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 Lost Horrison)
신의 역사는 엘로힘이라는 복수형에서 시작했다.
자신의 가족, 자연, 건물, ...을 각각의 방식으로 각각의 자리에서 신을 섬겼다.
유대인들이 신은 하나다에 관심을 기울이고, 예루살렘 이외에는 기도할 수 없다고 확정지은 이후로,
유일신이 강화되었고, 예수 이후로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로 발달하였다.
성자, 예수는 사람의 몸을 입은 신이고,
성령을 통해 무의식과 만나게 된다.
성령이 내면의 목소리와 같습니까? 엘레나가 물으니
융이 예스라고 한다.
"우리는 신성한 삶에 참여자가 됐고 우리는 새로운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개성화고 개성화는 동물과 구별되는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과 더불어
신성을 향한 문턱에 도달하는 것이고, 나아가 부분적으로 신성을 체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인간이 신에게 의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 자신의 책임을 진다는 것을 말하고,
역으로 신도 인간에게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융이 욥의 고난에 대한 신의 응답이라 말한 것이 이것이다.
죄 없는 욥을 고통으로 시험한 신은, 이제 인간 예수로 이 땅에서 동일한 십자가 고난을 받으며 초월해야 했다.
신과 인간의 관계가 변한 것이다.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을 넘어 인간 예수의 초월을, 우리 신성을 발휘하는 것이 새로운 찬양이고 새로운 신성과의 관계이다.
신의 밝은
면은 신의 사랑과 은총이고 그림자는 신의 권력에 대한 엄청난 유혹이다.
이제 인류가 지구를 멸망 시킬만한 지식을 축적해서,
신의 창조가 계속될 지 끝날 지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 엄청난 힘과 권력의 시기에,
우리 중 일부라도, 성령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 속에 내면의 소리를 바로 들을 때,
인류가 올바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첫댓글 그러니까 오늘의 기도는 이렇게 됩니다. "지금은 엄청난 힘과 권력의 시기이나, 성령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멈추지 않겠습니다. 작지만 또렷한 내 안의 불빛에 의지하여, 힘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고요히 있으며 내면의 소리를 듣겠습니다. 그리하여 신에게 의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진정으로 책임지겠습니다. 내 무의식과 상처를 마음을 다해 다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