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기도 지향: 자살 예방
자살의 유혹을 받는 이들이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과 관심과 사랑을 찾고, 생명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열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1991년 미국의 티모시 퀼(Timothy E. Quill)이라는 의사는 자신이 치료하던 백혈병 환자의 자살을 간접적으로 도왔음을 암시하는 “죽음과 존엄: 한 개인의 의사 결정 사례 (DEATH AND DIGNITY: A Case of Individualized Decision Making)”라는 제목의 글을 한 의학저널에 실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치료하던 다이앤이라는 가명의 백혈병 환자는 그에게 특정한 불면증 약 처방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그녀의 의도를 알았지만 수면을 위한 양과 치사량을 모두 알려주며 처방해주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의 남편이 그에게 그녀의 죽음을 알렸고, 그는 그녀의 사인을 급성 백혈병으로 보고하였습니다. 이 글이 실린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은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학술지였기 때문에 큰 파장과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선언 「무한한 존엄 Dignitas Infinita」에서는 “자살하려는 사람을 돕는 것은, 비록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일지라도,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객관적인 침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퀼의 글을 읽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다이앤이 한 인간으로서 겪었을 고통과 공동체의 중요성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녀는 알콜 의존증 부모 밑에서 외롭게 성장기를 거쳤고, 성인이 되었을 때에는 그녀 자신도 알콜 의존증과 우울증으로고통받았습니다. 그러나 알콜을 완전히 끊고 그녀의 사업이 막 번창하려고 할 때쯤 백혈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가 원했던 것은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고, 죽음도 결국 개인의 선택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세상이 되었지만, 가장 어렵고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것은 가족, 친구, 지인 등 나와 함께 삶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순전히 어떤 한 개인이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습니다. 사회적, 문화적, 관계적 요소도중요한 요인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은 많은 경우 자신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찾지 못합니다. 사제로서 저는 고해성사나 면담을 통해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제가 만난 분들 중 상당수가 아무에게도말하지 못한 고민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 것만으로도 큰 힘과 위로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문제의 정답을 알려드리거나특별한 조언을 드린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최선의 방법은 경청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듣고자 하는 열린 마음은 필요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모든 자살을 막기 어렵습니다. 다이앤도 결국 스스로 죽음을선택했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삶과 죽음은 하느님께서 주관하시기에 자살을 한 이에 대해서도,그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떠한 판단이나 단죄도 내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작은 사랑과 관심이 누군가를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도울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홀로 아픈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가 떠오른다면 그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봅시다. 만약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판단하거나 조언을 주려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들어봅시다. 기적은 그렇게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