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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편, 죄악을 사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 찬양
요절 : 8절,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103편은 다윗의 시인데 중심점은 도표에 표시된 대로 7번이나 촉구하고 있는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찬양에의 초대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라 하는가? 핵심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셔서(8), 죄악을 사하시고(3),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10),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12) 하고, 4번이나 강조하는 사죄의 은총에 대한 찬양입니다.
이점에서 명심해야할 점은 “사죄”(赦罪)하심이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3) 한, 구속(救贖)으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사실입니다. 왜 이렇게 행해주셨는가? 4번 등장하는 인자(4, 8, 11, 17)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인자(仁慈)하심이 풍부하시도다(8),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11), 인자하심은, 영원까지 이르며”(17) 합니다.
103편의 구조(構造)는, 여호와의 성품과 행사를 증거하는 둘째 단원을 중심으로, 첫째 단원과, 셋째 단원에서는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고 촉구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심점이 둘째 단원에 있는 것입니다.
첫째 단원(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둘째 단원(6-19)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
셋째 단원(20-22) 다스리심을 받는 너희는 여호와를 송축하라
첫째 단원(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첫째 단원의 중심점은 “송축하라와, 은택을 잊지 말라”는 말씀에서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신에서 설교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칭이 “나”로 되어 있습니다.
①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1) 하고 촉구합니다.
㉠ 어찌하여 이처럼 찬양하라고 촉구하는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하고, 베풀어주신 “은택”(恩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② 3-5절은 베풀어주신 “은택”이 무엇인가를 진술하는 내용인데,
㉠ “저가 네 모든 죄악(罪惡)을 사하시며”,
㉮ “네 모든 병(病)을 고치시며”(3),
㉯ “네 생명을 파멸(破滅)에서 구속하시고”,
㉰ “인자(仁慈)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4),
㉱ “좋은 것으로 네 소원(所願)을 만족케 하사”,
㉲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5) 합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에 우리의 시선이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에 쏠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에 있는 것입니다. 중풍 병을 고침 받는 것보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막 2:5)가 우선인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3하)를, 육신의 병에 국한시키어 믿기만 하면 무슨 병이든지 고침을 받는 양 강조하는 것을 조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하신, 심령이 소생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답인 것입니다.
3절 안에는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3)가 함께 등장하는데, 만일 “모든 병”이 낫지 않는다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도 함께 믿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셨다”는 말은, 우리 생명을 파멸, 즉 지옥만을 면하게 해주신 것이 아니라, 왕관을 씌워주시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 “왕 같은 제사장”의 지위에 올려주셨음을 가리킵니다. 이 은택을 잊지 않는 자라면 여호와를 송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 같은 맥락에서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신다”는 점도, 일반은총보다는 특별은총에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한 것을,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자기가 자신에게 설교할 줄을 아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자신에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둘째 단원(6-19)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둘째 단원에서는 인칭이 “나”에서 “우리”로 바뀌고 있는데, 교회 공동체에 베푸신 은택을 진술하는 내용입니다. 중심점은,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다”(8)는데 있습니다.
③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6) 합니다.
㉠ “압박당하는 자”에게는 “의로운 일”을 행하시고, 압박하던 자는 “판단”, 즉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출 6:6) 하신 말씀으로 인도해줍니다.
㉡ 그래서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行事)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7) 하는 것입니다. “알리셨다” 말씀하는데,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신 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가 있습니까? 핵심적인 것은,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다”(히 3:5) 하고 말씀합니다.
바로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여 내신 예표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출애굽을 “증거”케 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출 10:2) 하신, 이것이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신” 핵심적인 행사인 것입니다.
④ 왜 이렇게 행해주셨는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치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8-9) 합니다.
㉠ 이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데 성경의 축을 이루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를 처음으로 계시하신 것은 출애굽 당시 송아지우상을 섬겼을 때(출 34:6)입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이 말씀을 붙잡고 간구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계승(민 14:8, 욜 2;13, 욘 4:2, 대하 30:9, 느 9:17, 시 86:15)시켜 내려왔던 것입니다.
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處置)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신”(10) 것은 이 성품 때문입니다.
㉠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다” 말씀하는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이,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고후 5:19, 21) 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 이점이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仁慈)하심이 크심이로다”(11) 하는 말씀 속에 함의되어 있습니다.
⑥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12) 하는데, 이렇게 행해주실 것을 이미 모세를 통해서 알려주셨는데,
㉠ 대 속죄일에 두 염소를 택하여 하나는 속죄제로 드리고 다른 하나는,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 지니라”(레 16:21-22) 하고, 알려주셨습니다.
㉮ 다윗은 이 은택을 알았기에,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하고 진술할 수가 있었고,
㉯ 세례요한도 이를 알았기에,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하고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 하나님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塵土)임을 기억하심이로다”(13-14) 하고 말씀합니다.
㉮ 이 말씀을 통해서 두 방면의 뜻을 생각할 수가 있는데, 첫째는 인간은 피조물로써 하나님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 둘째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塵土)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는 것은,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을 아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이점을 78편에서도,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78:38-39) 하십니다.
⑦ 그래서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15-16),
㉠ “여호와의 인자(仁慈)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17)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이렇게 행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경외하는 자”, 즉 불쌍히 여겨주시기만을 구하는 자에게 라고 말씀합니다.
⑧ 이점이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18) 하시는 말씀에도 나타납니다.
㉠ 둘째 단원은 전체가 하나님께서 행해주신 은혜인데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應答)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경외하는”(17)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가?
㉮ 첫째는 “그 언약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 둘째는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18)라고 말씀합니다. “언약”은 믿음과 관계가 되고, “법도”는 행함과 연관이 있습니다. 언약을 믿는 자에게는 그 법도를 행함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말씀입니다.
㉡ 이점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점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말씀하는 “지켜야할 언약”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言約)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신구약을 관통하고 있는 언약은 오직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확고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죄로 말미암아 단절(斷絶)이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시내산 언약, 즉 인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불가능성이 돌비가 깨어지는 것을 통해서 시내산 현장에서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인류의 시조의 범죄로 말미암아 단절이 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은, “원복음--아브라함 언약---다윗 언약”으로 이어지는, 즉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세워주신 메시아언약 곧 복음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지키는 “믿음과, 법도”를 행하는 순종도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보수(保守)하지 못하면 윤리적으로도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만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도 이루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법도를 행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 은혜, 인자,”가 이끌어주셔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점을 에스겔서에서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 36:26, 27) 하십니다.
⑨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19) 합니다.
㉠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6) 하고 시작한 둘째 단원은 “만유를 통치하시도다”(19) 하고 마치고 있는데, 이는 메시아왕국을 전망하는 종말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服從)한 것을 보지 못하고”(히 2:8) 하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셋째 단원(20-22) 다스림을 받는 너희는 여호와를 송축하라
셋째 단원의 중심점은 도표에 표시된 대로 4번이나 강조되어 있는, “여호와를 송축하라”는데 있습니다. 103편의 구조는, 가운데 여호와의 성품과 행사를 배치하고, 앞뒤로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누구들에게 촉구하고 있는가?
⑩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20-21) 합니다. 그러면 “천군 천사”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 다윗은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 하여도 신약성경은,
㉮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히 1:14) 말씀하고,
㉯ 사도 바울은, “내가 교회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25) 하고,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자는 천사들이 아니라 구속함을 얻은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 그래서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22상) 하고, 천군 천사에 국한시키지 않고, “지으심을 받고, 다스리심을 받는” 모든 자에게로 확대해서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자는,
㉮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11, 13, 17),
㉯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들”(18),
㉰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다스리심을 받는”(22) 곧 형제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1) 하고 시작한 103편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22하) 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 어찌하든지 나는 “언약을 지키며, 그 법도를 행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이루며, 여호와를 봉사하며, 여호와를 송축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죄악을 사하시고 구속하여주신 하나님 찬양”입니다.
적용 : 본문을 통한 적용은,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여주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워주신” 하나님의 행사를 찬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지키고”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순종의 삶이란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묵상
㉠ “내 영혼아” 하고 자신에게 설교하는 경건성에 대해서,
㉡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알리셨다”는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
㉢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는 천군 천사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