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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지리산두레마을에서는 농어촌교회 사모수련회가 시작되었다. 올해로 25년째 열리는 행사이다. 금년에만 200여명의 사모들이 참가하고 있는 이 행사에는 참가자격이 한정되어 있다. 벽지 농촌이나 외딴 섬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아내들 중에 전교인 50명 이하인 교회의 사모들에게만 참가 자격이 있다. 올해 참가한 사모들 중에는 목포에서 배로 2시간이나 떨어진 섬마을에서 배와 버스를 4번이나 갈아타고 온 분이 있는가 하면, 한 사모는 휴전선 가까이 강원도 한 마을에서 출발하여 온종일 걸려 저녁나절에 도착한 사모도 있다. 그냥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닥거리며 편안히 쉬다 가게 한다. 프로그램 중에 참가자들이 조를 짜서 즉석 연극하는 밤 행사가 있다. 연극 공연하는 내용을 보노라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연기하는 사모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넘치는 끼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런 신명과 끼를 지닌 인물들이 궁벽진 산골에서, 외딴 섬에서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하고 감탄을 거듭하게 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놀고 웃고 스트레스를 실컷 발산하는 프로그램인데 마치는 날에는 눈물바다를 이루며 이제 가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죽을 각오로 섬기겠노라고 고백하는 사모들이 줄을 잇는다. 지금 33세 된 아들이 출산할 때이다. 그때 우리 부부는 경기도 화성군의 한 바닷가에서 섬기고 있었다. 교인 이십 명의 작은 교회였다. 아내가 태기가 있음을 알고 난 이후로 매월 일 만원씩을 출산비를 위해 저축하였다. 아내가 산기가 있어 서울 한 산부인과 병원으로 갈 때는 15만원이 준비되었다. 그 정도면 출산비가 될 것으로 여겼으나 아내가 노산이어서 정상 분만이 안되고 제왕절개 수술로 분만케 되었다. 수술 덕에 산모와 아이는 무사하게 되었으나 퇴원하는 날 퇴원비가 무려 125만원이나 나왔다. 나는 병원 원장님께 시골 목사여서 사정이 안되니 좀 깎아 주시라고 기운 없는 소리로 부탁을 드렸더니 75만원으로 깎아주었다. 아내에게 퇴원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 일러주고는 서울시내로 돈 구하러 나갔다. 그날 무려 13집을 돌아서 겨우 모자라는 돈을 구할 수 있었다. 고향 친구들, 대학동창들, 친척집들을 생각나는 데로 찾아다닌 끝에 겨우 퇴원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밤 8시가 지나 병원으로 돌아오니 아침부터 짐을 꾸려놓은 체로 아이를 안고 있던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맞았다. 그날 나는 결심하였다. 훗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좋은 세월이 오게 되면 지금의 나처럼 어려움을 갖고 있는 농촌과 어촌의 목회자들을 돕는 일을 하여야겠다고. 그 후로 7, 8년이 지나 좋은 세월이 왔다. 그래서 농어촌교회 중에 전교인 50명이 안되는 가장 가난한 교회의 사모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벌이는 행사를 시작케 되었다.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해 주는 경우도 있다. 돌아갈 때는 푸짐한 선물도 한 꾸러미씩 안겨 드린다. 우리 부부가 농촌목회를 하며 어려웠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최선을 다하여 베푼다. 이 행사는 광고가 필요 없다. 한 번 참가한 사모들은 다음 해 다시 열릴 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 열겠다고 하였더니 일년내내 그날을 기다려 왔는데 안 열면 어쩌느냐는 호소가 연이어 들어오기에 어쩔 수 없이 열었던 해도 있었다. 나는 이런 목회자 부부들이 한국교회를 지켜 나가는 그루터기라 확신한다. 대도시의 대교회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지금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그렇게 요란스런 큰 교회로 가시지를 아나하시고 벽촌에서 섬마을에서 제단을 지키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로 가실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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