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조선시대 방식 그대로 되살린다
불에 탄 ‘국보 제1호’… 10일부터 복원 시작

국보 제1호 ‘숭례문’ 복원공사를 맡은 수리업체 직원들이 지난 5일 해체를 앞둔 1·2층 문루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숭례문은 지난 2008년 2월10일 방화로 홍예문을 낸 거대한 석축기단 위에 세워진 문루 2층의 90%, 1층의 10% 정도가 소실됐다.
국보 제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이 방화로 목조 누각 건물인 문루(門樓) 일부가 소실된 지 2년이 되는 오는 10일 착공식을 하고 본격적인 복원공사에 들어간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남대문로 숭례문 복구 현장에서 복원공사 착공식을 개최한다. 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로비에서는 이번 복원공사의 도편수를 맡은 신응수 대목장이 만든 숭례문 모형 2점과 홍창원 단청장 소장 숭례문 단청모사도 20점, 대패 등 전통 도구 20점 등 총 50여점을 선보이는 숭례문 화재 2주년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9일 오후 3시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는 숭례문 복원사업 참여 장인들이 앞으로의 각오와 복원 방향 등을 밝히는 세미나도 준비돼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1년 동안 불탄 부재(部材·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재료)의 재활용 방안과 전통기법 제작 문제, 문루 석축의 구조안전진단 등 8~9개의 용역을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숭례문의 복원 방향은 지난 2008년 2월 화마를 입기 전인 1960년대 중수 당시 모습을 기준으로 삼되 일제가 훼손한 좌우 성곽(성벽) 일부와 원래보다 1.5m 높아진 홍예문 입구 바닥 등을 복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숭례문 동쪽 남산 자락으로 88m의 성곽을, 서쪽 대한상공회의소 방향으로 16m의 성곽을 각각 복원할 예정이다. 일각에서 숭례문과 대한상공회의소 사이 도로 위로 성곽의 여장(女墻·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지나가도록 하자는 방안도 제시됐으나 서울시와의 협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화재 진화과정에서 물이 많이 스며든 석축은 구조안전진단 결과 위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안전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창준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좌우(동서)로 성곽을 연결시키기 위해 어차피 석축의 양쪽 일부를 해체해야 하는 만큼 이때 내부를 확인한 뒤 전체 석축의 해체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좌우 성곽을 연결하기 위한 부분 해체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숭례문 문루에 사용된 목재는 총 13만1000재(材·1재는 3㎝×3㎝×360㎝)이며 이 중 약 36%인 4만7600재가 화마의 피해를 보았다. 이 중 국민기증 등으로 지금까지 확보된 소나무는 총 2만4000재에 달한다. 또 지난해 불탄 목재를 조사해 A B C D로 등급을 매긴 결과 재활용이 가능한 B등급 이상이 33%로, 1만5700여재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의 이정연 사무관은 “기둥이나 대들보 감은 모두 확보돼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얼마든지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숭례문 복원공사는 ▲불타고 남은 문루의 부재 해체 ▲부재 실측 및 재사용 여부 최종 판단 ▲성벽 복원 ▲문루 조립 ▲기와 올리기 및 단청 ▲현판 걸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문루 해체와 동쪽 성곽일부를 복원하고 치목(治木·재목을 다듬고 손질하는 일)과 건조를 거쳐 내년부터 문루 조립에 들어가 오는 2012년말 복원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특히 포스코의 도움을 받아 조선시대 철물과 동일한 성분의 철괴(철덩어리)를 만든 뒤 현장에서 대장간을 운영해 각종 연장을 만들고 기와도 ‘KS 규격 기와’ 대신 한형준 제와장과 상의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하는 등 복원공사 전 과정을 조선시대 전통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최영창 2010-02-08
“최대한 기존 뼈대 사용… 50여년 목수 경험 쏟을 것”
도편수 맡은 ‘대목장’ 신응수씨

“숭례문(남대문)은 제가 실질적으로 고건축의 눈을 뜬 곳이자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곳입니다. 충남 병천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올라와 목수일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1962년 이광규 선생님의 부름으로 숭례문에 가서 도편수였던 조원제 선생님을 뵈었지요. 이번에 숭례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를 맡은 만큼 50여년 동안 목수일을 하면서 쌓은 경험과 제 모든 정성을 쏟아붓는 자세로 임할 것입니다.”
오는 10일 착공하는 국보 제1호 숭례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를 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신응수(68)씨. 지난 4일 막바지 작업이 한창인 광화문 공사현장에서 만난 신씨는 “오는 3월말까지 광화문 목공사 및 숭례문 문루(門樓) 해체가 완료된 다음 본격적으로 목수들을 투입해 우선 치목(治木·재목을 다듬고 손질하는 일)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덧대어 쓸 수 있거나 이어서 쓸 수 있는 것 등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최대한 기존 부재를 사용하는 게 원칙이에요. 강원 삼척시 준경묘에서 벌채한 대경목 10그루와 국민기증 소나무 21그루 등을 1년째 건조시키고 있는데 오는 4월쯤 자귀로 어느 정도 다듬어 놓는 1차 치목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1975년 수원성 장안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를 맡은 이래 궁궐 등 주요 고건축물의 복원을 도맡아 온 신씨는 공사 때마다 나무 부재 구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재청이 기증받은 소나무와 신씨가 20년째 경복궁 복원사업을 하면서 모아 놓은 목재 등을 활용하면 숭례문만큼은 100% 우리 소나무로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복원공사 자체가 참 힘든 작업입니다. 사찰이나 집은 제 나름대로 설계도를 검토해 작업에 들어가면 되지요. 하지만 복원은 발굴조사 등 모든 고증을 참고해야 되고 막상 완공 무렵에 뒤늦게 사진자료 등이 발견돼 공사를 다시 하는 등 곤혹스러웠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을 근거로 광화문 1층 포부재의 조각을 모두 해놓았다가 나중에 동대문 사진으로 확인돼 조립에 들어가기 직전 교체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신씨는 숭례문의 경우 1962~1963년 중수공사 직후 나온 수리보고서와 2006년 서울 중구청이 펴낸 정밀실측조사보고서 등이 남아 있어 복원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정성을 들이는 것은 기본이고 장인은 절대 ‘내가 최고다’라고 자부해서는 안 됩니다. 배움이란 게 끝이 없는 것이에요. 저도 지금 이 나이에 숭례문을 보면서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최영창 2010-02-08
숭례문 화재 2년…이제 복원하는 까닭은?
자재확보 등 시간걸려.. 재래식 공법으로 복원
2008년 2월10일 불길 속에 무너져내렸던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사건 발생 만 2년째를 맞는 오는 10일 공식 복원 공사에 들어간다. 그동안엔 복원을 위한 기초 작업(사진)이 진행돼왔다.
숭례문의 대규모 공사는 조선 세종 29년(1447)과 성종 10년(1479), 1961~63년 해체 복원에 이어 네번째. 현재 거대 닫집에 덮인 숭례문 현장을 가보면, 불탄 고주가 비쭉 튀어나오고, 처마가 뒤틀린 1층 문루의 참상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은 우선 1층 문루 부재들을 해체한 뒤 일제가 헐어낸 좌우 성벽들을 복원한다. 흙으로 메워 1.6m 이상 지표가 높아진 홍예문과 문 주변 바닥을 파서 본래 지반을 되찾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런 공정을 마무리하고, 나무, 돌 부재를 다듬는 치목, 치석을 거쳐 기와, 단청을 올리고 2012년 말 끝낸다는 일정이다.
화재 2년 뒤에야 복원공사에 착수한 까닭에 대해 문화재청은 “준비 작업이 녹록지 않았다”고 말한다. 불탄 부재들 중 재활용분을 고르고, 새 부재들을 확보하고, 구조 안전 조사 등에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복원 공사의 가장 주된 특징도 시간에 쫓기지 않겠다는 의지다. 복원의 주요 과정 또한 재래식 전통 공법으로 처리한다는 게 원칙이다. 1960년대 중수 당시의 문을 살린다는 전제 아래 나무, 철 부재 등을 다듬는 과정을 재래식 수작업으로, 공구 등도 대패·정·끌 등 전통 기구를 쓸 계획이다. 못 등의 철물들은 문 앞에 전통 대장간을 설치해 직접 철괴를 녹여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노형석 201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