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그의 애첩인 클라라 페티치(클라레타 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와 함께 붙잡혀 그 해 4월 28일에 가혹한 린치를 당하고 총살당한 후 광장에 거꾸로 매달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척 흥분한 상태였고 지긋지긋한 그의 독재에서 해방된 상태라 무솔리니와 클라레타의 시체를 향해 온갖 환호와 야유를 퍼부어 대고 있었습니다. 당시 클라레타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거꾸로 매달린 상태라 당연히 스커트가 뒤집어졌고 속옷마저 노출된 상태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향해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죠.
그 때 한 여성이 사형대 위로 올라가 클라레타의 스커트를 다시 바로 잡아주고 자신의 벨트를 풀어 그녀의 스커트카 다시 뒤집어지지 않도록 고정해 주었습니다. 비참한 클라레타의 시신을 보고 환성을 내지르든 군중들도 그녀의 행동앞에 잠잠해졌습니다. 자신도 무솔리니의 잔당으로 몰릴 위험을 각오하고 그런 행동을 한 여성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이후로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한 관용구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이른 바, [클라레타의 스커트] 입니다. 군중의 패거리 심리와 집단 증오 속에서도 양심과 상식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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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포함한 요즘 신학계와 교계를 보면 정의와 공평이 아닌 '안으로 굽은 잣대'들이 난무합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개혁을 말하던 사람들이 동료들의 비리 앞에 침묵을 지키고 하찮은 의리론을 들먹입니다. 부패한 이들이나 그런 부패를 질타하는 사람들이나 '내 편'을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잣대를 바꿔대는 사람들이 널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현실의 모습 속에서도, [클라레타의 스커트]를 바로잡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 편, 네 편을 따져서 잣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사랑하며,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행동이 바뀌지 않고 언제나 올곧게, 예측 가능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친구가 적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 사람은 분명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일 것입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
첫댓글 예전에 제 개인 페이스북에 썼던 글입니다. '패거리 정의'가 갈수록 심화되는 이 때에 다시금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공평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