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국회의원 엄매의 인정(人情) 많은 투표(投票) 야기
사상 유례가 없는 돌개빙(傳染病, COVID-19)이 창궐한 가운데 나라에 주인인 국민들이 마스크들을 쓰고 비닐장갑 끼고 선거를 잘 치렀어람쨔.
66%가 넘게 높아진 적극적 참정권 행사로 신성한 투표들은 제21대 총선에 민의가 나타났고 잘 끝났구만이라.
대지금 아순 점은 많아시겄제만 나라의 주인이로 지저끔 1표썩 성실하게 행사하신 국민덜에 선택이기에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임시로 분열과 반목보담은 이견(異見)덜을 존중하고 항꾼에 공통분모를 찾아 모도 합심해가꼬 잔 더 낫은 대한민국이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고룸은 절대 살이 안 되는 것이라서
내 몸이 젤로 소중하고 우리나라도 소중항께라 어먼 것을 속에 담어두믄 이롤 거 한나도 없어람쨔.
오눌도 모도모도 행복하신 날로 맨드시쇼~! 덜~!
어지께가 그랑께
제21대 국회의원 투표 날이었는데 60년 전 진도 솔개동네(진도읍 송현리) 우리 마을 한 할머니에 실화로 순수하고 인정어린 우리 엄매 함씨덜에 정이 찍찍흘르든 마음을 전해본다.
우리 동네 출신이로 당시 민주당 소속 진도 제5대 진도 국회의원 박희수 의원이 투표 날 아침에 어머님께 '어머니 제 기호가 2번이니까 투표 잘하시고 오쇼'하자
그 엄매는 '오냐 그라마!' 했다.
저녁에 박 의원이 '어머니 투표는 잘하셨어요?' 물으니
'오냐 두 번차 칸에다가 똑바로 잘 찍었다.' 하셔서
'잘하셨습니다.' 했다
'그란데 거그 1번 아무개가 쩌건너 누산네 조캐로 느가배나 나도 잘 아는 사람 아니냐? 그라고 봉께 그 사람이 자꾸 나를 넹겨다보는 것 같어가꼬 맘이 하도 걸려서 그 사람한테도 도장 한나 찍어줬다'
ㅋㅋ~! 엄매 표는 무효표~!
금메 그랬어도 그 분이 국회의원에 당당히 당선댰었제만 박정희의 5.16군사쿠데타로 물러나고 몇 달 뒤에 그 화병(火病)으로 돌아가신 불운의 진도국회의원이고 순박하고 정 많은 우리네 엄매 함씨덜에 정진 옛 야기이고 생생한 실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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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수(朴熺洙) 의원 관련 당시 진도 선거 상황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1960년 3월 15일에 부정선거를 획책하다가 이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반발과 투쟁의 결과로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제1공화국 후반에 자유당 중심으로 돌아가던 진도군의 정치세력 역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1960년 7월 29일에 제5대 국회인 민의원 선거와 최초의 참의원 선거가 동시에 실시되었다. 이 선거 때는 자유당이 몰락하여 정계는 4·19혁명 이념을 계승한 정파로 민주당을 설정하였고, 진도에서도 자유당으로 나선 후보가 없이 당시 39세의 의사 출신인 박희수(朴熺洙)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나서서 선거가 치러졌다.
이 선거에서 무소속(제4대 현직 의원) 손재형(孫在馨) 29.6%, 무소속 이남준(李南俊) 28.3%, 사회대중당 조규탁(曺圭鐸) 4.8%의 세 후보를 물리치고 민주당 박희수 당선자가 37.3%를 얻어 당선의 영광을 얻었다.
이는 제2대에는 무소속, 제3대에는 자유당으로 나서서 재선했던 조병문(曺秉雯) 의원에게 1954년 5월 20일의 제3대 민의원 선거에서 5%의 차이로 아깝게 낙선한 뒤(제4대 때는 불출마) 얻은 영광이었기에 박희수 의원의 감회와 기쁨은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도 그리 길지는 못했으니 아쉬움이 남는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일체의 모든 정치활동이 금지되는 바람에 불운을 겪다가 홧빙이 나가꼬 그 다음해 11월 27일에 급기야 한 많은 삶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자 세간에 모든 이들은 박 의원이 화병(火病)으로 죽게 된 것이라고들 안타까워했다.
◈박희수(朴熺洙, 1920~1962) 의원 약력 :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솔개이다. 1920년 12월 28일에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송현마을에서 아버지 박종영(朴鍾英)과 어머니 이양근(李良斤) 사이에서 낳은 2남 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도초등학교 졸업. 1940년 독학으로 의사시험에 합격, 일본 오사카 적십자병원 산부인과에 근무, 1942년 고향에서 ‘옥주의원’ 개원. 진도중학교 이사, 제13~14대 진도면장, 국제연합 진도지부장 역임. 1954년 서울 영등포에서 ‘영락의원’ 개원. 의사회 이사 등으로 활동. 민주당 영등포 갑구 당위원장, 민주당 진도군 당위원장을 거쳐 1960년에 제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방위원으로 국정에 참여하는 등 나라와 고향 발전에도 많이 힘썼다.
<진도 송현 출신 조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