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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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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스크랩 산업 유산의 보물단지
무기장터 추천 0 조회 23 15.05.22 09: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정선, 태백, 삼척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산간 지역은 우리나라 근현대 산업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다.
대부분 생산을 중단한 지금, 그 수많은 탄광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리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던 광부들과 그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그 시절 산업 전사들은 어디로 갔나

 

 

20세기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근간이 됐던 석탄 산업은 21세기인 지금,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런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바로 정선 사북이다. 폐광 지역의 부활을 위해 내국인 카지노를 갖춘 대규모 리조트가 들어선 이곳에서 이제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검은 석탄 대신 전당포와 유흥업소의 번쩍이는 네온불빛이 가득한 거리를 보니 이질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그래도 덕분에 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하니 긍정적인 변화이긴 할 것이다.
이곳이 탄광촌이었다는 것은 네온불빛 사이를 지나 옛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자리에 위치한 ‘석탄역사체험관’이 증명하고 있다. 전시관은 폐광 직전까지 사용되던 탄광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당시 사용하던 물품과 샤워실, 회의 자료 등이 시간을 뛰어넘어 관광객들에게 옛 탄광의 모습을 전해준다. 열차를 타고 갱도를 따라 탄광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으며, 실제 광부로 일했던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설명도 들을수 있다.
정선의 또 다른 대표적 탄광이었던 삼척탄좌가 있던 곳도 새롭게 변해 있다. 석탄이 아닌 예술을 캐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삼탄아트마인’이라는 이름으로 변신한 이곳은 탄광에 예술혼을 불어넣어 색다른 공간이 되었다. 한편, 어두운 갱도 안에서 고된 노동으로 석탄을 캐 올리던 광부들이 고급스러운 예술 공간으로 변화한 이곳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 석탄 산업의 흥망과 함께한 도시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중심 도시는 바로 태백이었다. 한창 때는 동네 개들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제 활동도 활발했다고 한다. 한때 40여 곳을 훌쩍 넘던 탄광이 지금은 모두 문을 닫고 대한석탄공사에서 운영하는 단 두 곳만이 남아 석탄을 캐 올리고 있다. 폐광과 함께 인구가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빈집이 늘고 경제 활동도 줄어들어 예전 같은 활기는 사라지고 없다. 이런 까닭에 태백의 곳곳을 걷다 보면 산업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도시의 흥망을 느낄 수 있다.
태백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태백 석탄박물관을 방문하면 석탄 산업의 처음과 끝을 보다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입구에서는 지구의 지질 변화와 석탄의 탄생 과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있도록 진동이 전해지는 효과를 더해 관람객의 집중도와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지하 전시실로 내려가면 갱도 내부를 재현해놓은 모습도 볼 수 있다.
박물관을 나와 이번에는 진짜 살아 있는 석탄 산업의 유물을 찾아 나선다. 옛 광부 가족들이 모여 살던 마을인 상장동 남부마을이 그곳이다. 이 마을은 폐광 이후 낙후되고 인적이 줄어든 곳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화단을 정비하고 집 앞을 손보면서 분위기를 바꾸어나갔다. 여기에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 탄광 마을과 어울리는 그림을 곳곳에 그려 넣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찾아드는 마을로 변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든다.
그러나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웃음과 정에서 찾을 수 있다. 마을을 찾은 손님에게 시원한 물 한 잔, 과일 한 쪽을 건네는 마을 주민들은 한겨울 연탄보다 더 따뜻한 정을 전한다.

 


- 까치발로 위태롭게 선 사람들

 

 

태백을 여행하다 보면 주요 지점마다 굽이굽이 산길 사이로 기찻길이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태백과 정선, 영월에서 생산한 석탄을 삼척으로 옮겨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한 것이었다. 주요 탄광을 이어놓은 철도를 따라 중심가가 형성된 것은 물론이다. 특히 철암역에는 소중한 산업유산이 남겨져 있는데 바로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이다. 탄광에서 캐낸 원탄을 분리해 선별하고 좋은 석탄만 골라 기차에 싣는 작업을 하는 이 시설은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시설로, 우리나라 근대 산업사를 상징하는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역 앞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 마을은 조금 특별하다. 도로를 따라 건물을 지을 때 땅이 좁아 개천에 말뚝을 박고 그 위로 건물을 확장해서 지었는데, 그 모양이 까치발 같다 하여 까치발 건물이라 불리게 됐다. 이 작은 마을에 한창때는 영화관까지 있었다고 하니 젊은 일꾼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마을 뒤편 강 건너에서 보면, 도시락을 싸들고 탄광으로 일하러 가는 남편과 아이를 업고 배웅을 나온 젊은 아내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조각으로 서 있는데, 당시 이곳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듯하다.
이곳 역시 폐광 이후 사람들이 떠나고 폐허나 다름없게 되어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는데,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수리 후 지금은 탄광문화촌으로 탈바꿈했다. 치킨집, 다방, 음식점의 외관은 그대로 살려 보존하고, 내부 공간은 전시 공간과 체험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옛 탄광마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되살리는 한편, 좁은 건물의 구석구석마다 재미있는 전시물을 설치해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고된 광부들의 생활 터전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했던 탄광들은 몰려드는 인력을 수용하기 위해 대부분 탄광 인근에 합숙소를 지어 생활하게 했다. 동해시에 있는 ‘구 삼척개발 사택과 합숙소’는 이런 광부들의 생활 공간이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는데, 일부 주민들은 아직도 이곳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집을 지어 제한된 면적에 많은 인구를 수용해야 했던 터라 상자 같은 집들을 일렬로 쭉 늘어서게 지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생활환경도 그다지 양호하지는 않았다. 늘어선 집들을 보면 주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쟁 막사 같은 분위기다. 그래도 이곳에서 광부들은 지친 몸을 누이고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마을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우리가 없었으면 불 때느라 산에 나무가 모두 없어지고 말았을 거야. 공장은 또 어떻게 돌리고!” 하며 광부들이 산업 발전의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자부심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랑으로 우리 아버지들은 깜깜한 땅 아래에서 검은 보석을 캐 올렸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쓸모가 줄어든 석탄처럼, 그들의 노고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여행길이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 길에서 만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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