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시인
-1926년(1세)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에서 출생.
-1944년(19세) 평양의학전문학교 입학. 의전 재학 중 전공과는 무관하게 서구 상징파 시집과 영미·프랑스 현대시를 탐독.
-1945년(20세) 해방과 함께 평양의학전문학교 중퇴, 상경. 종로3가 낙원동 입구에 서점 ‘마리 서사(茉莉書舍)’ 개업. 김기림·김광균·오장환·김수영 등이 드나드는 해방기 문화 예술의 거점이 된다.
-1946년(21세) 6월 20일,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부 주최 ‘예술의 밤’에서 「斷層」(후일 「불행한 샨송」으로 개작) 낭독―현재까지 확인된 최초 발표작.
-1947년(22세) 「인천항」(『신조선』), 「남풍」(『신천지』), 「사랑의 Parabola」(『새한민보』) 등을
잇따라 발표. 연말 무렵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동인 ‘신시론’ 결성
-1948년(23세)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신천지』) 등 발표. 봄 무렵 마리서사 폐업.
-4월, 김경린, 김경희, 김병욱, 임호권과 동인지 『신시론』 1집 간행. 이정숙과 결혼. 11월 이전 자유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입사.
-1949년(24세) 4월 5일. 동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도시문화사) 간행. 서문격 산문 「장미의 온도」 수록. 7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후 석방. 여름부터 김경린, 조향 등과 시 동인 ‘후반기’ 결성 준비. 9월 조선문학가동맹 탈퇴 성명서 발표. 11월 전향성명서 발표. 국민보도연맹 가입.
-1950년(25세) 1월. 보도연맹 주최 ‘국민예술제전’ 참여. 자유신문사 퇴사 후 경향신문사 입사. 5월 동인지 『후반기』 발행 무산. 6월 25일 전쟁 발발, 피난하지 못한 채 서울에서 ‘적치 3개월’을 보낸다. 9월 25일 딸 세화 출생.
-1951년(26세) 1·4후퇴 때 대구로 내려옴. 2월 경향신문사 특파원 자격으로 서울 재탈환 작전에 참여. 5월 26일 ‘육군종군작가단’ 결성식 참여.
-1952년(27세) 5월 이후 경향신문사 퇴직, 대동신문사 문화부장으로 이직. 연말 무렵 대한해운공사에 입사. 8월 무렵 부산에서 ‘후반기’ 동인 해체.
-1953년(28세) 7월 중순 서울로 돌아옴. 11월 이상의 유고시 「이유 이전」을 발굴, 게재.
-1954년(29세) 1월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상임간사 취임. 이후 다수의 영화평론 발표.
-1955년(30세) 3월 5일 화물선 남해호 사무장 자격으로 부산항 출항. 3월 22일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 입항, 19일간 워싱턴·오리건 주 일대를 순회하다 4월 초 귀국. 5월「19일간의 아메리카」, 7월 「서북 미주의 항구를 돌아」 등 기행 산문 연재.
-1956년(31세) 1월 초순 산호장에서 시집 『선시집(選詩集)』 재간행(1955년 10월 산호장에서 동명의 시집을 간행하였으나 화재로 대부분 소실). 3월 초순 그의 시 「세월이가면」에 이진섭이 곡을 붙여 발표. 3월 17일 ‘이상(李箱) 추모의 밤’을 추모시「죽은 아포롱―이상 그가 떠나던 날에」를 발표. 3월 20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별세.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
-----------------------------------
박인환 대표시
인천항 외 4편
사진 잡지에서 본 향항香港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상해 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삼십 킬로를 떨어진 곳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되어 있는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 항구에는
상관商館도 없고
영사관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자
냅킨 같은 만내灣內에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 항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銀酒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密船에 실려 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을 돌렸다
서울에서 온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宿舍와
주둔소駐屯所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아 간다
조선의 해항海港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 간다.
---------------------------------------
1950년의 만가挽歌
불안한 언덕 위로
나는 바람에 날려 간다
헤아릴 수 없는 참혹한 기억 속으로
나는 죽어 간다
아 행복에서 차단된
지폐처럼 더럽힌 여름의 호반
석양처럼 타올랐던 나의 욕망과
예절 있는 숙녀들은 어데로 갔나
불안한 언덕에서
나는 음영처럼 쓰러져 간다
무거운 고뇌에서 단순으로
나는 죽어 간다
지금은 망각의 시간
서로 위기의 인식과 우애를 나누었던
아름다운 연대年代를 회상하면서
나는 하나의 모멸의 개념처럼 죽어 간다
-----------------------------------
검은 신이여
저 묘지에서 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파괴된 건물에서 나오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검은 바다에서 연기처럼 꺼진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내부에서 사멸된 것은 무엇입니까.
일 년이 끝나고 그다음에 시작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전쟁이 뺏어간 나의 친우는 어디에서 만날 수 있습니까.
슬픔 대신 나에게 죽음을 주시오.
인간을 대신해서 세상을 풍설風雪로 뒤덮어 주시오.
물과 창백한 묘지 있던 자리에
꽃이 피지 않도록.
-----------------------------------------
목마와 숙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 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여행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먼 나라로
여행의 길을 떠났다.
수중엔 돈도 없이
집엔 쌀도 없는 시인이
누구의 속임인가
나의 환상인가
거저 배를 타고
많은 인간이 죽은 바다를 건너
낯설은 나라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비가 내리는 주립 공원을 바라보면서
이백 년 전
이 다리 아래를 흘러간 사람의 이름을
수첩에 적는다.
캡틴 X X
그 사람과 나는 관련이 없건만
우연히 온 사람과 죽은 사람은
저기 푸르게 잠든 호수의 수심을
잊을 수 없는 것일까.
거룩한 자유의 이름으로 알려진 토지
무성한 삼림이 있고
비렴 계관飛廉桂館과 같은 집이
연이어 있는 아메리카의 도시
시애틀의 네온이 붉은 거리를
실신한 나는 간다
아니 나는 더욱 선명한 정신으로
태번(Tavern)에 들어가 향수鄕愁를 본다.
이지러진 회상
불멸의 고독
구두에 남은 한국의 진흙과
상표도 없는 ‘공작’의 연기
그것은 나의 자랑이다
나의 외로움이다.
또 밤거리
거리의 음료수를 마시는
포틀랜드의 이방인
저기
가는 사람은 나를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