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굽이굽이 버스가 돌며 멀리서 풍차가 보이길 레... 산타마을은 생각을 못하고 이국적이구나! 했었다. '산타마을 이었구나!'
오후 1시에 개장식이 있는데 11시쯤 도착했으니 한참 준비하고 있었다. 입구에 있던 '삼굿구이' 체험장으로 불 피운 공간에 갖가지 재료를 넣어 익히는 시설이다. 다른 날은 모르겠으나 개장 날은 몸만 와도 먹을 것이 충분할 듯했다. 감자, 달걀, 고구마, 옥수수 등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마을은 한 줄로, 그러니까 100m가 될까 말까한 작은 마을이었는데, 장사하시는 분들도 각종 나물이나 곡식들을 가져와 진열하고 있었다.
가다보니 이글루 소망터널이 나왔고... 이곳에서 산타 귀마개와 망또를 건내받았는데 어깨에 두르고 머리에 쓰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동심으로 돌아가 마구 설렜던 것이다. 꼬마들에게도 복장을 나누어줘 거리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을 끝부분에는 산타우체국이 있었는데 무슨 행사가 있을지 구체적으로 모르고,
다시 분천역을 지나 왔던 길로 되돌아가 보았다. 단상 맨 앞에 크기가 다른 종(?)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악기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소들에게 채우는 방울이라고 했나? 아름다운 소리에 귀가 번쩍했었다.
꽃마차도 보이고 사람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능이버섯이 들어간 찌개에, 전병과 각종 나물이 화려했는데 배가 덜 고파서 남겨 아까웠다.
그러던 중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분천역에 도착해 갑자기 부산해졌다. 내리는 사람들은 함박웃음으로 조그마한 역에 사람이 많아 놀라고... 맞이한 사람들은 평일에는 하루에 두 번 주말에는 세 번 운영한다는 기차를 타고 싶어 구경하였다. 1시간 10분 동안 시속 30km로 운행하며 요금은 8400원으로 기억한다. "기차 가는 거 구경한다고 나와 보면 저짜서부터 삐~ 하고 돌아와, 얼마나 좋아." 주민(住民)의 말씀이다.
오후 1시가 되자 행사가 시작 되었고 오신 분들 소개가 이어졌을 때...
100m 산타마을 거리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1970년대 상업적 벌채가 번성하던 시절. 봉화와 울진 등지에서 벌채된 금강송이 이웃한 춘양역과 분천역을 거쳐 대도시로 갔으며, 석탄 캘 때만 해도 현재 인구의 10배가 넘었다는데 석탄산업의 쇠락으로 분천역이 무인역으로 바뀔 정도로 위기가 왔으나 1999 눈꽃순환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승용차는 갈 수 없는 오지인 승부역이 빛났고, 그곳에서 가까운 분천역을 산타마을로 만들어 인구가 유입되면서 역이 살아났단다. "석탄이 사양길로 가고, 벌채일이 쇠퇴하고, 사람들도 떠나고, 오는 사람도 뜸해지고, 빈집이 늘어나고, 경기가 나빠지고, 도로가 발전하면서 경기는 죽었지. 바로 직선이 다 돼 버리니까, 이 모든 게 완전 동시다발로 일어났어."
말씀 중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도로가 직선으로 만들어지고 생활이 빨라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지는 오지로 섬은 섬일 때 그 다움으로 빛나는 날이 올 것이다.
우체국이 새롭게 열리며 안에서 작은 토론회가 있었는데, 외신기자단들과 국내 방송사들 그리고 블로그 기자단이 모여 질문이 오고 갔었다. 마이크 잡은 분은 경북도지사님으로 집에 왔더니 벌써 이런 소식들이... 방송에 나오고 있어 미소가 지어졌다.
우체국에는 1년이 지나 받고 싶은 편지통과 바로 받길 원하는 우체통이 있어서 엽서 한 장 쓰고 나왔더니 밖에는 아름다운 색소폰 연주가 있었는데... 오늘은 개장 날이라 먹을 것도, 구경 온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밖의 날들은 어떻게 운영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산타마을을 지키는 분들이 개장기간 동안에라도 특별한 행사들을 만들어, 포근한 마을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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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년전에 V-train 타고 가본곳이에요 경치좋고 산타마을 인상적이었어요
다녀오셨군요?
개장일이라 좋았습니다.
올해는 가을에서 겨울로 여행이 비교적 많았습니다.
대부분 초청이라 행운이라 생각하고요,
작은 里 단위까지 가보니 의의가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