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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산책.
- 언제:2015.01.10.토요일
- 어디로: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 세종로- >광화문- >경복궁역 2번출구->
우리은행->이상의 집->대오서점->서촌산책 카페->남도분식->
박노수가옥->윤동주 하숙터->수성동 계곡
2015년 새해들어 모처럼 여유롭고 한가로운 주말 오후,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 문득,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서울 도심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동네,
시인 윤동주와 이상,그리고 가난했던 미술가 이중섭이 머물렀다는 동네,
서울 '서촌'구경을 갔습니다.
1년여 전 어느 여름날에 갔었던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북촌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한양의 중심부였다면
종각의 남쪽, 남촌은 가난한 선비와 하급관리,상인 등이 모여 살던 동네였고
경복궁 너머 서쪽과 인왕산 동쪽 사이 서촌에는
주로 예술적 풍류를 즐기던 양반들과 역관, 의원 등 중인계층이 살았던 동네였습니다.
북촌에 비해 뒤늦게 2010년 '한옥보전지구'로 지정되어
그나마 개발이 제한된 탓으로
역설적이게도 소중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조리 때려부수고 싹 쓸어버리는
한국식 특유의 재개발,재건축의 광풍에서 조금은 비켜나서인지
작고 낡았지만 군데 군데 한옥들이 남아 있었고,
골목길을 나서면 정겨운 이웃의 안부를 물어올 듯한 옛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서촌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변화의 속도에 맞추느라
자칫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잊고 살기 십상인 요즘 사람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느린 걸음으로 골목길을 거닐며 오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곳곳에 켜켜히 쌓인 역사와 이야기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서울 서촌 골목길 개념도
일산에서 1000번 광역 버스를 타고 광화문 네거리에 도착합니다.
주말 오후라서 거리는 한산해 보였지만
서울은 여전히 빠르고 분주한 도시였습니다.
몇년 전 광화문 인근에 근무했던 여친과 열애에 빠졌을 때는
이 버스 참 많이 타고 다녔었는데^^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지만
교보생명,교보빌딩,교보문고를 창립한 입지전적인 인물 '대산'신용호(1917~2003)선생!
그가 이곳 종로 1번지 광화문 네거리에
저기 보이는 교보빌딩을 세운 때가 저 서슬퍼런 군부 독재시절인 1979년,
당시 22층 건물 준공을 눈앞에 둘 즈음
느닷없이 청와대 경호실(당시 경호실장 차지철)에서
공사 중지 명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청와대 경호에 문제가 되니 22층 중 17층 이상은 잘라내야 한다는
그야말로 요즘말로 표현하면 어처구니 없는 '갑질'에
건물을 잘라내야 한다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배를 갈라 할복 하겠다는 편지를
'박통'에게 보낸 후 결국 건물 준공을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아직도 유명합니다.
잠시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암튼,
신용호 선생이 처음 이곳 광화문 네거리에 교보문고를 열겠다고 했을 때
이 금싸라기 땅에 돈도 안되는 서점을 세운다고
주위에서 반대가 극심했었다고 합니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이용악,<그리움>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것,
잊혀진다는 것은 버려진다는 것!
해가 바뀌었지만 세월호의 아픔과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304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절규하며 죽어갔는데도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이 부쩍 뜸해진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아래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 천막 앞,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위에 붙은 노란 리본들만이
무심한 삭풍에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한양 서울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습니다.
북한산이 조산이 되고 저 뒤로 보이는 백악산(북악산)이 현무가 되며
낙산이 청룡,인왕산이 백호,남산이 주작이 되어
거대한 비단주머니를꼴을 하고 있으며
그 위에 동쪽의 안암산,서쪽의 안산,남쪽의 관악산이 한 겹 더 둘러싸서
겹주머니 형태를 보이니 천연의 요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중 종로구는 한양의 명당답게
왕국의 궁궐과 관아,종묘와 사직,문묘를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으로 입성하자 저 뒤로 북악산이 병풍을 친듯
우뚝솟아 안온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곧장 가면 경복궁의 웅장한 근정전을 볼 수 있는데
이 곳에서 서촌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조선왕조 500년의 으뜸가는 궁궐이었던 경복궁의 이 돌담길을 따라
곧장 가면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부 청와대 입니다.
길 건너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종로구의 통인동,체부동,필운동,누하동,옥인동,효자동 일대인데
그곳을 바로 '서촌'이라고 합니다.
서촌은 지하철 경복궁역 2번 출구 앞에서 시작됩니다.
경복궁역에 있는 커피집 '화두'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쉬어 갑니다.
내 사랑하는 여자,지금 창밖에서 태양에 반짝이고 있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를 보네.
커피 같은 여자,그래뉼 같은 여자.
모카골드 같은 여자,창밖의 모든 것은 반짝이며 뒤집히네,
뒤집히며 변하네,
- 오규원,<한 잎의 여자 3>부분
오후의 햇살이 드리운 창밖으로 2층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주말 오후의 여유로움이 묻어납니다.
나만의 방식으로,끊임없이 정체성을 고민하고 나름의 삶의 방향과 속도로...
새해를 맞으며 스스로에게 되뇌입니다.
음악은 인간에게 있어서 도덕의 규범이다.
음악은 우리들의 심장에 영혼을 불어넣고
생각에 나래를 달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준다.
음악은 우리를 슬프게
때론 기쁘게하는 인생과 같으며
모든 것의 주문이기도 하다.
음악은 시간의 본질이며
모든 것을 자라게 하는데
그것은 보이지 않는 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경탄케 하며
영원히 열애토록 한다.
- 플라톤,<음악>
서촌은 북촌과는 느낌부터가 사뭇 달랐습니다.
북촌이 화려한 멋이 있다면 서촌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낮은 듯 높고,소박한 듯 화려한 깊은 멋이 느껴집니다.
텅 빈 도시의 골목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의 흔적입니다.
골목길에는 사람의 손길과 마음과 생각들이 스며있습니다.
그 흔적들은 무수한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이웃과 이웃의 관계,사회와 사람의 관계를 이야기 합니다.
추억이 깃든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는 것 또한 골목길을 걸음으로써
얻는 작은 즐거움 입니다.
서촌의 한옥들은 하나 같이 허름하고 낡고 촌스러우며 빛바래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이것이 서촌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조금은 누추한 골목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속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걸었습니다.
골목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추억의 미로를 탐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재 작가 이상의 집
<오감도>와 <날개>의 작가 이상이 살았다는 옛 집터입니다.
이상은 이곳에서 3살 때부터 23살까지 살았고
오감도와 날개같은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써냈습니다.
이상이 건축학을 전공하고 조선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일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돌출한 모던보이였던 그는
한국 현대시 사상 최고의 모더니스트이자
아방가르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천재 소설가를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 이상입니다.
그는 1930년대 한국 문학에서 가요계의 '서태지와 아이들'같은
파격적인 존재였습니다.
스물 일곱의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이상은
시대를 앞서간 작가였습니다.
기하학 기호와 숫자를 즐겨 썼고 건축과 의학 전문용어도 즐겨 사용했습니다.
자전적 소설인 <날개>를 통해 퇴폐적인 소재도 스스럼없이 끄집어 냈고,
띄어쓰기는 종종 무시하며 형식을 깨는 파격적인 작품(오감도)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 '대오서점'입니다.
1951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으니
무려 70여년이 넘은 셈입니다.
현재는 북카페로 운영중인 이곳은 이제 서촌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대오서점에서 조금만 오르다보면 중화요리집 '영화루'가 있습니다.
맛집으로 소문나 보통때는 줄서 기다리며 먹는 집이라고 하는데
오늘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한산해 보입니다.
안을 들여다 봤더니 좁은 가게안에 사람들이 꽉차있었습니다.
서촌의 유명한 게스트 하우스 '누하당'입니다.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 서촌은 세종마을로도 불립니다.
세종대왕뿐 아니라
추사 김정희, 화가 이중섭, 소설가 이상, 시인 윤동주와 노천명 등
이 마을을 거쳐간 천재 예술가가 많습니다.
그런 기운 때문인지 이 골목은 모든 게 색달라 보였습니다.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개발 및 정비로 전통적 마을이 해체되고
동네가 가진 역사와 기억들이 쉽게 사라져가는 요즘이지만
이곳 서촌은 도시의 매력,정체성,다양한 문화의 기억들을 잃지않고
새롭게 살려내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눈에 띄였습니다.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닿을 듯 가깝지만 최소한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한옥들이
낡았지만 정겨워 보입니다.
한옥의 지붕선은 곧은 듯 휘어지고,
하늘로 솟는 듯 마무리를 짓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깊은 그늘이 진 처마 밑 공간은 외부도 내부도 아닌,
중간적인 역할을 하는 묘한 공간으로
한옥을 한옥답게 만드는 멋스러움이 숨어 있습니다.
자전거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카페 '러프'입니다.
서촌의 가게들은 하나같이 작고 좁은 것이 특징입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 나태주,<행복>
정감 어린 옛 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서촌은
북촌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지만 골목길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카페와 상점,
갤러리들로 북촌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줍니다.
아름다움,유용함,적당함.
이 세 가지 요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심플하다고 한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국 건축가)
오늘날 재개발,뉴타운 조성, 도시개발 정비 사업 등
갖가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그 자취를 감추고 있는 골목길에는
어딘지 모르게 감성을 자극하는 묘한 느낌이 서려있습니다.
골목길은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숨박꼭질을 하던,연인과 첫키스를 하던 장소로
우리들 삶의 애환과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입니다.
더불어 역사와 문화를 그 어느 곳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입니다.
가게 유리벽에 서촌 산책 지도를 그려놓은 카페 '서촌산책'
떡뽁기가 맛있다고 소문난 남도분식집
남도에서는 유명한 상추튀김도 보였습니다.
서촌에서 유명한 옥인상점입니다.
오락실이었던 곳을 인수해 액세서리나 장식용 소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이 상점의 주인이 이곳 서촌에서 태어난 토박이 '서촌방향'의 저자
설재우씨입니다.
동네가 점점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워 2009년부터
서촌을 알리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촌의 길들은 다양했습니다.
낡은 지붕과 담장이 있는 좁은 길,
다소곳한 집들이 삶의 애환을 보여주는 끊길 듯 이어지는
골목길을 눈여겨 보면서 느긋하게 걸어야
서촌을 제대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한옥과 양옥을 절충해서 지었다는 옥인동 박노수 가옥입니다.
이곳 박노수 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집으로
한옥 양식이 중심이면서도 일부 서구식이 더해진 독특한 2층집입니다.
1층은 온돌과 마루,2층은 마루방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집 안에 벽난로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박노수 미술관 앞에 있는 미술관옆 작업실
플라워 카페
요즘 이곳 서촌의 한옥은 부르는 게 값이라지만
주기적으로 지붕 손질도 해주어야 하고
한옥은 관리하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서촌에서는 도시관리계획에 의해 함부로 증 개축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같은 부동산 침체기에
이곳의 한옥 매매는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서촌에서는 실제로 거주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갤러리나 카페, 음식점이나 출판사 등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地)
백옥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 윤동주,<초 한 대>
종로구 누상동 언덕에 위치한
왼쪽으로 보이는 집이 윤동주 시인이 한 때 머물렀던 하숙집 터입니다.
과거 한옥의 옛집은 간데없고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
시인이 올려 보았을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수성동 계곡과 인왕산입니다.
윤동주시인은 이곳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했습니다.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언덕에 있는 '서촌재'입니다.
언덕위에 있는 집들은 하나같이 살기에는 불편할지는 몰라도
사람이 꼭 필요해서 지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 절실함과 절박함이 집들과 길,골목,계단 곳곳에 스며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서촌을 중심으로 활동한 문인,예술인들이 많습니다.
이상, 윤동주, 홍난파, 박노수, 이중섭, 염상섭, 나혜석 등이
이곳 서촌의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골목 어귀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차 한 잔 나누며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왔습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고흐와 세잔의 영혼을 느끼듯
이곳 서촌의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언덕길은 인왕산의 정기를 받고
예술의 혼을 불태웠던 여러 문인과 예술인들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서촌의 골목끝까지 올라가면 수성동 계곡입니다.
이곳에서 머지않은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겸재 정선은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자락의
빼어난 진경산수화를 사생해 남겼습니다.
수성동 계곡은 세종의 세째아들 안평대군이 사랑했던 절경으로
그 당시 도성 제일의 명당 자리 답게 이곳에서라면
경복궁과 한양 도성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을 듯합니다.
겸재의 그림에 나오는 저 아래쪽 돌다리(기린교)가 보이고
다리건너편이 안평대군의 옛 집터로 추정되는 장소라고 합니다.
시인 묵객들이 찾았을만한 산수 멋진 땅이었던 수성동 계곡에
인근 동네에 살았던 추사 김정희는
비 오는 어느 날 이곳을 찾아 이런 시를 남겨놓았습니다.
<수성동에서 비를 맞으며 폭포를 보고 심설(沁雪)의 운(韻)을 빌린다.>
골짜기 들어오니 몇 무 안 되고, 나막신 아래로 물소리 우렁차다.
푸르름 물들어 몸을 싸는 듯, 대낮에 가는데도 밤인 것 같네.
고운 이끼 자리를 깔고, 둥근 솔은 기와 덮은 듯.
낙숫물 소리 예전엔 새 소릴러니, 오늘은 대아송(大雅誦) 같다.
산마음 정숙하면, 새들도 소리 죽이나.
원컨대 이 소리 세상에 돌려, 저 속된 것들 침 주어 꾸밈없이 만들었으면.
저녁 구름 홀연히 먹을 뿌리어, 시의(詩意)로 그림을 그리게 한다.
하늘과 별과 바람을 노래하며 일제의 억압에 저항하다
일본 후쿠오카의 차디찬 감옥에서 29살의 젊은 나이에 죽어간
민족 시인 윤동주와
공학도(건축학)로 시와 소설을 써내려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27살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천재 작가 이상.
세종대왕이 태어난 동네로 세째 아들 안평대군이
저 강화도의 외딴 섬,교동도로 유배되기 직전까지
집현전 학사들과 학문과 예술을 담론했던 서울 서촌을 거닐면서
2015년 첫 여정의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변화를 꿈꿉니다.
기실 변화라는 것이
어떤 일순간의 정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런 표현은 모순이 있기는 하지만
굳이 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을 갖고
전환의 시점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작은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설사 그 시작이 미미하고 작다고 해도 모든 시작은 그 끝을 알 수 없으므로 창대합니다.
올 한해도
사진이 요구하는 관습적 기법을 무시하고 그저 아스라한 예감이 스치는 그 순간마다
마음 가는 대로 셔터를 누르며 나는 끊임없이 길을 떠날 것입니다.
길은 탐구하는 자,목적하는 자,움직이는 자의 몫이므로!
-끝.
글,사진:윤선한
춥고 쓸쓸한 여정이었다.여행의 끝에
하나의 깨달음!
인생이란
낡은 구두 한 켤레 정도의
무게 뿐이라는 것,
......
한 해가 저물고
물 젖은 어둠이 세상의 슬픔에 깊이를 만들 때
등불이 되리,
환하게 그의 상처를 밝혀주리
-장석주,<여행>중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이런곳도 있었네요~잘보고 갑니다~^^
허랑히 지나칠 수도 있는, 실제 자동차로 무심히 지나쳐 버린
서촌의 면목을 밀도있게 차분히 보여주셨습니다.
진정 길은 여행자의 몫인 듯 싶습니다.
또 하나의 작품을 뜻깊게 감상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촌
다시 한번 가봐야 하겠네요
"시작은 끝을 알수 없으므로 창대하다는 말"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네요.. 서촌.....사진도 좋고요.. ^^
지금은 이전한 여학교 다니던 길이였는데. 통인 시장, 백송나무,코오롱 빌딩앞 화단의 베고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