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광에 가면 불갑천이 있다
이 불갑천은 가사평야를 가르며 흘러서 서해 바다로 흐르고
그 평야의 남쪽 들판이 서강들 동편 앞뜰이다
이 들판을 바라보면서 널찍하게 터를 잡고 당당하게 서 있는 고택 하나가 있다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동간 길 2 길 83-1
마을 입구에 들어 서기만 하면 솟을 대문이 한 눈에 들어 오는데 정려각이 압권이다
바로 연안 김씨 김영이 집터를 잡고 1868년에 지었다는 직강공파의 종택으로
중요 민속 문화재 제 234 호로 지정 된
전남 종가를 대표하는 집 가운데 한 곳으로 전국 최고의 규모의 115칸의 집으로
대문과 정려각을 함께 두었고
세명의 효자를 배출해 삼 효문이 솟을 대문으로 우뚝 서 있는 " 영광 매간당 고택 " 이다
집은 사랑채와 안채를 비롯 별당, 사당, 곳간채, 중문, 마굿간, 헛간으로 이뤄져 있다.
정원과 연못도 뒀다. 사랑채는 7칸 규모다
매간당(梅澗堂), 익수재(益壽齋), 구간재(龜澗齋) 3 개의 현판이 있다
매간당은 김인택의 10 대 손 김사형(1830~1909)의 호로
산속 물가에 핀 매화를 가리키는 데
사람들이 알아 주고 말고 없이 소박하게 지조를 지키며 산다는 뜻을 품고 있으며
익수재는 11대 손 김혁기(1851~1897)의 호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오래 산다는 뜻이며
구간재는 12대손 김종관(1870~1943)의 호로
산골짝에 흐르는 작은 도랑 물도 조심하는
거북이 처럼 매사 작은 일에도 조심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주인과 집을 동일시 한 것으로는 매간당 고택이 처음이고
현판은 흥선 대원군의 큰 아들이자 고종의 형인 이재면이 쓴 것이다
매간당 고택에서 가장 상징적인 바깥 대문은
현 소유자의 14 대, 9 대, 8 대조가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
나라에서 세워 준 정려문으로 2층 누각형 대문인 " 삼 효문 " 이다
3 대에 걸친 지극한 효성을 나라에서 인정해 내렸다.
효자 세 명은 현재 종손의 14대 할아버지 김진(1599~1680) 호는 간촌으로 현종 10년 정려
9 대 할아버지 김재명(1738~1778) 호는 오은 효행으로 1899년 정려
8 대 할아버지 김함(1760~1832) 호는 신암 순조 32년 효행으로 정려
정려문은 충신 효자, 열녀등을 기리기 위해서
그 사람의 집 문 앞이나 마을 입구에 붉은 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말하는데
특히 매간당의 막새기와 와 망와 에는 삼효를 한자로 새겨 장식했는데
이 집안 만이 사용하는 삼 효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음이 가문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효자 집안에 전해 오는 일화 중에
김진 선생님 은 70 살에도 색동 옷을 입고 부모를 즐겁게 했고
부모 상을 당하자 삼 년간 죽으로 연명했고
김재명 선생님 도 부모상을 당해 시묘살이를 하는데
그의 효성에 감복한 호랑이가 나타나 다른 짐승들로부터 지켜줬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김함 선생님 은 양아들로 한겨울에 두꺼비를 구해 부모의 병을 구했다
효자 집안에 효자 가 나오고 효부도 나온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효부의 지혜도 빛났으니
종가 10 세 손 김시수의 부인 진주강씨(1809~1900)가 시 조부님께 효도하면서
길쌈으로 큰 부를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지주로 성장했고
아들 김사형(1830~1909, 호는 매간당) 으로 하여금 종택을 건축하게 했다
우리 누구나 자신의 성씨를 빛나게 하는 종친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쯤은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조상님들의 삶에 대해서 존경과 자랑스러움에 뿌듯한 마음을 가져보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 꼭 알리고 싶은 고택인 매간당 고택
지금의 세상에 이런 효자들이 있을까 할 정도로 한 사람의 효자도 어려운 데
세 사람의 효자가 나온 " 영광 매간당 고택 " 의 유래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