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마에 대해 크게 생각해본 적 없다
작게도 생각해본 적 없다
노래할 때처럼 입을 공연히 크게 벌려야 발음되는
왠지 우스운 듯한 느낌이 먼저 드는 하마를
그러나 올 여름에는 내내 생각했다
어릴 때 창경원에 가 두어 번 봤을까
가둔 못물을 잔득 들이켜곤 하던
커다랗게 벌어지던 입과 둔한 몸뚱이를 기억해낼 순 있다
그 하마를 스무 몇 해가 지난 이 여름에
여섯 일곱을 대하고 있다
그것도 소문으로만 듣고 있다가
내 스스로 찾아가서 데리고 오는 것이다
물론 가격표대로 돈을 치른다
창경원 그 이후 한 번이라도 하마에 대해 정말
하마는 지하방에서 꼭 필요하였다
한 곳을 골라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너무나도 물을 잘 먹어주었다
하마는 역시
신기하여 다가가 들여다 보면
습기 제거 냄새 제거 곰팡이 제거 물 먹는 하마
알록달록한 글씨들만 되풀이 되풀이 읽혔다
회사에 가 내 빈방에서 하마 몇이 저희들끼리 물 먹고 있으려니
생각하면 고소한 재미도 나고
착하다 싶기도 하여
새끼들 두고 온 어미같이
빨리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하고
돌아와 옷장 속 하마의 물 먹은 높이가
휘익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즐겁기도 하고
그저 그 높이면
말을 잘 안 듣네 이름만 하만가
어쨌든 내가 하마랑 좀 재미있게 지내려면
내 지하방에선 자꾸 물이 나오주어야 하겠고
그러나 갈등이라면
눈을 뚱그렇게 치켜든 철모르는 하마를
벽장 속에 싱크대 밑에서 물 먹어주느라 애쓴 하마를
쓰레기에 뭉쳐 계속 내쳐야 하는지
창경원 못물 속 바위에 기어올라
한낮에는 늘어지게 하품도 할 줄 알았던
소풍 때 아이들이 둘러서서 쳐주는 손뼉도 받았던 하마를
동물의 왕국으로 돌려보내고 그만 데려와야 하는지
나는 지하방에 이사온 후로
갑자기 하마에 대해 별스런 생각이 많아졌다
첫댓글 우리 독서회의 '청량월보살'님이 바로 '이진명 시인'입니다. 근래, 무슨 생각에서인지 몰라도 집사람이 집에 있는 이진명시인의 시집들을 빼서는 다시 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는데,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 마자, 하는 말이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라는 시집에서 백미(白眉)는 '물먹는 하마'다. 당신, 한번 만 읽어보라'고 권진을 해오는 것입니다. 읽어보니, 이 시가 좋습니다. 좋은 시는 여기 올려야지요. 그래서 올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시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