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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씨의 하루
김 문 수
버스에서 내린 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부지런을 피우며 걸었다.
집에서 직장까지는 버스로 30분, 다시 지하철로 바꿔 타고도 20분이나 걸려야 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버스 정류장에서 지하철까지는 2백 미터가 채 못 되는 거리였다. 그 길을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펼쳐졌다. 밥상머리에서 짓고 있던 바로 그 소태 씹은 얼굴이었다.
“금년에도 거지 동냥 주듯이 떡값이랍시구 몇 푼 집어주고 말겠대요?”
아내의 목소리에는 가시 같은 짜증이 돋아 있었다. 아내의 짜증은 직장에서 벌써 3년째나 ‘불경기 때문에’ 상여금 지불을 제대로 이행치 않는 데에 그 원인이 있었다. 설에도 추석에도 그저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몇 푼씩 지급해왔다.
“이번 추석에도 떡값이라구 몇 푼 집어주고 만다더냐구요!”
나는 입에 든 밥알을 조심하면서 아직 그런 얘기가 나돌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내일이 추석이라구요, 내일이!”
아내는 직장의 경영자에게가 아니라 이제 내게다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나는 아내의 말에 반사적으로 달력 쪽에 눈길을 보냈다. 달력 위에서는 두 명의 타작꾼이 마주 서서 개상질을 하고 있었으며 아이와 노인은 볏단을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타작 마당 한쪽 모퉁이에서는 네댓 마리의 닭이 낟알을 훔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재수 옴 붙었군.”
나는 달력애 꽂았던 눈길을 거두고 다시 숟갈질을 했다.
“왜요?”
“하필이면 추석날이 일요일이니까 하는 소리야.”
“지금 그게 문제예요? 상여금이 제대로 나오느냐, 떡값이라고 거지 동냥 주듯이 몇 푼 집어주고 마느냐 그것이 문제지요. 안 그래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려다 꾹 참고 말았다. 나라는 인간도 잠에서 깨어나 출근하여 일하고, 일한 뒤에 퇴근해서 잠이나 자느라고 행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수저를 잡고 있을 기분이 나지 않아 상을 물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아내가 다시 젠 입을 놀렸다.
“나도 당신처럼 솥에서 밥이 끓고 있는지 죽이 끓고 있는지 생판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건 또 뭔 소리야?”
“집 안에 지금 동전 한 닢이 없다구요. 명절 밑이라 누구한테 돈을 돌려 쓸 수도 없구요.”
“아니, 월급 타다 준 게 언젠대!”
나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으므로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잘못하면 바쁜 시간에 풀어서 다시 매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언제긴 언제예요. 보름 전이지!”
“한 달 살 돈을 보름 만에 다 쓰다니, 그것도 말이라구 하는 거야?”
“아니, 이이가 점점…… 내가 데려온 새끼가 있어요, 아니면 친정이 있어서 친정으로 돈을 빼돌린단 말예요? 또 그도 아니면 당신이 살림을 살 만큼 풍족하게 돈을 줘봤어요?”
나는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매듭을 잡고 다른 손으로 넥타이의 안쪽가닥을 당기며 죄다가 아내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야릇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그것이 내 목을 서서히 조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아내의 환상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된 것은 개찰구 앞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목에 이상한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넥타이의 탓은 아니었다. 나의 눈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의 목을 관찰하고 있었다. 굵은 목, 긴 목, 울대뼈의 목, 늙어 주름이 깊은 목…….
그때, 나는 발바닥을 통해 전달되는 아주 미약한 진동을 느꼈다. 잠시 후 확성기를 통해 전동차의 진입 신호가 울려퍼지며 바퀴 소리가 점점 드높아졌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려졌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별빛 같던 헤드라이트가 점점 커지다가 이윽고 그 육중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홈에 육박하는 전동차를 보는 순간, 나는 그 차체를 향해 몸을 날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여 일하고 퇴근하고 잠자고 다시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나는 짐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때 나는 내 구두가 노란색 안전표지선을 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동차가 강한 바람을 일구며 내 앞을 지나기 시작했다. 머리칼이 파도처럼 밀렸고 넥타이는 낚시에 걸린 고기가 되어 파닥거렸다.
얼마 후 나는 물살에 휩쓸려 물고의 통발에 든 한 마리 잡어처럼 인파에 밀려 차 안에 갇히고 말았다. 문이 닫히고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이마며 등짝에 땀이 내밴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차 안은 그야말로 송곳 하나도 꽃을 틈이 없을 만큼 초만원이었다. 호흡마저도 곤란한 지경이었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추탕으로 이름난 집이 있었다. 3대째 대를 이어왔다는 그 집 소문이 널리 퍼져 자가용을 몰고 오는 손님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추탕값의 몇 배가 되는 차비를 들여서까지 다녀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집 여주인의 엉덩이도 추탕 못잖게 유명했다. 옛날 어떤 여자 코미디언의 엉덩이가 하도 넓어 ‘5천 평’으로 불린 것을 아는 사람들이 그 여주인에게 그와 똑같은 별명을 붙여놓았다. 때문에 ‘풍천옥’이라는 당당한 옥호가 걸려 있었지만 모두들 그 집을 ‘5천 평집’으로 불렀다.
어쨌든 그 ‘5천 평’은 언제나 식당 입구의 계단대 앞에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그녀의 엉덩이를 대여섯 개나 합쳐야만 겨우 덮을 수가 있을 정도의 커다란 자배기가 놓여 있었다. 자배기 안에는 언제나 미꾸라지가 바글바글했다. 바글거리는 그 무수한 미꾸라지들이 떠오르며 내 속을 매스껍게 했다.
언젠가 과원들이 과장의 꽁무니에 붙어 추탕을 먹으러 간 일이 있었다. 과장은 자기의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도 전무의 기합을 받느라 점심때를 놓친 우리 부하들의 입을 추탕으로 막을 심산이었다. 내 입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내 앞에 서서 과장의 뒤를 따르던 김인식이 자배기 속을 들여다보며 투털댔다.
“대한민국의 미꾸라지들을 다 모아놓았군. 에이, 징그러워.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추탕맛 우라지게 없겠구나!”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호가 난 그의 말을 ‘입바른 소리’로 알아듣지 못한 과장은 가지껏 뽐내며 그 말을 받았다.
“어허, 모르는 소리. 우리 식도락가들은 말일세, 저놈들이 저렇게 바글거리는 걸 직접 봐야만 입맛이 돋는단 말일세, 난 말일세. 보신탕을 먹을 때에도 강아지가 꼬릴 잘래잘래 흔들어대는 걸 연상하네. 그래야만 제 맛이 나거든.”
나는 과장이 너털웃음을 쏟는 동안 속으로 뇌까렸다.
‘에이 여보슈, 말 좀 새겨들으시우. 김인식 얘기는 당신이 사는 추탕이 우리들의 입막음이기 때문에 그래서 맛이 없겠다는 얘기유.’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속으로 그렇게 과장을 비웃고 있음이 역력했다. 우리들끼리 은밀히 나눈 쓴웃음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과장은 계속 으스대기에 바빴다. 추탕을 제대로 끓이려면 쇠고기·두부·버섯·고사리·무·새앙·고춧가루 등을 알맞게 넣고 밀가루를 걸쭉하게 타야 한다며 자신이 식도락가임을 강조했다. 과장의 얘기는 좀처럼 끝난 줄을 몰랐다.
"미꾸라지를 어떻게 씻는지들 알기나 해 ? 미꾸라지는 말일세, 소금물에 들어가면 죽자사자 요동을 치며 해감을 다 토해내게 마련이란 말일세.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내 기가 막힌 미꾸라지 요릴 한 가지 더 알려줌세. 맹물에다 두부를 통째로 넣고 그 다음에는 말일세, 해감을 토해낸 산 미꾸라지들을 넣는단 말일세. 그리군 어떻게 하는지들 아나? 물을 끊이기 시작한단 말일세. 물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해감을 토해낸 끝이라 기진맥진 사경을 해매던 그 놈들도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단 말일세. 그러나 제놈들이 어디로 도망을 치느냐 이런 말일세. 쑥쑥 두부 속으로 파고들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거든. 그러면 두부 속으로 파고든 그 놈들이 완전히 익을 때까지 설설 끊이는 거야. 그리고 적당히 저며서 양념을 얹어 먹는단 말일세. 햐아, 그 맛이야말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두 모르지. 암, 모르구말구.”
“과장님, 그렇잖아도 맛없는 점심인데 이제 그 징그런 말씀 그만하실 수 없습니까?”
김인식이 또다시 입바른 소리를 했다. 그러나 과장은 아직도 김인식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얘기에 스스로 취하여 전혀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의 입을 쉴 새가 없었다.
“자네들은 아까 그 자배기 속에서 바글거리던 미꾸라지를 본 후로 모두들 비위가 상한 모양이네만 사내들이 그렇게 비위가 약해서야 쓰나! 이건 우스갯소리네만 말일세, 만약에 식인종이 서울에 와서 출퇴근 시간에 만원 버스를 탔다고 치잔 말일세. 숨 막혀 죽는다고, 팔이 부러진다고, 밟힌 발이 오징어가 된다고, 배가 터진다고 아우성을 쳐대는 사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겠냔 말일세. 식인종은 그 아우성 소리를 들으며 제 먹이가 아주 싱싱하다는 것을 느낄 게 틀림없단 말인세. 내가 아까 그 자배기 속에서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보며 입맛을 다시게 되는 거나 똑같은 이치가 아니냔 말일세.”
어느 역인지는 알 수 없으나 멎었던 바퀴가 다시 구르기 시작했다. 차에 속력이 붙자 나는 다음 역이 어딘가를 알기 위해 안내 방송이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귀의 뒤에서 팽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꽃소식은 남풍에 실려오고 단풍은 북풍을 타고 물든다는 말이 있지. 다음주에 가보면 알지만 단풍이 기가 막힌 곳이야. 게다가 계곡 좋지…….”
“술맛 한번 끝내주겠군. 취한 걸음으로 시냇물의 달을 밟고 돌아갈제, 새도 사람도 없이 나 홀로구나. 이게 누구 시인 줄 알아?”
“야,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어. 벌써부터 기분 내지 말라구.”
내 눈앞에는 바람에 쏠리는 낙엽들이 가득했다. 귀 뒤의 얘기들은 계속되었 다.
“여하튼 서울이란 곳은 참으로 신기한 데야.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 좁아 터진 땅 덩어리에 붙어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 살고 있으니 말야.”
“그러자니 사람들이 악밖에 남는 게 없는 거라구.”
“자칫 잘못하면 살아 남을 수가 없으니까.”
나는 문득 죽은 물오리 한 마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땅 속 저 깊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해낸 값진 유물과도 같아서 나는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참으로 경이로울 따름인 아득한 기억의 조각이었다.
내가 자란 고아원은 큰 방죽을 낀 산 밑에 있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날 웬일인지 삼촌(원장 아버지의 친자식들이 그렇게 불렀으므로 우리 원생들도 그 호칭을 썼다)이 스케이트를 가르쳐준다며 방죽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방죽에 도착하자 삼촌은 우선 자기가 타는 것부터 구경하라고 했다. 삼촌은 그가 다니는 고둥학교의 빙상 선수였다. 스케이트 구두를 신고 있는 삼촌 옆의 빙판 위에서 죽은 물오리를 발견한 내가 외쳤다.
“삼촌, 물오리가 죽어 있어!”
“나도 봤어. 불쌍한 녀석이다.”
삼촌은 구두끈을 죄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물었다.
“왜 죽었을까?”
“먹이를 찾아서 왔다가 방죽이 꽁꽁 얼어 있으니까 먹이를 얻지 못한 거다. 배는 고프지, 날씨는 춥지, 게다가 다른 곳으로 먹이를 구하러 떠날 힘은 없지. 그러니까 쓰러져서 굶어 죽고, 얼어 죽은 거다. 삼촌은 마치 그 물오리가 죽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나는 삼촌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삼촌은 나의 의아한 눈길엔 아랑곳도 없이 구두끈을 다 죄고 나서 빙판 위에 섰다.
“어떻게 살릴 수 없을까?”
삼촌은 내 물음을 무시하고 죽은 물오리에게 힐끗 눈을 주고 나더니, 손가락 집게로 내 언 볼을 집어 흔들며 말했다.
“힘이 없으면 다 저런 꼴이 되고 마는 거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 세상은 힘있는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거다. 임마, 내 말 알아듣겠어?”
삼촌은 집었던 내 볼을 풀고는 휙휙 바람을 일으키며 힘차게 힘차게 방죽을 돌기 시작했다.
차체의 속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차가 멎게 될 역의 이름과 홈의 방향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이었다. 그곳은 생산업체들이 밀집 된 지역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승객들이 하차하는 곳이 기도 했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서며 버릇이 되어 눈길로 벽시계부터 바라보았다. 두 바늘이 예각을 이루며 여덟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업무가 시작되려면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간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출근해 있었다. 우리 과의 동료들도 거의 다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자동판매기에서 빼온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앉아 잡담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았을 때는 어제 일어난 살인 사건이 도마 위에 올라 있었다. 애인의 변심에 눈이 뒤집힌 한 탈영병이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사살한 사건이었다.
“결국 죽은 사람만 억울한 거야.”
“아, 참으로 시시한 일생이었다고 한탄하며 눈을 감을 바엔 차라리 일찍 죽는 것도 괜찮은 거야.”
“그거야 다 살아봐야만 아는 거 아냐!”
“어쨌든 이런 대형 사고가 자꾸 일어나서 인구가 대폭 감소돼야 해. 식량 문제·주택 문제·교통 체증·불황·실업자……어느 것 하나 인구 문제와 관련 없는 게 있느냐 말야. 인구 과잉 때문에 사람값이 자꾸만 떨어지구 그래서 사람 귀한 줄 모르니까 그런 사건이 자꾸만 생기는 거란 말야.”
현관에서 출근 카드에 도장을 찍다가 만나 나와 함께 올라온 김인식이 그 얘기판에 끼어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모두들 데라우치가 되어버렸군.”
데라우치는 전무의 별명이었다. 그 별명은 금년 시무식 때의 방언 때문에 붙은 것이었다.
“여러분,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전거는 쑤셔박히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불황기에도 계속 기계를 돌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회사의 경영 방침을 무시하고 급료나 상여금 또는 노동 시간 따위에 불평불만을 갖는다면 회사측으로는 그런 사람을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요즘은 많은 인력이 남아돌고 있습니다. 때문에 얼마든지 사람을 데려다 쓸 수가 있다아 이겁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회사의 임금에 만족하고 멸사봉공하겠다는 인력이 얼마든지 남아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달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근무에 태만하지 말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상!”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시무식이 끝나기 무섭게 데라우치라는 말이 나와 입에서 입으로 번졌다. 데라우치는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육군 대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그는 중일전쟁 때 석가장(石家莊) 전투에서 패하게 되어 많은 병정을 잃게 되자 “병정은 얼마든지 모집해들일 수가 있다. 비록 이번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잃긴 했으나 그 정도는 괜찮다.”며 껄껄댔다는 위인이었다. 사실 그때는 병정 1개 소대보다도 말 한 필이 훨씬 더 값나가는 때였다. 병정 한 사람은 값이 1전 5리로 계산되던 때이기도 했다. 1전 5리짜리 엽서에 소집명령서를 인쇄해 띄우면 병정들은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전무에다 데라우치라는 별명이 붙게 된 까닭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그날로 아무도 없게 되었다.
추석 떡값이 나온 것은 점심 시간 직전이었다. 떡값을 받은 후 우리는 실비집으로 몰려가 칼국수로 땀을 뺐다. 내 맞은편에 앉아 최정택이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젠장, 마누라 볼 면목없게 됐구먼.”
“글쎄 말야, 언제나 마누라한테 큰소리 좀 땅땅 치구 살게 될지 원.”
옆자리의 조윤형도 한탄 끝에 긴 한숨을 내뿜었다.
“거 떡값 봉투가 얇아서들 그러는 거지?”
김인식이 물었다.
“말하면 잔소리지.”
“거, 자전거 쑤셔박을 소린 아예 하지들 말라구. 우리 회사의 임금에 만족하고 멸사봉공하겠다는 인력이 얼마든지 남아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상!”
김인식의 전무 흉내에 우리는 모두 왁 웃음을 내쏟았다. 그 웃음 끝에 최정택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봐, 괴테.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만 다물고 있을 게 아니라 문학적으로 한마디 하라구. 우리가 다같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뭐 그런 얘기 없냐구.”
괴테는 나의 별명이었다. 가끔 시집도 읽고 에세이도 읽고 하는 나를 놀리자는 것이었다.
“돈 많고 권세 높은 사람들이 장미꽃이라면 우리네 가난뱅이는 이름도 없는 들꽃이야. 화려한 장미는 그 꽃이 질 때 무참하게 마련이지만 이름없는 들꽃은 그렇지가 않아. 가련하게 피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지지만 그래도 조그만 열매를 맺는 충실성이 있거든. 한평생을 조용하고 평범하게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가난뱅이의 삶이야말로 가장 충실한 삶인 거야.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며칠 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걸 도둑질한 거야.”
최정택이 호들갑스럽게 손뼉까지 치며 말했다.
“역시 괴테는 괴테다. 그런데 그 실력으로 마누라를 휘어잡을 수가 없어?”
“휘어잡긴커녕 오늘도 아침에 한바탕 긁혔다구.”
“왜? 또 그 지렁이 잡으러 가자는 성화던가?”
최정택은 물론 모두의 눈길이 내게로 쏠렸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내 아내가 그것을 포기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그것을 끈질기게 고집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렁이 잡으러 가는 것’ 이고 ‘지렁이 잡으러 가는 것’은 ‘이민’을 뜻하는 것이었다.
내가 아내를 얻은 것은 3년 전 봄이었다. 그 무렵 아내는 홀어머니 한 분을 모시고 있었다. 집은 건평이 20평에 불과했지만 두 모녀가 각기 한 칸씩 차지하고 또 한 칸은 창고처럼 온갖 허섭쓰레기를 넣어두어도 건넌방 하나가 남았다. 공교롭게도 복덕방 영감이 내게 소개한 방이 그 건넌방이었다.
내가 그 집의 데릴사위가 된 것은 그로부터 1년쯤 뒤인 봄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한다면 아내와는 남남으로 1년을 한 집에서 산 것까지 합친다면 4년을 함께 살아오는 터였다. 어쨌든 내가 데릴사위가 된 것은 장모에게 아들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외아들(아내에게는 오빠가 되는)이 있긴 했지만 캐나다에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다.
나는 결혼 후 장모를 친어머니 이상으로 섬겼다. 그것은 고아로 자란 내가 뒤늦게나마 어머니의 정을 맛보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계산된 행위가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장모는 틈만 나면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아들복은 없어토 사위복은 하늘이 내렸다는 것이었다. 사위도 반자식이라는 옛말이 있으나 자기에게는 친자식보다 더 귀하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아내는 장모가 내 칭찬을 할 때마다 쌍지팡이를 들고 나서곤 했다.
“사기꾼 사윌 그토록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걸 보니 강도를 사위로 삼았으면 벌써 입이 다 닳았겠어요.”
“아니, 저것이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누가 뭐 못 할 말 했어요?”
“그래, 어디 한번 따져보자꾸나. 네 남편이 어째서 사기꾼이냐? 심 서방이 학력을 속였니, 가문을 속였니? 그도 아니면 우리 모녀의 돈을 잘라 먹었으냐?”
“쥐꼬리만치 받는 월급을 쇠꼬리만치 불려서 날 속인 건 사기가 아니구 뭐예요? 차라리 학벌이나 가문을 속였으면 이렇게 두고두고 속상하지 않는다구요. 매달 월급 때만 되면 속이 뒤집힌다구요.”
사실 아내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혼담이 오고 갈 무렵, 나는 장모가 될 분으로부터 월수입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형편없는 박봉이어서 잠시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그녀는 무슨 생각에선지 당시 내가 받는 봉급의 세 배쯤 되는 액수를 내세우며 그쯤 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나는 상대를 속이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실망을 주기가 뭣해서 그저 그 정도라고 얼버무렸었다. 그것이 내가 두고두고 아내에게 사기꾼 소릴 듣게 된 전부였다.
“여보게 심 서방, 저 애 얘긴 그냥 귓가루 흘려버리게.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겠거니 하라구. 원, 내 속에서 나왔지만…….”
장모는 아내가 소박맞고도 남을 주둥이질을 할 때마다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나는 그 장모를 작년 가을에 잃고 말았다. 뇌졸중이었다. 캐나다에서 아들이 와 장례는 남에게 빠지지 않게 지낼 수가 있었다. 그는 장례가 끝나자 상속자로서의 권리를 빈틈없이 행사했다. 그는 화장한 고인의 유골까지도 캐나다로 가지고 갔다. 그가 떠난 후 아내는 어린애처럼 나를 졸라댔다.
“우리도 캐나다로 갑시다아. 만약 일자리를 못 얻으면 지렁이만 잡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대요, 네?”
“이런 딱한 사람 봤나! 왜 내 나라에서 얼마든지 할 일이 있는데 그 먼 남의 나라에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하느냐구.”
“가보면 알게 될 테지만 거긴 너무너무 살기가 좋대요. 뭐하러 그깐 월금을 받으며 고생을 하느냐구요. 거기가면 지렁이만 잡아도 풍족하게 살 수가 있다는데, 안 그래요? 지렁일 잡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니까 여기서처럼 다른 일을 열심히 하면 얼마나 잘 살 수가 있겠느냐구요, 안 그래요?”
“지렁일 잡든 빈대를 잡고 살든 말이 통해야 할 게 아니냐구!”
“우리 오빠두 처음엔 벙어리처럼 손짓 발짓하며 살았대요.”
“난 우리 나라를 떠날 수가 없어!”
나는 아내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처음으로 대하는 나의 그 완강한 태도에 아내는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왜 못 떠난다는 거예요?”
“나는 찾아야 될 사람이 있어!”
나는 전쟁 통에 갓난쟁이로 고아원에 맡겨져 이제 서른다섯의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부모나 혈육을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장성하여 품게 된 막연한 생각이지만 결혼하던 해 여름, 여의도 만남의 광장이 통곡의 바다가 되는 것을 직접 또는 텔레비전으로 본 후로는 그 생각이 확신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내가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그 희망을 버리는 행위인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무지무지 살기 좋은 나라’에로의 이민을 단념하지 않았다. 아내와 나의 그 줄다리기는 달이 거듭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나의 괴로운 심정을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최정택이 재차 내게 물었다.
“자네 마누라의 이민병인지 지렁이병인지는 아직도 고치지 못했느냐구.”
“그 병은 불치병이야. 하지만 오늘 긁힌 건 그게 아니라 자네들처럼 떡 값 때문이었어.”
“빌어먹을 놈의 떡값, 곳곳에서 말썽도 많구나. 그건 그렇고 자전거 타러 걀 시간 다 됐다구!”
김인식이가 자리에시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도 그 뒤를 따라 실비집을 빠져나왔다.
토요일의 업무는 네시까지였다. 그러나 추석 전날의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업무는 두시에 끝났다. 잠시 신문을 뒤적이는 동안 사무실은 금세 텅 비고 말았다. 나도 더 이상 사무실에 남아 있을 일이 없었다. 앉았던 의자를 책상 밑으로 밀어 넣다가 전에 땜질 한 조각의 한쪽 끝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떻게 되어 생겼는지 모를 밤톨만한 구멍이 자꾸만 커지며 속을 채운 넝마 조각들을 뱉어내기에 이르렀으므로 내가 월여 전에 땜질을 했던 곳이다. 색깔이 비슷한 헌 수첩의 비닐 커버를 명함 크기로 잘라 접착제로 꼼꼼하게 땜질을 하고 있는데 조윤형이 그 꼴을 보고 말했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구.”
“왜?”
“심 형, 작년에 말야 우리 형님께서 돌아가셨잖아. 그런데…….”
나는 조윤형의 밑도 끝도 없는 말에 땜질하던 손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눈길을 받자, 그는 서글픈 웃음을 흘리며 담배를 뽑아 물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는 맏형 내외를 부모처럼 모시고 살아왔다. 때문에 우리 동료들은 그 장례 때 밤샘을 해가며 일을 도왔었다. 그때 나는 고인의 친구들이 흥분하여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흥분하는 까닭은 회사에서 고인을 너무 혹사했으며 그의 성실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그 일하고 내가 의자에 땜질하는 거하고 무슨 관계라도 있다는 거야?”
내 질문을 받은 조윤형의 입가엔 또 한차례 서글픈 웃음이 번졌다. 그가 말했다.
“형님의 퇴직금을 타러 형님이 다녔던 회사에 찾아갔었어. 장례를 치른 이틀 후였지. 그런데 말야, 형님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가 벌써 찼더란 말야. 형님이 앉았던 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일하는 걸 보니 기분이 묘하더군. 나는 사무실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지. 형님이 살아 계실 땐 의논할 일이 생기면 으레 찾아갔던 곳이었어. 형님은 내가 가면 으레 자기 옆에 의자를 놓아주고 날 기다리게 했어. 형님이 하던 일을 마치고 날 상대해줄 때를 기다리며 나는 무료한 시선으로 사무실을 둘러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무실 곳곳에서 형님의 분신 같은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어. 캐비닛의 관리책임자로 붙어 있던 형님의 명패에서 혹은 월중 행사를 적어놓은 형님의 독특한 백묵 글씨에서, 옷걸이에 걸린 여러 옷 중에서 소맷부리가 닳아 보풀이 인 형님의 윗도리를 보면서 나는 우리 형님의 분신 같은 것을 강렬하게 느끼곤 했다구, 아니 사무실 안이 온통 형님의 냄새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이었어. 우리 형님은 그 사무실에서만 이십오 년을 근무했었거든. 그런데 그토록 오랫동안 근무한 형님의 흔적이 깡그리 없어진 거였어. 아무리 살펴보아도 형님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더란 말야. 형님의 냄새조차도 맡을 수가 없더란 말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치솟더군. 한 인간의 생애가 이토록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이토록 더 없는 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지. 모든 세상사가 비정하게 만 느껴지더군.”
그는 잠시 사이를 두고 결연한 어조로 덧붙였다.
“만약에 말야, 심형이나 내가 무슨 일로 이 직장을 떠난다구 치자구. 이 사무실에서의 우리네 애락도 그렇게 아무런 흔적이 없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마는 거야.
사무실을 빠져나와서도 나는 내 의자의 땜질 부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 환상은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불편하게는 했다. 그것은 마치 이빨 깊숙한 사이에 음식 찌꺼기를 끼우고 있는 듯한 불편함이었다. 그런 불편을 잊게 해준 것은 금은방의 진열장이었다.
“난 떡값 받은 걸로 마누라 선물을 왕창 사갈 테야. 그럼 제까짓 게 별 수 있어? 대추씨 같은 입이 함박만해지지. 내 아이디어가 어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금은방의 진열장 속을 들여다보면서 김인식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자라는 족속들은 대체로 선물에 약한 법이거든. 안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열장에서 담긴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스스로 무렴해져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반사적인 눈길로 진열장 저쪽에 서 있는 주인을 바라보았다. 상점 안에서 나를 관찰하고 있던 주인은 내 시선을 받고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게 고개를 꺾었다.
“손님, 들어오셔서 구경 하십시오.”
유리를 뚫고 나온 목소리답지 않게 크고 분명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를 그냥 돌아설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상점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주인은 무엇을 쓰실 거냐고 역시 정중한 말로 물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 말에는 나를 옭는 힘이 있었다.
“목걸이 좀 보여주십시오.”
나는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하던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그날 아내는 열두시가 다 된 시간에 들어왔다. 아내의 얼굴은 술기로 벌겋게 달아 있었다. 동창회가 있어서 나갔다가 맥주 몇 잔 마셨다고 했다.
“무슨 놈의 동창횔 오밤중까지 해!”
“동창횐 일찍 끝났죠. 남들은 다 몇백씩 하는 목걸일 하고 있는데 나만 촌스럽게 금목걸일 하고 있을 수가 없지 뭐예요. 그래서 슬그머니 벗어서 핸드백에 넣었는데 글쎄 그게 없어졌지 뭐예요. 다방으로, 중국집으로 우리가 간 데는 다 찾아봤지만 영 나오질 않는 거예요. 아마 중국집에서 회비를 낼 때 빠진 모양이에요. 그래 다시 중국집 엘 갔지요. 그랬더니 문 닫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거예요. 문 닫고 대청소를 할 때 홀을 쓸면 자기네 집에서 떨궜는지 어쨌는지 알 수 있다면서요. 언젠가두 누가 반지를 잃었다가 그렇게해서 찾은 사람이 있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늦은 거예요.”
“그까짓 촌스런 목걸일 뭣하러 찾아? 잃어버려서 속이 후련했을 텐데!”
“촌스러워두 결혼 예물이잖아요. 왜 사람 부알 돋구죠?”
아내는 들고 있던 핸드백을 방바닥에 탁 메다꽃았다.
금은방 주인이 계속해서 내 앞에다 목걸이 케이스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만져보기조차 어려운 것들이었다.
“값이 싼 것은 없습니까?”
나는 내 목소리에 주죽이 들어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얼마쯤 예상하시고 계신데요?”
“어쨌든 제일 싼 걸루…….”
“십사 케이로는 이만 원짜리도 있습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도 있듯이…….”
“하지만 그것두 금이잖습니까 ?”
“합금이지요. 오십팔 점 오 프로가 금입니다.”
나는 금 반 돈짜리 14케이 목걸이를 아내의 선물로 샀다. ‘떡값’ 3분의 1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깜찍하게 세공된 콩만한 복승아가 달린 목걸이를 사 가지고 나오는데 누군가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용도계장이었다. 직속은 아니지만 그는 나의 상사였다.
“미스타 심, 바쁜 일 없으면 우리 술이나 한잔 하세. 오늘 떡값도 타고 했으니.”
용도계장이 양복 저고리 가슴께를 툭 쳐보이며 말했다. 속주머니에 떡값 봉투가 들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잖아도 나는 외상값도 갚을 겸 ‘함경도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는 술자리를 함께 하고 싶지가 않았다.
“술값이 나왔다면 모르지만 떡값 탄 걸로 술을 마실 수야 없잖습니까?”
“거 자네 말에 가시가 있군그래. 그러지 말고 우리 어디 가서 간단하게 한 대포씩만 하자구.”
“전 바쁜 일이 있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어느 누구라도 나처럼 거절했을 청이었다.
사실 우리 회사에서는 그와 술자리를 같이 할 사람이 없었다. 어쩌다 술자리에 그가 끼기라도 하면 모두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앞을 다투어 꽁무니를 빼곤 하는 처지였다. 술자리에서 뿐만 아니라 식사 때라든가 심지어는 다방 같은 데서도 그랬다.
그는 어떤 자리에서나 먹고 마시고 떠드는 데에는 기를 써왔지만 자리가 끝나 계산할 때에는 늘 뒷전으로 돌곤 했다. 남이 계산을 마칠 때까지 늑장을 부려대며 구두끈을 맨다든지 화장실엘 간대든지 혹은 자리에 눌러앉아 엽차로 꿀럭꿀럭 입을 헹군다든지 하는 것이었다. 열 번이면 열 번을 그런 다라운 작전으로 돈을 굳히곤 했다. 그래서 회사 안에서는 자린고비로 통하는 터였다.
지난 여름, 생산과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나는 그곳 사람들이 나누는 농담을 듣고 배꼽을 잡은 일이 있다. 어떤 직원 하나가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앓지 않는다는데 벌써 두 주일째나 이 고생이라구.”
“그 독감 뗄 수 있는 좋은 처방을 가르쳐주지. 용도계장한테 소주 한잔 얻어 먹으면 직방이야.”
“예끼, 악담 말아! 날더러 평생 독감을 앓으라는 얘기잖아!”
나는 그들의 얘기를 떠올리며 픽 실소를 하고 말았다.
“이 사람이, 실없이 웃긴·…·자아, 가자구.”
“아닙니다, 전 바쁜 일이 있습니다. 그럼 추석 잘 쇠십시오.”
나는 그에게 등을 주고 잰걸음질을 쳤다. 그리고는 그의 끈적거리는 시선을 둥에 매달고 마치 경보 선수처럼 속력을 냈다. 그렇게 50여 미터쯤 걷다가 잽싸게 ‘함경도집’ 으로 뛰어들었다. 순대국이 전문인 그 집은 내 단골집이었다.
나는 술청으로 뛰어들긴 했으나 자리를 잡고 앉을 수가 없었다. 용도계장이 내 뒤를 밟아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문간에 붙어서서 고개를 내밀고 밖을 살폈다.
“왜, 손님 기다리우?”
“누굴 따돌리고 피해왔는데 혹 그 자가 뒤 밟고 있지나 않나 싶어서 그래 요.”
“그럼 방으루 들어가구랴. 게 섰다가 들키지 말구.”
주모가 턱짓으로 방 쪽을 가리켰다. ‘함경도집’의 유일한 그 방은 주모가 거처하는 곳이었다. 그 방문 앞에 샌들 한 켤레가 ‘入’ 자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그 신발이 ‘들어오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한차례들 다녀갔는데 심 씬 왜 늦었수?”
“그렇게 됐습니다.”
“심씨가 따돌렸다는 그 사람 혹시 무슨 계장인가 하는 그 사람 아니우?”
주모가 일손을 재게 놀리는 채 내게 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나는 깜짝 놀라 눈을 키웠다.
“심씨네 회사 사람들 모두가 그 사람이라면 뱀 피하듯 합디다 뭘. 어서 들어가우. 그러구 섰다가 들키리다.”
“방에 누가 있는 모양인데요.”
“아따, 어서 들어가기나 하시우.”
나는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윗목 경대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거울 속에 담긴 그녀의 넓데데한 얼굴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녀는 거울 속에서 내 눈길과 마주치자 어딘가 좀 모자라뵈는 듯한 웃음을 흘리더니 경대와 나란히 놓인 텔레비전 화면으로 급히 눈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잠시 후, 주모가 앞치마에 물손을 닦으며 들어서더니 내게 물었다.
“왜들 그 사람을 뱀보듯 하우?”
4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긋한 나이임에도 그 나이값을 못 하고 제 욕심만 차린다는 것이 그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일 것이었다. 하기야 불혹(不惑)의 나이값도 못 하고 자린고비짓만 한다는 것은 공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면 그뿐일 수도 있었다. 앞이 뻔한 이 세상을 살면서 모아놓은 재물이 없어도 초조하거나 공허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것이 없는 빈 쭉정이 같은 인생을 돌아보며 당황하고 또 그 때문에 심적인 동요가 일어 재물에 혹(惑)하게 된다는 것은 공자의 시대가 아닌 지금에 있어 오히려 당연한 노릇인지도 몰랐다. 공자의 시대가 아닌 현대에 있어서는 40이라는 나이가 유혹(有惑)의 나이일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재물에 연연한다고 해서 용도계장을 기피할 만큼 아둔한 사람도 우리 회사에는 없을 것이었다.
다만 모두들 그를 ‘뱀 피하듯’ 하는 것은, 그가 자기 돈을 아끼듯이 그렇게 남의 돈이 귀한 줄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자기 돈을 아끼기 위해서 남의 돈으로 먹고 마시자는 그 뒤틀린 정신 상태가 못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주모에게까지 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미운 사람도 있는 법 아닙니까.”
“왜 아니우. 부처님 말씀에두 있잖수, 싫은 사람 보는 것처럼 괴로운 일두 없다는. 저년두 따지자면 그래서 남편을 버렸다우.”
주모의 말에 나는 급히 경대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그녀는 거울 속에서 히힝 하고 말처럼 웃었다.
“지년이 웃기는! 틸레비 좀 그만보구 술상이나 봐아. 제육 한 접시 하구 소주다.”
주모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녀는 발딱 일어났다. 청바지에 무명천의 흰 블라우스 차림이 꽤나 세련되어보였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려 내가 물었다.
“아주머니도 이제 본격적으로 돈벌일 하실 모양이군요. 색씨까지 두신 걸 보니?”
“색씨? 저런 반편을 색씨로 뒀다가 당장에 거덜이 나게?”
“반편입니까?”
“속이 없어서 법도 필요 없는 년인데, 요새 세상엔 그게 반편이지 뭐.”
주모는 내 담뱃갑에서 한 개비 뽑아 물며 수다를 떨어댔다. 그 얘기를 한마디로 간추리면 ‘약지 못하고 야무지지 못하고 악착스럽지 못한 천성 때문에 신세 조진 년’이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 친적인 모양이죠?”
“아냐, 오 년 전 직업소개소를 통해서 우리 집 식모루다 들어왔었다우. 그런데 재작년에 우리 바깥 양반이 위암으루다 세상을 뜨구 집안이 풍지박산이 되는 바람에 나는 이렇게 술장수가 됐구, 저년은 시집이라는 걸 갔는데…… 불쌍한 년이지.”
마치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주모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방문 앞에서 나직이 말했다.
“엄마, 상 왔어요.”
피우던 단배를 재떨이에 찧듯이 눌러 끈 주모는 엉덩걸음으로 다가가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술상을 받으려다 말고 마치 불에라도 닿은 듯 깜짝 놀란 소리로 외쳤다.
“에그머니나, 글쎄 이년이 이런다니까! 무슨 놈의 고길 이렇게 많이 썰어 담았냐? 아무래두 네년이 나 망하는 꼴을 못 봐 환장을 한 게야!”
“아따, 고기 몇 점 더 왔으며 어떱니까!”
내가 주모의 입을 막을 양으로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냉큼 입을 다물 주모도 아니었다.
“한두 접이 더 얹혔어야 말을 않지, 이렇게 담으면 돼지 한 마리루 다섯 접시 내기두 어렵다구! 얼씨구, 이년아 웃음도 나오겠다!”
주모는 계속해 흰창으로 그녀를 흘겨보고 있었다.
“그만하세요. 안주값을 더 쳐드릴 테니.”
“그럼 반 접시값만 더 내실라우?”
“금방 하신 말씀은 통돼지의 오분의 일이나 되는 분량이랬는데 그 돈만 받아도 되시겠습니까?”
그제서야 주모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녀는 그 웃음을 지우며 말머리를 돌렸다.
“이것아, 밖에 손님이 오셨으면 얘길 해야지, 이런 맹추 같은 것!”
주모는 방을 빠져나가며 그녀의 팔뚝을 꼬집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깜빡 잊었었다는 듯이,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엄마, 저분들 식사 손님들이에요. 난 순대국밥은 잘 못 말겠더라.”
“이년아, 방에 들어가 술시중이나 들어. 네년한테 국밥 말랬다가는 솥째루 갖다 바칠라.”
주모는 그녀가 방으로 돌어서자 탕 소리가 나게 문을 밀어붙였다. 주모의 험구에도 그녀는 노여워할 줄을 몰랐다. 노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칭찬받은 철부지처럼 입가의 웃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구…… 선생님 그렇잖아요?”
나는 그녀의 얘기에 깜짝 놀랐다. 혹 아내가 둔갑을 하여 이렇게 엉뚱한 여자로 변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라는 말은 아내의 입버릇이었다. 부엌에 나가야 될 일이 있다든지 빨랫거리가 쌓였다든지 방을 치워야 될 때는 으레 그런 소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어떤 때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도 수없이 그 말을 되풀이했다. 화면에 패션 쇼가 소개된다거나 바다 혹은 계곡 같은 경승지가 비친다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연속극의 장면이 나오면 아내는 여지없이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앞세우고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 고생을 하느냐며 한탄을 해댔다.
사람이 백 년을 살아도 고작 3만6천5백 일밖에 살 수가 없는 것인데, 무슨 팔자를 타고 태어났기에 호강 한번 못 해 보느냐는 것이었다. 아내의 소원은 돈을 물 쓰듯이 써보고 죽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돈을 모으겠다는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는 여자였다.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지 잘 살아보려는 노력은 눈곱만큼도 하질 않았다. 좀 거창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게는 개혁 의지가 전혀 없었다.
나는 그러한 아내의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려고 무던히 애도 써봤지만 늘 실패였다.
“나랑 똑같은 월급쟁이 마누라가 두 아이를 기르고 저축을 해서 집도 마련하는데, 당신은 어째서 늘 적자 타령이야?”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 짓은 못 한다구요. 지금 이 고생도 지겨운데 더 이상 어떻게 고생을 하라는 거예요? 사람이 살면 백 년을 살아요, 천 년을 살아요?”
“사람이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야. 앞날을 위해 고생하며 저축도 하고…… 당신도 아일 가지면 생각이 좀 달라질 거야. 그러니 이제 우리도 아이를 갖도록 하자구. 우리가 결혼한 지도 벌써 삼 년이나 됐어.”
“삼 년이 아니라 삼십 년이 되어도 당신 수입이 늘지 않음 난 아일 낳지 않겠어요. 우리 두 내외 사는 것도 이렇게 지지리 궁상인데 거기다 애까지 있어봐요. 도대체 뭣하러 그 고생을 사서 하자는 거예요?”
“이보라구, 내 나이 벌써 서른다섯 이야. 고생을 해두 젊을 때 해야지, 앞으로 접점 세상살기가 더 여려워진다구. 그리고…….”
“그리고고 뭐고 듣기 싫어요. 당신 말대로 점점 살기가 힘든 판인데 게다가 애까지 있어보라구요 ! 당신은 그 알량한 돈벌일 한답시고 멘날 밖으로 나다니니까 모르지만 집 안에서 밥해 먹구 빨래하구 청소하구……여자가 무슨 죄순 줄 아세요? 더구나 애까지 낳아 묶이라구요? 아니, 사람이 살면 몇백 년을 산답디까?”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그녀의 물음이 내 눈앞에 가득 펼쳐진 아내의 환영을 지워주었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뭐라구 불러야 됩니까?”
“조민숙이라해요I
“미스 조…….”
“미스가 아네요.”
그녀는 또 히잉 웃었다.
어쨌든 미스 조 얘기는 말이오, 천 년을 살 것도 아니고 만 년을 살 것도 아니니까 되는 대로 살자 이런 얘기요?”
"잔을 주셨으면 술도 주셔야죠. 그런데 선생님은 제 얘길 오해 하셨나봐요.”
“오해?”
조민숙은 내가 따라준 술을 단숨에 털어넣고 말했다.
“제 얘긴요, 사람이 살면 얼마나 오래 산다고 그렇게 아둥바둥 사느냐 이거예요. 그저 눈만 뜨면 돈벌 궁리나 하고 그래가지군 서로들…… 특히 서울 사람들이 그런다구요. 제 생각은요, 이왕에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뭔가 좀 좋은 일을 하다가 죽고 싶어요.”
나는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의외의 대답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누구나 입에 발린 소리로 내뱉을 수 있는 진부한 얘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민숙의 입을 통해서 흘러 나온 그 말은 마치 아침 이슬과도 같은 신선감으로 내게 전달되었다.
조민숙의 주량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술기운이 돌자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은 술에 취하여 자신의 감정을 혜프게 드러내보인 처사는 아니었다. 그녀는 다만 내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고향을 등지게 된 빌미는 형부에게 처녀를 잃고 또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 데에 있었다고 했다. 스물둘의 꽃다운 나이에 그 꽃도 피우지 못하고 시들게 된 자신이 가련했을 뿐만 아니라 언니는 물론 집안 식구들을 대할 낯이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때로서는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한 가지, 약을 먹는 일이라고만 생각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실패하여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병원에서 태어난 셈이에요. 그때 그 병원의 수간호사인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이런 얘길 들려줬어요. 외국에서 있었던 실화래요. 중노동의 종신형을 받은 한 죄수가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실려가기 위해 배를 탔대요. 그 섬에는 평생토록 중노동을 해야 하는 죄수들만이 모여 산대요. 그런데 거기에서는 아무리 건강한 사람들도 일 년만 지내면 해골이 된다는군요. 그러니 그 죄수인들 무슨 희망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그 죄수가 죽음의 심으로 끌려가던 도중에 바다 한가운데서 배에 불이 났더래요. 불이 나자 간수가 그 죄수의 쇠고랑을 풀어줬대요. 힘이 센 그 죄수는 몸이 자유롭게 되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불 속에서 십여 명의 승객을 구출해냈고 불을 끄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대요. 그런 공로로 그 죄수는 특사라는 걸 받게 되었다지 뭡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죽은 거나 다름이 없던,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가 없어 자포자기했던 그 죄수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거지 뭡니까. 그 얘기를 들려주면서 수간호사가 내게 말했어요. 희망을 잃지 말라구요.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는 여러 가지가 생각되어지데요. 그리고 무언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죄수에게처럼 나한테도 무슨 좋은 길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고 매일매일 열심히 살고 있는 거예요.”
나는 별미 음식의 맛을 오래도록 혀에 간직하려는 사람들처럼 끈기 있게 그녀의 얘기를 머릿속에 잡아두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내 가슴속에 갑작스런 물결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무엇이든 그녀를 위해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충동이었다. 그 충동은 막연했지만 또한 강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장 내가 그녀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술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밖에는 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는 조민숙에게 술잔을 권했다.
“술이 강하신 편입니다.”
“이건 술하고 관계가 없는 얘기지만요, 전 풀처럼 강하게 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풀처럼 강한 여자예요.”
“풀처럼?”
“네, 어떤 책에서 읽었어요. 풀이라는 게 형편없이 약해보이지만요, 모진 바람이 불고 난 뒤에야 풀이 강한 것을 알 수가 있대요. 그렇잖아요?”
나는 계속 잔을 비워 그녀에게 주었다. 이렇게 술잔을 나누는 동안 나는 그녀가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이상한 능력이 있는 여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는 상대로 하여금 편한 마음으로 가슴속을 열어보이게 하는 마력 같은 것도 있었다. 나도 그녀가 내게 보여준 것처럼 내 가슴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시간은 마치 오랜 방황 끝에 돌아와 있는 시간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3년이 넘게 한솥엣밥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서 무수한 밤을 함께 한 아내에게서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기분이었다.
밖에서는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술을 더 마실 수가 있었으며 가게문이 닫힐 시간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주모는 내가 돌아가기를 채근했다. 주모는 추석을 쇠기 위해 수원에 있는 큰집엘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겔 비울 수가 없어 걱정했는데, 글쎄 저년이 날 봐주느라고 때맞춰 나타나질 않았겠수? 그래 저년한테 가겔 맡기구 갈 참인데, 여자 혼자 있는 집에다 술 손님을 두고 갈 수야 없잖우?”
“그렇다면 내가 한 시간이라도 더 앉아 있어주는 게 미스 조 편에서는 든든하고 좋지 않습니까!”
“아따따, 고양이 쥐 생각하시는구랴. 그런 히떠운 소리 그만하고 어서 집에나 가우. 추석 뽀나스 다 까먹지 말구.”
주모가 옷을 갈아입겠다고 설쳐댔으므로 나는 더 이상 진피를 부릴 수 없었다.
내가 ‘함경도집’ 을 나왔을 때는 얼굴의 주기를 감추기에 알맞은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출근 때와는 반대로 나는 지하철로 20분쯤 가다가 내려서 버스로 바꿔 탔다. 나는 차 속에서 내내 조민숙만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녀는 참으로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묘한 힘이 있는 여자였다.
내가 그녀의 생각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은 버스에서 내려서였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느닷없이 아내의 환영이 복병처럼 기습해왔다. 아내의 배후에서는 탄식과 포악과 야유와 불만이 불꽃처럼 치솟아올랐다.
나는 술 냄새를 감추기 위해 껌을 사서 질겅대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 막다른 골목 왼쪽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 집이 내가 세들어 사는 집이었다.
대문 앞에 멈춰 선 나는 잠시 호흡을 했다. 체내에 있는 술 냄새를 일시에 내뿜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러고 나서 철문의 왼쪽 상단부에 눈길을 꽃았다. 날은 이미 어두웠으나 그곳에 장치된 초인종은 열 나흘 달빛을 받아 또렷하게 보였다. 똑같은 모양의 벨 두 개가 유방처럼 나란히 붙어 있었다.
어느 할 일 없는 손이 그 두 개의 벨을 유방으로 삼아 여자의 나체를 그리느라고 철문의 페인투를 깊이 긁어놓았다. 지금은 그 위에 페인트가 덧칠되었으나 가느다란 허리의 상하에 강조된 풍만한 가슴과 둔부의 윤곽은 제법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나체의 왼쪽 유두를 살며시 눌렀다. 그것이 셋방을 든 우리의 벨이었고 다른 하나가 주인집의 것이었다. 벨을 누르고 한참 동안 기다렸으나 아내가 나오는 기척이 없었다. 나는 벨을 연거푸 눌러대고 아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역시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어도 기척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텔레비전에 넋을 빼앗기고 있다 해도 이처럼 오랫동안 벨을 울리게 할 아내가 아니었다. 아내의 그 참을성 없는 성격으로 시끄러운 벨소리를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잠이 들어 있을 시간도 아니었다. 나는 아내가 짐 안에 없다고 단정했다.
나는 주인집 벨을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집에는 미안한 노릇이었지만 그렇다고 월장을 할 수도 없었다.
“뒷방 새댁이우?”
두 번째의 벨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리며 주인 아주머니의 늘어진 목소리가 밀 려나왔다.
“죄송합니다, 우리 집사람은 어딜 간 모양이죠?’
“아니, 이게 뭔 소리우?”
슬리퍼를 직직 끌며 와서 빗장을 따준 주인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면서 다시 내게 물었다.
“오늘 새댁 안 만났수?”
그녀는 아내가 아직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그 점에 때문에 꼬박꼬박 새댁이라는 호칭을 썼다.
“아뇨, 전 지금 퇴근하는 길입니다.”
“쯧, 이거 뭐가 잘못 돼두 단단히 잘못 된 모양이구랴 ! 그럼 집은 어찌됐수?”
놀란 채로 굳은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이 달빛을 받아 어떻게 보면 괴기스럽 게까지 느껴졌다.
“집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만.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얘길합시다.”
주인 아주머니가 망연자실하여 서 있는 내 옷소매를 가볍게 잡아끌며 앞장을 섰다. 그녀는 목련이 서 있는 모퉁이를 돌아 우리 방이 있는 뒤채로 향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필시 아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역시 우리의 방에는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았다. 방문 앞에까지 앞장 섰던 주인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어서 들어가서 불 좀 켜봐요.”
내가 방에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그녀도 뒤따라 들어서며 질문 공세를 폈다.
“정말 새댁한테 아무 말두 못 들었수?”
“아아뇨.”
“새댁 얘기가 오늘 열다섯 평짜리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이라구 했는데, 그렇다면 그게 말짱한 거짓뿌렁 이었구랴!”
“아파트요? 전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정말 딱한 노릇이구먼!”
주인 아주머니는 몹시 들뜬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낱낱이 밝혔다.
그녀는, 군대에 나간 큰아들이 한 달 후면 제대를 하게 되어 있어서 약 보름 전에 아내에게 다른 곳에 방을 알아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우리가 세든 방은 그 큰아들이라는 학생이 썼던 방이었으나 그가 군대에 나가 있는 3년 동안 그냥 묵혀두기가 뭣해서 우리에게 세를 놓은 것이라 했다.
그런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는 1주일 전에 15평짜리 서민아파트를 계약했기 때문에 중도금을 내야 하겠으니 전세금 7백만 원 중에서 3백만 원만 달라고 했고, 그녀는 의심할 일도 아니고 해서 그 돈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잔금을 치르는 날이라며 나머지 4백만 원을 마저 달라고 해서 마련해주었노라고 했다.
“새댁 얘기로는 오늘 자기가 택시편으로 운반할 수 있는 짐 몇 덩어리를 실어다 그 아파트에 갖다놓겠다구 합디다. 그리구선 점심 나절에 큰 짐 가방 세개와 텔레비를 택시에 싣구 나갔어요. 그러면서 나한테 뭐랬는지 아우? 남은 짐도 있고 또 새로 이사가는 아파트에서 명절을 맞는 것보다 살던 데서 명절을 쇠는 게 낫겠다는 거예요. 내 생각도 그게 좋을 듯싶어 그러라구 했지 뭐유. 당장에 써야 될 방두 아니니 우리 큰애가 제대할 때까지는 눌러 있어두 된댔지요. 그랬더니 색시가 뭐랬는지 아우? 참으로 인정 많으신 아주머니라며 오늘 저녁 남편하고 저녁을 사 먹고 들어오면서, 내가 켄터키 치킨을 좋아하니까 그거 사다 드리겠다구, 글쎄 그런 말까지 하구 갔어요. 그런데 심씨는 벌써 보름 전부터 있었던 일을 새까맣게 모르구 있으니, 글쎄 이게 무슨 난리예요?”
주인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방 안을 살펴보았다. 텔레비전과 옷장 위에 올려져 있던 트렁크 등이 없어진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경대 위에 잔뜩 널려 있던 화장품들도 깨끗이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흰 종이로 접은 학 한 마리가 뎅그마니 놓여 있었다.
아내는 자기가 집을 비울 때는 자기가 전하려는 메모를 꼭 이렇게 학으로 접어놓곤 했다. 나는 급히 그 종이학을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단 두 줄의 사연, ‘나를 찾지 마세요. 그것은 소용없는 짓이니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뭐라구 써 있수? 전셋돈 다 받았다구 써 있죠?”
“…….”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둥실 떠올랐다. 나는 나도 모르게 전신의 힘을 모아 펼쳐 들고 있던 종이 쪽지를 두 손으로 구겨서 움켜 쥐었다. 전신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거 갖다 뵈드릴까? 돈 주구 받아둔 영수증들이 있는데·…·심씨 명의루 됐다구 합디다. 도장두·…·.”
나는 간신히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 아닙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편지에 그렇게 써 있군요.”
“정말이우?”
주인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를 않는 눈치였다.
“아주머니, 방은 추석 쇠고 나서 곧 비워드릴게요.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더 이상 그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떼밀린 사람처럼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내 뒤를 따라오며 전등의 스위치를 내리고 방문을 밀어 닫았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처가집은 서울이우?”
주인 아주머니의 질문을 받는 순간 지렁이를 잡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도리질을 했다. 아내는 그럴 여자도 못 되었다. 남이 지렁이를 잡아 돈을 벌면 그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을 뿐인 여자였다.
“혹 짚이는 데라도 있수?”
“글쎄요, 찾아봐야죠.”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우.”
나는 골목을 빠져나오자 곧장 찻길로 향했다. 찻길로 나오기는 했으나 막막한 심정이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찻길에서 서성이다가 나는 가까운 다방으로 들어섯다. 차라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왜 도망을 쳤을까?’
나는 계속해 담배 연기를 아내의 얼굴로 뿜어댔다. 그러나 아내는, 잃은 목걸이를 찾느라고 늦었다며 술 냄새를 풍기던 그날의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순간, 퇴근길에서 산 목걸이에 생각이 미쳤다. 나는 그것을 윗도리 속주머니에서 꺼내보았다. 알록달록한 색동 무늬의 포장지에 싸인 목걸이 케이스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눅일 수 없는 배신감 때문이었다.
‘나를 찾지 마세요, 그것은 헛일이니까요.’
돈 많은 늙다리와 농탕 치는 아내의 모습이 얼굴이 떠올랐다. 떠올랐다. 나는 목걸이 케이스를 다시 속주머니에 간수하며 속으로 외쳤다.
‘그래, 이 개 같은 년아! 이 알량한 선물로 널 기쁘게 해주려 했던 내놈이 밸빠진 놈이었어!’
나는 내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느닷없이 조민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리로 가자!’
나는 급히 다방을 나왔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했다.
내가 ‘함경도집’에 도착하였을 때, 시계는 아홉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술청엔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출입구인 미닫이 유리문도 닫혀 있었다. 그러나 방에는 아직도 불이 밝혀져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탕탕탕, 문틀을 두드렸다. 두르르두르르, 창유리들이 진저리를 쳤다.
“오늘은 영업 끝났어요.”
안에서 조민숙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납니다, 아까 다녀간 사람이라구요!”
나는 목청을 돋우어 소리쳤다.
“어머나, 아직 집에 안 가셨어요?”
조민숙은 다행하게도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문 좀 여세요.”
“잠기지 않았어요. 열고 들어오세요.”
나는 미닫이를 힘주어 밀쳤다. 너무 힘을 주었기 때문에 문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열렸다. 조민숙도 방문을 열고 술청으로 상체를 내밀어 나를 맞았다.
“집 지키는 사람이 문도 잠그지 않고 집을 봐요?”
“그러잖아도 이제 막 문단속을 하려던 참이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가 상체를 내밀어 막고 있던 방문을 터주었다.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내 얼굴에 눈길을 꽂으며 물었다.
“왜 아직 집엘 안 가셨어요? 혹 뭐 잊고 가신 게 있었나요?”
“아이들이 추석 선물을 기다릴 텐데…….”
“난 아이가 없습니다.”
“아이가 없음 부인은 더 지루하게 기다린다구요.”
“마누라도 없습니다.”
“어머, 남자들은 툭하면 그런 속뵈는 거짓말을 잘하더라!”
조민숙이 샐쪽 눈을 흘겼다.
“맹세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나는 당당하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었다. 조민숙의 입가에 웃음이 걷혔다.
“그렇다면 속보인다고 한 얘기 취소하겠어요.”
조민숙이 말끝에 히힝 하는 웃음을 달았다. 웃음이 터져나오며 입김에 실려온 치약 냄새가 내 코 언저리에 잠시 머물다간 사라졌다. 아마도 이제 막 양치질을 마친 참인 모양이었다.
나는 속주머니에서 목걸이 케이스를 꺼내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게 뭐예요?”
“풀어보면 알게 됩니다.”
“어머머, 내게 주는 선물이란 말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녀를 채근했다.
“어서 뜯어보라니까요.”
그제서야 조민숙은 포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알몸이 된 케이스를 열다가 깜짝 놀라 온몸을 굳히는 것이었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이거 금목걸이잖아요!”
“십사 케이라고 합디다. 금이 반 돈쯤 되나 봐요.”
“어머머, 이런 걸 왜 내게 주시죠?”
조민숙의 눈에 짙은 의혹의 빛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그 의혹에 찬 눈길을 풀어줄 방법이 없었다.
“이 비싼 걸 왜 주시느냐구요.”
“미스 조한테 술 한잔 얻어먹고 싶어서요.”
“그렇담 그냥 제가 술 대접을 하겠어요.”
“제발 부담 갖지 말고 받아줘요. 그냥 주고 싶어서 주는 겁니다.”
나는 조민숙의 손에 들린 케이스에서 목걸이를 꺼내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그리고는 “사랑해, 사랑해.”라고 속으로 말했다. 내 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괴어 있었다. 어디선가 귀뚜라미 한 마리가 외롭게, 외롭게 울고 있었다.
―1986년
2016년 12월 26일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