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시 교중미사가 끝나니 마음이 바빠진다.
탈다(多)말다(多)한 그 유명한 보노성가단이 피정(야유회)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활동 자체가 주일날 이루어지는 성가단체라 어딘가를 하룻밤 묵으면서까지 모두 함께 다녀온다는 것은 그 계획 자체가 깜찍하고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단장님의 고집스런 신념과 단원들의 희생정신이 만들어 낸 작품이리라...
버스를 타기로 한 우체국 앞은 속속들이 모여든 단원들과 그 가족들로 분주하다
도밍고형제 어머님과 세레나 자매님 부군께서도 보인다.
얼마나 졸라댔으면 따라나섰을까... 아니면 속았거나...
집요했을 가족들이 놀랍기만 하다.
짐을 실은 단장님의 우직스런 코란도차 문이 열리니 루이제, 레지나 자매님이 밤새 준비한 맛난 음식들과 조리기구가 쏟아져 나온다.(맛은 있을런지...)
집채만한 아이스박스도 하나 내려지니 핑계는 자매님들이지만 단장인 본인이 좋아하는 맥주만 잔뜩 풀어 얼음과 함께 차곡차곡 잘도 재운다. 대충 처박힌 PET소주 4병이 안쓰럽게 보인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앞 차창을 꽉 매우며 도밍고형제가 자동차의 소음과 아이들이 질러대는 괴성 속에서 피정(야유회)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는 먼저 마이크도 없는 이상한 관광차를 끌고 온 기사님을 위해 박수를 치란다...
기가막힌 일이지만 모두의 안전을 맡겨야 할 딱한 우리들의 처지였기에 일단 아부의 박수를 보낸다. (사실은 그눔의 돈 때문에 저지른 단장님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에 쳐주었는지도 모른다)
다분히 형식적인? 듯한 묵주기도를 2단 바치고 나니 무언가 빨리 즐겁고 싶은 단원들의 기대는, 워낙 큰 덩치라 자기 한 몸 추스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도밍고형제를 이 흔들리는 열악한 차속에서 그만 순교자로 만들어 버린다. - 그 덕분인지 도착할 때까지 도로 표지판 하나조차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참여한 가족들을 한 가정씩 소개한다.
부군과 함께 온 세레나 자매님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온 사비나 자매 가정이 박수를 가장 많이 받는다. 베네딕도형제와 처음 본 그의 자녀들 순서에서도 조금은 넉넉한 박수가 나온다. 아마도 아이들의 활달한 모습이 예뻐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박수를 너무 크게 쳐주었다는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으며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소음을 우리 모두는 경험해야 했다....참! 대단한 놈들이었다.
조를 나누어서 풀어 본 퀴즈시간은 현재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조금은 유리한 프랑카와 이런저런 사연으로 상품권에 눈이 멀어버린 베토벤(영준)이 속한 사랑조가 단연 돋보였다.
도밍고형제가 10년간이나 모아 기증한 5000원권 상품권 10장 중 8장이 망설여지며? 사랑조에 건네진다.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가족대항 노래자랑에서는 세레나 자매님과 형제님께서 주목을 끌었다.
두 분께서 노래를 잘 불러주시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집에서 못다 한 애정표현을 과감하게 해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연세에 많은 이들 앞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마도 집 안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일들이 일상화 되어 있는 듯하다. 혼자이신 사비나 자매님 시어머니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드디어 청풍공소다.
자그마한 산자락에 안기듯 자리 잡은 공소는 오히려 기도보다 놀기가 그만인 것 같다.
왜 단장님이나 미카엘 형제님이 이곳을 추천했는지 그 의도가 조금은 의심스러울 뿐이다
본오동에 계시다가 이사 오신 예로니모 형제님의 환대와 언뜻 보기에 고등학교 기술 선생님 같은 선교사님의 환영을 받으며 공소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설립배경, 현재의 상황 등을 안내받으니 그제서야 공소에 머물고 계신 주님의 오상(五傷)이 느껴진다.
이곳의 주님께서도 아직은 치유 중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저녁이 차려졌다.
루이제, 레지나 자매님이 밤새 준비한 찌개와 반찬들이 즐비하다.
역쉬 예상 했던대로 맛은...
도밍고 어머님께서는 한 수 가르치듯 김치를 선 보이셨다.
그 역쉬 맛은.................모두들 훌륭했다.(쩝~)
상위에 놓여 있는 싱싱한 새우는 혼란만 가중시킨다.
우리 집 밥상이라면 대장인 내가 제일 먼저 낼름 집어먹겠지만 나보다도 더 연세한 분들의 혼란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맛없는 순으로 반찬이 없어진다.
도밍고의 입속으로 계속 잘려나가는 새우 속살이 얄밉다.
아이들은 공소가 떠나가라고 뛰어다니며 악을 써댄다.
뭐라 그래보았자 소용도 없다.
조용히 먼저 관저로 들어가시는 선교사님의 등 뒤로 포기의 은총이 전해진다.
어쩌면 다시는 아이들 있는 단체는 받지 말아야겠다는 부족한 결심을 감추시려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도 미운 내 새끼”를 품어주시니 선교사의 절제 된 품위가 느껴진다.
설거지를 어느 정도 마치니 노래와 함께 하나 둘 흩어진 형제자매님들이 방으로 모인다.
어디서 배웠는지 내가 왜 까마귀냐며 반문하는 그 중 까만 베네딕도 형제의 능숙한 기타 연주음이 깔끔한 방안 가득 흐른다.
그렇게도 불러댔던 목마른 사슴은 여기서도 첫 곡이 되어 목이 비틀어질 지경이다.
다들 돌아가며 하고픈 얘기들을 부스럼 없이 내어 놓았다.
성가대와의 인연, 성가대 활동을 함에 있어서 기쁘거나 어려웠던 점, 나름대로의 결심 등...
개인적으로는 피정이나 야유회시에 꼭 있었으면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참으로 놀라운 시간이었다.
어느 분 할 것 없이 진솔하고 담백한 대화 솜씨에 그저 놀랍고 존경스럽고 이쁘고 멋지고 등의 감정만이 교차 할 뿐이다.
게스트로 오신 분들도 유감없이 말씀을 내어놓으시니 진지함은 배가 된다.
똥강아지들을 돌보느라 계속 머물지 못한 레지나 자매님이 조금 아쉬웠지만 덕분에 그 넘들은 저마다 멋진 공을 하나씩 같게 된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며 조별로 노래자랑을 한다.
역시 음악적인 성향에 있어서 무언가가 다른 지휘자님이 속한 조가 제일 극성이다.
노래자랑인데 춤까지 곁들이며 가관이 아니다.
단장님이 속한 조는 인원이 부족하다며 불리한 상황을 인지시키려했지만 노래를 들은 모든이들의 마음은 그 자리에 없는 사람보다 있는 사람들이 더 문제로 보였다.
곡 선택을 잘한 사랑조는 그나마 성가대 피정이라는 것을 깨우쳐 준 유일한 합창을 뽐낸다.
그동안 카페에 올라있는 나름의 글들을 소개해본다.
좋은 글로 따진다면야 올린 글보다 달아 준 댓글이 더 글 스럽다.
무진장 써댄 맑향의 저자 빈첸 단장님의 눈빛이 순간 번득였지만 형평 차원에서 그 살기(殺氣)를 외면하고 한 작품만 소개한 나의 용기가 가상하다.
내가 써보았던 새들의 합창을 필두로 빈첸, 도밍고, 레지나, 미카엘라, 사비나 등으로 발췌한 글을 낭독하니 새삼 감동스러운 감정이 가슴과 눈 주위에 머문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께 초대되었다.
지글거리는 삼겹살 내음이 쌀쌀한 청풍 밤공기에 퍼진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울 때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배려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밤이라 안 드시겠다던 도밍고 어머님과 박데레사 자매님이 진작에 결심을 포기한다.
준비해온 고기의 양이 염려되는 순간이다.
안전을 맡긴 기사님은 우찌할려고 그러는지 그나마 부족한 술(소주)의 많은 양을 소비해버린다. 소주를 더 살 때도 없는데 안전에 대한 염려보다 소주가 아까워 죽을 뻔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워지는 술병만큼이나 우리의 사심(私心)도 비워간다.
별로 웃기지도 않는 돌 얘기가 마음을 비우니 계속 반복되며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드디어 허기를 채우신 대모(밍고모)께서 누구게? 시리즈를 들려주시고는 퇴장을 하셨다.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다.
고기를 더 이상 드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왕성한 기력을 보여주심으로써 오래오래 사실 것 같은 믿음이 생겨서이다. 부모님들은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
하지만 사비나씨가 걱정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어릴 적 해 보고는 처음해보는 공소예절이다.
전 날 밤 인내의 시간을 잘 참고 견디어 내셔서인지 선교사님의 말씀이 비상하다.
성가는 기도이기 때문에 잘하는 것보다 마음을 다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의 골자에서 그동안 무지개빛 음정으로 잘 버텨 온 프랑카의 어깨가 풍선 부풀 듯 커진다.
신부님이 안 계신 곳에서 성체를 영(領)하게 되고 보니 성체가 새로운 느낌으로 맛을 낸다.
이 공소안에서 화음 섞인 성가가 울리는 일도 흔하지는 않을 터! 밤사이 술에 잠긴 목에서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 목소리도 들을 만하다.
이제 떠나야 하는 시간이 왔다.
조금은 청풍의 기운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한 감도 있지만 받지 못한 우리의 잘못일 뿐 청풍이 우리에게 주지 않은 것은 없다.
수고하시는 선교사님께 최대한 폐가 되지 않게끔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서 미끄러지듯 청풍을 떠난다.
시원섭섭해 보이는 선교사님의 배웅만큼이나 섭섭했던 우리들이었기에 그 주변을 잠시 관광하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나중에 돈 벌어서 이 주변에 별장하나 지으라는 미카엘형님 말마따나 돈도 좀 벌어서 이 곳에 별장 짓고 쫄깃한 찰 광어도 실컷 사먹고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신 모든 성가단원님들의 가슴에 올해는 청풍에서 가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평소 언뜻 군인같은 절도와 단호함이 느껴져 무뚝뚝하게 까지 보이시던 도미딜라어머니의 야참타임의 퀴즈가 강력히 메모리됩니다. ...<.뭐게~~요~~~>.아 ! 오마니! 너무 귀엽습니다(???&&%%) .내내 건강하셔요.
<예로니모>형제님의 목빠지게 우리를 기다림은 차라리 처절함입니다.핸드폰 안가지고 계셔서 점심약속시간 조정이 힘든관계로, 점심마저 홀딱 굶으셨으니.....밤새 술 드시고 그 속 얼마나 쓰렸을까요? 불편함이 없는지 샅샅히 살펴주시고 새벽에 뭐하나 더 주실려고 ..장뇌삼술이 아침오줌되어 향기롭습니다.
청풍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기억에서 지워지지않습니다. 예로니모 형제님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면서 항상 마음속의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네요. 마음의 휴식처로 삼아야 겠어요. 우리 또 가요. 겨울에....
아!!! 장편한권 읽은 기분 $% 하지만 이미 추억된 영상들을 재생시켜준 즐거운 기행문였음다. 담 기회가 된다면 쇠주좀 넉넉히 사갈게요 ^^
루이제 언니 돌 뺐쑤? 젤 큰 돌이 박힌 것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