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지에 쓴 것처럼 아침에 깨어 조금 황당했어요. 어젯밤 의사 선생님에게 검진을 받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로 꿈쩍도 않고 아침이 될 때까지 잤으니 말이에요. 두 시간만 자고 일어난다고, 깨워달라고 그리 말했건만 그대로 쭉 잠을 잤어요. 그래서 아침에 부랴부랴 전날 일지를 써 놓고 가느라 늦어졌어요.
어젯밤에는 노들 숙소에서 강태구 형도 같이 자고 목요일 월차를 낸 피플파워 그리고 saba가 같이 잤어요. 강태구 형은 프랭스하고 같이 한국음악을 공부하고 지금은 대학과 예술고등학교들에서 강사 일을 하는데 어제 밤부터 미리 와 하룻밤을 함께 자고 오늘 하루종일 도우미로 일했습니다. 숙소에서 아직 천막을 치러 나가기도 전에 햄스터에게 전화가 왔어요. 벌써 단식장에 도착했다고.
저는 어제 일지를 썼고, 글을 옮겨 나를 것 몇 개에, 대답해주어야 할 게시물들 살피고 나니 열한 시가 넘어 단식장으로 나가게 되었어요. 며칠 안 되었는데 노들 야학부터 혜화로터리로 나가는 그 골목이 벌써 정이 많이 든 것 같아요. 기분 좋게 골목을 걸었습니다.
단식장에 나가보니 벌써 사람들이 많아요. 괜히 나만 게으름을 피운 것 같은 느낌에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오늘은 큰 천막을 쳤습니다. 작은 천막은 고 옆에 손수레를 내놓고 꽃을 파는 아저씨에게 빌린 거였는데, 어젯 저녁 형사가 그 아저씨에게 왜 이들에게 천막을 빌려주었느냐며 어서 돌려받지 않으면 장사를 못하게 할 거라는 으름짱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작은 천막을 아저씨에게 돌려드려야 했어요. 처음에는 천막이 커서 조금 썰렁한 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작은 천막이었을 때 답답함이나 비좁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좋기도 했습니다.
천막 안에는 벌써 고마리 선생님, 새벽녘 전명순 선생님, 나명희 선생님이 앉아 꽃에 리본을 달고 있었어요. 아, 반가운 선생님들. 그리고 선생님들 곁에 아멜리에가 있었고, 이 편에는 반전평화팀으로 이라크에 함께 갔던 은국이가 앉아 있었어요.
선생님들과 반가워 인사를 나누었고, 오랜만에 보는 은국이하고도 인사를 나누었어요. 은국이 또한 예비 병역거부자로 요즈음 강철민 이병이 기독교회관에서 벌이는 농성 일에 함께 하고 있다고 했어요.
어제 아멜리에가 뺏지를 여러 개 만들어왔거든요. 우리 상징 그림을 이름표 만하게 만들어, 그 안에 '하루 소망 더하기'라고 써 넣은 뺏지. 응, 그건 단식장에 와서 하루 단식을 함께 하는 분들 가슴에 달아드리는 거예요. 너무 표나는 것도 아니면서 참 예쁘고 보기에 좋아요. 그런데 그 뺏지를 피플파워와 아멜리에 두 사람이 달고 있는 거예요. 나는 처음에 그냥 도우미라는 표시로 그걸 달았나 했는데, 둘 다 오늘 하루 단식을 하기로 했대요. 우와, 감동. 전혀 그럴 거라 몰랐으니까 내가 더 놀랐겠죠.
피플파워님과 강태구 형은 천막을 치고 나서는 거 왜 지하철에서 나누어주는 무가지 신문 있잖아요? 그 신문, 사람들 집어가라고 잔뜩 놓여 있길래 그 사이마다 우리 유인물을 끼워 넣었대요. 적어도 그 신문 보는 사람이면 소망의 나무 유인물도 다 보겠어요. 잘 한 일 같아요.
어제 유은하 씨 홈페이지에서 소망의 나무를 알게 되어 찾아왔다는 아저씨 한 분 있잖아요? 그 분이 또 왔어요. 조금 멀리에서 오는 데도 한 눈에 알겠더라고요. 어깨가 떡 벌어지고 몹집이 좋거든요. 이 아저씨 이름 좀 물어보려 하니까 아무래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끼리 얘들아, 그럼 이 아저씨 뭐라고 이름 붙일까?" 했더니 아저씨가 그냥 '도깨비'라고 하세요, 하는 거예요. 그래요, 뭐. 그럼 이제부터 도깨비라고 하면 되죠. 도깨비 아저씨가 하는 일은 굴삭기 운전이래요. 그냥 운전, 운전 하고 말하시길래 그게 뭐냐고 물어봐도 구체로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거든요.
큰 천막 안팎에서 누구는 꽃에 리본을 묶고, 누구는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누구는 유인물을 한 뭉치 들고 다니며 시민들에게 전하고, 누구는 아직 덜 정돈된 단식장 둘레를 정리하고, 그러는 사이 지나가던 아저씨가 뚝뚝하게 다가와 서명을 하고, 종종 걸음을 치던 교복입은 여학생들이 재잘대며 서명도, 나뭇잎 소망도 예쁘게 써 넣고..... 나는 천막 안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어요. 만화책 <<맨발의 겐>>을 보고 있었어요. 일본 히로시마 원폭을 배경으로 한 만화거든요. 이거 어제 풀무질 책방 아저씨가 준 거요, 모두 열 권짜리 책인데 앞으로 날마다 한 권씩 주겠다 하셨어요. 그렇게 나는 천막 안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을 때 앞에 있는 책상 쪽에 어느 아이들과 어른들이 이름을 쓰고 있었어요.
아아, 공진하 선생님이요? 그럼요, 알지요.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학교에서 뵙기도 했지만, 실은 그 뒤에 우리 형수님 얘기를 들어 더 기억에 나요. 우리 형수님이 한국우진학교라는 장애인 학교에서 행정일을 보는데, 공진하 선생님이 그 학교 선생님이라 했거든요. 공진하 선생님은 미진히 휠체어를 밀고 있었고, 또 다른 선생님 한 분은 현우 휠체어를 밀었어요. 그렇게 넷이 극장에 다녀오는 길이래요. <<여섯 개의 눈동자>> 아, 영화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알 거에요. 나도 꼭 보고 싶었던 건데.....
선생님들을 도와, 아이들을 도와 나뭇잎 엽서에 이름 쓰는 것까지 다 하고 아이들 스스로 나무에 걸 수 있게 했어요. 찡그리고 뒤틀린 얼굴이지만 아이들이 계속해서 웃어서 좋아요. 이라크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서 만난 꾸아꾸아, 알라위, 오마르, 재키 같은 아이들도 떠올랐고, 한국에서도 늘 만나던 승기, 영준이, 동우 같은 아이들도 떠올랐습니다.
바쁘게 인터넷을 써야할 때는 지하철 역 들머리에 있는 파파이스라는 햄버거집에 들어가거든요. 아, 무얼 먹겠다고 들어가는 건 아니고요, 거기 2층에 보면 공짜로 쓸 수 있는 인터넷 컴퓨터가 셋이나 있어요. 그래서 잠깐 그 컴퓨터로 몇 가지 확인과 메일 답장만 처리하고 나오려고요. 그렇게 잠깐, 있다 나오니까 천막 안에 문승연 선생님이 있어요, 우리의 문쌤! 사무실이 바로 길 건너편이니 점심을 드시러 나왔다가 오늘도 들러주신 거였어요. 우리 사진도 찍었다. 고마리 샘이랑 문쌤이랑 나랑 셋이서, 가슴에는 노란색 평화 꽃 꽂고.
문 샘 가고, 고마리 샘 가자마자 천막 안으로 스사노와 동치미 선생님 들어오셨어요. 두 분 다 들어와서는 가방을 여는데요, 동치미 선생님은 선생님이 쓴 동화책 두 권을 주셨어요. 저는 싸인이 안 되어 있어서 얼른 싸인해 달라고 했지요. 그 곁에서는 스사노가 가방을 여는데 인형이 나와요. 스사노는 인형을 손수 만드는 일을 하거든요. 하나는 동치미 샘 드린 거고, 또 하나는 내 꺼냐고 했더니 내 껀 아니래요. 나한테는 지난 번에 한 번 줬다고. 이번 건 OOO 선생님 꺼라고 농성장에 맡아놓으면 될 거라 했는데, 그 OOO 선생님은 어서 찾아가세요. 안 찾아가면 나 할 거예요.
스사노는 인형도 인형이지만 사진이 아주 끝내주잖아요. 우리 소망의 나무 포토에세이도 모두 스사노가 찍은 사진으로 만들고 있고요. 스사노는 다시 찍사로 돌아가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뭐가 생각난듯, 아 여기 알아요? 하는 거예요. 어딘데? 스사노가 사진기에 있는 사진으로 보여줬어요. 찻집. <성곡 미술관>에 있는 찻집이래요. 거기에 동치미 선생님하고 둘이 갔다 왔다고. 어, 언제 둘이 그렇게 친해졌지? 정말로 그렇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지난 번 토요일 행사 뒤로 단식장에서 자주 만나게되면서 친해진 모양이에요. 가방을 부리고 어느 정도 지나 스사노는 다시 열심히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동치미 님은 다시 색지를 꺼내어 나뭇잎을 오렸어요. 그리고 저는 옆에서 계속 <<맨발의 겐>> 1권을 읽고 있었고요. 한참을 그렇게 있는데 동치미님 아는 분이 천막 가까이에 왔어요. 단식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샘터>에서 어린이책을 만드는 분이래요. 인사를 나누고, 서명을 하고, 조금 이야기를 나눈 뒤 동치미 선생님은 그 분과 잠깐 자리를 비웠어요. 얼마나 좋아요. 많고 많은 약속 장소 가운데 우리 천막을 그 장소로 하니 말이에요. 헤헤. 어제 피네 아저씨도 그랬고, 오늘도 이 보다 저녁, 이상교 선생님이 또 그랬어요.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천막 둘레에서 만나자 하고는 종이를 오리면서 기다렸으니까요.
다녀가는 분들은 더 있었어요. 어제 저를 취재한 <<참말로>>라는 인터넷 신문의 대표 일을 보는 선생님이 다녀가셨고, 바로 뒤에 정숙이 누나가 왔어요. 누나는 굴삭기 운전을 하는 도깨비 형이나 강태구 형하고 금세 친하게 어울려 이야기하면서 나뭇잎에 끈을 묶었어요.
누나 얘기로 앞으로 글쓰기 회 선생님들 가운데 며칠은 누가, 며칠은 누가 하는 식으로 하루지지방문에 대한 대충의 계획이 있다했어요. 내일은 박미애 선생님, 모레는 무너미의 노광훈 선생님 부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거기에 당장 놓인 토요일에 행사를 가지려면 금요일 밤에 선전물 많이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걱정을 하면서 그 날 이혜숙 누나가 회사일 마치고 와서 밤새 같이 일을 하면서 눈을 붙이겠다고 했어요.
갑자기 와글와글한 소리.
사실 처음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영 이상하게만 했어요. 그냥 누런 상자 종이를 북북 찢어서 거기에 ‘파병 반대’도 쓰고, ‘나도 강철민이다’ 같은 말들을 썼어요. 한 눈에 보아도 은국이가 주로 만난다는 아나키스트 모임 학생들이구나 싶었어요. ‘자유’는 한 없이 그리워하면서 왜 나는 ‘분방’에 대해서는 그리 어려울까? 으악, 어지러운 ‘자유분방’. 그래도 멀지 않은 농성장에서부터 이렇게 힘주러 온 마음,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참 많이 힘이 나고 든든했습니다.
그 뒤로 이상교 선생님이 오셔서 나뭇잎을 오렸고, (아 이상교 선생님도 선생님이 쓰신 동화책을 챙겨다 주셨어요.) 이 천막장 안에서 만나기로 한 후배를 기다렸어요.
어둑어둑. 해가 기울면서 염창근, 조배준, 무명 이가 와서 일을 함께 했어요. 아, 상엽엄니 님도 왔어요. 상엽 엄니님은 (오늘은 비록 저녁이기는 했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는 분이세요. 어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
저녁에는 저와 승로가 같이 촛불 시위 하는 곳으로 갔어요. 기독교 회관에서 여는 철민씨의 농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거든요. 오늘 저녁에는 촛불 시위를 하기로 했고, 간단하게나마 공연도 한다고 했어요. 우리 천막은 어떻게 할까 하다가 우선 나와 승로가 그리로 가고, 나머지 사람들이 우리 천막을 여덟 시까지 지키다가 그게 대충 정리되고 끝나면 기독교 회관으로 와서 합류하자고.
대충 그렇게 합의하고 나와 승로는 기독교회관으로 갔어요. 둥글게 모여 서서 촛불을 켜는데, 아마 거기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학생인 것 같아요.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차례인데 왠지 그 자리의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어요. 이야기 하는 모습이나 내용도 그렇고, 이야기 끝을 꼭 구호로 맺는 것도 그랬고. 나는 그 자리에 있는 게 좀 어색해서 7층 철민씨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어요.
파병반대를 요구하며 부대에 복귀하지 않는 신념과 용기의 젊은이 강철민. 하지만 내가 철민이를 처음 만나자마자 느낀 건 이 애도 나처럼 참 약하겠구나 하는 거였어요. 말에도 별 힘이 없고, 눈의 초점도 그리 또렷하지 않았어요. 약한 사람.
그래요, 철민이가 그곳 기독교 회관 7층에서 하는 싸움이 나의 싸움이고, 바로 소망의 나무가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싸우는 싸움이겠지요. 철민이도 약하고, 나도 약하고, 그리고 소망의 나무에 잎사귀를 달아주는 이들 모두 약한 사람들이에요. 약한 사람들, 우리가 서로 손을 잡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세상에 바랄 수 없을 거예요. 약한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약할 뿐이고, 억눌릴 뿐이고, 슬플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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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깐 어머니댁에 다녀왔다. 노들 야학에 엊그제 부터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씻고 싶어 다녀왔다. 밤 열 두 시 쯤. 엄마는 주무시다 깨어 깜짝 놀란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려 배고프지 않냐고, 춥지 않냐고. 아니요, 안 추워. 배고픈 거 하나도 몰라. 엄마, 나 이번에 담배는 아주 끊었다. 피우고 싶은 생각도 안 나. 그래, 그거 하나 잘했다.
엄마가요, 이번주 토요일에 온대요. 지난 번 왔을 때 빈손으로 온 걸 마음에 걸려 하시더니 고구마를 한 상자 사왔대요. 그걸 다 구워가지고 오겠다고요. 거기 천막 둘레에서 일하는 도우미들, 손님들 먹으라고요. 그래서 잘 됐다 했어요. 토요일이면 우리 작은 문화제 하는 날이잖아요. 그리고 내가 알기로도 여기 저기 모둠으로 선생님들이 꽤 많이 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 엄마. 그러면 한 서너 시쯤 해서 와요. 그 때 선생님들도 많고 그럴 거야. 아, 근데 그 시간이면 하숙생들 저녁 준비해야 하는구나. / 아니, 아니야. 이쪽 방 학생이 취직하고 첫 월급이라고 그날 저녁을 산다고 그랬대서 엄마 그 날은 저녁 안 해도 돼. / 어어, 그럼 정말 잘 됐네. 그럼, 엄마. 그 날 고구마 맛있게 구워 가지고 와요. 엄마가 그거 가져오면 사람들 좋아할 거야.
첫댓글 이상해, 소망의 나무 홈페이지에도 올리려 하는데 '님아' 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올릴 수가 없다네. 나는 아무리 눈을 부비고 찾아보아도 그 말이 어디있나 모르겠어요. 졸려서 그런가 봐. 운영자 가운데 누가 어떻게 좀 해 주실래요?
소망의 나무에서 꽃을 나누어주기때문에 꽃 파시는분이 싫어하실까봐난 은근히 걱정했더랬어요. 그런게 천막까지 빌려주셨다니...고맙기도 해라. 자기 물건 누구 빌려주는것까지 참견받는 세상이라니..원.
지금 긴급 상황 발생 ! 우리 단식장 천막 다리가 부러졌어요. 천막을 못칠 상황. 어서 꽃파는 아저씨 천막이라도 다시 빌려야 할텐데... 걱정이에요.
기범씨 어디에서 단식해요? 나는 사랑의 단식을 하고 있는데 형이상학적이지 며칠전 굶주림 맘에 사과를 하나먹고 창피함과 부끄러움에 아무도 만날수가 없어 (거짓말) 푸른 여름이라면 잎사귀로 내 몸을 가리고, 농사라도 땀 흘러 지을텐데 겨울이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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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너 형, 너무 어려워. / 혜화역 4번 출구에서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