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회장 김형석 변호사
봄볕이 화창한 오후, 뉴저지 팰리 사이드 팍에서 파산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김형석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뉴욕과 뉴저지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교민들 중에서 파산이라는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되는 경우에 처했을 때, 법과 관련된 조언을 해줄 뿐 아니라, 경제적 그리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용기와 도움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또한 2003년 조계사가 맨해튼으로 옮겨졌을때 유학생으로 맺었던 인연을 이어, 지금은 조계사 신도회장을 하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왔기 때문에 불교 신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는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고요, 절에는 어머니가 다니셨는데, 그저 차로 모셔다 드리곤 했지, 저 자신은 불교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2002년에 부인과 뉴욕에 유학을 온 김형석 변호사는, 2003년에 브루클린의 Law School에 입학하게 되었다. 곧 첫 아이를 갖게 된 부인이 자꾸만 절에 가고 싶다고 해서 전화번호부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많지 않았던 한국 절 중에서도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절’을 찾아 처음 조계사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유학을 오지 않고 한국에 살았다면, 어쩌면 불자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김 변호사가 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부인도 역시 스스로 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처음이었다고. 조계사에는 그때 막 퀸즈의Woodside에서 맨해튼으로 이사 온 후이여서, 당시 주지였던 묘지스님을 비롯해 신도가 별로 없이 몇 분의 노 보살님들만 계셨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묘지스님께서 김변호사에게 청년부 회장의 소임을 맡기셨다고 한다. 묘지스님은 학생이였던 김 변호사를 정신적으로 많이 격려하였다. 그 당시 묘지스님께서는 젊은 유학생들을 위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게 조계사를 언제나 열어 놓고, 기도를 열심히 할 것을 독려하셨다. 특히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맑은 정신으로 화두 수행을 할 수 있다며 절을 많이 시키셨다고 한다. 지금도 조계사에서 하고 있는 매월 첫째주 1000배 그리고 월말에 500배의 전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묘지스님께서는 일요법회만이 아니라 올 수 있을 때는 언제나 절(寺)에 올 수 있게끔, 열쇠를 나누어 주시고, 절(拜)을 함으로서 어려움 속에서 힘을 얻고, 머리가 맑아지는 일상에서의 선 수행을 강조 하시며 직접 본은 보이셨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꾸준히 절을 하면서, 전에는 책을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불교의 난해함을 절을 많이 하면서, 무언가 빨리 이해가 되고, 새벽기도를 하면서는 밤새워 며칠씩 했던 고민도 저절로 풀리는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김 변호사는 2005년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 뉴저지의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조계사도 더 많은 유학생이 찾게 되면서 맨해튼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비롯 처음에 불교의 입문은 다소 수동적으로 했지만, 김 변호사는 불교를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었음을 말한다. 그의 고객은 대부분이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시기를 거치기 때문에 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각기 다른 사연에 처해있으면서도 ‘파산’만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법을 잘 알면, 파산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데도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잘못된 상식으로 고통받으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그들을 위로 하기도 하고 그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하는데, 단지 법적인 조언만이 아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게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힘겨워하던 이들이 파산 후에 새롭게 새 출발 하여, 몇 년 뒤에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성공하여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김 변호사와 부인을 조계사로 이끈 큰아들 그리고, 작은아들은 각각 8살, 5살이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역시 자연스럽게 아들들이 하는 운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태권도를 통해서 절제와 규범을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에 함께 태권도를 시작했고, 검은 띠를 먼저 딴 아이들이, 뒤늦게 시작한 아빠에게 가르쳐 주면서 자연스러운 대화와 소통의 시간이 된다고 한다.
생전에 묘지스님은 신도회장인 김 변호사를 믿고 많이 절의 관리 등 많은 면에서 많은 의지를 하였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미주의 한국사찰 신도회장 중에서 매우 젊은 회장에 속한다. 아마 나이로는 가장 어린 회장일 것이다. 묘지 스님 입적 시에도 중심이 되어 장례식이 원만하게 마칠 수 있도록 수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계사 신도는 학생과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젊은 신도들이 많은 절에서 젊은 신도회장인 김 변호사는 아마 가장 이상적인 신도회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현재 아주 헌신적으로 조계사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그가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조계사가 위치한 Upper West Side에서 한국 불교의 세계화와 뉴욕의 다양성 살리기에 앞장서 오면서, 숭산스님의 제자이시면서 진제스님 휘하에서 선수행을 하신 새로운 주지 도암스님을 모시고 많은 신도와 함께 절 일을 헌신적으로 하고 있어 많은 이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기대를 받고 있다. 그는 법회와 대중공양이 끝나면 젊은 신도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그들의 형 노릇도 잘하고 있다. 김 회장은 본인뿐 아니라 부인과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절에 나와 도암스님의 이해하기 쉬운 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생활 속의 불교를 실천하고 있다.
첫댓글 개나 소나 변호사. 실력없는 변호사 썼다가 피박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