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그녀들’을 만나다(여성문화유산연구회)
2010-08-12 오후 04:30
여성의 역사는 어머니의 역사이고, 드러나지 않은 배려의 역사다. 관직을 가지고 사회활동을 해 온 남성들이 주로 공식기록에 남았다면, 그들의 성공을 뒷받침하며 함께 삶을 영위했던 여성의 모습은 대체로 그 이면에 존재했다. 최근 여권신장이나 양성평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여성사를 재정립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그리 높지 않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는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다시 보자’라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2003년 9월, 서울여성가족재단에서 여성문화유산해설사 양성과정을 끝내고 동아리 형태로 후속모임으로 활동해오다가, 여성의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것은 여성사의 대중화를 표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유적지나 여성인물의 발굴을 통해 일반인들과 함께 하는 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왕비의 눈으로 살펴보는 조선 궁궐과 왕릉답사’이다. 서울에는 5대 궁궐이 있는데, 이는 조선의 왕실문화를 왕실여성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내기에 적합하다. 올해에는 지방의 여성인물을 찾아가는 답사를 ‘너울길’이라고 이름 붙여 답사프로그램의 브랜드화를 꾀하고 있다. 강릉의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비롯하여 상반기에는 부안의 이매창, 안동·영양의 안동장씨 장계향을 살폈고, 하반기에는 장수의 논개, 원주의 임윤지당과 박경리가 예정되어 있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여성해설인가’이다. 그들의 역할이 여성에 관한 많은 지식을 단편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해설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과거 여성의 역사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과제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봄으로써 관점과 상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대장금을 보고, 다모를 발견해냈던 것처럼 말이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는 해설뿐만 아니라, 여성에 관한 문화기획자로도 변모하고 있다. 여성의 역사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화된 기록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해설에는 한계가 있다. 유적지도 많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문화적 상상력’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최근 강조되고 있는 문화콘텐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동안 가부장의 터널을 지나며 여성의 이야기는 신화나 전설, 설화 속으로 잠적했다. 이것이 앞으로 여성문화유산연구회의 비전이자 미션이다. 이러한 취지로 성북문화원과 함께 진행하게 된 것이 <선잠단과 길쌈이야기>이다. 선잠단은 성북구의 문화재로 여성노동의 대표적인 길쌈과 양잠을 다루고 있다.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서 누에에게 먹이는 친잠례와 더불어 양잠의 여신에게 제사 지내는 선잠단은 국가 재정에 큰 몫을 했던 양장업을 장려하는 상징적인 곳이었다. 이곳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리고, 현대적인 의미로의 형상화가 사업의 관건이다. 여성문화유산연구회 활동의 근간에는 그녀들을 향한 연민이 있다.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이 역사 속 여성 이야기를 찾아 헤맨 지 7년째에 접어든다. 앞으로 여성의 역사를 찾는 문화관광의 활성화와 여성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시민활동에 앞장서겠다는 여성문화유산연구회. 역사 속의 ‘그녀들’을 지키는 그들이 있기에 허난설헌, 이매창, 장계향과 같은 뛰어난 예술가와 지식인, 근대화 이후 나라의 독립과 계몽을 위해 투신한 여성운동가들이 역사의 그늘에 묻히지 않고 제 빛을 찾아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