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당의 전당대회 ◈
대선 기간이었던 2022년 1월,
김건희 여사와 인터넷 방송 ‘서울의 소리’ 관계자의 대화 내용이
공개됐을 때였어요
국민의힘은 “다자간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유포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상 처벌 대상”이라며 관련자들을 경찰에 고발했지요
대선을 코앞에 두고 통화 내용 유출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차단하려는 조치였어요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용이 나의 동의도 없이 몰래 공개된다는 것은
매우 난처하고 분개할 일이지요
피해 당사자로선 누가 왜 공개하고 유출했는지 반드시 밝혀
책임을 묻고 싶을 것이지요
그런데 최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김 여사가 지난 1월
명품 가방 문제로 나눴다는 문자 내용이 거의 통째로 공개됐어요
보통 사람도 아닌 권력 내부자들의 문자 내용이
그대로 유출됐는데 반응이 의외였지요
대통령실은 누가 어떤 경로로 유출했는지 따지지 않은 채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 대통령실은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실을 선거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입장만 밝혔어요
한 전 위원장은 “이건 일종의 ‘당무 개입’이나 ‘전대 개입’”이라고 했지요
그러나 누가 어떻게 전당대회에 개입하려 했는지 적극 나서지 않고 있어요
둘만의 문자 내용이 공개된 경위보다는 오히려 문자 내용을 두고
당대표 후보들 간에 한동훈 책임론을 제기하며 공방을 벌였을 뿐이지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누군가 기획했을 ‘문자 파동’으로 집권당 대표를 뽑고
결속을 다져야 할 전당대회가 만신창이가 됐어요
배신자다, 아니다, 총선 패배의 책임이 있다, 없다 싸움뿐이지요
몸싸움을 하더니 무슨 청탁을 했느니 안 했느니 점입가경이지요
야당은 문자 내용을 근거로 “한동훈 후보가 장관 시절 댓글팀을
운영한 의혹이 있다”며 특검을 꺼내 들었어요
김건희 여사와 대통령실에는 당무 개입 의혹이,
한 전 위원장에게는 댓글팀 의혹이라는 악재들만 쌓여갔지요
‘문자 파동’은 정치적 자해이면서 한동훈과 김 여사뿐 아니라
여권 전체를 최악으로 몰아넣고 있어요
이런데도 당사자 동의를 받은 문자 공개인지,
몰래한 문자 유출인지 묻고 따지지 않고 있지요
문자 파동으로 한동훈이 득 볼 것은 없기 때문에
그쪽에서 유출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요
문자 유출이라면 대통령실이 발 벗고 나서 경위를 따져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아요
문자 공개에 동의했거나 아니면 제공했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지요
김 여사의 침묵에 대해선 추측만 할 뿐이지요
국민의힘조차 여권을 준내전 상황으로 만든 정치적 일탈을 당연시하는 듯,
문자 파동 주도 세력 규명에 별 관심이 없어요
대통령실을 거치지 않고 영부인이 집권당 비대위원장에게
자신의 명품 가방 사과를 언급한 것도 이상한데
이 문자 내용이 여당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이용되는 상황까지 왔지요
대통령 부인을 정치의 한복판에 불러 세우고 야당에 1년 치 먹잇감을 준
중대 사건을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관망하고 있어요
여권 관계자는 “문자 공개 경위가 알려지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지요
넷플릭스의 정치 드라마 ‘돌풍’에서는
대통령 시해 시도가 너무 비현실적 상황에서 이뤄지지요
현실 정치에선 벌어질 수 없는 일이지요
대통령 부인과 대통령 핵심 측근이 나눈 대화 내용이 유출돼
여권 전체가 요동치는데, 당사자들은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침묵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말도 안 된다” 했을 것이지요
드라마 작가도 상상 못 했을 무서운 일이라서 그런가요?
드라마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실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지요
그런데 국민의힘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방송 토론회에서 나경원 후보를 향해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적 있죠?
저는 거기에 대해 그럴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어요
나 후보가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의 체포 영장 기각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후보 책임론을 제기하자
“법무 장관은 구체적 사안에 개입할 수 없다”고 대응하며 한 말이지요
패스트트랙 사건은 2019년 민주당의 선거법·공수처법 강행 처리 때
국회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로,
나 후보를 포함한 여야 의원이 무더기로 기소된 사건이었어요
국민의힘으로선 소수 야당 시절 집권 민주당의 일방적 국회 운영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지요
한 후보의 발언은 이런 전후 과정을 감안하지 않은 말이었어요
많은 당 인사는 “분별이 없다”고 비판했지요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불법 폭로 대회가 됐다”고 했어요
한 후보는 결국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사과했지요
이 일은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자해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최근에는 전당대회 연설회에서 일부 참석자가 욕설과 야유를 퍼붓다
의자를 던지려는 싸움까지 벌어졌지요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 상황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있어요
이런 도를 넘는 내분의 근본 원인은 당대표 경선이
윤석열 대통령 대(對) 한 후보 싸움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지요
이러니 여권 전체가 죽기 살기로 맞붙는 싸움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어요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 패배로 108석의 최약체 소수 여당으로 전락했지요
대통령 임기가 3년 가까이 남은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할 쇄신 리더십을 선출해야 하지요
그런데 후보 간 상호 비난이 위험 수위를 넘더니
지금은 전당대회 이후에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잡음이 커지고 있어요
지금도 아무 일 할 수 없는 약체 정당이 분열까지 한다면
기다리는 건 파국뿐이지요
문제는 이 정당이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이라는 사실이지요
모두가 정신차려야 하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 *-
▲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원투표를 하루 앞둔 18일 당대표 후보들의 모습.
왼쪽부터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여성위원회 대회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 서울시의회 간담회에 참석한 한동훈 후보.