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이호성'은 차고 넘친다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함부로 말을 꺼낼 계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합니다.
사건의 진실이 어디까지 밝혀질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볼 일입니다.
그래도 떨칠 수가 없네요.
'사업가 이호성'에 대해선 몇 마디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전락하기 전까지의 과정, 경찰에 의해 결정적 계기로 규정된
사업 실패에 대해선 몇 마디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렵니다. '사업가 이호성'은 차고 넘칩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프로선수 출신 몇몇이 언론 보도에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사업 부도와 함께 사기 혐의로 구속되거나 기소됐다는 뉴스였죠.
법정까지 내몰리지는 않았지만 은퇴 후 사업을 하다가 망한 경우는 훨씬 많습니다.
어떤 체육 담당 기자는 '부지기수'라고 하더군요.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게 바로 이 대목인 것 같습니다.
왜 체육 선수는 은퇴 후에 사업을 하는 게 통례처럼 돼 있을까요? 또 왜 그렇게 쉽게 망하는 걸까요?
늘 지적돼온 문제입니다. 엘리트 체육의 그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체육의 근간은 사회 체육이 아니라 학원 체육입니다.
선수단을 운영하는 학교는 학교의 명예를 강조하고 그래서 성적을 강요합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내몰립니다. 공부는 뒷전이지요.
해가 뜨자마자 운동화를 신고 해가 져야 땀에 젖은 운동복을 벗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속출하는 탈락자는 언급할 것도 없습니다.
무한경쟁을 뚫고 프로에 입성한 A급 선수들도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몇 년…. 선수로서의 생명이 다 하면 갈 곳이 없습니다.
자기가 몸담았던 구단의 코치로 남는 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설령 코치로 안착해도 또 다시 성적에 휘둘리는 파리 목숨이 됩니다.
아마추어팀 감독 자리가 있지만 이 또한 쉬운 게 아닙니다.
고등학교 감독 자리가 나면 수십 명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경쟁률이 수십 대 일이라는 거죠. 그 뿐인가요.
연고가 작동돼야 하고 '백'이 받춰져야 한다고 합니다.
사회 체육 지도사의 길을 걷고 싶어도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학원 체육은 성하지만 사회 체육은 지극히 좁은 게 우리네 현실이니까요.
보통 삼십 대 초반, 아무리 길게 잡아도 삼십 대 중·후반 밖에 되지 않은 젊은 인생이 선택할 게 별로 없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거쳐 프로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운동에만 매달려온 그들입니다.
사회와 완전히 격리되다시피 한 환경에서, 공부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운동에만 전념해온 그들입니다.
이런 그들이 이직을 하고, 정글 같은 사회에 쉽게 적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운동하며 모은 돈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합니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합니다. 망하기 일쑤입니다.
갈 곳 없는 은퇴 선수는 엘리트 체육의 희생양입니다.
은퇴 선수의 몰락은 엘리트 체육의 그늘입니다.
이 그늘을 벗겨내지 않는 한 제2, 제3의 '사업가 이호성'은 속출할 겁니다.
……
한 마디 더 해야 겠네요. 왜 만족하지 못했느냐고,
운동을 하면서 벌어놓은 돈을 조금씩 빼 쓰면서 조용히 살지 그랬느냐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년퇴직(이제는 이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지만)을 한
우리 아버지들도 사기를 당하곤 합니다.
수십 년 직장생활의 대가로 탄 퇴직금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죠.
왜일까요? 왜 우리 아버지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 부려 일하려다가 퇴직금마저 까먹은 걸까요?
우리 아버지들의 욕심은 이것이었을 겁니다.
사지 멀쩡한 인간으로서 응당 품게 되는 일하고 싶은 욕망,
일을 통해 활기차게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였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