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유머수필】
웃기는 ‘발가락 양발’ 어떻게 볼 것인가?
― ‘때와 장소를 가려 신는다’라는 것이 나의 답변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단골 가게에서 발가락 양말을 샀다. 개당 2천 원. 5켤레를 샀다. 계산대에서 나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60대 여성이 말했다.
▲ 발가락 양발을 다섯 켤레 샀다.(사진=필자 윤승원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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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양말을 사셨네요. 저는 발가락 양말을 신은 분들을 보면 웃겨요. 재미있어요.”
여성은 그러면서 웃었다. 그러자 30대 여성 계산원이 말했다.
“많이들 사가세요. 남성분들에게는 인기가 있어요.”
상품 계산을 하면서 개수가 맞는지 내가 다시 세어 보았다. 그러자 계산원도 개수를 다시 확인했다. 그러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제가 숫자를 잘못 셌네요. 다섯 개인데 네 개로 계산했어요. 착오를 일으켜 죄송해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뒤에서 여러 손님이 줄을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입을 열었다.
▲ 발가락 양발에 얽힌 에피소드를 털어 놓다.(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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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발가락 양말을 즐겨 신는 것은 이유가 있어요. 정상적인 사람의 손가락은 다섯 개지요. 장갑을 살 때 벙어리장갑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손가락 다섯 개가 들어가는 장갑을 사지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신고 다니는 양말은 장갑으로 말하면 ‘벙어리 양말’이 아닌가요? 아니 요즘은 ‘벙어리’라는 말보다 ‘언어장애인’이라고 하죠.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한군데에 함께 들어가게 만든 장갑 말이에요.
저는 발가락 다섯 개가 나뉘는 발가락 양말을 즐겨 신는 이유가 있어요. 발가락 사이 습진이나 무좀 예방에도 좋고요, 온종일 신발을 신고 일해도 통기성(通氣性)이 좋으니 발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요.
조금 전에 어느 여성분께서 발가락 양말을 신은 남자들을 보면 웃긴다고, 재미있다고 하셨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더 웃기는 얘기 해드릴게요. 제가 처음 발가락 양말을 신고 지인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였어요. 영정 앞에서 두 번 절을 하잖아요.
▲ 장례식장에서 분향 재배할 때 발가락 양발 밑이 보이기 마련이다. - 상주의 시선도 자연히 이 특이한 양말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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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절을 두 번 하는 사이 상주의 아들이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거예요. 중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였어요.
침통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문상객이 분향재배하는데 웃음이 나오다니, 그게 다 저의 발가락 양말의 ‘죄(결례)’였어요. 그런데 곧바로 상주의 말을 듣고 안심했어요. ‘죄(결례)’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요.
상주가 말했어요. <윤 선생님 발가락 양말 덕분에 위로가 됐어요.> 아니, 죄송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운 제게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위로가 됐다>는 것은 또한 무엇이란 말인가.
상주의 설명이 더 재미있어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어린 학생의 눈에는 웃기는 장면에서 웃음을 참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는 거예요. ‘마치 방귀를 통제하기 어려울 때와 마찬가지 상황’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윤 선생님이 발가락 양말을 신고 오시는 바람에 침통한 상주들 잠시라도 기분 전환했으니 오히려 감사드린다’라는 거에요. 참으로 유머도 풍부하고 인품이 넉넉한 상주였어요.”
이 대목에서 줄을 섰던 여러 고객이 우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마저 했다.
▲ 장점이 많은 발가락 양말, 그러나 신발을 벗게 되면 남의 시선을 의식할 때도 있다.(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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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제가 발가락 양말을 좀 과장되게 ‘예찬’했지만 그래도 ‘예절’이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해요.
상가에서 어린 중학생 상주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뒤로 저는 장례식장에 갈 때는 발가락 양말을 신지 않아요.
발가락 양말이 아직 널리 대중화하지 않은 현실에서는 시선을 ‘발’에 집중시키게 하는 것은 엄숙한 ‘상가 예절’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지요.”
그러자 발가락 양말만 보면 ‘웃긴다’라고 했던 60대 여성이 말했다.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찮게 여겼던 양말 하나에도 많은 얘깃거리가 숨어 있군요. 발가락 양말이 보편화하기 전까지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신어야겠군요.
하지만 발가락 양말은 ‘건강 양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무좀과 습진 예방에다가 발가락 냄새까지 없애주니까요.”
60대 여성은 그러면서 “군대 간 아들이 무좀이 심하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저도 70년대 군대 생활을 했는데 무좀이 심해 고생했어요. 땀이 절은 군화 속의 발은 무좀을 피할 수 없지요.
언젠가 어느 정치인이 군인들에게 발가락 양말을 지급하는 것을 공약했다고 하는데, 제가 과문(寡聞)한 탓인지 아직 실현됐다는 얘긴 못 들었어요.
아무래도 군인들에게 발가락 양말은 ‘기동력’이 떨어지겠지요. 벗고 신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 때문에 신속한 출동이 생명인 장병들에게는 발가락 양발 지급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엄마가 안타까운 마음에 사제(私製) 발가락 양말을 보내줄 수도 없는 일이고요.”
단골 가게에서 발가락 양말을 사면서 이렇게 여러 고객과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다.
발가락 양말을 사 들고 집에 오니 집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여러 켤레 사 왔으니, 앞으로 일 년은 족히 신겠네요. 그런데 왜 상가 문상 용(喪家 問喪 用) ‘예절 양말’은 안 사 왔어요?” ■
2025. 10. 18.
윤승원, 글을 쓰면서도 웃음을 참기 어려운 ‘발가락 유머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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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웃기는 ‘발가락 양발’ 어떻게 볼 것인가? ― ‘때와 장소를 가려 신는다’라는 것이 나의 답변』은 일상의 사소한 소재를 유머와 교양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생활 유머수필이라 할 만합니다.
발가락 양말이라는 단순한 생활용품을 중심에 두고, 인간의 습관·예절·사회적 통념을 유쾌하게 비튼 작가의 재치가 돋보입니다.
이 수필의 ▲ 첫 강점은 ‘벙어리장갑’과 ‘벙어리양말’의 독창적 대비에서 드러납니다.
손가락 다섯 개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갑과 달리, 발가락이 함께 갇혀 있는 일반 양말을 ‘벙어리양말’이라 표현한 것은 문학적 유머의 절정입니다.
단어의 뜻을 빌려와 일상의 감각을 새롭게 환기하는 이 장치는 ‘언어의 독창성’이자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킵니다. 독자는 단숨에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얻게 되지요.
▲ 둘째로, 작가는 예절과 상황 인식의 감각을 놓치지 않습니다. 발가락 양말을 신고 장례식장에 갔을 때, 상주의 아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장면은 ‘웃음의 역설’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슬픔의 자리에 뜻밖의 웃음을 불러온 해프닝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인간적 온기를 전달하는 에피소드로 전환됩니다.
상주의 말처럼 “윤 선생님 발가락 양말 덕분에 위로가 됐다”는 문장은, 웃음이 슬픔을 녹이는 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셋째로, 이 수필은 유머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교육적 메시지를 담아냅니다.
발가락 양말의 통기성과 위생성을 강조하며, 무좀으로 고생하는 장병들의 현실까지 언급하는 대목은 작가 특유의 생활밀착형 관찰력과 공공적 시선을 느끼게 합니다.
‘발가락 양말 보급’이라는 문제를 기동성·신속성 등 군 생활의 특성과 연결하여 풀어낸 논리적 유머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사회적 성찰로 확장됩니다.
마지막으로, 윤승원 수필가의 필치는 언제나처럼 ‘품격 있는 유머’를 지향합니다.
그는 자신을 조롱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며, 웃음을 통해 인간의 이해와 공감을 끌어냅니다.
상가에서 발가락 양말을 삼가게 된 이유 ―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는 말은, 단순한 예절 지침을 넘어 ‘유머에도 품격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문학적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생활 속 유머는 교양의 또 다른 표현”임을 증명한 수필입니다. 웃음을 소재로 하되, 그 안에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세상의 질서를 함께 담아낸 점에서 윤승원 수필가의 유머수필 창작 노력은 탁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 요약하자면,
발가락 양말의 위생적 장점과 상징성,
손가락·발가락의 형태 대비에서 비롯된 언어적 유머,
장례식장 에피소드의 감정적 전환과 예절 인식,
군 생활을 통한 현실적 문제 제기,
이 네 가지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웃음과 사색이 공존하는 현대적 유머수필의 좋은 본보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윤승원 수필가의 이번 작품은 “웃음 속의 철학, 유머 속의 예절”을 실천한 생활문학의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 (📚 裕花, 윤승원 수필 전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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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5.10.19. 05:43
손발이라고는 하지만, 발 손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한, 하루에 손은 여러 번 씻는데, 발은 겨우 한두 번. 그러나 발이 먼저일까? 손이 먼저일까? 머리 가려면 손과 발 중 어느 것이 소중할까? 양말 중 수면 양말도 있고요. 윤 선생이 쓴 글에는 많은 이야기가 나읍니다. 자상하신 상품에 남에 대한 깊은 배려심이 돋보입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 답글 / 윤승원
양말을 사고 나서 계산대에서 만난 어느 아주머니가 제게 웃긴다고 해서 발가락 양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무엇보다 통기성이 좋아 무좀 예방에는 효과적입니다. 요즘 저는 맨발 걷기 운동을 하루에 2~3시간 정도 하는 데, 그러자면 발을 여러 번 씻습니다. 발을 씻고 나서 크림을 발라줍니다. 발을 혹사하는 직업이 우리 사회엔 많습니다. 경찰관이나 군인들도 그렇습니다. 발을 손처럼 아끼고 사랑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