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비타민
서 옥 선
나는 걷기에 빠졌다. 옥수수 두 자루를 급히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온몸이 노곤하여 누울까 하다가 생각을 바꾼다.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떠오른다.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동네 뒷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솔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 임도로 든다.
길을 걸으면 무거운 일상이 가벼워진다. 산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온 손님을 환영한다. 빗물 머금은 푸나무들이 싱그러운 얼굴로 응원을 보낸다. 노부부가 비에 몸을 맡기고 활짝 갠 얼굴로 산을 내려온다. 콸콸콸 장마로 불어난 계곡 물소리 운율에 맞추는 산새의 지저귐이 곰살궂다. 젊은 부부도 우중에 새들의 노랫소리에 발맞추어 황톳길을 조심스럽게 걷는다. 초록이 주는 응원에 힘입어 발걸음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무거웠던 일상으로부터 본연의 나로 돌아온다. 잠시 걸었는데도 뒤죽박죽 꼬였던 생각의 고리가 풀린다.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매개체는 사람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기억의 편린 하나로 노래방이 떠오른다. 가끔 찾아오는 직장 회식 후에 관습적으로 노래방을 거치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좁고 침침한 노래방 안의 무대를 중심으로 맥주, 음료수, 술안주가 차려진 테이블 앞에 빼곡히 앉는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주도하는 시끄러운 음악, 기쁨인지 분노인지 모를 광기 서린 노래와 광란이 시작된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 동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였다. 어떤 이는 그 상황을 즐기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 던진다.
요즘은 식사를 마치면 카페 방문이 필수 코스인 듯하다. 저마다 색깔의 차이는 있지만, 독서, 커피, 영화감상, 게임, 운동 등은 거친 일상을 가멸차게 만든다. 마음을 움켜쥐고 쥐락펴락하는 매개체, 일상을 돕는 비타민은 에너지원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반복되는 생활에서 오는 어지럼증을 새떼처럼 자우룩이 날아오르게 한다. 나의 삐걱거리는 일상을 잠재우는 비타민은 걷기다.
일상을 돕는 비타민은 마음 안에 있다. 5대 영양소 중의 하나인 비타민은 음식으로 먹는다. 그것은 입으로 섭취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이 몸속에서 제 기능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꼬깃꼬깃한 일상을 반듯하게 펴주는 비타민은 먹을 수도 없고 실체도 없다. 누구나, 무엇으로나 만들 수 있는 신기루와 같은 마음눈이 쥐락펴락한다.
걷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명 활동이다. 심심파적으로 걷는 중, 길섶의 이름 모를 생명체에 눈길이 간다. 어느 여름날 풀숲에 숨어 지내던 둥근 유홍초가 주황색 꽃잎을 열었다. 봄빛, 여름빛, 가을빛, 겨울빛 따라 다르게 피어나는 생명체로 나의 숨이 가빠진다. 삶을 이끄는 두 발이 선물한 종합 비타민이다. 발걸음은 모퉁이 가득 피어 있는 야생화를 뒤로 보내고 풀숲의 메뚜기를 쫓는다. 예전엔 몸으로 헐떡헐떡 걸었고, 지금은 살아 있는 마음으로 곰지락곰지락 걷는다.
히말라야 등정 길에서 셰르파의 맑은 미소를 만난다. 그는 등산객이 내어놓은 쌀 반 가마니 무게 정도의 카고백을 꽁꽁 묶어 이마에 끈을 올린다. 이마를 지나 등 뒤로 늘어진 가방 하나가 눈에 익다. 가방끈에 매달려 나풀거리는 손수건이 주인의 눈길을 끈다. 청년 셰르파의 바짓가랑이는 낡아서 나달나달하고, 슬리퍼를 끄는 맨발은 거칠다. 한쪽 어깨가 등에 달린 짐의 무게에 짓눌려 청처짐하다. 청년은 쉼터에서 건네준 초콜릿을 받아들고 더없이 맑은 표정을 짓는다. 나는 맨몸으로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고달픈 땀방울에 덮인 그의 밝은 낯빛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는 거의 한 달 만에 일감을 구했다. 그의 일상은 등에 올릴 카고백을 기다리는 일이다. 기다린 시간이 길었던 만큼 짐짝의 무게가 대수일까. 그는 사는 일의 시름과 고통을 미소로 환치할 줄 아는 지혜를 가졌다. 어린 셰르파의 어깨 등짐에 동생들의 의식주와 병든 아버지의 약값이 걸려있다. 그의 등에 집안의 안위가 달렸으니, 일상의 고통에 희망의 발걸음이 올라앉는다. 언틀먼틀한 바윗길도 푸석푸석 날리는 나귀 똥도 얼쯤얼쯤 비켜선다. 두 사람이 갈서서 걷는다. 누군가는 즐거운 일상의 비타민, 어떤 이에게는 걸쌍스러운 밥벌이.
모임에서 회식이 끝나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러 있다. 복잡한 도심이나 조용한 시골길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카페다. 노트북을 앞에 놓고 공부하는 학생이나 남녀가 무리 지은 어른도 보인다. 집이나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집중이 더 잘 된다는 사람이 늘어난다. 내 마음눈은 식사 후 정담을 나누는 시간에도 줄곧 문밖을 향한다.
일상의 스트레스는 쌓아두지 않는다. 잦은 비로 빨갛게 익은 고추에 크고 작은 갈색 반점이 덮어썼다. 무서운 탄저병이 왔다. 대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이 노출된다. 고추밭에 봄부터 거름 넣기, 모종 심기, 물주기, 풀 뽑기, 지주 세우기 등등 쌓은 공덕이 얼마였던가. 고추 병을 대비하지 못한 남편이 원망스럽다. 화를 내어 본들 이미 지난 일 다시 돌아오는 것은 내 건강만 해롭고 부부 사이만 나빠질 것이 분명하다. 텃밭과 남편을 뒤로하고 들길로 든다. 불같이 끓어오르던 화가 푸릇하게 익어가는 벼 익는 냄새에 씻겨나간다. 무거웠던 발걸음이 어느새 가붓하다.
걷기는 일상의 질서를 잡아준다. 정신 건강의 버팀목이자 육체 건강의 출발점이다. 조연으로 사색의 공간까지 무상으로 나누는 명품, 종합 비타민에 빠진다 한들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걷을 수 있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생生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날이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머지않은 훗날, 산안개구름 베고 누워 산야에 남긴 발자취 더듬거리며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