로 그리고 난 고정 로프를 이용해 루트를 만드는 등반 및 작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3일간의 기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짧은 등반 일정과 불안정한 바위지대에서 일어난 낙석으로 인해 추락과 부상을 당하고 2피치까지 오른 후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그 후 4개월 동안 난 영화 촬영과 등산학교 교육, 각종 행사 등으로 여유를 찾을 수 없었고 등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10월 말 4일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함께 등반할 친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것저것 구색을 맞추다가는 기회를 놓칠 것 같아 다시 경래와 둘이서 일을 꾸미기로 했다. 겨울 채비를 서두르는 설악은 단풍이 산 밑자락까지 내려와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품격을 유지해 좋았다. 가을 설악을 만나기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더욱이 한적한 야영장에 앉아 마시는 찬 소주 맛은 깊은 가을의 정취를 더욱 느끼게 했고 피부에 부대끼는 쌀쌀한 바람도 싫지 않았다. 우린 깊은 소주잔 속에 내일의 등반계획을 한없이 담아내며 깊어만 가는 가을 설악의 밤을 아쉬워했다.

 

가을 설악의 새벽 공기는 신선함을 더 했고, 소토왕골의 고요함은 거친 호흡을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단풍나무에서 떨어진 붉은 잎은 계곡의 아름다움을 더욱 붉게 물들여 놓았고, 청명한 하늘로 드넓게 솟은 소토왕골의 하늘벽은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듯 잔잔하게 덮여 있었다. 지난 초여름 녹색의 향연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40m 거리인 1피치에 로프가 걸려 있었다. ‘로프를 가져가지 말라’는 증표로 건 듯한 ‘FAMILY ALPINE CLUB’이라는 산악회 기가 함께 걸려 있었다. 다시 등반을 하러 오겠다는 의미겠지만, 어떤 등반 방식으로 이곳을 오르려 했는지 몹시 궁금했다. 1피치가 너무 길어 자유등반을 할 수 있도록 2피치로 나누었기에 이들이 인공등반을 하려고 했다면 내가 자유등반 방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실망을 안겨주었으리라는 미안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2피치까지 자유등반으로 올라 로프를 고정시키고 짐을 끌어올렸다. 경래가 주마링을 하는 동안 홀백 안에 있는 인공등반 장비를 꺼내 주섬주섬 챙겼다. 실로 오랜만에 해보는 인공등반이라 그런지 장비가 손에 익지 않아 서툴렀고 어색함도 느낄 수 있었다. 2피치가 가장 어려운 인공등반 구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난 초등할 때 보다 더 많은 장비를 사용했다. 초등시 심하게 추락했던 오버행 구간은 두려움을 가득 안은 채 무사히 넘어섰지만, 한편으론 이 구간을 자유등반으로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 의문점으로 남게 되었다. 오랜만에 해보는 인공등반은 어려움이 더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지체되었다. 게다가 자유등반의 가능성까지 엿보려니 집중력은 자꾸 흐트러졌고, 등반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칠맛 나는 무시무시한 A4 구간이었다.

 ◇ 두 번째 피치를 후등으로 오르고 있는 정승권씨. 4일만에 온사이트 완등을 기록했다.


- 3피치 루트를 7피치 자유등반으로

등반 로프와 홀링용 로프를 고정시키고 하강을 했다. 경래가 확보물을 회수하는 동안 홀링용 로프를 이용, 동작이 가능한 쪽으로 볼트를 설치해 나갔다. 자유등반이 불가능한 부분은 인공등반 선을 조금 벗어나 우회해야 했고, 볼트의 수를 줄이기 위해 설치 거리를 되도록 멀리 잡아 나갔다. 50m의 등반거리를 2피치로 나누어야 했기에 우린 알맞은 피치 종료지점을 찾아야 했다. 시간은 내 마음과 달리 가는 줄 모르게 빨리 지나갔다. 햇살은 이미 저녁노을이 배어들기 시작했고, 장비 회수를 오래 전에 마친 경래는 석양빛에 그을리며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마지막 볼트를 설치할 때쯤 땅거미는 내 발 밑에 와 있었다. 인공등반 1피치 구간을 자유등반으로 변형시켰지만 결국 2피치를 완성한 셈이고, 전체 4피치의 자유등반 구간을 만든 셈이다.


마지막 남은 한 피치의 인공등반 구간도 하루가 꼬박 걸릴 것 같았으며, 내일 루트가 마무리된다면 자유등반 시도는 모레가 돼야 가능할 것 같았다. 우린 장비를 남겨둔 채 땅거미가 깊게 드리운 계곡으로 하강을 시작했고 어둠이 밀려온 계곡길을 따라 야영장으로 하산했다. 그 후 피곤함을 안은 채 늦은 반주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도 날씨는 어제처럼 환했고 푸른 하늘이 드리워졌다. 우린 어제의 등반으로 인한 피곤함과 뻐근함이 싫지 않았으며, 배낭을 메지 않고 오르는 계곡길은 상쾌하기만 했다. 늘어진 로프를 따라 주마로 오르며 어제 만들어 놓은 자유등반 선을 따라 동작을 그려보았다. 다만 ‘부분적으로 동작이 이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만이 주마링을 힘들게 했다.


마지막 피치의 인공등반 구간은 어제의 등반 구간보다 한결 수월했다. 자주 훅을 사용할 수 있었고, 부분적으로 크랙이 발달돼 있어 등반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이 부분이 전체 피치 구간 중 자유등반 구간으론 가장 쉬울 것 같았다. 따라서 볼트의 수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을 햇살은 서늘한 바람결과 함께 바위에 부딪치며 신선함을 주었고 망치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지며 메아리쳤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크랙에 캠이 걸렸을 땐 모든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가슴속에 물밀 듯 세차게 밀려들었다. 이제 오늘 마지막 남은 일은 어려움과 두려움이 없는 루트를 만드는 작업뿐이다.

 

초등 이후 두 번째 올라온 정상이지만 그 황홀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밑으로 편안한 하강을 시작했다. 이어 경래가 장비를 회수해 나아갔고, 곧이어 볼트 작업을 시작했다. 적당한 곳에 볼트를 설치했고 다른 피치들보다 크랙과 홀드들이 풍부해 볼트 수를 줄일 수 있었다. 왜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만 지나가는지 정상에 마지막 볼트를 설치할 때쯤 하늘벽엔 땅거미가 밀려들고 있었다. 우린 땅거미를 밟으며 쫓기듯 하강을 해야 했지만 내일의 시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었기에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있는 듯 하산길은 황홀하기만 했다. 설악의 밤은 어제처럼 초롱초롱한 별빛 속으로 잔잔히 물들어 가고 있었다.

 ◇ 설악산 소토왕골에 위치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소토왕골과 노적봉 계곡이 갈라지는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모두 7피치로 이루어졌다. 전 루트는 모두 자유등반이 가능하며 등반길이는 150m다. 등반자는 확보용 장비로 프렌드를 4∼7호까지 1개 이상씩 준비해야 한다. 등반시간은 2인 기준 4시간이며 퀵드로 10개면 된다.


하늘이 주는 축복인 듯 오늘도 변함이 없이 날씨가 맑았다. 첫째 날 장비 데포한 것까지 계산한다면 네번째 등반이다. 점점 짙어져 가는 늦가을 풍경의 소토왕골 계곡이 주는 쓸쓸함은 잠시 후 이어질 자유등반의 화려하고 활기찬 몸짓에 대한 열기와 초조함으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소토왕골에서 가장 웅장하고 거친 곳인 하늘벽은 드넓은 운동장 같이 느껴졌다. 우리는 그 벽 밑에 로프와 장비들을 풀어 헤쳐 놓고 등반 준비를 시작했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받고 난 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란 기대에 찬 어린아이들처럼 활기에 차 있었다.


누가 선등을 하던 또 서로 번갈아 오르던, 150m의 7피치에 달하는 루트를 온 사이트로 오르고 싶었다. 반질반질하고 까다로운 슬랩 코스가 아니기에 더욱더 가능하리란 자신감을 가졌다. 물론 완전한 온사이트라고는 할 수 없지만 깨끗하게 추락 없이 오르고 싶었다. 나는 두 번째 피치까지 등반을 해보았기에 경래가 선등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것이 4일간 노고를 아끼지 않은 그를 위로해 주는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경래는 자신이 두 번째 피치까지 선등을 하겠다며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린 서로의 바람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경래는 군데군데 잡풀이 놓인 첫 피치를 신중하게 등반하기 시작했다. 간혹 머뭇머뭇 거리기도 했지만 1피치의 어려운 구간을 잘 해결해 나갔다.

 

첫 피치와 두 번째 피치를 연이어 선등한 경래는 우리의 온사이트 성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3피치부터 나에게 선등을 넘겼다. 난 내가 원했던 피치에서 선등의 기회가 이루어져 좋았다. 한 동작 한 동작씩 이어지는 등반 순간은 통쾌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동작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온사이트 등반이 실패로 끝날뿐더러 다시 시도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3피치는 바위의 날개를 잡고 레이백으로 오르는 크랙이며 가장 등반이 어려운 4피치는 크고 작은 홀드들이 너저분하게 많아 동작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5피치는 작은 오버행 턱이 있어 동작이 쉽지 않은 곳이며 6피치는 전체 피치 중 가장 난이도가 쉬운 5.7급이었다. 페이스에서 크랙으로 이어지며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마지막 7피치를 지났다.

 

소요 시간은 모두 4시간. 다행스럽게도 이 모든 피치들을 추락 없이 올라설 수 있었다.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황홀함이었다. 이 황홀함의 이유는 내가 계획한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는 것과 그리고 등산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는 것이다. 나는 이 등반을 마치고 난 후 점점 단절되고 있는 근대등반기술과 현대등반기술을 접목시킨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근대등반과 현대등반의 대립, 그 대립을 변화시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정통성을 확립하고 신기술을 포용해 미래 지향적인 등산 행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피니즘은 그 거대함과 숭고함으로 인해 분명 종교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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