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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여러분! 사랑하며 사는 믿음입니까? (2)”
+ 본 문 : 요한복음 21장 15절 - 18절 (신약성경 184쪽)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아멘!
서로 축복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한대로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선포한 대로 됩니다. 내게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저를 따라서 신앙고백 하겠습니다. / “예수님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 나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어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 “나는 예수님을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 예배시간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며 사는 믿음입니까?” 하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사랑하며 사는 믿음입니까?
다함께 따라서 선포하며 고백하겠습니다. “내 믿음은 사랑하며 사는 믿음입니다.” 아멘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사람들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먼저 찾아가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먼저 말을 거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주일 오전에 말씀드린 ‘사랑하며 사는 믿음 -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입니다.
이 시간에 계속해서 ‘사랑하며 사는 믿음 -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섯째로,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 예의를 갖추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요. 예수님을 주로 믿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를 세 번씩이나 부르시면서 “베드로야!” 하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만난 베드로를 세 번 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하고 부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를 갖추어서 남을 부를 때, 아버지의 이름을 먼저 부른 후, 그 사람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나 어른이 젊은 사람을 부를 때나 종을 부를 경우에는 아예 생략하고 그 사람의 이름만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예를 갖추어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하고 불러 줍니다.
이때만 그러신 것이 아니라,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내가 누구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신앙고백 했을 때도 "바요나 시몬아!"
하고 예를 갖추어 불렀습니다. 이것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하는 호칭과 똑 같은 의미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사랑은 무엇입니까? 이처럼 예의를 갖추어 상대방을 대하는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세족식을 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시던 식사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겉옷을 벗습니다.
그리고 수건을 허리에 차고, 대야에 물을 가져와 열두 제자의 발을 하나하나 정성 다해 씻겨 주셨습니다.
그렇게 무릎을 꿇고 열두 명의 발을 씻기시느라 상당히 더우셨을텐데, 씻기신 후 옷을 입으셨습니다.
그렇게 옷을 단정하게 입으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까? 우리는 다만 하나님 앞에 죄인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만큼, 우리를 극진히 높이셨고, 예를 갖추어 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땅히 예를 갖추어 하나님을 극진히 높이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를 다해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예배’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때에는, 가장 귀한 분을 뵈옵기에 단정히 옷을 입어야 합니다.
화려한 옷을 입으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입는 옷 중에서 가장 깨끗한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나오며,
우리의 말과 얼굴 표정과 행동 하나 하나에,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경건하게 예배드리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신앙고백이요. 우리가 하나님께 예를 다해 경배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다.” 고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사랑하면 아무렇게나 대해도 좋은 것처럼 착각합니다만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런가 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도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반말하지 말아야 하며, 예의로 대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둘이만 있을 때에는 서로 이름을 불러도 상관이 없고, 서로 반말을 해도 괜찮겠지만,
공식석상에서는 부부 상호간에 반드시 존대 말을 하므로, 사람들 앞에서 서로를 높여 주어야 합니다.
내 남편, 내 아내를 내가 함부로 대하면, 다른 사람들도 내 남편이나 아내를 함부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거의 모든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아버지가 반말하며 함부로 대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들 앞에서 어머니에게 반말을 하는데, 자녀가 엄마에게 존대말 할리가 없지 않습니까?
갈릴리 바다를 찾아온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요한이 "저분이 예수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베드로가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 사랑이 예의를 갖추는 것임을,
배웠기 때문에 그 급한 순간에도 예수님께서 옷을 입으시듯, 자기도 옷을 입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믿음은, 예의를 갖추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여섯째로,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 기회를 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씩이나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역시 세 번씩이나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심으로,
시몬 베드로로 하여금,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세 번씩이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렇게 장담해놓고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
제사장 집 뜰에서 심문받으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면서,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저주하고 부인했던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을 물어 주심으로, 사랑하는 제자 시몬 베드로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처럼 참 사랑은 나를 배신하고, 나를 저주하고, 나를 비난한 사람에게까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회를 주기 때문에 속이 상할 때도 있지만, 그때 상한 나의 속을 보지 마십시오.
나의 그 속상한 마음을 통로 삼아서, 예수님께서 일으키실 부활의 역사를 바라보시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회를 주면,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가 살고 내가 사는 축복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일곱째로,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글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리스어에는 구체적으로 세분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가족들 간의 사랑을 “스톨게 ” 라 하고, 남녀 간의 이성적인 사랑을 “에로스” 라 합니다.
그리고 친구간의 사랑, 동기간의 사랑, 혹은 스승과 제자 간의 사랑을 “필리아”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스톨게든, 에로스든, 필리아든 이들 사랑의 공통점은 “조건이 있는 사랑” 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가족 간의 사랑은 조건이 없다고 말하지만, 가족 간의 사랑도 엄밀히 따지면 조건이 따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을 '아가페' 라고 하는데, 이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하나님으로 사랑하느냐?”
그 물음에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는 “내가 당신을 선생님으로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하나님으로 사랑하느냐?”
그래도 못 알아들은 시몬 베드로는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선생님으로 사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세 번째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선생님으로 사랑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 자신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탓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의 수준으로 내려가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참 사랑은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 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 수준으로 내려와 주셨기에,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조연경 작가가 쓴 ‘세상에서 가장 멋진 프로포즈’ 라는 꽁트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가 아기를 낳는 출산일이 가까워집니다.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운 남편이 '당신이 아기를 낳으면 무슨 선물을 해 주면 좋을까?' 하고 묻습니다.
그의 아내는 웃으면서 ‘사랑스런 내 아기에게 장미꽃을 주고 싶어요.’ 하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아내가 해산을 하려고 하자 급히 산부인과로 달려가서 새벽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 순간 남편은 아내와의 약속이 생각나서 장미꽃을 사러 갔지만, 그 시간에 문을 연 꽃집이 없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자기네들이 전세 들어 살고 있는 동네 어떤 집에 담벼락 밖으로,
넝쿨 장미가 곱게 피어 있는 것이 생각이 나서, 그 밤에 가시에 찔려 가면서 장미를 꺾었습니다.
그 장미꽃을 들고 가면서 '아, 아내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만약 아내가 아이를 낳는 날 비싼 코트나,
보석반지를 사 달라고 했다면 내 형편에 도저히 할 수 없었을 텐데, 새벽이든 밤이든 내가 줄 수 있는,
장미꽃을 요구한 것은 내 아내가 나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라.’ 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더랍니다.
이처럼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 상대방이 해 줄 수 있는 일을 요구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장에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 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당장 내 유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요구할 수 없는 무리한 것들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점수가 안 나오는 아이에게 좋은 점수를 요구하는 부모는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입니다.
돈 못 버는 남편에게 돈 많이 벌어 올 것을 요구하는 아내는, 남편을 범죄하게 만드는 아내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사랑한다면, 자식에게, 남편에게, 부모에게 요구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마십시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 미문에 있는 앉은뱅이에게 선포합니다.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 그리고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여러분!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의 수준까지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를 잡아서 일으켜 올리니" -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 때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상대의 눈높이에서 참 사랑을 실천하므로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여덟 번째로,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 본이 되어 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신 후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은 나를 본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예수님의 분량에까지 자라기 위해 본 받아야 하고, 닮아야 할 아름다운 삶의 모본을 보이셨습니다.
이처럼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삶, 영향을 끼치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좋은 영향을 미치느냐, 아니면 나쁜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바른 진리의 본을 보여줌으로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래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본을 보이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족에게, 자른 사람들에게, 교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인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본을 보이고,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참 사랑하는 실천하므로, 영혼을 살려내는 믿음을 가진 전도자가 됨을 믿습니다.
프로 바둑기사가 바둑 한 판을 두는 데에는, 보통 400여 수를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프로 기사들은 바둑이 끝나고 나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복기할 수 있습니다.
한 프로 기사는 그렇게 복기가 가능한 이유를 ‘우리 프로 기사들은 의미 없는 돌을 놓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돌만 놓기 때문에 그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복기가 가능하지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를 살았든지 간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바둑 기사처럼 복기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조차도 모르게, 복기할 수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인생이 끝나버렸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면, 그 사람은 그 인생을 무의미하게, 정말로 본이 되지 못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하루하루를 좋은 본을 보이며,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삶이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가진 성도의 삶입니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니 캄폴로 박사가 95세 이상 된 사람 50명을 대상으로,
‘만약에 여러분에게 또다시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는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응답이 어떤 대답이었는지 아십니까? 그 대답은 ‘날마다 반성하면서 살겠다.’ 였습니다.
바로 이런 대답은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들이 삶이, 반성해야 할 일이 많은 삶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은 ‘이제부터 용기 있게 살겠다.’ 는 대답이었습니다.
그것은 눈앞의 이득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불의와 타협한 일이 많은 삶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세 번째로 많은 응답은 ‘죽은 후에도 무언가 남는 삶을 살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물거품 같이 다 없어지고 말, 헛된 것들만을 추구하는 헛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한마디로 좋은 본 -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 닮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너희들은 나를 본받으라." 고 말씀한 것입니다.
정말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다운 신앙과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정말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름다운 신앙과 삶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사랑하며 사는 믿음은, 본이 되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며 사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믿음, 먼저 찾아가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어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기회를 주고, 그 사람 눈 높이의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우리로 사랑하며 사는 믿음,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지금부터 영원한 사랑의 발자취를 남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교회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먼저 찾아가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거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예의를 갖추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상대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본이 되어 주는 참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사랑하지 못한 것 때문에 눈물 흘리며 주님 앞에 서는,
천국 입성의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서는 날, 이만큼 사랑했노라고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그 사랑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게 도와주시고, 사랑을 딛고 선,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 그토록 이 땅에 이루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역사가,
날마다 이루어져 가게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