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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4 서정시와 서사시
플뤼메의 이층집
18세기 중엽 파리의 어느 고등법원장이 정부를 숨겨 두고 있었다. 당시의 대귀족들은 공공연하게 정부를 두었으나 부르주아지들은 이를 숨기고 있었다. 그 법원장은 파리의 생제르맹 문밖에 플뤼메 거리라고 불리는 한적하고 외진 곳에 정부의 집을 지었다.
그 집은 2층으로 된 단독주택이었다. 아래층과 위층에는 각각 방이 둘 있었고 아래층에 부엌, 위층에 거실, 지붕 밑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집 앞에는 정원이 있고 길거리 쪽으로 커다란 철문이 나 있었다. 이 정원은 넓이가 1에이커 정도 되었고, 한길에서 보면 이것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뒤에는 작은 뒤뜰이 있고 그 한구석에 방 2개가 딸린 작은 별채가 있었다. 이 별채에는 지하실도 있었는데 만약의 경우 아이와 유모를 숨기기 위한 일종의 비상용 건물이었다.
이 별채에는 비밀 문이 있어 긴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돌을 깐 이 통로는 꼬불꼬불하고 양쪽에는 높다란 담이 있었으며 위는 툭 터져 있었다. 이것은 묘하게 사람 눈에 가려져 있어 흡사 뜰이나 밭 담장 사이에서 꺼져 없어진 것 같았으나, 사실 그 담장의 모퉁이를 돌아 굴곡을 따라 가면 또 하나의 문에 도달하게 되어 있었다. 이 역시 비밀 문으로 먼저 문에서 5백 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거의 다른 구역이나 다름없는 바빌론가의 인적 없는 길에 면하고 있었다.
1829년 1월, 나이가 지귻한 한 사나이가 찾아와서 그 집을 고스란히 셋집으로 빌렸다. 이 사나이는 그 통로의 비밀 문 2개를 고치게 했다. 이 집에는 법원장이 쓰던 낡은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은 그 밖에도 몇 가지를 수리하도록 시켰다. 뒷마당에 포석을 깔고 토대에 벽돌도 세우고 층층대도 고치고 방바닥에 타일도 깔고 창에 유리도 끼웠다. 이 일이 끝나자 젊은 여인과 늙은 하녀를 데리고 이사를 왔다.
자기 집에 들어간다기보다는 몰래 숨어든다는 표현이 옳을 성싶은 그러한 이사였다. 이웃들은 이에 대해 수상히 여기지 않았다. 이웃이란 없었기 때문이다.
눈에 띄기를 싫어하며 이사 온 사나이는 장 발장, 젊은 처녀는 코제트였다. 하녀는 투생이란 노처녀였다. 장 발장은 이 여자를 자선병원과 가난에서 구해 주었는데, 늙고 시골뜨기인 데다가 말더듬이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그는 이 여자를 채용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는 연금생활자 포슐방이라는 이름으로 집을 빌렸다.
장 발장은 수녀원 안에서 행복한 생활을 했었다.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코제트는 매일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점점 더 싹터 그 밀도가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으로부터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내 것이다. 아무도 이 아이를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매일같이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므로 좋은 수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수녀원은 자기에게 있어서나 딸에게 있어서도 전 세계가 될 것이다. 자기는 여기서 늙어 가고 딸도 여기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딸은 여기서 늙고 자기는 죽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당황하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물어보았다. 이런 행복은 과연 나의 것인가? 이것은 노인인 내가 빼앗고 훔친 이 아이의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남의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일종의 도둑질이 아닌가? 이 아이는 인생을 버리기 전에 인생을 알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아이에 대한 모든 시련을 막아 준다는 핑계로 미리 상의도 하지 않고 모든 기쁨을 빼앗아 버리는 것은, 이 아이의 무지와 고독을 이용해 인위적인 신앙을 품게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왜곡하고 신을 배반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리고 만일 코제트가 앞으로 본이 아니게 수녀가 되어 이 사실을 안다면 자기를 원망하고 증오하게 되지는 않을까?
이 마지막 생각은 거의 이기적이고 다른 생각들보다 유치한 것이었으나, 그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수녀원에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장 발장은 이렇게 결심했다. 비장한 생각으로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네 벽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체재한 5년이란 세월은 필연적으로 불안의 요소를 파괴하고 또한 소멸시키고 있었다 .
그는 태연하게 세상에 돌아갈 수 잇었다. 장 발장은 이미 늙었고 또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이제 와서 누가 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인가?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더라도 위험은 자기 혼자만 짊어지면 되는 것이다. 자기가 교도소에 가게 된다는 이유로 코제트를 수녀원에 묶어 두어야 할 권리는 자기에게 없었다. 또한 의무에 비한다면 위험쯤은 문제가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끝으로 신중하고 조심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코제트의 교육도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결심을 한 그는 기회를 기다렸다. 기회는 얼마 후에 찾아왔다. 포슐방 노인이 죽었던 것이다. 장 발장은 수녀원장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포슐방이 죽을 때 약간의 유산을 남겼기 때문에 이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니 수녀원 근무를 그만두고 딸과 같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원(誓願)을 아직 하지 않은 코제트가 무료로 양육된 것이 미안하니 코제트가 이곳에서 보낸 5년간의 보상으로 5천 프랑을 종단에 헌금하겠다는 뜻을 수녀원장에게 공손히 제의했다.
그는 수녀원을 떠날 때, 평소 그 열쇠를 몸에 지니고 있던 작은 가방을 손수 들고 누구에게도 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 가방은 좋은 냄새가 났기 때문에 코제트가 늘 이상하게 생각하던 것이었다. 이 가방은 그 후에도 결코 장 발장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이것을 자기 방에 간직했다. 그가 이사할 때 가져가는 유일하고도 가장 소중한 짐이었다. 코제트는 웃으면서 그 가방을 부속물이라 부르며 “아이 부러워”하고 샘나는 듯이 말하였다.
장 발장은 다시 자유로운 천지로 나오는 데 있어 일말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는 플뤼메가의 집을 발견하고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그 후부터는 윌팀 포슐방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동시에 그는 파리 시내의 다른 곳에 두 채의 아파트를 빌렸다. 그렇게 하면 늘 한 군데서 사는 것보다 사람의 이옥을 덜 끌게 될 것이며 또 약간이라도 걱정이 되면 곧 옮길 수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기적적으로 자베르의 손에서 벗어난 그날 밤처럼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 두 곳의 아파트는 웨스트가와 옴므아르메가에 있어 상당히 멀리 덜어져 있었고, 아주 초라하고 궁색한 방이었다.
그는 가끔 투생을 남겨 둔 채 코제트만 데리고 웨스트 또는 옴므아르메에 있는 아파트에 가서 한 달이나 6주 씩 보내곤 했다. 거기서는 문지기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는 교외에 사는 연금생활자인데 시내에 칩거하고 있다고 칭했다. 이 덕행 높은 신사는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파리에 세 군데나 거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코제트는 수녀원에서 가사를 익혔기 때문에 간소한 가계를 규모있게 꾸려 나가고 있었다. 장 말장은 매일같이 코제트의 팔을 끼고 산책을 즐겼다. 뤽상부르 공원의 인적 없는 길을 자주 산책했고, 일요일에는 미사에 참석했다. 언제나 생자크뒤오파 성당에 다녔는데,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은 아주 가난한 지구여서 그는 크게 자선을 베풀었다. 성당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기 일쑤였다. 이런 까닭에 ‘생자크뒤오파 성당의 인자하신 선생님’에게 테나르디에의 편지가 배달되었던 것이다. 그는 코제트를 데리고 자주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문했다. 그러나 플뤼메가에 있는 그의 집에는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다.
바빌론가에 있는 집 중문에는 편지나 신문을 ㅂ다기 위한 저금통 비슷한 것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플뤼메가의 집에 사는 3명의 주민은 모두 신문도 보지 않고 편지도 받아 보는 일이 없었으므로, 예전에는 정사의 중개자요 법관 영감의 심복이었던 이 상자도 지금은 납세고지서나 국민군 소집영장을 받는 상자로밖에는 소용이 없었다.
왜인가 하면 연금생활자인 포슐방은 국민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도 1831년의 국세조사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시 당국이 실시한 조사는 신성불가침이었던 프티 퓌픽스 수녀원까지도 손이 미쳤고, 거기서 장 발장도 시 당국의 눈에는 훌륭한 사나이로 보였으며 따라서 경비의 임무를 맡을 만한 사람으로 간주도었던 것이다.
장 발장도 1년에 3-4회는 군복을 입고 보초를 섰다. 그는 기꺼이 이 임무를 수행했다. 그것은 자기가 고독한 속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섞이게 하는 더할 나위 없는 변장이었다. 세금을 내는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해지는 것이 그가 가진 야심의 전부였다. 이 사나이는 안에서는 천사, 밖에서는 시민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어느 날 코제트는 우연히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놀랐다.
“어머나!”
자기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기묘한 불안이 생겼다. 이 아가씨는 자기 얼굴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 한 번은 길을 걷는데 누군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등 뒤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들리는 듯했다.
“아름다운 여자야! 그런데 옷차림은 시원치 않군.”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겠지! 날르 보고 하는 말이 아닐 거야. 나는 옷차림은 깨끗하지만 얼굴이 못났는걸. ‘
또 어느 날 그녀는 투생이 마당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선생님, 아가씨가 무척 예뻐졌어요. 그렇죠?”
코제트에게는 아버지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투생의 말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코제트는 마당으로부터 자기 방으로 달음질해 올라가 거울 앞에 섰다. 석 달 동안이나 보지 않았던 거울 앞에 섰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자기 자신이 제 모습에 놀랐던 것이다.
마리우스가 6개월 동안이나 소식을 모르다가 뤽상부르 공원에서 다시 코제트를 만나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최초의 은밀한 불꽃을 시선으로 교환하던 그날, 코제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장 발장의 습관에 따라 6주를 지내려고 와 있는 웨스트가의 집으로 생각에 잠긴 채 돌아왔다. 이튿날 눈을 뜨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그 이름 모를 청년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그에 상응하는 본능이란 것이 따르는 법이다. 나이 든 영원한 어머니인 자연은 마리우스의 존재를 은밀히 장 발장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장 발장은 이 청년을 마음으로부터 싫어하고 있었다. 그는 좋지 않은 감정은 갖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도 마리우스가 보이면 다시 흉포해지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이 청년을 보기만 하면 옛날에 가졌던 분노에 찬 마음이 일어나 파도치는 것이었다. 느끼지 못하고 있던 분노의 분화구가 자기 내부에서 다시 형성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그의 눈동자는 살기가 감도는 이상한 빛으로 충만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을 보는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적을 노려보는 적의 눈도 아니었다. 도둑을 보는 집 지키는 개의 눈이었다.
그런데도 마리우스는 여전히 무분별했다. 하루는 그가 웨스트 가가지 코제트를 미행했다. 또 다른 날에는 문지기에게 말을 걸었다. 문지기도 의아해 하며 장 발장에게 물었다.
“선생님, 도대체 그 묘한 청년이 누구입니까?”
이튿날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마리우스도 이것을 깨달았다. 1주일 후 장 발장은 이사를 했다. 그는 두 번 다시 뤽상부르나 웨스트가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플뤼메가로 돌아갔다.
코제트는 불평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심을 싫어하는 시기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장발장은 이런 종류의 곤경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다. 그것은 매력적인 유일한 곤경이요, 그가 알지 못하는 유일한 곤경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코제트가 침묵하는 중대한 의미를 조금도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다만, 딸이 슬퍼하는 기색을 느끼고 자기도 우울해졌다. 두 사람이 모두 무경험과 격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한마음으로, 그토록 절실한 애정으로 사랑하고 그토록 오래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그들 두 사람은 이제 따로따로 고민하고 있었다. 서로가 상대방이 원인이 되어 어느 쪽에서도 그 말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원망하지도 않고 미소를 지으면서.
이리하여 그들의 생활에는 차츰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이미 예전에 행복했던 일 가운데서 한 가지 소일거리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것은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코제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방문할 적에는 장 발장과 자주 동행했는데, 그럴 때면 옛날의 감정을 어느 정도 되찾곤 했다. 그리고 좋은 일을 했을 때는 즉 고통받는 사람을 만나 도와주고 많은 아이들에게 원기를 불어넣으며 위로해 주었을 때, 그런 날 밤에는 코제트도 상당히 쾌활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종드레트의 집을 찾아간 것은 이 무렵이었다.
그 일이 있었던 바로 다음날 아침에도 장 발장은 여전히 안채에 나타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침착하기는 했으나 왼팔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상당히 심한 화상 같았으나 그는 상처의 이유를 적당히 둘러대었다. 이 상처 때문에 그는 한 달이 넘도록 열이 나서 외출을 하지 못했다. 장 발장은 절대로 의사에게 보이려 하지 않았다. 코제트가 졸라 대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개 의사라도 불러 오려무나.”
코제트가 매일 밤 천사와 같은 마음으로 그를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그는 옛날의 기쁨을 완전히 되찾았다. 그는 불안과 공포가 사라진 듯 코제트를 보며 말하였다.
“아아, 고마운 상처야! 아아, 고마운 불행이야!”
코제트는 아버지가 앓고 있으므로 안채를 떠나 별채와 뒤뜰에서 주로 지내게 되었다. 거의 매일같이 장 발장 곁에 있으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어 주었다. 대개는 여행기였다. 장 발장은 부활하고 있었다. 그의 행복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빛을 가지고 되살아났다. 뤽상부르 공원, 이름도 모르는 젊은 배회자, 식어진 코제트의 마음, 그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던 이 모든 검은 구름이 걷혔다.
그는 행복에 겨운 나머지 종드레트의 헐어 빠진 방에서 뜻밖에도 테나르디에 부부를 만났던 무서움도 잊게 되었다. 교묘히 도망치는 데 성공했고 자기 행방도 감출 수 있었다. 이제는 걱정 없다! 그 일을 생각하면 오직 그 악당들이 불쌍할 뿐이었다. 그들은 지금 감옥에 있다. 앞으로는 위험을 가해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얼마나 가엾은 가정인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사건이 있던 날 밤 마리우스는 고르보 저택을 박차고 나와 쿠르페라크에 갔다. 여기서 암담한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던 어느 날, 그는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에포닌을 만나 그 처녀의 집을 알려 주겠다는 말에 뒤를 따라갔다. 이때부터 그는 매일 밤 플뤼메가의 철문 앞에 가서 기다렸다.
플뤼메가의 정원 안에는 거리로 향한 철문 옆에 돌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관목 울타리로 바깥에서는 안 보이도록 되어 있었으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철문과 관목 울타리 사이로 팔을 뻗치면 바깥에서 손이 미칠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장 발장은 외출하여 없고, 코제트는 해가 넘어간 후 그 돌의자에 쭉 혼자 앉아 있었다. 바람은 수목 사이에서 살랑살랑 불고 있었고 코제트는 명상에 잠겨 있었다.
부질없는 슬픔이 차츰차츰 밀려왔다. 그것은 저녁이 빚어 주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이요 저녁이 되면 입을 여는 무덤의 신비에서 솟아 나오는 슬픔일지도 모른다.
코제트는 일어나서 천천히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그녀는 이슬이 맺힌 풀 속을 걸으면서 일종의 우울한 몽유병에 빠진 듯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돌의자 있는 데로 되돌아왔다. 다시 거기에 걸터 앉으려는 순간, 종전까지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에 여태껏 보지 못했던 큼직한 돌멩이를 바라보면서 대관절 어찌 된 영문인지를 생각했다. 이 돌멩이가 제 발로 돌의자 위에 왔을 리는 없었다. 누군가가 거기에 갖다 놓은 것이리라, 누군가가 철문으로 팔을 넣어서 한 짓이리라. 이런 생각이 불현듯 일어나자 그녀는 마음이 오싹했다. 그녀는 거기에 손도 대지 않고 감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도망쳐 집 안으로 들어가 즉시 현관문의 겉문을 닫고는 빗장을 지르고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그녀는 문과 창을 있는 대로 잘 닫게 하고 지하실에서 다락까지 온 집안을 투생에게 돌아보게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문에 빗장을 걸고 아래까지 살펴본 뒤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밤새도록 그녀는 산처럼 커다란 구멍투성이의 돌을 비몽사몽간에 보았다.
아침에 코제트는 잠을 깨어 간밤의 공포를 악몽처럼 떠올렸다. 그녀는 옷을 입고 정원으로 내려가서 돌의자 있는 데로 달려갔다. 몸에 식은 땀이 배어나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 여전히 돌멩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순간에 불과했다. 밤중에는 무섭던 것도 낮에는 호기심을 일으켜 준다.
“어머, 무엇일까? 어디 좀 보기나 하자.”
그녀는 큼직한 돌을 들어 올렸다. 그 아래에는 편지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얀 종이 봉투였다. 코제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겉봉에는 수취인의 주소, 성명도 적혀 있지 않고 봉함도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빈 봉투는 아니었다. 안에는 종이가 빠끔히 내다보이고 있었다. 코제트는 그 속을 만져 봤다. 이미 공포심은 사라지고 호기심뿐이었다. 코제트는 봉투 속에 있는 것을 꺼냈다. 그것은 조그만 편지지를 철한 것이었는데 종잇장마다 자잘한 글씨로 몇 줄씩의 글이 적혀 있었다.
무적 아름다운 필적이라고 코제트는 생각했다. 코제트는 이름을 찾아 보았으나 아무 데도 없었다. 받는 이의 이름을 찾았으나 역시 없었다. 대관절 누구에게 써 보낸 것일까? 의자 위에 갖다 놓은 것을 보면 아마 자기에게 보내진 것이었으리라. 그렇다면 또 누구한테서 온 것일까? 억제 할 수 없는 유혹에 그녀는 사로잡혔다. 자기 손 안에서 떨리고 있는 그 종이에서 눈길을 돌리려고 하늘을 바라보고 이웃집 지붕 위를 날고 있는 비둘기를 바라보기도 했으나, 그녀의 눈길은 이내 편지 위에 빨려 드는 듯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속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를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읽은 것은 다음과 같았다.
사랑은 영혼이라 할 수 있다. 그건 영혼과 같은 성질의 것이다. 영혼처럼 성스러운 불꽃이요, 영혼처럼 불후하고 불가분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 속에 있는 영원불멸한 한 점의 등불이어서 아무것도 그것을 제한하고 그것을 끌 수가 없었다. 사랑은 골수까지 그것이 불타오름을 느끼고 하늘 끝까지 그것이 빛남을 본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이에 코제트는 차츰 몽상에 빠져들어 갔다. 이 신비한 글 한 줄 한 줄이 모두 그녀의 눈에 찬연히 빛나고 마음을 이상한 빛으로 넘쳐흐르게 했다.
이 편지는 대관절 누구한테서 보내 온 것일까? 누가 쓴 것일까? 코제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뤽상부르 공원에서 본 그 청년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시 햇빛이 비쳤다. 모든 것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이상한 기쁨과 심각한 불안을 느꼈다. 그것은 분명 그 청년이리라.
그녀는 편지를 반복해 읽고 암기하고 명상하기 위해 짖ㅂ으로 들어가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혔다. 충분히 읽고 난 그녀는 편지에 입 맞추고 품속에 그것을 고이 간직하듯 집어넣었다.
저녁때가 되자 장 발장은 외출하고 코제트는 몸치장을 했다. 몸에 잘 어울리도록 머리를 빗고 옷을 입었다. 외출할 작정이었을까? 아니었다. 그러면 누가 방문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해가 질 무렵에 그녀는 정원으로 내려갔다. 투생이 뒤뜰에 면한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코제트는 낮게 드리워진 마뭇가지를 가끔씩 손으로 헤치면서 나무 밑을 거닐고 있었다. 어느덧 돌의자 있는 데까지 와 있엇다. 아직도 돌멩이는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거기 걸터앉아, 마치 이 돌에 감사라도 하듯이 희고 예쁜 손으로 쓰다듬었다.
불현듯, 그녀는 누가 등 뒤에 온 것을 느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코제트는 뒤를 돌아보며 일어섰다. 그 사람이었다.
그는 모자를 쓰지 않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수척해 보였다. 그의 검은 옷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의 모자는 멀지 않은 덤불 속에 던져져 있었다.
코제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으나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몇발짝 뒷걸음을 쳤다.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청년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슬픈 분위기에 싸인 것을 느끼며 코제트는 보이지 않는 그의 시선을 의식했다.
코제트는 뒷걸음을 치다가 나무에 부딪혔다. 그녀는 여기에 몸을 기댔다. 그 나무가 없었다면 아마 쓰러졌을 것이다. 이때 그의 음성이 들렸다. 코제트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성이었다 . 그것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보다 약간 큰 음성이었다. 그 음성은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오고야 말았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이리로 왔습니다. 거기, 그 의자에 있는 것을 읽었나요? 나에 대해서 약간은 이해하겠습니까? 나를 무서워하지 마세요. 나는 밤마다 여기로 왔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도 본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나의 천사입니다. 내가 온 것을 용서해 주세요. 나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아,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준다면! 나는 당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지금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그렇습니까?”
“아아, 어머니!”
감동한 그녀가 자신도 모르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면서 쓰러지듯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가 코제트를 붙잡아 주었다. 코제트는 쓰러지려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팔에 안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꼭 껴안았다. 그는 비틀거리면서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코제트는 그의 손을 끌어다 가슴에 얹었다. 그는 거기에 자기 편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속삭였다.
“그러면 나를 사랑해 주시는군요.”
그녀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알고 계시잖아요?”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사랑에 취한 청년의 가슴에 묻었다. 청년은 의자에 앉고 그녀는 청년 곁에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언어가 필요 없었다.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술이 어떻게 해서 마주 닿았을까? 새들은 어떻게 노래했을까? 어떻게 해서 눈은 녹고 장미꽃은 피고 5월은 화려해지고, 바르르 떠는 언덕 꼭대기의 검은 나무 저 너머에 새벽은 밝아 오는 것인가? 긴 입맞춤,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실한 침묵 뒤에 충만이 뒤따랐다. 그들의 머리 위에 밤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 상대의 마음에 녹아들었다. 한 시간 후 청년은 그녀의 영혼을 얻고 그녀는 청년의 영혼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서로에게 매혹되고 서로에게 현혹되었다.
“이름이 뭔가요?”
“마리우스라고 합니다. 당신은?”
“코제트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